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칼바람
2023년 11월 24일 15:20 (러시아시각 09:2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
“교전 시작 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어떻게 전력의 60%를 잃을 수 있는 건가?”
각부서 관료는 물론 총참모부 지휘관들과 스테이트 R-13에서 제7기동전단과의 해상전을 지켜보고 있던 푸틴 대통령은 현 상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것이 적 함대를 탐지할 첩보위성과 연결이 되지 않은 바람에······.”
해군 총사령관인 이고리 그로모프 대장이 항공우주방위군 총사령관인 우돌프 미아히를 곁눈질로 보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러시아 해군이 첩보위성 없으면 그냥 종이배라도 되는 건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써야 할 게 아닌가?”
답답한 답변에 더욱 화가 난 푸틴 대통령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까지 하며 이고리 그로모프 대장을 질타했다. 그리고는 화는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으로 넘어갔다.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 이번 극동함대가 패전한다면 당신부터 옷을 벗어야 할 것이오.”
노기 띤 얼굴로 노려보는 푸틴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에게 향했다.
“이바노프 장관! 당신도 마찬가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7기동전단을 무조건 박살 내도록.”
“네, 대통령님! 그러잖아도 늦긴 했지만, 현재 플랜 B로 작전을 전환한 상태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7기동전단을 한 척도 놓치지 않고 모두 북동해에 수장시키겠습니다.”
“장관! 그 말, 책임져야 할 것이오.”
“네, 책임지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대통령님!”
장담하는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의 말에 어느 정도 화를 누그러트린 푸틴 대통령은 자리에 앉으며 푸념했다.
“시작부터 틀어졌어! 60% 손실이라니······. 어쨌든 이바노프 장관! 만에 하나! 극동함대가 패전한다면 다음 단계를 바로 진행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잠시 얼어붙었던 벙커 스테이트 R-13의 상황실은 다시금 각 부서 장관과 지휘관들의 의견이 오고 갔고 이제 막 시작되는 플랜 B 작전 현황을 지켜보고 위해 다시금 스크린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첩보위성과의 탐지 정보를 지원받지 못한 극동함대가 제7기동전단에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자 총참모부는 즉시 플랜 B로 전환했다.
가장 먼저 제7기동전단을 탐지할 수 있도록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6기를 긴급 출격했다. 사실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는 단순 대함과 대잠 초계 임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미 해군의 최신형 스텔스 구축함인 줌왈트급 구축함과 같은 스텔스 성능이 뛰어난 해상전을 가상으로 대비책을 마련한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인 KhL-100를 개발했다.
초기연구 당시 러시아는 미 해군의 최신형 스텔스 구축함인 줌왈트급 구축함과 같은 스텔스 능력이 뛰어난 구축함을 상대할 때, 다소 성능이 떨어지는 해상 레이더를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KHL-100 탄두에는 리데르급 방공순양함에 탑재된 S-500 고정식 능동형 AESA 위상배열 레이더의 축소판 버전이 장착되어 최고의 회피 비행능력으로 적 함대 근방까지 날아가 착탄 된 후 최대 24시간까지 주변 200km 이내의 모든 수상함을 탐지할 수 있다.
단점이라면 천문학적인 가격이었다. 1기 당 1억 달러에 달했다.
이에 러시아 연방회의에서는 개발 예산 편성을 반대했으나, 푸틴 정부는 1기 사용으로 수십억 달러나 하는 상대 구축함 1척만이라도 침몰시킨다면 수십 배나 남는 장사라며 밀어붙였고 이에 2021년에 개발을 완료하여 2022년 9월에 총 12기가 실전 배치되었다.
현재 극동함대의 상공으로 비행하는 6기의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하단 중앙에는 KhL-100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이 무장되어 있었다.
만약 KhL-100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을 발사해 한국 해군의 제7기동전단 근방 해상에 무사히 착탄 된 후 탐지정보를 극동함대는 물론 최고속도로 연해주 상공에서 북동해 상공으로 비행 중인 제3항공군 소속의 SU-35 전폭기 12기에 정상적으로 데이터링크를 한다면 불리하게 돌아가는 해상전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도 있었다.
