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진 퍼즐
2023년 11월 22일 09:15,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붉은혁명청년단 비밀 은신처).
3층 회의실에서 오후에 있을 시위와 각 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위에 대한 보고를 받던 만길수 단장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문뜩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뭔 소리야? 나가 보라우!”
만길수의 지시에 끝쪽에 앉아있던 간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문이 열리고 외팔이 김민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엿 됐어야! 다들 튀라우! 남조선 정보부 요원들이야!”
김진의 외침과 함께 회의실에 앉아있던 간부들은 당황했는지 허둥지둥 저마다 도망가려 했다.
“야이! 간나새끼들아! 앞에 있는 서류들은 챙겨야 할 게 아니야?”
만길수는 자기 살길 찾아 도망가려는 간부들에게 호통쳤다.
“지금 잡히면 인생 쫑나는디 짐 이런 서류가 문제 입네까? 살고 바야디요.”
창문을 통해 도망가려던 한 간부가 말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국가총비상사태에서 국가전복가담죄는 적어도 무기징역이었고 간부급들은 사형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범죄였다.
“어쨌든 이 문서들은 그냥 다 태, 태우라우!”
회의 탁자 위에 놓인 문서들을 가리키며 만길수가 외쳤다. 이에 간부 한 명이 허겁지겁 서류들을 모으고는 이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빨리 빠져나가디. 시간이 없어야. 만길수 동무!”
김진이 계단 쪽을 확인하고는 재촉했다.
“그래야 디! 비상 엘리베이터로 도망가자우!”
만길수와 김진, 그리고 간부들은 회의실을 나와 복도 끝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저 그림 치우라우!”
만길수는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큰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간부 두 명이 그림을 치우자 문이 열려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혹, 이럴 때를 대비해 지하로 탈출할 수 있는 비상 엘리베이터였다.
“뭐하네? 다들 타라우”
만길수가 인상을 쓰며 다그치자 간부들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타기 시작했다.
이때 복도여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외쳤다.
“네들! 거기 서!”
3층까지 진입한 국가정보원의 정보요원들이었다.
“어서 타라우! 내가 막갔어!”
김진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는 복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총성에 정보요원들은 순간적으로 바닥을 구르며 피했고 신속하게 대응 사격을 가했다.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여러 발의 빛줄기가 간단히 벽을 뚫고 날아갔다. 이에 몸을 숙여 피한 김진은 재차 사격을 가한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몸을 날려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쩝네까? 단장 동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광태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간나새끼 간땡이래 쪼그라들었구만기래! 그런 간땡이로 뭔 혁명을 하겠다고······.”
빈 탄창을 교환한 김진은 오광태를 위아래로 훑으며 비꼬았다.
“그게, 아니라! 너무 빨리 밝칵되지 않았습네까?”
“겁먹은 소리 그만 치라우! 각오하고 하는 일 아니네? 혁명 완수를 위해 끝까지 가는기야.”
만길수 역시 오광태를 째려보며 일갈했다.
잠시 후 지하에 도착했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자 희미한 조명 사이로 기다란 통로가 보였다.
“가자우!”
20여 미터의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반대편 건물 지하에 도달한 만길수 일행은 천장에 달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내는 2차 은신처로 갈 테니끼니 간부들은 각자 지부 은신처로 이동하여 상황 파악하고 바로 보고 하라우! 알갔네?”
가장 먼저 올라간 김진이 주변을 확인하는 동안 만길수는 간부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이때, 한쪽 벽면에서 인형 하나가 모습을 불쑥 드러내며 소리쳤다.
“다들 손들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쏜다.”
TCS 모드를 활성화하고 기다리고 있던 대테러수사 2과 차태식 과장과 강호철 대리였다.
갑자기 나타난 정보요원들 때문에 흠칫 놀란 만길수 일행은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너도 손들어! 허튼짓하지 말고 손들어!”
차태식이 김진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김진은 마지못해 손을 드는 척하더니 순간적으로 만길수를 방패 삼아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총구를 만길수 머리통에 갖다 댔다.
“너희들이야말로 허튼짓하면 이 아새끼래 머리통을 날려 주갔어. 알아듣네?”
생각지도 못한 김진의 행동에 차태식 과장과 강호철 대리가 움찔했고 만길수 역시 온갖 인상이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네 뭐 하는거네?”
“조용히 하라우. 탈출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야. 천천히 뒤쪽 창문 쪽으로 가자우”
김진은 만길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에 만길수 역시 김진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천천히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하며 움직였다.
생각지 못한 김진의 돌발행동에 허를 찔린 차태식은 뒤로 물러나는 만길수와 김진에게 KS5를 겨누고는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너나 움직이지 말라우. 간나새끼야. 확 수틀리면 이 아새끼래 죽이고 나도 죽갔어”
김진의 일갈에 차태식은 고민에 빠졌다. 생각 같아서는 김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만길수를 체포하고 싶었지만, 상부에서 만길수는 어떻게든 생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기에 섣부르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차태식이 고민하는 사이 뒤쪽 창문까지 물러난 김진은 순간 만길수를 밀어젖히고는 그대로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쨍그랑!
깨진 유리 파편과 함께 땅바닥에 나뒹군 김진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강 대리는 저놈들 지원 올 때까지 잡아둬! 난 저놈을 쫓아간다.”
짧게 지시를 내린 차태식은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넘어 김진을 쫓아갔다.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쇼”
한편 자신을 이용해 자기만 도망간 김진의 배신에 만길수는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울분을 토했다.
