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칼바람
함수 절반이 내폭으로 잘려나간 후 함 전체에 붉은 화염이 휩싸인 채로 검은 연기를 내뿜던 마샬 바실리예프스키함(CGN-901)은 함수 쪽으로 50도나 기울며 북동해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는 높다란 마스트 일부 보였다.
이런 참혹한 장면을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함교에서 지켜보던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본 함을 위해 바실리예프스키함이 희생했군’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가했다.
제7기동전단의 탐지 정보를 링크 받은 못하는 가운데 극동함대의 모든 전투정보통제실은 또다시 발사된 제7기동전단의 대함미사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추가적인 함미사일 공격이 있을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했지만, 지금 날아오는 미사일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6척의 호큘라 구축함에서 발사한 함대함미사일은 사거리 450km에 속도가 마하 10에 달하는 극초음속 S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이었다.
2022년 초, 해군은 충무공이순신급 중순양함에서만 운용하던 S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호큘라 구축함에서도 2연장 발사 플렛폼 2개를 장착하여 운용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미사일 18기! 속도가······. 본 함대 도달까지 앞으로 57초!”
마샬 바실리예프스키함(CGN-901)을 대신해 대공 방어를 리드하는 스피리도노프함(CGN-902)의 오퍼레이터는 보고를 하면서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하 10이라는 속도는 250km 거리를 70초면 주파하는 무서운 속도였다. 결과적으로 극동함대가 요격할 기회는 딱 한밖에 없었다.
“탐지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도달까지 57초야? 표적 하나당 대공미사일 4기 할당하고 절차 완료되면 즉시 대공미사일 발사!”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전투정보통제관이 간단명료하게 지시를 내리자 무장관은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자판을 두드렸다. 이에 극동함대의 각 함에서는 자신이 요격을 대함미사일에 대한 표적을 할당받자 표적당 S-300FM 대공미사일을 4기나 발사했다.
또 한 차례 극동함대의 수상함에서 수십 개의 하얀 연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마하 10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바다 수면을 스치며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이 날아가자 잔잔했던 바다 수면은 양 갈래로 갈라지며 성난 파도를 만들어졌다.
이때 하늘에서는 하얀 구름을 뚫고 S-300FM 대공미사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수면을 스치고 날아가는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서 날아가던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표적으로 삼았던 S-300FM 대공미사일은 그만 표적을 잃고 그대로 바다와 충돌하며 폭발했다.
퍼엉! 콰앙!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요격하기엔 S-300FM 대공미사일의 속도는 현저히 느렸다. 사실적으로 S-300FM 대공미사일의 속도가 느린 게 아니라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이 너무도 빠르다고 봐야 했다.
총 64기에 달하던 S-300FM 대공미사일이 요격에 성공한 미사일은 고작 8기밖에 불과했다. 이에 살아남은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 10기는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극동함대를 향해 그대로 날아갔다.
딱 한 번뿐인 요격 기회에서 50%도 안 되는 요격률이 나오자 극동함대의 지휘관과 승조원들은 경악을 넘어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본능에 즉각 근접방어체제를 가동했다.
부족한 시간으로 단거리 대공미사일은 제외하고 바로 아자크 레일건이 가동했다.
빠빠빠방! 빠빠빠방! 빠빠빠방!
경쾌한 발사음과 함께 수많은 금속탄 빛줄기가 포물선을 그으며 다가오는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아자크 레일건보다 더 빠른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은 그대로 극동함대에 파고들어 갔다.
“충! 충돌한다. 충돌에 대비하라!”
아바리스 미사일의 표적이 된 모든 함에서는 이와 같은 경고방송이 울려 퍼졌다.
쿠앙! 콰아아아앙!
탄 중량 1톤에 직경이 700mm이며 길이가 7m에 달하는 육중한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은 마하 10에 달하는 속도 그대로 날아가 어드미럴 나키모프함(GSN-182)의 함교 아래쪽을 강타했다.
가히 마하 10이라는 경이로운 속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졌다. 만재배수량 2만 4,300t에 달하는 어드미럴 나키모프함(GSN-182)의 함교는 물론 상층 구조물이 몽땅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내 내부 깊숙이 파고들었던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이 폭발했다. 252m의 길이의 어드미럴 나키모프함(GSN-182)이 순간적으로 활시위처럼 휘더니 이내 대폭발과 함께 두 갈래로 쪼개져 버렸다.
끊이지 않은 폭발음과 함께 사방에서 솟구치는 검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2개로 쪼개진 어드미럴 나키모프함(GSN-182)은 각각 급격히 기울어지며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러한 운명은 다른 수상함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소브레멘니급 보예보이함(DDG-770)과 비스트리함(DDG-676)은 충돌과 동시에 그대로 바닷속으로 수장되었고 대잠전이 전문인 우달로이급 마샬 샤포쉬니코프함(BPK-543)과 어드미럴 트리부츠함(BPK-564)이 물귀신 길동무가 되었다.
또한, 리데르급 순양함인 오트차이야니함(CGN-903)과 페이터급 강습상륙함인 오슬라비아함(LST-066)도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을 2기나 얻어맞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몇 분 전까지 20노트로 항해하던 바다 위에는 무수히 많은 잔해만이 바다 위에 떠다닐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키로프급 4번 함인 표트르 벨리키이함(CGSN-183)은 대함미사일과 충돌 직전 아자크 레일건으로 요격하는 데 성공하여 침몰위기는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SM-1000K 아바리스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파편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에 표트르 벨리키이함(CGSN-183)의 레이더와 각종 장비가 손상되고 말았다.
