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진 퍼즐
2023년 11월 24일 05:00 (러시아시각 23:00),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별관 대통령 휴게실).
야심한 밤, 휴게실 정중앙에 있는 소가죽으로 만든 거대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앉아있는 푸틴 대통령은 쿠바산 시가렛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후 바로 내뿜었다.
휴우우~
하얀 연기가 공중으로 날아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뭔가 중대한 결정을 남겨놓고 고민에 빠진듯한 눈빛과 표정을 보였다.
“현재 군사적 준비는 모두 끝마친 상태다. 더불어 신중국과의 군사상호보호조약으로 전장 확대는 물론 한국군의 군사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하물며 미국까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리 러시아 손을 들어주기로 약조했으니 이렇게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후후, 이외에도 한국을 흔들 카드는 많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 푸틴 대통령은 정리가 끝났는지 유리 탁자에 놓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1번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가고 투박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 네 대통령님!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국방부의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이었다.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게.”
- 네, 알겠습니다.
간단명료하게 지시를 내린 푸틴 대통령은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이내 시가렛 연기를 깊이 빨아드린 후 내뿜었다.
휴우우~
하얀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 ★ ★
2023년 11월 24일 07:00(러시아 현지시각 07:00),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구 블라디보스토크 동단 150km 해상.
블라디보스토크 해군기지에 정박 중이던 일명 태평양함대로 불리는 극동함대의 모든 수상함은 현지시각 05시 준하여 출항에 들어갔고 제16전략원잠중대는 인근 해상 해심에서 대잠 경계를 섰고 제10원잠사단의 핵잠수함들은 홋카이도 인근 해역까지 잠항하여 대기 중이었다.
3년간, 러시아는 눈부신 경제발전에 힘입어 연간 300조 원에 달하는 국방비를 지출한 러시아는 4군 중에서도 태평양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극동함대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다.
동북아 전쟁 이전, 당시의 전력만으로도 일본의 3개 호위함대와 싸워 밀리지 않는다는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을 만큼 강력한 펀치를 자랑했던 극동함대는 이제는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 개장을 하면서 더욱 강력하고 무서운 전력으로 태어났다.
먼저 현대화 개장을 통해 취역하여 척당 초음속 대함미사일 200기와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100기를 탑재하여 더욱 강력한 펀치를 자랑하게 된 키로프급 순양함 3척 모두 재취역과 동시에 극동함대에 배속되었다.
또한, 대공방어 체계인 S-500 트리움파터의 대공방어 레이더를 함선용 위상배열 방식의 레이더로 개발하여 신규로 건조한 21세기판 후소급이라 불리는 리데르급 8척 중 4척이 극동함대에 추가로 배속이 되었다.
2019년 1번 함인 리데르 순양함이 취역할 당시 러시아 해군은 전 세계에 미국의 이시스 레이더보다 더욱 탁월하고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처럼 강력한 펀치의 키로프급 순양함 3척과 막강한 방패인 리데르급 순양함 4척, 퇴역한 슬라바급 순양함 1척을 제외하더라도 소브레메니급 구축함 4척과 우달로이급 구축함 4척, 연안 경계를 책임지는 초계함 10척과 LST으로 분류되는 상륙함 6척을 합치다면 단일 함대치고 엄청난 규모였다.
더불어 현대화 개량을 하거나 신규로 건조한 SSBN 핵잠수함이 20척이었고 SSN 재래식 잠수함 10척이었다. 말 그대로 극동함대는 가히 웬만한 국가의 해군력과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전력이었다.
이처럼 단일 함대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극동함대의 모든 수상함이 블라디보스토크 군항을 떠나 현재 동단 150km 해상에서 동남해안을 끼고 빠른 속도로 항해 중이었다.
“과연 한국 함대가 우리 길을 막을까?”
이른 새벽부터 어둠의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극동함대의 기함인 어드미럴 라자레프함(CG-181)의 함교에는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과 함께 승선한 극동함대 사령관인 발레리 까르핀 제독이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번 작전도 한국 함대와의 교전을 전제로 수립되지 않았습니까?”
