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8화 (378/605)

시베리아의 칼바람

2023년 11월 24일 15:00,

동해 북위 43°20'20.37" 동경 136°19'47.79" 공해상(극동함대)

“현재 침로 0-9-2 방향, 거리 258km 해상, 제7기동전단으로 보이는 수상함 6척이 횡대 대형으로 우리 본 함대의 항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첩보위성으로부터의 통신입니다.”

“우리 레이더에는 걸리지 않은 건가?”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질문에 보고하던 함대 작전관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주저했다.

“그, 그것이 아직 우리 함대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은 듯합니다.”

“이거 쉽지 않은 교전이 되겠군, 레이더에 잡혀야 공격을 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다그치는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질문에 함대 작전관은 머리를 쥐어짜며 대답했다.

“현재 대략적인 위치는 확인되었으니 좀 더 거리를 줄이면 우리 레이더에도 탐지될 것입니다.”

“이런, 이런, 현재 동해에서 운용하는 첩보위성은 몇 개인가?”

“네, 3개의 첩보위성이 동원되었습니다.”

“만에 하나, 우리 레이더에 끝까지 탐지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이 바다에 수장되는 꼴이야. 첩보위성에 최대 출력으로 레이더 유도링크를 걸어달라고 하게나. 그렇게라도 싸워야지 않겠어?”

“네, 알겠습니다.”

“한국 해군의 구축함들 스텔스 성능이 알고 있는 것보다 상상 이상이군.”

혼잣말하든 중얼거린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전투정보통제실로부터 링크된 레이더 디스플레이의 텅 빈 화면을 바라봤다.

이때 통신사관으로부터 한국 해군의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개방 통신으로 연결하게!”

잠시 후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함교에는 제7기동전단의 안형균 제독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안녕하십니까? 제7기동전단장 안형균입니다.

“안녕하시오. 나는 극동함대장 발레리 까르핀입니다.”

동시통역을 통해 두 수장은 서로에게 인사 아닌 인사를 건넸다.

“현재 극동함대는 공해상을 넘어 홋카이도로 접근 중입니다. 정중히 묻겠습니다. 단순 훈련입니까? 아니면 홋카이도를 향한 상륙작전을 펼치기 위함입니까?”

안형균 제독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현 상황에서 한국 해군과의 교전이 기정사실인 가운데 숨길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현재 극동함대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홋카이도 상륙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현재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영토는 한일조약에 의해 한국군이 수호하고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극동함대의 항해를 불법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보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해도 되겠군요.

“허허허, 대응이라······. 그렇게 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희 또한 그에 맞는 대응을 하겠습니다.”

- 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발레리 까르핀 제독님 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대규모 해상전을 앞둔 상태에서 두 제독의 신사적인 인사말을 끝으로 대화를 끝나자 함대 작전관이 보고했다.

“첩보위성으로부터 레이더 유도링크가 되어 대략적인 탐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시선이 레이더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돌리자 디스플레이에는 극동함대로부터 251km 떨어진 해상에 6개의 붉은 점이 깜박이고 있었다.

“공격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함대 작전관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대령이 물었다.

진작부터 전 함대의 승조원들은 전투태세로 전환한 상태에서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명령만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제7기동전단 방향의 지평선을 함교 창문 너머 바라본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옆에 있는 함장에게 물었다.

“자네는 교전 결과가 어떨 거라 보나?”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고작 6척입니다. 초반 미사일 물량전으로 공격한다면 쉽게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극동함대에서 발사할 수 있는 초음속 대함미사일만 수량이 1,000여 발이 넘었다. 가히 생각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숫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나?”

“네, 초반 초음속 대함미사일 200기만 날려도 될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군.”

“네? 그럼 제독님은 생각이 다르십니까?”

“아, 아니네. 자네 말이 맞겠지.”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출항 이후 줄곧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뭔가 결심을 했는지 두 눈을 질근 감고는 작전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표적 1번부터 6번까지 지정! 각 표적에 초음속 대함미사일 20발,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10발 발사 준비!”

사실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이번 교전에 앞서 한국 해군, 특히 제7기동전단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했다. 호큘라라는 듣지도 보지 못한 시스템으로 운용하며 지난 동북아 전쟁 당시 일본 호위대군은 물론 100여 척이 넘는 중국 대함군을 격멸한 제7기동전단의 성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제7기동전단의 구축함은 쉽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게 분석 결과였다.

이런 불편한 사실을 안고 교전을 앞둔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교전 승패가 어떻든 러시아 해군 제독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쿠아아아앙~

공격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극동함대의 키로프급 전투순양함의 양 측면 발사대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얀 연기 수십 개가 하늘로 솟구쳤다. 장거리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인 자국형 P-800 오닉스 미사일이었다.

더불어 리데르급 순양함과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그리고 우달로이급 구축함에서도 각자 설정된 표적을 향해 P-700 그라니트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친 100여 개의 하얀 연기는 이내 고도 인계점을 돌파하자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는 이내 씨 스키밍 모드로 진입했다.

★ ★ ★

2023년 11월 24일 15:05,

동해 북위 43° 1'17.06" 동경 139°23'53.69" 공해상(제7기동전단)

삐잉! 삐잉! 삐잉!

“현재 극동함대로부터 초음속 대함미사일 120기,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60기, 총 180기! 씨 스키밍 모드로 진입하여 본 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극초음속 대함탄 도달까지 앞으로 2분 19초! 초음속 대함탄 3분 16초!”

“자동 요격 시스템 가동!”

무지막지한 대함미사일 공격에 안형균 제독은 애써 침착성을 유지하며 지시를 내렸다.

“호큘라 시스템 요격 대상 표적 180개 자동순번으로 요격 표적 설정합니다.”

