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7화 (367/605)

퍼즐 맞추기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자 서로 간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연방광역수사국의 수장인 강혁 국장이었다.

“총들 내려놓지 못해? 공무방해죄로 모두 잡혀가고 싶어?”

강혁 국장은 비서실 소속의 수사관과 우병후와 함께 온 감찰부 수사관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국, 국장님! 이건, 국암원의 불법적인 권력 남용입니다.”

같은 조직 편을 드는 게 아닌 국가비리암행원의 편을 들자 김형철은 온갖 인상을 쓰며 강혁 국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거 보이나?”

강혁 국장은 청와대 문장이 그려진 문서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 문서는 김형철 체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대통령의 직권 명령서였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서리 증거가 하나 없이 이딴 식으로 체포하는 걸 내는 용납 할 수 없어야!”

붉으락푸르락 얼굴까지 붉게 변한 김형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철컥!

비서실 수사관들이 강혁 국장의 호통에 뒤로 물러서자 이때를 놓칠세라 국가비리암행원의 수사요원들이 김형철을 제압하고는 그대로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거이 안 푸네? 풀라우!”

김형철이 두 명의 수사요원과 실랑이를 벌이며 끌려가는 가운데 강철중 과장이 강혁 국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덕분에 무탈하게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허허, 감사하다니요. 연광국 수장으로써 창피할 뿐입니다.”

이때 뻘쭘한 상태로 서 있던 우병후가 뒷걸음질을 하며 부국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거기 우병후 특수관! 당신도 체포 대상이니 멈춰요.”

강혁 국장과 몇 마디를 나눈 강철중 과장은 곁눈질로 도망가는 우병후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입구 쪽에 있던 또 다른 수사요원들이 막아섰고 그대로 그의 팔을 비틀고는 수갑을 채웠다.

“내 죄목이 뭡니까? 무턱대고 마구잡이 식으로 체포해도 됩니까?”

수갑에 채워진 우병후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죄목이야. 당신이 잘 알지 않습니까? 일단 국암원으로 가서 천천히 얘기해봅시다.”

강철중 과장은 피식 웃고는 부하들에게 데리고 가라는 손짓을 했다.

끌려가는 우병후의 뒷모습을 보는 강철중은 턱을 쓰다듬고는 이내 나머지 수사요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먼지 하나 놓치지 말고 확실히 뒤져!”

“네, 알겠습니다.”

국가비리암행원 수사요원들은 김형철 부국장실 곳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긴급체포 형식으로 김형철과 우병후를 체포하였지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식기소는커녕 풀어줘야 했다.

★ ★ ★

2023년 11월 18일 17:30 (이라크시각 11:30),

이라크 키르쿠크주 알툰 쿠프리시 북단 5km 지점(제11 해병기동여단).

3시간 전, 교전 초반에는 알툰 쿠프리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이라크 포병부대의 폭격에 진공하던 제11해병기동여단이 약간의 피해를 보긴 하였으나, 즉각적인 대포병 사격을 가함으로써 이라크의 포병부대 대부분이 괴멸되었다.

이어 이라크 보안군은 2015년 체코에서 도입한 Mi-24 공격헬기를 초반에 적극 투입시켜 제11해병기동여단의 선봉을 섬멸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것은 패착이었다.

한때 ISIL 및 수니파 무장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가격보다 7배에 달하는 판매가로 구매한 16기의 Mi-24 공격헬기는 기갑전력을 상대로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도리어 투입과 동시에 모두 격추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기갑전력의 탁월한 대공 능력을 그만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16기의 Mi-24 공격헬기가 모두 격추될 때까지 11해병기동여단이 피해받은 건 고작 흑호 전차 2대뿐이었다. 그것도 완전 피격이 아닌 기동불능에 빠진 피해일뿐이었다.

이렇게 수적우세는 물론 방어를 위한 만만의 준비와 교전 초반 가용한 전력을 투여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이라크 보안군의 제13기갑사단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입었고 바로 뒤에서 전개한 제15차량화보병사단 역시 썩은 나무 쓰러지듯 차례대로 격파를 당했다.

