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9화 (369/605)

퍼즐 맞추기

2023년 11월 21일 15:30 (이라크시각 09:30),

이라크 키르쿠크주 키르쿠크 북단 20km 지점.

2일 전 새벽, 쿠르디스탄 공화국 독립전쟁의 마침표라 할 수 있는 최종 점령지인 키르쿠크로부터 10km까지 진공했던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의 111해병전차대대는 이라크에서 최정예로 불리는 황금사단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질풍 같은 진공은 멈추었고 하물며 후방 20km까지 퇴각하고 말았다.

나름 최신 장비로 편제된 황금사단은 무려 6개 기갑여단으로 111해병전차대대의 진공을 막았고 더불어 물량전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이에 111해병전차대대의 대대장인 나혁진 중령은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퇴각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만약 111해병전차대대가 운용하는 전차가 흑호 전차가 아닌 초기형 백호 전차만 되었어도 나혁진 중령은 퇴각 명령이 아닌 정면돌파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비록 황금사단이 운용하는 전차가 기본형인 M1A1 에이브럼스 전차와 통일 전 한국에서도 운용했던 러시아제 T-80U 전차였지만 6개 기갑여단의 전차 수는 무려 400여 대에 달했다.

4.5세대급 C-2A1 흑호 전차 44대로 3세대급으로 분류된 전차 400여 대를 상대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더불어 대전차유도탄을 탑재한 장갑차 200여 대도 상대해야 했다.

이렇듯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자 키르쿠크 북단 20km 지점까지 퇴각한 111해병전차대대는 공격 전술에서 방어 전술로 변경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현재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의 나머지 112해병전차대대와 113해병기동대대는 알툰 쿠프리를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인계한 후 키르쿠크주의 대형 유전지대에 대한 점령 작전에 모두 투입된 상황이었다. 키르쿠크주의 대형 유전지대는 총 11곳으로 서둘러 점령한다고 해도 최소 2일의 걸렸다.

즉, 111해병전차대대는 여단본부와 나머지 2개 대대가 합류가 가능한 최소 23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방어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 점령했던 알툰 쿠프리를 내줄 판이었다.

한편, 황금사단은 직할부대까지 키르쿠크 북단 투입이 완료되자 예하부대인 6개 기갑여단은 알툰 쿠프리 수복을 위한 북진 진공에 들어갔다. 당연히 길목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한 111해병전차대대와는 비껴갈 수 없는 결전이 예상되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휘이위익~

13km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흙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200여 대의 전차와 100여 대의 장갑차가 흙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기동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합니다.”

흙먼지 구름 사이로 붉은 발광체로 보이는 200여 대의 전차를 조준경으로 확인하는 132호 전차 포수인 이해성 상병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마하기는 개뿔! 조금 있으면 다들 불타는 고철 덩어리 신세가 될 텐데”

전차장 김윤성 중사 역시 흙먼지를 뿌리며 선두에서 기동하는 M1A1 에이브럼스 전차들을 현시경을 통해 하나하나 표적으로 설정하며 맞받아쳤다.

“전차장님! 숫자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설정된 표적에 따라 자동으로 포탑이 움직였고 첫 번째 표적의 적 전차의 포탑 정 중앙에 조준점이 모였다. 이에 이해성 상병은 언제든 플라즈마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손잡이에 꽉 쥐고는 발사 명령을 기다리며 말했다.

“야야! 공격 전술에는 수적으로 불리할 수 있겠지만 방어 전술에서는 이 정도 숫자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거 전술 교육 시간에 안 배웠냐? 밥팅아?”

툭!

김윤성 중사가 왼팔을 벌려 이해성 상병의 헬멧을 가볍게 쳤다.

“아! 배우긴 했지만, 실전에서는 처음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짬밥 떨어지는 상병 포수니 그럴 수 있지”

“저 상병이라고 무시하십니까?”

“그래 자식아 무시한다. 어쩔래? 앙?”