전투지휘실의 대형 스크린에는 제7기동전단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붉은 점에 일일이 요격번호가 차례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레이더 탐지관은 실시간으로 도달 시간을 알려왔다.

“극초음속 대함탄 도달까지 앞으로 2분 02초! 초음속 대함탄 2분 59초!”

“초탄 1분 남기고 대응 요격 들어간다. 우주항공군 상황은?”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 신경을 집중하는 안형균 제독은 고개를 돌려 통신사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모든 요격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입니다.”

“잘됐군! 적잖이 미사일을 아낄 수 있겠어!”

보통 현대의 함대전이라 하면 서로 간 대함미사일을 발사한 후 요격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교전 방식이었다. 하지만, 제7기동전단은 뻔히 대함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보복성 대함미사일이나 요격할 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 ★ ★

2023년 11월 24일 15:06,

동해 북단 고도 325km 상공.

슈우우우우웅~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 2기가 마하 20이라는 속도로 날아가며 검은빛을 발산하는 뭔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검은 빛의 정체는 러시아가 2015년부터 플레세츠크 우주 기지(Plesetsk Cosmodrome)에서 쏘아 올린 러시아의 눈이라 불리는 첩보위성 중 Bars-M 3호였다. 현재 러시아는 2023년까지 총 12기의 Bars-M 첩보위성을 운용 중이며 고도 350km 지점에서 지구를 돌며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며칠 전, 대한민국 항공우주군은 Bars-M 첩보위성 3개가 북동해 상공 쪽으로 궤도를 수정하여 하루 18번 북동해 상공을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성남기지 제1우주전투비행단 소속의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는 24시간 북동해 외기권을 비행하며 Bars-M 첩보위성의 궤도 정보와 북동해 상공을 지나치는 시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현재, 북동해 해상에서 제7기동전단과 극동함대가 교전을 시작한 상황에서 엄청난 속도로 Bars-M 3호를 따라가는 알파 편대 소속의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 2기는 언제든 상부로부터 명령만 떨어지면 Bars-M 3호를 요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저 출력은 어때?”

알파편대의 편대장이자 1호기 조종사인 최영호 중령이 뒷좌석에 앉아있는 항전운용통제관인 조은빈 대위에게 물었다.

“현재 레이저 출력상태 100%로 문제없습니다.”

“여기는 알파 원! 알파 투! 상황 체크!”

- 여기는 알파 투! 현재 문제없이 목표물 추격 및 요격절차 준비 완료!

알파편대 1호기로부터 20km 떨어진 상공에서 추격 중인 2호기로부터 답변이 달아왔다.

“좋아! 요격 명령 떨어지면 바로 요격에 들어간다. 시간과 싸움이니 실수 없도록”

-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통신이 오가는 사이 제1우주전투비행단의 성남기지 관제탑으로부터 요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여기는 본부! 현재 시간부로 목표물 타격하라! 목표물 타격하라!

- 여기는 알파 원! 명령 접수! 타격한다. 라져!

이에 2기의 삼족오 우주전투기에서는 망설임 없이 50mm 레이저포를 발사했다. 순간 빛과 함께 날아간 붉은 빛은 그대로 Bars-M 3호를 관통했고 이내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우주의 쓰레기로 변했다.

“여기는 알파 원! 목표물 타격 완료!”

엄청난 고열에 조각난 파편마저 사라져버린 우주 공간에 삼족오 우주전투기 2기는 빠른 속도로 지나치며 새롭게 진입하려는 또 다른 러시아 첩보위성 Bars-M 6호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 ★ ★

2023년 11월 24일 15:07,

동해 북위 43°20'20.37" 동경 136°19'47.79" 공해상(극동함대)

제7기동전단을 탐지해 레이더 유도를 링크하던 Bars-M 3호가 갑자기 폭발하여 데이터 링크가 끊기자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전투정보실 레이더 담당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지르며 보고했다.

“악! 표적 정보가 사라졌습니다.”

“뭔 소리야? 표적이 사라지다니?”

갑작스러운 보고에 레이더 콘솔 쪽으로 달려간 전투정보통제관은 깨끗하게 빈 디스플레이를 보면서 아연실색했다.

“미, 미사일은?”

“현재 표적을 잃고 자폭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인 구축함이었다면 대함미사일의 자체 능동형 레이더로 충분히 목표물까지 날아가 타격할 수 있었지만, 스텔스형의 극강 SECM(전파교란시스템)이 장착된 호큘라 구축함을 본 함의 레이더 유도 도움 없이 타격하기엔 기술적 한계였다.

쾅앙! 콰아앙! 푸아앙!

천문학적인 금액의 초음속과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180기는 도달까지 1분을 남긴 상태에서 자폭하거나 바다에 빠지면서 그 유명을 달리했다.

전투정보실로부터 이와 같은 보고를 받은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함교역시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직접 통신망을 통해 물었다.

- 아무래도 레이더 유도를 링크하던 Bars-M 3호에 문제가 발생한 듯합니다.

“Bars-M 3호에?”

- 네, 현재 계속 연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Bars-M 3호와 접속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삼족오 우주전투기에 Bars-M 3호가 요격당한 사실을 모르는 극동함대는 답답할 뿐이었다.

“다음 위성은 언제쯤 북동해로 진입하는가?”

옆에서 듣고 있던 발레리 까르핀 제독이 물었다.

- 앞으로 10분 후입니다.

“10분 후? 허허, 그럼 10분 동안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게 되는군”

이때 또 다른 오퍼레이터로부터 통신망을 통해 비명에 가까운 보고가 올라왔다.

“악! 정체불명의 미사일 50기가 확인! 도달까지 3분 18초! 아, 아무래도 제7기동전단에서 발사한 초음속 대함미사일인 듯합니다.”

통신망으로 들려오는 보고에 함교는 다시 한번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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