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기
2023년 11월 21일 18:30 (이라크시각 12:20),
이라크 키르쿠크주 키르쿠크 북단 20km 지점.
황금 사단과의 교전 초반, 강력하고 사거리가 긴 C-9A1 라이트닝 자주포 포병대대의 지원포격에 이라크의 전차는 물론 후방에서 지원하려던 포병부대를 초반에 제압함으로써 수적 불리함을 이겨내며 순조롭게 방어해 나갔다.
하지만 이라크 공군의 대지공격기와 전폭기가 바그다드 공군기지에서 출격하여 해병포병대대와 111해병전차대대를 타격하여 순간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수십 발의 공대지미사일과 각종 포탄 세례에 크고 작은 피해를 보긴 하였지만, 기존 서방국가의 기갑 전술 전체를 뜯어고칠 정도로 탁월한 대공 능력을 갖춘 덕분에 이라크 공군전력을 퇴각시킬 수 있었다. 또한,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보복성으로 제12항모전단에 바그다드 공군기지에 대한 폭격명령을 내렸다.
항공모함 백범김구함(CV-001)에서 출격한 CFU-22P 무인전투기 12기는 몇 분도 안 되어 바그다드 상공에 도착했고 이내 공군기지를 화염이 이글거리는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이라크 정부에 공군전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성 의미를 담은 공격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이라크 전체를 불바다로 만드는데 1시간이면 충분했다. 핵폭탄에 버금가는 플라즈마 증폭탄은 다양한 발사체를 이용해 지구 어느 곳이든 1시간 안에 타격할 수 있었고 전폭기 500여 기가 동시에 출격하여 이라크 주요지점을 폭격할 수 있었다.
즉,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를 순식간에 군사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단지, 과격한 전력 투입으로 다른 중동 국가를 자극해 전쟁이 확산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슈우웅~ 슈우웅~ 슈우웅~ 슈우웅~
쿠앙! 쿠앙! 쿠앙! 쿠앙!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중동의 하늘에는 수많은 붉은 광점이 번쩍거리며 밤하늘의 별빛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별빛은 어느 순간 지상 상공에서 폭발하며 수많은 자탄을 지상에 뿌렸다. 이 별빛들의 정체는 C-9A1 라이트닝 자주포 18문에서 TOT(Time On Target) 사격으로 발사한 플라즈마 확산탄이었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흙기둥이 불꽃과 함께 마구마구 솟구쳤다. 더불어 회피기동을 펼치며 기동하던 황금사단의 M1A1 전차 여러 대가 동시에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그대로 기동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이렇듯 계속되는 해병포병대대의 TOT 포격은 정확하게 적 전차 상공에 떨어지며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황금사단 지휘부는 TOT 포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기갑여단에 대대 전술에서 중대 전술로 전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대장님! 적 전차들 중대전술로 전환한 듯합니다. 모든 전차가 중대 규모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본부중대 김영준 중위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 본부중대는 가용한 정찰 드론 모두를 투입하여 교전 중인 모든 곳을 상세하게 정찰 중이었다.
“알았다. 계속 정찰에 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그럼 우리도 공격 전술로 전환할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작전과장 강규태 소령이 대대장이 말했다.
“그래야겠지. 1중대와 2중대에 진공 명령 내리게.”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대대 통신망을 개방한 강규태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기존 수립된 계획에 따라 1중대, 2중대 공격전술로 전환한다.”
-1중대 확인!
-2중대 확인!
지금까지 구축된 진지 내에서 방어 전술을 펼치던 1해병전차중대와 2해병전차중대 소속의 전차들이 일제히 진지를 벗어나 앞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릉~!
★ ★ ★
2023년 11월 21일 19:1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국 최조실).
문병을 마치고 병원에서 나온 박기웅은 곧장 국가정보원에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1시간 후 구상식 취조를 담당하는 대테러수사국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와 함께 대테러수사국 3과 사무실의 출입문이 열리고 박기웅 팀장이 들어오자 커피를 마시며 당일 당직자 근무를 서던 장한국 주임이 반갑게 맞아줬다.
“박 팀장님! 안녕하세요. 며칠 휴가받았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인사를 건네는 장한국 주임의 말에 박기웅 팀장은 숨찬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이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주차장부터 대외정보국 사무실까지 한숨에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후우! 후우! 급하게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하하, 급하긴 하셨는가 봅니다. 일단 앉으세요.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자리를 권하는 장한국 주임의 말에 손사래를 한 박기웅 팀장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냐, 그보다 지금 당장 구상식을 취조 좀 했으면 하는데.”
“구상식을요? 승인은 받으셨나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기웅은 쪽지 하나를 장한국에게 건넸다. 이혜진 과장의 협조 승인서였다. 이혜진 과장은 만에 하나 절차상 문제로 시간이 지연될까 봐 미리 입원실에서 자필로 승인요청서를 작성해줬다.
“어? 이거 이 과장님이 사인한 승인요청서네요? 이 과장님 중환자실에서 나오셨어요?”
“응, 오후에 일반 입원실로 옮겼다. 지금 급해서 말인데, 질문은 나중에 하고 일단 구상식 취조 준비 좀 해줘”
“아! 네 알겠습니다. 2번 취조실입니다. 먼저 가시면 구상식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오케이 고마워!”
잠시 후 박기웅 팀장이 앉아있던 취조실 문이 열리자 장한국 주임과 함께 구상식이 들어왔다.
“팀장님 저는 옆방에 있겠습니다.”
“응, 그래 수고했어!”
장한국 주임이 나간 후 작은 탁자 사이로 마주한 두 사내는 보이지 않은 신경전을 벌였다.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는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박기웅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지완이 이곳에 있는 거 알지?”
