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1화 (371/605)

퍼즐 맞추기

2023년 11월 21일 19:35,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외정보국 취조실).

3일간 강도 높은 취조에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여 버텨낸 우병후는 휴게실에서 풀려나길 기다리던 중 또다시 요원들에게 끌려와 이곳 최조실에 들어왔다.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조금 있으면 8시야! 시간 다 돼가는데 뭘 또 조사한다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야?”

취조실에 들어온 우병후는 자신을 잡고 있던 요원들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탁자를 두고 맞은편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난리 치고 의자에 앉지?”

흥분을 가라앉힌 우병후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야? 너는?”

“그건 알 거 없고, 몇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한쪽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사내는 조명 아래로 다가와 모습을 보였다. 몇십 분 전까지 대테러수사국에서 구상식을 취조하던 박기웅 팀장이었다.

“후후, 웃기는군, 3일간 잠도 안 재우고 내내 조사를 하더니만 아직도 질문할 게 남았나?”

우병후는 의자에 앉으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박기웅 팀장 역시 옅은 미소로 맞장구를 치며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구상식이 잘 알지?”

“구상식? 그놈이 누군데?”

“구상식을 모른다? 구상식은 자네를 잘 알던데?”

“헛소리하지 마라!”

우병후는 3일 동안 해왔던 것처럼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었다.

“우병후 당신이 구상식과 여러분 통화를 했다는데? 그리고 5억 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건넸고 말이야. 안 그런가?”

순간 우병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우병후는 끝까지 우겼다.

“구상식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당최 알 수 없는 소리를 계속하는지 모르겠군.”

“우병후! 이제 모두 자백하는 게 어때? 구상식으로부터 모든 자백을 받았다. 그리고 증거까지 확보 중이야.”

“웃기지 마라! 이런 찔러보기식으로 취조를 하는 건 위법이야.”

“위법? 그렇군, 그럼 이것 좀 들어볼까?”

박기웅 팀장은 주머니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고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녹음기에서는 우병후와 구상식이 통화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우병후는 뒤로 의자에서 넘어질 정도로 놀라며 두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이······.”

“어때? 이제 자백할 마음이 생겼나?”

30분 전, 취조실에서 10분간 고민하던 구상식은 포기했는지 모든 걸 박기웅 팀장에게 털어놨다.

오지완과 일행이 신중국에서 조명록으로부터 태풍 16호 임무 제안을 받고 국경선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왔을 때 구상식은 다른 일행 모르게 우병후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 제안은 태풍 16호 임무를 완수하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하라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만에 하나 정체를 노출했다가 태풍 16호 임무를 완수하기는커녕 사전에 발칵 되어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구상식은 처음에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상식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추적이 불가능한 5억 원어치의 가상화폐 비트코인 지급도 한몫했지만, 태풍 16호 임무 완수 후 조명록 부하들이 오지완은 물론 대외1공작대를 모두 제거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제안 승인을 하면 제거 대상에서 빼주는 건 물론 조명록으로부터 받은 선수금까지 모두 가지라는 거였다.

이러나저러나 자기 목숨이 달렸다는 판단과 돈 욕심에 동지를 배신하고 말았다. 태풍 16호 임무 며칠 전 동지 2명과 함께 은신처에서 밤에 몰래 빠져나와 황제 룸살롱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CCTV 카메라에 찍힌 것도 일부러 찍힌 거였다.

이렇듯 구상식은 자신이 배신한 이유는 물론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우병후와 주고받은 문자 및 통화 녹음파일이 저장된 대포폰을 숨겨놓은 위치를 자백했다.

대포폰이 숨겨진 곳은 평양의 한 물품보관함이었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즉시 평양 지부에 연락하여 대포폰을 확보했고 통화 대화음성 파일과 몇 가지 문자 내용을 컴퓨터 파일로 전달받았다.

지금, 조그마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바로 구상식과 우병후가 통화할 당시의 대화음성이었다. 이에 우병후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어, 어떻게······. 구, 구상식이 죽은 게 아니······.”

“구상식이 왜 죽어? 제거 대상에서 빼준다고 하고 죽이려고 했나?”

“윽!”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내밀자 우병후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난, 단지 김형철에게 지시를 받고 중간에서 진행한 것뿐이오.”

“알아! 그러니 알고 있는 내용 모두 자백하면 형량은 줄어들겠지. 안 그런가?”

“알았소. 모두 자백하리다.”

★ ★ ★

2023년 11월 21일 19:55,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외정보국 휴게실).

루루루루룰~

휴게실 소파에 앉아 네모난 탁자에 다리를 올린 김형철은 두 눈을 감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5분 후면 이곳에서 풀려나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잉!

휴게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에 김형철 부국장은 함께 풀려날 우병후인 줄 알았다.

“우병후네?”

김형철의 부름에 들어온 자는 대답이 없었다. 이에 두 눈을 뜬 김형철은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을 봤다. 우병후가 아닌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거이 우병후가 아니잖네? 함께 풀려나는거 아이가?”

“김형철 씨?”

“알고 있어야! 그리 부르디 않아도 되야. 그만 나가자우!”

김형철은 풀려나는 줄 알고 한껏 여유를 부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몸이 얼어붙듯 멈추고 말았다.

“이시간부로 김형철 당신을 폭탄테러 암살 동조 및 국가전복가담죄로 정식 기소한다.”

“뭐? 암살 동조와 국가전복가담죄으로 정식 기소? 이따 소리하는 너는 누구네?”