더불어 플랜 B에는 3가지가 더 있었다.
첫째는 쿠르스카야주의 젤레즈노고르스크 공군기지에서 KH-47M2 킨잘 공대함미사일을 무장한 MiG-31BM 전폭기 12기도 있었다.
KH-47M2 킨잘 공대함미사일은 2017년 12월에 실전 배치한 극초음속 공대함미사일로 최초로 소형 핵 추진 엔진을 장착하여 속도가 무려 마하 10이었고 사거리는 2,000km에 달한다고 선전했다.
실전 배치 당시 러시아는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두고 레이더 탐지 회피 기능은 물론 기동성이 탁월한 KH-47M2 킨잘 미사일로 인해 미국이 자랑하는 MD 체계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방적인 러시아의 주장이었고 미국 역시 비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자국 방위산업체에 요격할 방안에 대한 입찰이 비밀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펜타곤에서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가졌던 러시아의 첨단무기였다.
둘째는 크라스노야르스크 공군기지에서도 KH-47M2 킨잘 공대함미사일을 무려 4기나 무장한 Tu-22M 투폴레프 전략폭격기 4기가 출격했다.
셋째는 K-30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가 각가지 위장막으로 엄폐한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1개 포대당 이동식 발사차량 4대로 차량마다 2기의 P-800 오닉스 미사일이 탑재된다. 마하 4.5에 사거리는 600km로 연해주의 우수리 지역 해안에서 충분히 제7기동전단을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다. 하지만 현재 우수리 지역 해안에 배치된 K-300P 바스티온 지대함 포대는 국내용이 아닌 수출용으로 미사일 속도와 사거리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이렇듯 러시아의 플랜 B 작전은 자치 제7기동전단에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먼저 극초음속 KH-47M2 킨잘 공대함미사일 40기에 초음속 KH-22S 부랴 장거리 공대함미사일 24기, P-800 오닉스 미사일 24기 그리고 극동함대에서 발사될 수량을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함대함미사일이었다.
처음부터 플랜 B 작전으로 제7기동전단을 상대했다면 극동함대의 피해는 현재보다는 적었을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극동함대의 전력을 과대평가했고 제7기동전단을 과소평가한 총참모부의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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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4일 15:2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추은희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각료와 국가위기상황센터 상황실에서 현재 북동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 국가 간의 해상전을 마치 영화 보듯 스크린에 시선에 고정된 채 지켜보고 있었다.
간혹, 몇몇 보좌관들은 스크린 영상에서 극동함대의 수상함이 대함미사일에 맞거나 침몰하는 장면이 보일 때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과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에 비서실장으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다.
아폴론 정찰위성과 제7기동전단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송출되기에 가능했다.
“승기를 잡은 듯합니다.”
흡족한 표정을 지은 이윤연 국무총리가 말하자 옆에 있던 강현수 안보실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총리님! 아직은 모릅니다.”
“아! 그런가요? 제가 이쪽으로는 아는 게 없던지라······.”
이윤연 국무총리는 섣부르게 판단한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에 빨개졌다.
“초반 승기는 잡았다 볼 수 있으나, 극동함대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출격한 해상초계기도 그렇고, 뭔가 있는 듯합니다.”
전 국방부 장관 출신답게 강현수 안보실장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는지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기런가요? 내래 볼 때는 우리 전단이 한 번만 더 대함미사일로 공격하믄 확실히 극동함대를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디말입네다?”
김영철 통일정책부 장관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강이식 안보실장이 대답하는 사이 추은희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보며 물었다.
“푸틴 대통령 성격으로 봐서는 극동함대만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 국경선 일대에 대해선 확실하게 대비하고 있지요?”
푸틴 대통령과의 핫라인 통화에서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통화했던 추은희 대통령은 막상 러시아 극동함대와의 해상전이 시작되자 걱정이 되었는지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대통령님! 현재 모든 국경선에서는 한 달 가까이 경계강화 1호가 발령된 상황입니다. 또한, 합참에서도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여 그에 맞는 대비책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믿으셔도 됩니다.”
강이식 장관은 얼굴에는 자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절도 있고 씩씩하게 말했다.