여의도 넓이의 수십 배에 달하는 교전구역은 시뻘건 화염과 자욱한 연기, 그리고 코를 찌를듯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쭈쭈쭈쭈쭈쭈쭈쭈웅~ 쭈쭈쭈쭈쭈쭈쭈쭈웅~

전장의 중심지에는 수십 대의 C-27P-M 기린 해병전투장갑차가 지상으로부터 수 미터 높이까지 상승한 상태로 날아다니면서 기존 장갑차와 비교할 수 없는 고기동으로 전장을 휘저으며 지상에서 기동하는 T-72 전차와 각종 M113과 MT-LB 장갑차를 박살 냈다.

간혹, 이라크 장갑차로부터 지대공미사일이 날아왔지만, 지상과 가깝게 날아다니는 덕에 지대공미사일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아가 자폭하거나 아니면 지상과 처박히며 폭발했다.

이중 눈에 띄는 기린 장갑차 한 대가 있었다. 좌우로 크게 회전하며 지상을 향해 12mm 레이저 벌컨과 50mm 플라즈마 활성탄을 사정없이 뿌리며 벌써 십여 대의 전차를 박살 내고 있었다. 그 장갑차의 측면에는 중대본부 소속인 503호라는 번호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503호에 탑승한 승조원은 호출암호 호박꽃 둘인 1소대 소속의 512호 승조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15일 전, 하라카주 산악지대에서 이란군과 이라크 보안군을 정찰하던 중 기계 오작동으로 격추당한 후 512호 장갑차가 장기 입고가 되면서 임시로 중대본부 소속의 장갑차를 임시로 인계를 받아 전장에 투입되었다.

“3시 방향! 3시 방향! 튀어나온 전차 2대! 잡아라!”

503호에 탑승한 512호 단차장 양정석 중사는 하단에 탑재된 현시경을 통해 지상의 이라크 전차와 장갑차를 탐지했고 이내 차례대로 표적 설정을 이어가며 무장병 김기동 병장에게 사격 지시를 내렸다.

“옛설!”

김기동 병장은 장갑차 하단의 12mm 레이저 벌컨의 조준점을 표적 설정 순서에 따라 돌려가며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쭈쭈쭈쭈쭈쭈쭈웅~ 쭈쭈쭈쭈쭈쭈쭈웅~ 콰콰앙! 콰아앙!

6열 빔열이 회전하며 쏟아지는 붉은 빛줄기는 사선을 긋듯 지상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표적으로 지정된 2세대급의 T-72 전차 2대가 붉은 빛줄기를 맞자 여러 색깔의 불꽃이 튀기더니 이내 내부 폭발로 이어지며 지상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가공할 12mm 레이저 벌컨의 빛줄기는 T-72 전차의 상단 장갑 정도는 충분히 관통하고 남았다.

한편, 우측에서 교전을 펼쳤던 제111해병전차대대 역시 1개의 기갑여단과 1개의 차량화여단을 격파한 후 알툰 쿠프리 시내에 진입했다.

각 도로를 따라 소대별로 기동하는 흑호 전차들은 적 전차나 장갑차 그리고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건물에서의 이라크 보안군을 포착하기 위해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포탑을 돌리고 저속 기동했다.

“야야! 잘 봐라! 특히 건물 안쪽 말이야!”

132호 전차장 김윤성 중사는 현시경의 비전 모드를 바꿔가며 길게 이어진 건물들을 차례대로 확인하며 말했다. 이에 포수 이해성 상병도 마찬가지로 조준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지정된 건물 속까지 인버터 모드로 샅샅이 탐색했다.

“네, 걱정 마십쇼. 인버터 모드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놓치지 않고 있습!”

대답하던 이해성 상병은 순간 말문을 닫고 조준경 인버터 모드의 심도를 올렸다. 전방 왼편 70m 떨어진 4층의 하얀 건물 3층에서 기다란 무기를 소지한 발광체 인형 여러 개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전차장님! 11시 방향 70m 지점의 하얀 건물 3층! 대전차무기 소지자 인형 3개 발견!”

확인된 정보를 보고한 이해성 상병은 즉시 사격 안전핀을 올린 후 사격 손잡이를 움켜쥐고 방아쇠에 검지를 갖다 댔다.