박기웅 팀장의 첫 질문에 구상식은 인상을 꾸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흥! 표정을 보니 알고 있는 거 같군.”
쿵!
“그거이 내랑 뭔 상관이네? 더는 오지완 얘기는 꺼내지 말라우! 알간? 오지완과 관련해서는 그 여자 동무와 얘기가 다 끝났어야.”
탁자를 내리치며 구상식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생각 같아서는 면상을 박살 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박기웅은 꾹 참고는 억지로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구상식! 이 과장님과 얘기가 끝난 거 알아. 그런데 너에게 더 해줄 말이 있어서 말이야.”
“할 얘기가 있으면 날래 하라우! 니 면상 떼기 보는 게 쉽지안아야”
자신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박기웅인지 모르는 구상식은 특유의 인상을 써가며 대꾸했다.
“오지완은 법정 절차 없이 이곳에서 2년 정도 살다가 풀려날 거야. 그 친구가 매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서 말이야. 뭐 정상참작이라고 할까?”
“정상참작? 흥! 거짓말 말라우! 오 대장 동지는 김정은과 김형철을 직접 죽인 암살범이야. 그런데 재판도 안 받고 이곳에서 2년간 있다가 풀어준다고 했네? 그걸 지금 내보고 믿으라는 거네?”
구상식은 콧방귀를 끼며 두 눈을 흘겼다.
“1급 범죄자이긴 하지! 하지만 그 죗값만큼 중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서 말이야.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되었어. 당연히 2년 후에는 국외로 추방하는 방식이지만 말이야. 구상식이 너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웃기디 말라우!”
“지금 살아있는 암살 테러범은 너와 오지완 밖에 없다. 나머진 모두 죽었지! 즉 오지완이 빠지게 되면 이번 암살 테러범은 너 혼자야. 그리고 2년 전 후난에서 우리 요원들 살해한 죄까지 포함될 거고 말이야. 현재 우리나라가 사형제도가 폐지 되었지만 국가총비상사태인 지금은 충분히 사형 판결이 나오고도 남는다. 그래도 싫은가?”
사형 판결이라는 말에 구상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에 구상식은 상체를 탁자 앞까지 끌어당기며 되물었다.
“정말! 내도 정보를 제공하면 오지완처럼 풀어줄 수 있다는 거네?”
“당연하지! 단, 오지완만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가능하다.”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박기웅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저번에 다 불었어야. 뭘 더 풀라는 거네? 그리고 오지완이가 중요한 정보는 다 불었다 하지 않았네?”
“구상식! 오지완은 모르고 너만 아는 정보가 있지 않나? 솔직히 네가 동료를 죽이고 오지완을 배신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보는데? 단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야.”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박기웅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치채지 않게 구상식의 표정을 읽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 영역했다.
“네 맘대로 판단하네? 돈 때문이었어야.”
“음, 그랬군. 돈 때문이었군? 어쨌든 오지완은 네가 배신하고 남태식을 살해한 것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너 얼굴 좀 꼭 봤으면 하더라고.”
박기웅 팀장은 거짓말을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뭐이! 어드래? 오, 오 대장이 그 사실을 어찌 아네?”
“그럼 모를 거 같아? 너무 순진하군, 어쨌든 넌 오지완이 모르는 즉, 너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를 불기만 하면 돼! 생각할 시간을 10분 준다. 잘 생각해보라고. 이게 마지막 기회야. 내일이면 넌 폭탄테러의 주범으로 정식 기소가 될 거야.”
말을 마친 박기웅은 그대로 취조실에서 나갔다.
‘저 간나새끼 말을 믿어야 하네?’
덩그러니 취조실에 혼자 남게 된 구상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순간 수갑 찬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현재 구상식의 심리적 상태는 매우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였다. 평생 감옥에서 썩거나 아니면 사형을 당할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었다.
‘정말이면 어쩌네?’
구상식은 오지완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지완이 가장 싫어하는 건 배신이었다. 그러기에 동료까지 죽이고 배신한 자신을 그냥 둘 오지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상식이 두려워하는 건 가족의 안위였다. 구상식에게는 개천 변두리에서 어렵게 사는 노모와 하나뿐인 여동생이 있었다.
‘오지완이는 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까지 가만두지 않을 텐데 말이디······.’
배신의 대가는 분명 구상식의 가족까지 미칠 수 있었다. 오지완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으윽!”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구상식은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4년 전 후난 총격 사건 이후 북한이 한국에 흡수 통일이 되면서 돌아갈 조국이 사라지고 국제 범죄자가 되자 구상식은 오지완과 함께 중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수년간 도망자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어떻게 알았는지 전 정찰총국장인 조명록의 부하로부터 뿌리치기 힘든 제안을 받게 되었다. 바로 태풍 16호였다.
수년간 도망자 신세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에 지쳐 있던 오지완과 일행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찬성했다.
구상식 역시 태풍 16호 임무 완수 시 받게 되는 수억 원의 거금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 돈이면 수년간 보지 못한 노모와 여동생을 보살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취조실 옆방에 있는 감독실에 박기웅 팀장이 들어오자 장한국 주임이 물었다.
“박 팀장님! 오지완이가 정말 다 불었습니까?”
“불긴 뭘 불어! 지금 사내 입원실에 뻗어 있는데 말이야.”
“네? 그럼, 조금 전, 구상식한테 한 얘기는?”
“당연히 구라지. 저 자식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오지완도 모르는 뭔가의 정보를 알아내야 한단 말이지. 끊어진 연결 고리를 말이야.”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나중에 법정에서 증거자료로 사용 시 문제 되지 않겠어요?”
“문제가 되든 안 되든 지금은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야.”
“뭐, 그렇긴 하죠. 시국이 시국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