제7기동전단의 단 두 차례 대함미사일 공격에 극동함대는 60%에 달하는 전력을 잃고 말았다. 눈먼 장님마냥 일방적인 뭇매를 맞은 꼴이었다.
조금 전, 마샬 바실리예프스키함(CGN-901)이 침몰할 때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봤던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밀려오는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공포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대, 대체 다음 위성은 언제쯤 연결되는 건가? 이렇게 계속 일방적으로 당할 순 없어!”
함장용 디스플레이 콘솔을 주먹으로 내려친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옆에 있는 작전관을 바라봤다. 이에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이 대답했다.
“시간으로 볼 때 연결되어야 정상입니다.”
“제길! 그럼 3항공군은 어떻게 된 건가? 아직도 출격을 안 한 건가?”
극동함대가 해상전에 돌입 시 제3항공군 틴다 기지에서 대함미사일로 무장한 Su-35 전폭기가 출격하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현재 Su-35 전폭기 12기가 출격한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3항공군 역시 한국 해군 함대를 탐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현재 연해주 상공에서 대기 비행 중이며 우리 해군의 초계기 6기가 현재 우리 상공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대기 비행? 초계기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가? 탐지가 안 되면 대략적인 위치까지 날아와 어떻게든 탐지해 대함미사일을 쏴야 할 게 아닌가? 한심한 공군 놈들······.”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작전관의 대답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질문을 이어갔다.
한편 그 시각, 러시아 해군 소속의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6기가 동시에 출격하여 막 극동함대 상공을 지나치고 있었다.
기존 계획이라면 첩보위성 Bars-M으로 레이더 정보 지원을 받으며 한국 해군과 해상전을 치르기로 하였다. 하지만 동원될 첩보위성 3대가 차례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신 두절이 이어지고 극동함대가 한국 해군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러시아 해군에서는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 6기를 급히 출격시켰다.
기존 IL-38N 메이 해상초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엔진과 레이더 성능이 뛰어난 IL-39 사라코프 해상초계기는 고도 10km 상공에서 제7기동전단 방향으로 강력한 레이더 전파를 내보냈다.
그리고 뒤이어 연해주 상공에서 양 날개에 최종 버전인 장거리 공대함미사일인 KH-22S 뷰랴 2기를 무장하고 대기 비행하던 Su-35 전폭기 12기는 즉시 북동해 방향으로 선회하며 엔진 출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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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4일 15:10,
동해 북위 43° 1'17.06" 동경 139°23'53.69" 공해상(제7기동전단)
광해군함(DDG-1001) 전투지휘실에서는 현재 러시아 극동함대의 피해 현황에 대한 보고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음, 생각보다 러시아 대공 방어체계가 우수하군, 우리 아바리스 미사일을 상대로 40%에 가까운 요격률을 보였으니 말이야.”
대형 스크린 좌측의 작은 스크린 화면에 나타난 각종 그래프와 수치로 표현되는 정보를 읽어가던 안형균 제독은 아쉬움이 남는지 입맛을 다졌다. 이에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맞장구를 쳤다.
“네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적어도 전투함들은 모두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하하, 뭐 우리만 군사 무기가 발전하겠는가? 러시아도 근 몇 년간 눈부신 발전을 했겠지. 이정도로 만족해야겠지.”
“다음 공격도 아바리스로 진행할까요?”
“아니야. 그 비싼 미사일을 50% 이상 전력이 손실된 함대에 쓰는 건 조금 아깝군. 해성 미사일로 가지. 목표물 당 해성 미사일 2기씩 세팅하게”
“네, 알겠습니다.”
외기권과 열권 사이에서 제1우주전투비행단 소속의 알파편대가 러시아 첩보위성 Bars-M 3기를 모두 격추했다는 통신이 날아온 상태라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 제7기동전단은 서서히 제3차 대함미사일 공격 절차에 들어가려 했다.
이때 전탐관으로부터 새로운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 서북동 극동함대 후방 320km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체 탐지! 분석 들어갑니다.”
“전투기인가?”
전술통제과의 질문에 전탐관은 사정없이 콘솔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레이더 전파 단면이 큰 거로 봐서는 전투기는 아닙니다. 현재 피아식별 데이터와 비교분석 중! 아! 분석 결과 IL-39 사라코프 러시아 최신형 해상초계기로 판명!”
“음, 자기네 위성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듯하군!”
“대함미사일 공격은 잠시 미루고 저놈들부터 해결해야겠지?”
잠시 우선순위를 두고 곰곰이 생각한 안형균 제독은 러시아 해상초계기를 선택했다.
“네, 요격절차 들어가겠습니다.”
“총 6기니 각 함에서 대공미사일 2기씩 할당!”
“현재 거리가 300km가 넘는 관계로 해천룡 미사일을 사용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게”
안형균 제독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자 김혁민 전술통제관은 각 함에 이와 같은 지시를 전달했다.
사거리 420km에 마하 10이라는 속도로 고도 30km까지 날아가는 GTAS- 300 해천룡 함대공미사일 12기가 차례대로 푸른 불꽃을 터뜨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굉음을 토해내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해천룡 함대공미사일은 이내 고도 10km 상공에서 커다란 포물선을 그으며 마하 10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