“개자식이래 나중에 그냥 두지 않캈어!”
“야! 만길수 입 다물고 너도 저쪽 구석으로 가서 엎어져 있어!”
★ ★ ★
2023년 11월 22일 14:30 (러시아시각 08:30),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
3년 전, 동북아 전쟁에서 패전한 중국은 소수민족 독립은 물론 내부 갈등으로 인해 3개국으로 쪼개지면서 G2 국가로 불리던 중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공산당 체제를 계승한 신중국(신중화인민공화국)은 다시금 만주 일대의 국토 수복은 물론 다시금 통일 중국을 염원했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산업시설과 주요 군사산업은 한국과의 전쟁에서 대부분 파괴되어 신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성장은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충칭 공격으로 시작된 중화민국과의 전쟁은 초반 예상과 다르게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국가 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신중국 지도부는 동북아 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하여 이제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른 러시아에 원조 요청을 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단호하게 신중국의 원조 요청을 무시해왔다.
G2 국가라며 은근슬쩍 러시아를 무시하고 중국 특유의 오만과 허세가 하늘을 찔렀던 중국, 또한 툭하면 러시아의 자국 무기를 해킹하거나 수입한 무기를 불법적으로 복제하여 자국의 무기 마냥 개발 생산하는 중국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치를 떨며 싫어했다. 이렇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푸틴 대통령이 신중국의 원조 요청을 승인해준다는 건 만무할 일이었다.
이처럼 강경하게 신중국의 원조를 무시하던 러시아는 한 달 전부터 태세를 전환했다. 중국의 원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고 급기야 협상팀을 파견했고 금일 이렇게 원조 요청에 대한 승인 조건으로 군사상호보호조약까지 체결했다.
“오만한 중국놈들이 그리 쉽게 조약에 서명하다니······. 하하 급하긴 했나 보군”
책상 위에 놓인 조약 문서를 천천히 읽어가던 푸틴 대통령은 은근슬쩍 신중국을 비꼬았다.
“이제 신중국은 언제든 우리 요청에 따라 군사적 행동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부터 맞은편 의자에 앉아 어깨에 잔뜩 힘들 주고 있던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중국이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군사력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푸틴 대통령의 질문에 이번에는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이 대답했다.
“예전 38집단군으로 불리던 현재의 붉은집단군입니다.”
“뭐 1개 집단군? 고작 1개 집단군으로 뭘 하겠다는 건가?”
“대통령님! 붉은집단군은 한때 중국 집단군 내에서 전투력 1위였던 제38집단군 전력을 그대로 계승한 부대입니다.”
동북아 전쟁 당시 교전 초반 괴멸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던 제38집단군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최우선순위로 재정비에 들어갔고 종전 직전에는 90%에 달하는 전력을 복구했다. 하지만, 제38집단군은 이렇다 할 활약도 펼치지 못한 채 종전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그 전력을 그대로 보전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서부전선을 흔들려면 그 정도 전력으로 부족하지 않았나?”
미덥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푸틴 대통령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거렸다. 이에 미하일 아바노프 국방장관은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신중국은 중화민국과 내전 중입니다. 이 이상의 추가적인 군사력을 동원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또 한가지, 만에 하나 서부전선에서 한국군을 밀어내고 만주 일대를 점령한다면 우리로서는 좋을 게 없습니다. 신중국은 딱 전선 흔들기 정도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미하일 아바노프 국방장관의 이어지는 설명에 푸틴 대통령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 미국까지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SVR(대외정보국)의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은근한 어투로 말을 건네자 푸틴 대통령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미국까지?”
“대통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미국 역시 3년 전 동북아 전쟁에서 일본 편을 들었다가 미 본토까지 공격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종전 이후 한국의 적극적인 사과와 그에 맞는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현재 수많은 미국 시민들의 반감은 상당합니다. 또한, 미 의회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이 심합니다.
“그러니까 그 점을 이용하자는 말인가?”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의 말뜻을 단박에 알아들은 푸틴 대통령이 되물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미국을 이용할 방법들을 설명해나갔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푸틴 대통령의 날카로운 눈빛은 쉼 없이 번뜩였다.
“동북아 전쟁에서 한국에 자존심이 짓밟힌 미국은 와신상담 다시금 세계 1강이 되기 위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 의회를 통해 자극을 준다면 군사적 동참은 아니더라도 한국에 대한 외교적인 압박은 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수월하겠지······. 헌데 미국을 움직일만한 미끼가 있을까?”
푸틴 대통령의 재차 질문에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대통령님! 미끼보다는 채찍이 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미국이란 국가를 미끼가 아닌 채찍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알아듣게 말해보게. 레베데프 국장!”
“네, 밖에 미국 총 책임자인 드미트리 알레니체프 지국장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불러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라고 하게.”
잠시 후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이 호출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염이 더부룩한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각하! 안녕하십니까? SVR 미 지부장 드미트리 알레니체프입니다.”
소개를 마친 드미트리 알레니체 지부장은 가져온 가방에서 SSS급으로 분류된 서류철을 꺼내 대통령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이오?”
건네받은 푸틴 대통령은 극비서류의 앞장을 넘겼다. 그리고는 첫 장에 쓰여 있는 제목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70년간 이어진 미국 USSC(United States Supreme Security Council)의 실체?”
푸틴 대통령의 입에서 전 세계가 뒤집히고 남을 USSC라는 조직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네, 그렇습니다. 70년간 실제 미국을 움직였던 USSC라는 비선조직의 정체가 담겨있는 극비 문서입니다. 대통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