결전을 앞두고 긴장감을 줄이고자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달아 이해성 상병의 헬멧을 때리는 가운데 후방 상공에서는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는 묵직한 파공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정체는 알툰 쿠프리 북단에서 방열 중이던 C-9A1 라이트닝 자주포의 포격음과 플라즈마 확산탄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18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달아 발사된 수십 발의 155mm 플라즈마 확산탄은 보이지 않은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르쿠크 북단 곳곳에 착탄 했다.

콰아앙! 파아앙! 쾅앙!

플라즈마 확산탄은 상공에서 1차 폭발과 함께 수많은 자탄을 뿌렸고 이내 자탄은 재차 폭발하며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지상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파편들은 빠른 기동으로 다가오는 황금사단의 M1A1 에이브럼스 전차의 상단 포탑 장갑을 종잇장 찢듯이 사정없이 찢어버렸고 이에 포탑 내부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기다란 전차 포신은 힘없이 축 늘어졌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가던 캐터필러는 이내 멈추고 말았다.

이런 대재앙은 전차뿐만 아니라 후방 먼 곳에서 대기 중이던 황금사단 포병부대와 대공부대에도 쏟아졌다. 교전 전부터 각종 정찰 전력을 총동원하여 황금사단의 모든 부대를 손금보듯 파악하고 있었다.

엄청난 사거리의 장점을 발휘하며 포병부대와 대공부대 그리고 밀려오는 기갑전력에 포탄 사례를 퍼붓는 사이 그동안 육군전력만 동원했던 이라크는 드디어 공군전력이 움직였다.

바그다드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Su-25 대지공격기 12기와 Su-30K 전폭기 4기가 빠른 속도로 111해병전차대대의 방어진지로 날아오고 있었다.

★ ★ ★

2023년 11월 21일 17: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

대한민국은 국가총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집회신고는 물론 모든 집회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지만 17일 평양에서 시작된 불법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이 되면서 초반 진압을 놓친 중앙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청와대 수석 중 강경파 몇 명은 자칫하다가는 국가분열까지 갈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공권력을 행사하여 강경 진압을 하자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추은희 대통령은 현재 시위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를 기다리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계속해서 행정자치부 김수겸 장관에게 시위대를 자극하는 그 어떠한 진압행사를 금지했고 오직 일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치안유지에 신경 쓰라는 지시만 내린 상태였다.

이에 답답한 청와대 수석들은 물론 장관들까지 하루에 몇 번이고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에게 진언을 올렸지만, 알았다는 답변만 들을 뿐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로구 세종대로에는 정치적 성향이 상향되는 두 시위대가 서로를 향해 욕설과 비방을 하며 대치 중이었다.

세종대로 남단에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붉은 시위대 25만여 명이 각가지 깃발과 현 중앙정부를 규탄하는 패널을 들고 거친 시위 중이었고 반대편 북단 광화문 광장에는 붉은시위대를 국가전복을 꾀하려는 좌파 빨갱이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규탄하는 보수세력의 시민단체 30만 명이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정치성향이 상반되는 양측의 시위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과격해졌고 이를 막기 위해 투입된 3만여 명의 경찰들은 몇 겹으로 인간 방패막이를 만들고 차량까지 동원하여 만일의 사태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경찰 수보다 수배에 이르는 양측의 시위대는 끝내 경찰 장벽을 무너뜨리고 충돌했다. 통일 대한민국 역사 이래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을 이념 간 대충돌은 이렇게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 ★ ★

2023년 11월 21일 17: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외정보국 최조실).

“오셨습니까?”

대외정보국의 모든 취조실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주는 감독실에 이영진 원장이 손수 방문했다.

“그래, 뭔 좀 나왔나?”

비서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온 이영진 원장은 강기원 국장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까지는······.”

별 면목이 없는지 강기원 국장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몇 시까지 잡아둘 수 있지?”

앞으로 3시간 안으로 김형철 부국장과 우병후 특수관을 기소할 수 있는 중대한 증거자료나 자백을 받지 못한다면 풀어줘야 할 상황이었다. 체포 당시 압수 수색하여 가져온 모든 물품은 이렇다 할 증거자료로 삼을 건 없었다. 그만큼 김형철과 우병후는 빈틈없이 철저히 행동해왔다는 것을 보여줬다.

“20시까지입니다.”

