소설리스트

383화 (383/605)

불타는 북동해

2023년 11월 24일 15:35 (이라크시각 09:35),

이라크 키르쿠크주 키르쿠크 시청 앞 광장.

21일 오후부터 시작된 황금사단과의 교전은 하루 반나절을 원활한 탄 보급도 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 기적적으로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12해병전차대대와 113해병기동대대가 키르쿠크 유전지대를 완전히 점령한 후 111해병전차대대에 합류하자 전장의 양상은 역전이 되면서 황금사단 6개 기갑여단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일부 잔존병력만이 키르쿠크주에서 퇴각했다.

하루 반나절을 황금사단 6개 기갑여단을 상대했던 111해병전차대대는 전력의 50%가량을 잃고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전차대대급으로 6개 기갑여단을 상대하고 2개 여단을 격파한 것은 전쟁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을 정도의 대단한 성과였다.

황금사단이 키르쿠크주에서 퇴각하자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을 막아설 이란군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은 단숨에 키르쿠크시로 진공했고 하루 동안 시가전을 펼쳐 시내 주둔하고 있는 이란군 게릴라부대까지 완전히 소탕했다.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전쟁에 있어 마지막 점령지였던 키르쿠크시가 제11 해병기동여단(광룡)에 의해 끝이 났다.

끊이지 않던 총성이 잔잔해진 키르쿠크 시청 광장 앞에는 111해병전차대대의 전차와 해병대원들 그리고 쿠르디스탄 공화국 수비대원들이 일렬로 도열한 가운데 태극기와 쿠르디스탄 공화국기의 게양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 여단장은 111해병전차대대의 해병대원 중 가장 큰 공을 세운 해병대원에게 태극기 게양을 하는 영광을 줬다.

영광의 주인공은 312호 전차 승조원인 전차장 김윤성 중사, 포수 이해성 상병, 조종수 길민준 병장이었다.

싱글벙글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이는 3명은 하얀 장갑을 끼고 2개의 게양대 앞에 섰다. 옆에는 쿠르디스탄 공화국 대표로 나온 키르쿠크 출신 공화국 수비대 3명이 섰다.

잠시 후 대대 정훈장교의 신호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이에 312호 전차 승조원 3명은 박자에 맞춰 절도있게 태극기를 게양했다.

대대 정훈병과 종군기자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졌고 어젯밤에 급히 이곳으로 날아온 KBS 공영방송사 취재진도 게양식을 촬영했다.

“헤헤 이거, 이거 방송까지 타고 중동에 온 보람이 있습니다.”

감출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입을 조금만 벌리고는 이해성 상병이 중얼거렸다.

“아! 난 오른쪽 얼굴이 잘생겼는데, 외쪽에서 촬영하네. 제길 시작 전에 자리를 바꿀걸,”

조종수인 길민중 병장 역시 미소를 머금고는 중얼거렸다.

“쉿! 조용히 안 해? 입 다물고 박자 잘 맞춰 올려!”

호탕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긴장했는지 김윤성 중사는 두 눈을 부라리며 노려왔다.

“아! 단차장님! 얼굴 인상 좀 펴세요. 전국으로 방송 나가요.”

“시꺼!”

애국가가 끝나면서 태극기 게양식도 끝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국가가 연주되면서 녹색 바탕에 여러 그림이 그려진 공화국기가 천천히 게양되기 시작했다.

해병대원 옆에서 함께 도열해 있던 쿠르디스탄 공화국 수비대원 200여 명의 눈에서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굵은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 그러나 찬란한 문화 전통의 역사가 무참하게 짓밟힌, 그로 인해 역사의 줄기가 단절되어 버린, 바로 일제 치하 36년이 지나고 해방되었던 1945년 8월 15일 그 당시의 사람들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양식이 끝나자 쿠르디스탄 공화국 수비대원들은 저마다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고 어떤 수비대원은 해병대원에게 달려들어 악수를 청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일부 정찰 임무 외에는 전원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캬! 이거 계 탔어! 오늘 밤 뉴스에 내 얼굴 확실하게 방송 타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 팩 좀 할걸, 이거 얼굴이 완전 깜댕이 됐네.”

임시 막사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작은 손거울로 이리저리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던 길민준 병장은 꺼멓게 타 벌린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길 뱅장님! 군인이 시꺼멓게 얼굴 좀 타고 해야 남자답지 않습니까?”

휴대용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던 이해성 상병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핀잔을 줬다.

“야마! 나 제대하면 바로 모델 될 거란 말이야. 제대도 이제 2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자식아!”

