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칼바람
2023년 11월 24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2여 년간 국가 정상끼리의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외교부를 통해 푸틴 대통령과 핫라인 전화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추은희 대통령은 맞은 자리에서 비서실장과 함께 대기 중인 통역관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소희 통역관”
“네, 대통령님!”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 시 느끼는 감정 그대로 통역해주세요.”
국가 정상 간의 전화 통화 시 각국의 통역관들은 본인의 정상은 물론 상대국 정상의 감정이 상할 만한 말들은 어느 정도 순화해서 통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느낀 감정 그대로 통역하겠습니다.”
“그래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잠시 후, 핫라인 전화기의 불이 들어오고 양 국가 간의 핫라인이 연결되었다는 벨 이 울렸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당차게 전화기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푸틴 대통령!”
- 안녕하십니까. 추 대통령!
“안녕하지 못합니다. 러시아 때문에요.”
인사말부터 추은희 대통령은 작심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 하하,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는데 우리 러시아에 대한 불만이 많으신 듯합니다? 그래요. 뭔 불만인지 핫라인을 요청하셨으니 들어봅시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네, 모르겠군요.”
“모르시겠다면, 초등학생 가르치듯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허허, 이거 참, 말이 심하시군요. 초등학생이에요.“
“알면서 발뺌하는 게 초등학생 심리 아닙니까?”
- 뭐 좋습니다. 들어보죠.
“푸틴 대통령님! 강 장관 테러 건은 일단 접어두고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이 깨어난 후 우리나라에 많은 일을 꾸미셨더군요.”
- 일을 꾸미다니요? 당최 알 수가 없군요.
“아! 그러시군요.”
- 우리 러시아가 그쪽 나라에 뭘 꾸몄다는 겁니까?
“민족노동당 김형원 당 대표에게 김정은 전 위원장을 암살하라는 요청은 물론 그와 관련된 지원을 하셨죠? 또한, 조명록으로 하여금 이번엔 김정은은 물론 김형원 당 대표까지 암살하라고 또 다른 이중 요청을 하셨지요”
-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자꾸 하시는군요.
“제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암살 테러를 이용해 극우단체를 통해 국가전복이라는 폭동의 시위를 배후에서 조작하고 대체 러시아는 이렇게 해서 뭘 얻으려고 하신 겁니까?”
- 추 대통령! 함부로 우리 러시아를 모함하지 마시오.
“모함이라 하셨습니까?”
무조건 발뺌하는 푸틴 대통령의 반응에 화가 난 추은희 대통령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차게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모든 증거 확보는 물론 러시아가 접촉했던 국내 가담자들에 대한 자백도 일체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계속 모함이라 하실 겁니까?”
- 허허허, 이거 참, 추 대통령! 그 증거와 누구인지 모르는 가담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자백들······. 저 역시 궁금하군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 러시아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무조건 발뺌만 했다.
“그래요. 핫라인을 요청하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 감히 우리 러시아에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으로 들으셨다면 협박이라고 하죠. 그리고 당장 극동함대의 항로를 변경해 귀항하세요.”
- 아! 이런, 협박에 이어 이제는 타 국가의 함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까지 하는군요?
“극동함대가 현재 홋카이도를 향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당장 항로를 변경하세요.”
“추 대통령!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모함과 협박은 물론 극동함대에 대해서 참견하지 마시오. 그리고 홋카이도는 2년 전 동북아 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우리 러시아에 이양하기로 한 곳이었소. 국가 간 체결한 조약도 지키지 않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더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군요. 홋카이도는 이제 우리 러시아의 힘으로 되찾을 것이오.
더는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결론 진 추은희 대통령은 조금은 차디찬 음성으로 한층 톤을 낮춰 말했다.
“사실, 푸틴 당신이 내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인정할 사람도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핫라인 통화를 요청한 것입니다.”
- 그래 뭡니까?
“조만간 멀지 않은 그때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오늘 대화를 후회할 것입니다.”