“대전차무기 확실해?

“네, 현재 인버터 모드로 볼 때 RPG-7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날려!”

“네!”

전차장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이해성 상병은 서슴없이 전차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쿠앙!

웅장한 발사음과 함께 순간적인 진동파가 퍼지며 지축이 흔들렸다. 한편 강력한 플라즈마탄에 직격당한 5층 높이의 하얀 건물 3층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다.

쾅아! 쿠르르르릉~

“클리어!”

무너져내리는 건물잔해를 보며 이해성 상병이 보고했다.

엄청난 흙먼지가 도로를 따라 몰려오더니 이내 주변 일대를 삼켜버렸고 시야는 몇 미터 앞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C-2A1 흑호 전차의 탁월한 비전 모드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작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2소대 소속의 C-2A1 흑호 전차 4대는 각자 정해진 방향의 건물들을 일일이 정밀하게 탐색하며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 지대를 돌파해 나갔다.

★ ★ ★

2023년 11월 18일 17: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외정보국 최조실).

현재 국정원에는 이번 평화광장 폭탄 테러와 관련하여 체포된 사람은 신중국 PLA(인민해방군 특수부대) 군인들을 포함해 50여 명이 넘었다. 이 중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여러 명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가장 먼저 체포된 조명록이었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조속한 사건을 해결하고자 바로 자백용 약물을 투여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약물투여 후 자백을 하다가 부작용이 일어나 현재는 의식불명 상태로 국가정보원 내 특수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자백용 특수약물에 강제적으로 자백하던 중에 무의식 상황에서도 러시아에 있는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었고 이로 인해 과도한 뇌압이 상승하며 주요 시신경계가 손상되고 말았다. 더는 조명록으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두 번째는 구상식이었다. 구상식은 취조 당시 이혜진 과장의 재치에 넘어가 그만 여러 정보를 실토했다. 하지만 말단에 있는 구상식으로부터 사건의 실마리를 풀만 한 중요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상식에게도 자백용 약물을 투여할 수도 없었다.

세 번째는 오지완이었다. 하지만 현재 오지완은 취조를 받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박기웅과의 싸움에서 크게 다친 오지완은 적어도 5일 정도는 치료와 휴식을 취해야 취조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의견이었다.

이처럼 중요 피의자들로부터 증거자료의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조금 전 국가비리암행원에 체포된 김형철과 우병후가 연행된 곳은 국가비리암행원이 아닌 국가정보원의 대외정보국 취조실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불법이니 뭐니 헛소리를 퍼붓던 김형철은 제풀에 지쳤는지 지금은 취조실 의자에 앉아 뭔가의 사색에 빠져있었다.

“앞으로 70시간 남았습니다. 그 안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풀어줘야 합니다.”

반사유리 넘어 취조실 의장에 앉아있는 김형철을 보며 강철중 과장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알아내야지요.”

대외정보국 이자성 과장이 대답했다.

“압수 수색한 증거품들은 2시간 후면 정리되어 도착할 것입니다.”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이라니요. 다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그럼 저희는 3일 후에 오겠습니다. 그동안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잡아내야지요.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그때 뵙지요.”

악수를 마친 강철중 과장이 부하들과 함께 사무실을 떠났다. 일명 공수처라고도 불리는 국가비리암행원은 비리 제보나 불법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될 시 5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에 한해서 긴급체포 및 3일간 취조할 수 있는 막강한 수사 권한이 이었다.

현재 김형철과 우병후에 대해선 불법적 사찰에 해당하는 증거만 확보했을 뿐 법적으로 인정받을만한 증거는 없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깊은 고민 끝에 국가비리암행원의 협조를 받아 국가정보원에서 증거를 확보해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 보면 추은희 대통령의 지시는 불법적인 지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김형원과 김정은이 암살당한 폭탄 테러 사건으로 국가총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또한 전국으로 퍼진 대규모 시위로 인해 대한민국은 국가전복 위기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고심 끝에 다소 불법적이긴 하였지만, 더 이상의 국가적 혼란을 막고자 이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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