183cm의 훨씬 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인 길민준 병장은 입대 전부터 모델 지망생이었다.

“하하하, 누가 모델 시켜준다고 합니까?”

“어쭈, 이 상병 나부랭탱이가 오냐 오냐 했더니 빠져서리 병장 알기를 개똥으로 아네? 죽을래?”

“아! 죽다니요? 목숨 걸고 함께 싸운 전우에게 너무하십니다.”

“전우 같은 소리! 넌 상병 나부랭탱이! 난 대장보다 높은 병장님이시다 자식아!”

“그 병장! 저도 다음 달이면 답니다.”

이때 단차장 김윤성 중사가 막사에 들어왔다.

“야! 누가 대장보다 병장이 높데? 이 써글놈아들! 이거나 먹으면서 쉬어라!”

김윤성 중사는 들고 온 비닐봉지를 이해성 상병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아 차가워라!”

아무 생각 없이 비닐봉지를 받았던 이해성 상병은 손바닥에 느껴지는 차가움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이내 비닐봉지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우와! 이거 탱크걸! 이걸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뭐? 쭈쭈바? 탱크걸?”

길민준 병장은 다이빙하듯 이해성 상병의 침대로 날아와 탱크걸 하나를 낚아챘다.

“와! 단차장님! 이거 어디서 나셨습니까?”

“어디서 나긴 마! 보급품이지······. 내가 행보관 졸라서 2개 더 가져왔다.”

김윤성 중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와! 우리 천사 단차장님! 사랑합니다.”

이해성 상병과 길민준 병장은 어울리지 않은 눈망울을 보이며 탱크걸의 꽂지를 따고는 그대로에 입에 넣었다.

“캬! 맛 죽인다. 온몸이 시원해진다야”

“이거 얼마 만에 먹어봅니까? 하하하”

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건, 단지 맛 나는 탱크걸 때문은 아니었다. 두 달간 태양이 이글거리는 타지의 황무지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고 친했던 전우의 전사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이렇게 전우끼리 농담하며 웃을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 ★ ★

2023년 11월 24일 15:36,

동해 북위 43° 1'17.06" 동경 139°23'53.69" 공해상(제7기동전단).

자동요격시스템으로 전환된 광해군함(DDG-1001)에서 안형균 제독이나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할 일은 마땅히 없었다. 단지 각 담당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며 메인 전술 스크린을 지켜볼 뿐이었다.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호쿨라는 가장 위험도가 높은 대함미사일부터 표적 부여 및 적절한 함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광해함(DDG-1001)의 함수와 함미 그리고 중간에 설치된 여러 개의 K-VSL(수식발사대)에서는 끊임없이 각가지 대공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고 다른 호쿨라 구축함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현황은 고스란히 전투지휘실 전술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여러 색상의 모형과 기호, 그리고 수많은 각양각색의 선이 전술 스크린의 디지털 지도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쿵! 쿠앙! 쾅!

극동함대에서 발사한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1기가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과 충돌하며 화려한 불꽃 쇼를 연출했다. 이러한 불꽃 쇼는 끊이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차례대로 일어났다.

“표적 1번! 요격 성공! 표적 2번 요격 성공!”

사실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없더라도 전술 스크린만 자세히 봐도 요격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색상의 선이 맞닿은 후 몇 번 껌뻑이다가 사라지면 요격 성공이었고 한쪽 선이 계속해서 제7기동전단으로 그어지면 요격 실패였다.

그렇다고 오퍼레이터가 보고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호떡집 불난 마냥 여기저기에서 자기와 관련된 정보를 보고하는 전투지휘실의 공기는 무겁기도 하면서 후끈 달아올라 뜨거웠다.

그리고 어느덧 극동함대에서 발사한 대함미사일 중 극초음속 P-800 오닉스를 모두 요격하고 초음속 대함미사일 P-700 그라니트를 요격하려는 그때, 전탐관 한 명이 마치 귀신을 본듯한 표정을 지으며 비명에 가까운 보고가 올라왔다.

“북단 방향 298km 지점에서 새로운 미사일 출현! 지대함미사일로 추정! 속도는 마하 2.5 내외! 현재 19기! 계속 늘어납니다. 현재 22기! 최종 24기 확인!”

전탐관은 모니터 화면에서 늘어나는 붉은 원점을 세어가며 보고했다. 그리고 탐지된 미사일 정보는 그대로 피아식별 DB를 걸쳐 피아식별분석관의 모니터에 그 정체를 밝혔다.