“후후, 그렇지, 그랬었지······.”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의 대답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혀를 차며 말끝을 흐렸다.
“제독님, 이번 작전이 걱정되십니까?”
함장의 질문에 발레리 까르핀 제독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살짝 흔들 뿐이었다. 혹, 대규모 해상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부하들에게 제독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 해군까지 격파한 한국 해군의 전력을 우습게만 볼 수는 없었기에 그냥 대답 대신 고개만 흔들었다.
“제독님! 우리 극동함대의 전력은 예전과 다르지 않습니까? 아마도 한국 해군 전체가 덤벼도 모두 깨부술 수 있을 겁니다.”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함장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런 사기를 꺾기가 싫었는지 발레리 까르핀 제독는 모자를 똑바로 쓰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난 잠시 내 방에 가 있겠네. 한국 함대와 관련하여 추가사항 있으며 바로 보고해주게”
함장은 함교를 떠나는 제독을 향해 거수경례하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쉬십시오.”
★ ★ ★
2023년 11월 24일 07:25,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CC 벙커 항공우주군 통제센터(우주정찰국 아폴론 11호 관제실).
러시아의 시베리아구역을 담당하는 아폴론 11호 관제실에서는 2시간 전부터 오퍼레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극동함대 소속 모든 수상함이 서진 중! 아무래도 목적지가 홋카이도인 듯합니다.”
금일 당직사령이자 운용통제관인 나태일 중령은 연락을 받고 급히 출근한 유상록 관제장에게 보고했다.
“항로 틀림없다?”
출근과 함께 관제실의 자리에 앉은 전방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며 되물었다.
“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해 현재 동해안을 끼고 북동쪽으로 항해 중입니다. 예상 항로를 분석한 결과 아마도 이시카리로 확인됩니다.”
“이시카리? 삿포로와 가장 근접한 항구도시가 아닌가?”
“네, 맞습니다.”
“단순 훈련은 아닌 거 같군. 함대 규모 상황은?”
유상록 관제장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아랫입술을 깨물며 추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듯 나태일 중령은 옆에 있는 중위 계급장의 오퍼레이터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1번 스크린에서 극동함대의 모든 수상함의 정보가 일일이 나타났다.
“예삿일이 아니군, 일만 톤급 이상의 전투순양함 7척에 칠천 톤급 구축함이 8척, 이외에 상륙함 6척과 군수지원함 3척이라니······. 역시이건 단순 훈련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듯 하네. 혹시, 이놈들 홋카이도에 상륙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스크린에 쏟아지는 정보를 일일이 눈으로 스캔한 유상록 대령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옷소매로 훔쳤다.
“문제는 수상함보다 러시아 잠수함인 듯합니다.”
“그렇지! 극동함대와 항상 작전을 함께 수행하는 핵잠만해도 20척이었지······.”
“상부에 보고는 했는가?”
“네, 관제장님게 연락 드린 후 바로 통합센터에 보고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잠수함 전력은 알아서 탐색하겠군”
“네, 아레스 초계위성 2개를 긴급 투입한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우리는 저 극동함대의 수상함만 신경 쓰면 되겠어.”
관제실에서 대화가 오가는 사이 극동함대의 수상함들은 속도를 유지한 채 홋카이도 이시카리 방향으로 항진해갔다.
★ ★ ★
2023년 11월 24일 07:25,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해외정찰국의 유동훈 국장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온 후 B2 벙커 합동지휘통제소의 상황실에는 각 군 지휘관들이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실의 모든 스크린에는 각 군에서 정찰한 정보들이 데이터 링크되어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1번 스크린에는 아폴론 11호로부터 데이터 링크되어 실시간으로 촬영되어 보여주고 있는 극동함대의 수상함이 눈에 띄었다.