눈을 부라리며 김형철이 째려보자 중년의 사내는 신분증을 보였다.

“국가정보원? 강기원 국장? 뭐네? 여기는 국암원이 아니었네?”

김형철은 3일간 취조를 받으며 이곳이 국가비리암행원인줄 알았다.

“이건, 불법취조가 아니네? 내레 나가면 정식으로 고소하갔어. 이 간나새끼들”

김형철은 두 손으로 탁자를 치며 강기원 국장을 노려봤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원 2명이 들어와 바로 김형철을 제지했고 이내 다시금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거 안노네? 증거도 없이 이따위 죄를 뒤집네? 가만두지 않캈어?”

“김형철 부국장! 증거는 넘치고도 남아! 데리고 가!”

“네!”

“노라우! 간나새끼들 노라우!”

강기원 국장이 지시를 내리자 요원들은 김형철을 양쪽에서 붙들고는 끌고 나가다시피 하며 취조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 ★ ★

2023년 11월 21일 20: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원장 회의실).

이영진 원장을 비롯해 윤연준 1차관, 허영준 2차관, ACS 윤수길 실장,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 대테러수사국 안연우 국장이 기다란 탁자를 두고 앉아있는 가운데 박기웅 팀장은 구상식과 우병후로부터 자백받은 내용과 일부 확보한 증거와 관련하여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박기웅 팀장은 구상식으로부터 자백받은 내용과 녹음된 통화 내용을 가지고 우병후를 압박했고 우병후는 끝내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

우병후가 자백한 충격적인 내용은 크게 3가지였다.

첫 번째는 대외1공작대가 가짜 신분증으로 신중국에서 아무 문제 없이 국경선을 넘어 서만주로 올 수 있도록 뒤에서 모든 조치를 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고 이는 김형철의 지시하에 모두 진행되었으며 이번 폭탄테러에서 사망한 서만주 김춘원 주지사의 도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러시아 SVR(대외정보국)로부터 50억 원에 가까운 엄청난 비자금을 받고 대외1공작대원 중 한 명을 포섭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흘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우병후는 구상식을 5억 원어치의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건네는 조건으로 포섭에 성공했고 평양 황제 룸살롱에서 문제를 일으켜 정체를 노출했다. 여기서 의문점은 왜 러시아가 이런 공작까지 했는지는 추후 확인해야 할 부분이었다.

세 번째는 현재 대한민국 전체에 일어나고 있는 폭동에 버금가는 시위대를 이끄는 시민단체와의 연락책이 자신이라는 것과 북주 안동태 주지사 역시 이번 시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박기웅 팀장의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앉아있던 5명의 사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으로 엄청나고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러시아 놈들 그냥 둬선 안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공작질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원장님!”

국내를 전담하고 있는 윤연준 1차관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렇게 화만 낼 게 아니네. 러시아가 이렇게 공작을 펴는 동안 우리는 뭐하나 사전에 파악하지도 못하지 않았나?”

“면목 없습니다.”

국외를 담당하는 허영준 2차관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실제 담당부서인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 역시 고개를 떨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저희 부서 잘못입니다. 이런때를 대비해 만들어진 부서가 제대로 일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ACS 윤수길 실장까지 고개를 숙이고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 상황에서 자네들 탓하는 건 아니네.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이렇게 알아냈으니 다행이야.”

“그렇게 말입니다. 박 팀장 아니었으면 아무런 증거확보 없이 김형철과 우병후를 풀어줬다면 우리 국정원과 국암원이 곤란해질 뻔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안연우 국장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박기웅 팀장을 격려했다. 그러자 이영진 원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이번 건 우리 조직의 안위 문제는 둘째치고 자칫 대통령님께 누가 될뻔했어. 아무튼, 수고했네. 박 팀장!”

“아, 아닙니다. 이번 건은 이혜진 과장의 도움이 컸습니다.”

박기웅 팀장은 이번 공로를 이혜진 과장에게 돌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크게 다쳐 중환자실까지 입원했던 상황에서도 이렇게 도움을 주니 여장부입니다. 원장님!”

강기원 국장 역시 대테러수사국 3과장인 이혜진을 칭찬했다.

“그렇지 이 과장의 공로도 크지. 안 국장은 내일 병문안 가서 직접 살펴보고 이번 건과 관련하여 간단하게 설명도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강 국장은 대통령님께 보고할 수 있도록 보고서 준비를 해주게. 현재 상황이 너무 복잡하니 되도록 간단명료하게 작성하게”

“네, 알겠습니다.”

“언제쯤 가능할까?”

“김형철의 취조는 물론 입원한 오지완까지 취조하여 크로스 체크를 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릴 듯합니다.”

강기원 국장의 입에서 오지완 이름이 나오자 박기웅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체포 당시 너무 심하게 때려서 취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 3일 후 이 지긋지긋한 암살 테러 사건의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게. 그리고 현재 시위를 일으키고 있는 단체 이름이 뭐라고 했지?”

“붉은혁명청년단입니다.”

“그래, 그 붉은혁명청년단은 윤 차관이 모든 부서 가동해서 윗놈부터 아랫놈까지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리게. 인원이 부족할 거 같으면 국암원과 연수국 등 모든 사정기관에 공조 공문을 보내!”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회의가 끝난 후 윤연준 1차관은 모든 사정기관에 긴급 공조 공문을 보냈고 2,000여 명에 달하는 현장요원과 수사관은 평양에 있는 붉은혁명청년단의 본부와 각 주의 대도시에 있는 지부의 단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급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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