“이거 참, 3시간도 안 남았군”

이영진 원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혀끝을 차며 말을 이었다.

“큰일이야. 대통령님께서 손꼽아 기다리시는데 말이야. 휴우!”

이영진 원장의 한숨 소리에 강기원 국장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2023년 11월 21일 18:00,

북주 황해도 개성경제특구시 북성구 개성대학교병원(입원실).

2차례 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있었던 이혜진 과장은 금일 오후가 되어서야 일반 입원실로 옮겨졌고 면회도 허용이 되었다.

“이번에 치료 끝나면 회사 관뒀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하얀 붕대에 오른 다리 전체가 감긴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던 이혜진 과장은 남궁원의 말에 발끈했다.

“원!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무슨 회사를 관둬?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럼 현장 요원 말고 내근직 부서로 옮겨달라고 하자!”

“원! 자꾸 왜 그래?”

“왜 그러긴?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 새끼가 만약 얼굴에라도 쐬어봐! 죽었다고”

속상한 나머지 남궁원의 언성이 올라갔다.

“자기야! 나 자기랑 싸울 힘없어! 나중에 얘기하자!”

“안돼! 지금 당장 말해”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입원실의 문에서 노크가 들렸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꽃다발을 든 사내가 들어왔다. 박기웅 팀장이었다.

“아! 선배님도 계셨군요.”

박기웅 팀장은 남궁원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바로 이혜진 과장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안기며 안부를 물었다.

“아! 걱정 많이 했습니다. 과장님! 상처는 어떠세요?”

“오! 꽃 고마워요. 호호 괜찮아요. 수술도 잘되었다고 하고”

“정말 다행이네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엊그제 왔었는데 면회가 안된다고 해서 그냥 돌아갔었어요.”

“아, 그랬군요. 그럼 우리 자기랑 식사라도 하시지······.”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하하”

박기웅 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박 팀장님! 그보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궁금해 죽겠어요. 그 오지완 놈은 잡혔나요?”

수술 후 3일간 중환자실에 있다가 막 입원실로 옮겨진 이혜진 과장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테러수사국의 3과 요원들도 이혜진 과장의 안정을 위해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

“모르셨군요. 그날 밤에 잡았습니다.”

잡았다는 말에 남궁원이 질문을 던졌다.

“누가?”

“하하, 제가 잡았습니다.”

“역시 우리 회사에서 최고 엘리트 요원이군요.”

“과찬이십니다. 과장님!”

“그 새끼 얼굴 좀 볼 수 있을까?”

화가 난 표정으로 남궁원이 묻자 박기웅8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지완 그놈, 국정원 병실에 입원 중입니다. 체포 당시 제가 작살을 냈거든요. 하하 그래서 지금 취조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 얼굴이 이 정도인데 그놈은 어떻겠습니까?”

박기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3일이 지났지만, 눈가의 피멍과 붓기는 아직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생했네요. 그리고 원! 당신은 민간인 신분이니 신경 쓰지 마!”

이혜진 과장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박기웅의 얼굴을 본 후 바로 남궁원에게 고개를 돌려 핀잔을 줬다. 이에 남궁원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혜진! 민간이라니? 나 명예 국정원 요원이야! 왜 이래?”

사실 남궁원은 국가정보원을 사직한 후에도 해킹과 같은 특수한 성격의 업무 요청이 들어와 가끔 도와주곤 했었다. 비정규직 요원이라 볼 수 있었다.

“원! 됐고요. 그럼 구상식 통해서 추가로 알아낸 거 없나요?”

남궁원에게 눈을 흘긴 이혜진 과장은 박기웅 팀장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네, 과장님 부서에 문의해 본 봐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한 듯합니다.”

“음, 박 팀장님!”

“네, 과장님!”

“구상식은 오지완을 무척 무서워했어요. 아무래도 자신이 배신한 것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아직 오지완은 모르고 있을 거예요. 그것을 잘만 이용하면 구상식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음, 그렇군요. 그러잖아도 증거 확보가 힘들어 오늘 중으로 김형철과 우병후를 풀어준다고 하던데······.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어서 가봐요!”

“네, 몸조리 잘 하시고 선배님도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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