근래 들어 수차례 극동함대의 대규모 훈련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실에 모인 모든 지휘관은 오늘만큼은 다들 느낌이 좋지 않았는지 저마다 불길한 표정과 함께 근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는 유사시 극동함대의 홋카이도 침공에 대한 방비는 진작부터 마련되어 있었다.
하코다테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제7기동전단이 북상하여 극동함대의 항로를 막아 1차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제1함대가 출항하여 극동함대의 후미를 공격하는 방어작전이었다.
혹, 방어 라인이 무너져 홋카이도에 지상군이 상륙이나 공수부대의 공수 시 홋카이도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제3해병기계화사단이 지상군을 상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렇듯 기본적인 홋카이도 방어작전 안이 수립된 가운데 가장 먼저 제7기동전단이 하코다테 항구에서 출항하여 홋카이도를 끼고 서진으로 항진했다.
“오늘따라 느낌이 아주 안 좋군,”
“의장님도 그렇습니까? 저 역시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옆에서 함께 여러 스크린을 주시하던 김용현 합참차장이 맞장구를 쳤다.
“자네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군, 만에 하나, 극동함대가 자신들의 영해를 넘어 홋카이도 방향으로 항진 시 즉시 7기동전단이 차단 작전을 펼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합참의장의 지시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이 대답했다.
“1함대는 기존 작전 안대로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나?”
“네, 1함대의 구축함전대는 동해상에서 대함 경계 작전 중이었기에 바로 북상하여 교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 포항에서 나머지 초계함과 군수지원함이 출항한 상태입니다.”
양민춘 중장은 거침없이 합참의장에 질문에 대답했다.
“홋카이도에 주둔군 상황은?”
이번 질문 역시 양민춘 중장은 미리 준비했는지 2번 스크린을 담당하는 오퍼레이터에게 사인을 보낸 후 대답했다.
“2번 스크린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홋카이도의 삿포르에 주둔 중인 부대는 3해병기동사단의 12기계화여단입니다. 또한, 치토세에 주둔 중인 11기갑여단이 이동 준비 중입니다.”
“나머지는?”
“네, 하코다테에 사단본부와 10기갑여단도 언제든 이동할 수 있도록 명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좋아! 지금 당장 삿포르의 12여단은 이시카리로 이동해 상륙 예상지점에서 상륙 방어준비에 들어가고, 11여단 역시 삿포르로 이동해 언제든 12여단을 백업할 수 있도록 조치하게,”
“네, 알겠습니다.”
“러시아 극동함대의 잠수함은 찾았나?”
시원시원하게 지시를 내리는 신성용 차수는 이번엔 가장 근심거리인 러시아 잠수함 쪽으로 화제들 돌렸다.
“현재 아레스 초계위성 2대가 북동해 전 지역을 이 잡듯이 초계 중이긴 하나 아직 탐지한 잠수함은 없습니다.”
“음, 가장 껄끄러운 상태야. 핵잠만해도 20척이나 되지 않나?”
“네, 맞습니다.”
“서해 쪽과 남해 쪽 담당하는 아레스 위성 2대를 북동해로 이동시켜 추가 초계시키게. 또한, 현재 해군에서 가용한 모든 해상초계기도 띄워!”
이때 해군참모총장인 이기형 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극동함대도 자신의 영해에 있는데 말입니다. 혹 러시아로부터 과잉 반응한다는 군사적 오해를 불러올 수도······.”
“전쟁에 있어서 조심한다고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나?”
이기형 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질타 섞인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형식의 훈련이 여러 번 있었기에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자네 말은 무슨 말인지 알겠네. 참고하지. 자 마지막으로 우리 잠수함 상황은 어떤가?”
“네, 현재 11기동잠수함전단 소속의 호큘라 잠수함 4척과 92잠수함전단 소속 잠수함 5척이 잠항 상태에서 대잠 경계 중입니다.”
“11기동잠수함전단의 나머지 잠수함도 모두 투입하게”
“네, 알겠습니다.”
현재 북동해상의 깊은 심해에는 러시아와 한국의 잠수함 30여 척이 저마다 서로를 찾기 위해 은밀히 잠항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