- 하하하,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반대로 저에게 모함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질 날이 올 거 같은데 말입니다.
“약속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오늘 일을 말할지······. 마지막으로 앞으로 1시간 후 극동함대의 항로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홋카이도로 접근한다면 불법적 군사행동으로 보고 극동함대를 동해의 차디찬 바다에 모두 수장시킬 것입니다.”
- 꿈도 야무지시군요. 감히 극동함대를? 어림없습니다. 괜히 한국의 젊은 친구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 땅을 찾으러 갈 뿐입니다.
“진정 그 말을 후회하실 겁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 하하하, 그래요 수고하시구려.
수화기를 내려놓은 추은희 대통령은 미간을 좁히며 욕설을 내뱉었다.
“능글맞을 놈!”
생각 이상의 주고받는 설전에 진땀을 흘리며 통역한 이소희 통역관은 통화가 끝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소희 통역관!”
“네, 대통령님!”
“이 통역관이 느끼기에 푸틴의 심적 상태가 어떤 거 같나요?”
“아! 네, 말하는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애써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이만 나가보셔도 됩니다.”
“네, 대통령님!”
잠시 후 통역관이 나가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물었다.
“대통령님! 정녕 러시아와 전쟁까지 불사하시려는 겁니까?”
“통화한 내용 듣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한 줌 희망을 품고 핫라인 통화를 했지만, 역시 나지 않습니까? 그런 짓을 하고도 뻔뻔함의 극치를 보이는······. 이 실장도 듣지 않았습니까?”
임종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임 실장! 지금 바로 국회의장에게 연락해 전쟁 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니 협조해달라고 연락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임종원 비서실장마저 집무실을 떠나자 혼자 남게 된 추은희 대통령은 무거워진 마음에 힘이 들었는지 소파에 깊이 몸을 묻고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과연 이 결정이 대한민국 미래에 있어 잘한 결정인가? 아니면, 한발 뒤로 물러나 평화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나······. 정의실현이냐. 아니면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냐······.’
별의별 생각들이 대통령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가운데 손은 어느새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 네, 대통령님!
수화기 넘어 비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방부 연결해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24일 13:45 (러시아시각 19:45),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
겉으로 여유로운 척하며 추은희 대통령과 통화를 했던 푸틴 대통령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치밀어올라 분노를 꾹꾹 참으며 통화했다. 이에 통화가 끝나자마자 핫라인 전화기를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일개 여자 따위가 나와 러시아의 무서움을 모르고 입을 함부로 놀려?”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인 푸틴 대통령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박살난 전화기를 사정없이 발로 밟았다.
파악! 파악!
셔츠의 단추까지 풀어제끼고 한참을 밟던 푸틴 대통령은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쉭 뒤돌아 집무실의 의자에 덜석 앉았다. 그리고는 쿠바산 시가렛 하나를 꺼내 들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퓨우우~
시가렛 특유의 하얗고 진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총비서관이 루슬란 피메노프가 들려왔다.
“대통령님! 각 부서 관료들과 군 지휘관들 모두 소집되었습니다.”
“그래? 알았네. 내려가자고.”
“안내하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24일 14:30,
동해 북위 43°18'32.34" 동경 136° 8'58.63" 공해상(극동함대).
핵 추진 동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전투순양함 7척과 구축함 8척이 상륙함 6척을 삼 각형꼴로 호위하듯 각자 거리를 벌리고 항해하는 가운데 중앙에 있는 키로프급 2번 함이자 극동함대의 기함인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의 함교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발레리 까르핀 제독이 뒷집을 쥐고 함교 창문 넘어 하얀 거품으로 변해가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이때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이 다가와 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조금 전 모스크바 해군성으로부터 날아온 보안 전문이었다.
“제독님! 무슨 내용입니까?”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의 질문에 보안 전문을 빠르게 읽어나간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직접 읽어보라며 건넸다.