“초음속 지대함미사일인 P-800 오닉스, 아 수출형인 P-800 야혼트로 판명! 사거리 300km 속도는 마하 2.5”

러시아는 P-500 바잘트를 개량하여 P-800을 개발했다. P-800은 두 가지 버전으로 국내용은 P-800 오닉스로 불렸고 추출용은 P-800 야혼트로 불렸다. 국내용인 P-800 오닉스인 경우 속도가 마하 4.5에 사거리가 600km인데 비해 수출용은 속도가 마하 2.5에 사거리가 300km밖에 안 되는 절반에 가까운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었다.

극동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연해주 우수리 지역의 남서해안에 배치된 K-33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는 원래 수출용으로 제작되었던 포대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국과의 전쟁이 다가오자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무기까지 실전 배치한 상태였다.

“지대함인가?”

“네, K-33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 3개로 확인됩니다.”

“원점 타격한다. 본 전단을 향해 대함미사일을 날렸으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겠지”

안형균 제독은 앞서 KH-47M2 킨잘 공대함미사일을 발사한 발사체에 대해 원점 공격을 가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1,200km 넘었던지라 이를 악물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33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는 충분히 원점 타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수동으로 천룡B 함대지미사일 12기 준비!”

“네, 천룡B 함대지미사일 12기 각 표적 당 4기씩 타켓팅 합니다.”

기존 천룡A 함대지미사일과 다르게 소형 플라즈마 확산탄 50개를 장착한 천룡B 함대지미사일은 1기 당 축구장 20개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기갑부대나 이동식 발사체에 대한 원점공격에 특화된 미사일이었다.

김혁민 전술통제관의 복명복창에 함대지미사일 담당 무장관이 수동으로 발사 절차에 들어갔다.

“표적 당 천룡B 4기 표적 설정! 발사 준비 완료!”

“발사!”

무장관의 보고에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바로 발사를 승인했다.

함수 두 번째 48셀 K-VLS2(수직발사대)에서 은빛깔의 천룡B 함대지미사일이 하얀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총 12기의 천룡B 함대지미사일은 커다란 포물선을 그으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원점 표적까지 알아서 날아가는 천룡B 함대지미사일은 최종 착탄 전 자체 능동형 레이더를 통해 이동 표적을 따라가고 상공 100m에서 자탄 50개를 뿌리게 된다. 아무리 K-33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가 P-800 야혼트 미사일을 발사한 후 즉시 이동한다 해도 충분히 추적하여 초토화할 확률은 높았다.

“현재 해성A 미사일 상황은 어떤가?”

제7기동전단을 향해 날아오는 러시아의 각종 대함미사일은 호큘라 자동요격시스템이 알아서 하기에 안형균 제독은 이제 극동함대를 향해 날아가는 해성A 대함미사일에 관심을 돌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네, 28기 중! 현재 7기 요격당했습니다. 나머지 21기 2차 발사된 러시아 대공미사일과 충돌 직전입니다.”

“음, 1차 요격률이 25%에 달하는군!”

안형균 제독의 혼잣말을 들은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말을 건넸다.

“근접방어체제를 빼면 이번 요격이 마지막일 겁니다.”

“그러겠지!”

“이번 2차 요격에서 7기! 근접방어체제로 2기 정도가 요격된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10기에서 14기는 충분히 극동함대를 타격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감에 찬 김혁민 전술통제관의 발언에 안형균 제독 역시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때 또다시 전탐관의 목소리가 전투지휘실을 울렸다. 이제는 놀라지도 비명 섞인 목소리로 보고하지도 않았다. 그들도 이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 새로운 공대함미사일 다수 출현! 서단 385km, 고도 10km 지점, 공대함이며 발사체는 Su-35 전폭기입니다. 총 24기 확인! 앞으로 도달까지 250초!”

“미사일 확인 장거리 공대함미사일인 KH-22S 부랴 공대함미사일 판명!”

전탐관이 보고하면 피아식별분서관이 알아서 바로 보고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터라 죽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KH-22S 부랴 공대함미사일 사거리 600km에서 1000km, 속도는 마하 3.5에서 4.5”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러시아의 대함미사일 출현에 안형균 제독은 인상을 꾸기며 일갈했다.

“대체 러시아놈들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고작 구축함 6척을 상대로 200기가 넘는 미사일을 발사한단 말인가?”

제7기동전단에 퍼부은 러시아의 각종 대함미사일 수량은 총 248기나 달했다. 현재까지 요격된 러시아 대함미사일은 총 88기! 아직도 160기나 남은 상태였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160기 중 100기에 달하는 대함미사일의 도달 시간이 같은 시간대라는 거였다. 더불어 가장 위험도가 높은 40기의 KH-47M2 킨잘 공대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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