“당연히 믿지요. 한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무슨 부탁입니까?”
“혹, 이번 해상전으로 시작된 러시아와의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최대한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는 우리 국군 장병들의 희생을 최대한 없게끔 해주세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절도 있는 목소리로 강이식 장관이 대답하자 강현수 실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통령에게 말했다.
“하하하, 이런 우연이 있나요? 저번 동북아 전쟁 때에서 서현우 전 대통령님께서도 방금 대통령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 자리에 있으면 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여러 얘기가 오가는 사이 스크린 화면에는 6척의 호큘라 구축함에서 해천룡 미사일이 차례대로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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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4일 17:20 (러시아시각 17:20),
러시아 프리로르스키 크레이 달네고르스크 남단 15km 상공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6기는 서로 간 30km 간격을 두고 막 연해주 해안선을 벗어나 서서히 극동함대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순간 6기의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에서는 미사일 감지 센서가 작동하며 조종실에 경보음을 울렸다.
현재 해상초계기가 있는 상공은 당연히 러시아 영공이었다. 즉, 공해상에서 양 국간 교전과는 차원이 다른, 즉,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는 발단이 될 수도 있었다.
- 도! 도달까지 앞으로 55초! 미사일이 너무 빠릅니다.
1호기 항전운용관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조종사와 부조종사 헤드폰에 울려댔다.
이에 1호기 조종사이자 비행대대장인 유리 가진스키는 모든 해상초계기와 통신을 개방하고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는 1호기! 시간이 없다. 현재 위치에서 지정된 좌표로 ‘아이온 글럼’ 떨구고 즉시 회피 기동에 들어간다. 반복한다. 지정된 좌표로 ‘아이온 글럼’ 떨구고 즉시 회피 기동에 들어간다.”
- 2호기 라져!
- 3호기 라져!
- 4호기 라져!
- 5호기 라져!
- 6호기 라져!
대답과 동시에 각 해상초계기의 하단 중앙에 장착된 묵직한 미사일이 차례대로 분리되고는 이내 강력한 추진체가 터지면서 앞으로 튀어 날아갔다.
슈우우웅~ 슈우우웅~ 슈우우웅~ 슈우우웅~ 슈우우웅~ 슈우우웅~
매끈한 스타일에 4개의 보조 제트 엔진이 달린 일명 ‘아이온 글럼’ 이라 불리는 KHL-100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은 무서운 속도로 정해진 좌표로 날아갔다.
“각자 알아서 회피 기동 시행!”
다시 한번 1호기 비행대대장으로부터 다급함이 묻은 지시가 떨어지자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들은 제트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각자 좌우로 급선회했고 강력한 ECM 출력을 최대한 올리며 채프탄까지 허공에 사정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고도 50km에서 내리꽂으며 마하 10으로 날아오는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을 피할 순 없었다.
콰아아앙!
가장 먼저 3호기 해상초계기가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과 충돌하자 공중 폭발을 하며 산산이 조각났다.
뒤이어 4호기와 2호기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쿠아아앙! 콰아앙!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이빨처럼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은 정확하고 확실하게 먹잇감을 낚았다.
순식간에 해상초계기 3대가 크고 작은 불덩어리로 변하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운 좋게 첫 번째 해천룡 미사일을 피한 5호기마저 두 번째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에 격추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1호기는 첫 번째 미사일에 왼쪽 날개에 충돌했다. 이에 한쪽 엔진을 잃은 1호기는 양력을 잃고 빙글빙글 돌면 지상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얼마지 지나지 않아 두 번째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이 날아와 충돌하면서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6기의 모든 승조원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한편, 급히 발사된 ‘아이온 글럼’이라 불리는 KHL-100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은 4개의 보조 제트 엔진까지 써가며 순식간에 제7기동전단 상공까지 접근했다.
당연히 제7기동전단에서도 KHL-100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에 대해 탐지를 했고 요격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으나, 분석된 예상 타격지점이 제7기동전단이 아닌 멀게는 190km에서 가깝게는 120km나 벗어났기에 요격절차를 중지했다. 제7기동전단의 승조원 그 누구도 그것이 이동형 레이더 미사일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