“결국,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는군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뭐를 말입니까? 홋카이도 진공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맞네.”
“군인으로서 상부에 명령에 따르기에 따로 깊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하하, 역시 자네는 고지식한 군인 그 자체구먼,”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는 함교사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직접 함교 사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 함대 연결하게.”
“네, 연결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전 함대 전투태세 전환!”
“현 시간부로 전 함대 전투태세 전환!”
복명복창과 함께 함교 사관은 그대로 전 함대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의 명령을 전달했다.
잠시 후 기함인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SN-181)을 비롯해 20여 척의 수상함에서도 전투태세로 경보와 함께 승조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시간, 300km 떨어진 동쪽 해상에서는 제7기동전단 소속의 호큘라 구축함 6척이 정확히 극동함대의 항로를 가로막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현대화 개량 사업을 통해 21세기 최고의 강력한 펀치를 자랑하는 전투순양함과 이지스 시스템에 버금가는 각종 방공 구축함이 즐비한 극동함대와 2년 전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과의 해상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제7기동전단과의 해상전이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2023년 11월 24일 14:30,
동해 북위 43° 1'50.32" 동경 139°31'42.26" 공해상(제7기동전단).
“현재 극동함대, 북위 43°18'32.34" 동경 136° 8'58.63"에서 속도 25노트로 쾌속 동진 중, 본 함과의 거리 312km로 잠시 후면 교전 가능 거리에 도달합니다.”
5분 전, 해군 작전사령부로부터 최종적으로 러시아 극동함대와의 교전 승인이 나자 안형균 제독은 제7기동전단의 기함인 광해군함(DDG-1001)의 함교에서 작전관으로부터 극동함대와 관련하여 짧은 브리핑을 받았다.
“공해상으로 진입한 건가?”
제7기동전단장인 안형균 제독이 물었다. 2년 전, 동북아 전쟁 당시 제7기동전단장인 안형우 준장의 친동생이자 제71기동전대장이었던 안형균은 이후 진급과 동시에 형의 뒤를 이어 제7기동전단의 전단장으로 보직을 발령받았다.
“네, 현재 공해상으로 진입한 지 5분 정도 지났습니다.”
“그렇군, 오 함장!”
“네, 전단장님!”
“자네는 함교에서 지휘하게나. 나는 직접 전투지휘실로 내려가겠네”
“알겠습니다.”
광해군함(DDG-1001)의 함장이자 제71기동전대장 시절 부함장이었던 오동철 대령이 이제는 함장이 되어 절도있게 경례를 했다. 이에 맞경례를 한 안형균 제독은 부관 여러 명과 함께 전투지휘실로 내려갔다.
“충성!”
조금은 어두운 실내에 수많은 디스플레이 불빛이 비치는 전투지휘실에 전단장이 들어오자 김혁민 전술통제관이 대표로 경례를 했다.
“수고하네.”
맞경례를 하며 전투지휘실에 들어온 안형균 제독은 디지털 지도에서 극동함대를 표기하고 있는 대형 스크린에 눈을 돌렸다.
20여 척의 수상함들이 예상 항로로 선정된 파란 선을 따라 변함없이 항해 중이었다.
“현재 파악된 잠수함 현황은?”
“아레스 초계위성과 각종 해상초계기에 확인된 러시아 잠수함은 총 11개로 본 함을 기준으로 위험 위치 밖에서 잠항 중입니다. 여기 붉은색 삼각형으로 표기된 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러시아 잠수함입니다. 핵잠수함 6척과 재래식 잠수함 5척입니다.”
김혁민 전술통제관의 절도있는 보고에 안형균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이군. 우리 잠수함은?”
“네, 12잠수함전단 소속의 잠수함 3척이 본 함 기준 남서쪽 120km 해심에서 북쪽으로 잠항 중입니다. 잠수함은 이천함, 박위함, 정운함입니다.”
김혁민 전술통제관의 설명에 따라 디지털 지도에서 파란색 삼각형 표기가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