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3화 (363/605)

이념 충돌!

2023년 11월 17일 21:30,

남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본동 LF 아파트(1103호).

방금 들어왔던 이혜진 과장이 샤워만 하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하자 거실 소파에 누워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를 시청하려던 남궁원은 상체를 일으켜 안방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다시 나가는 거야?”

“응, 우리가 몇 주 동안 쫓던 놈을 박 팀장이 잡았데. 그래서 지금 본사로 데리고 오고 있어”

“뭐? 그 대외1공작대라는 놈들?”

“응!”

이혜진 과장은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고치며 대답했다.

“아! 그럼 오늘 외박이야?”

“아마도? 그놈 입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나오면 새벽에는 올 수 있을 거 같아!

“아! 오늘도 혼자 자야는 거야?”

“당신도 요새 일 때문에 피곤하지 않아? 혼자 푹 자!”

“헐!”

낙담한 표정을 지은 남궁원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묻었다. TV에서는 추은희 대통령이 막 프레스 센터의 단상에 서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를 시작했다.

항상 국민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보여 미소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추은희 대통령의 표정은 오늘만큼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10분 후 집중해서 대국민 발표를 시청하던 남궁원이 눈이 커지며 말했다.

“어라? 자기야? 자기도 알고 있었어?”

뜬금없이 말하는 남궁원의 말에 화장을 마친 이혜진 과장이 거실로 나오며 대답했다.

“TV 봐봐! 대통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놀란 표정의 남궁원은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추은희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 발표에서 이번 폭탄 테러 사건은 조명록 전 정찰총국장의 소행이며 배후에는 김형원이 연관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하고 있었다.

“뭐, 뭐야? 자기 자신을 죽여달라고 폭탄 테러를 지시했다는 거야 뭐야?”

남궁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TV와 이혜진 과장을 번갈아 봤다.

“음, 그건 아니고, 원래는 조명록한테 김형원이······. 아! 나 늦었어.”

설명하려던 이혜진 과장은 시계를 보고는 부리나케 현관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나중에 자세하게 말해줄게. 아침에 봐!”

“어! 조심히 다녀와!”

“응!”

혼자 남게 된 남궁원은 아쉬워하며 다시금 TV에 시선을 돌렸다.

★ ★ ★

2023년 11월 17일 22: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붉은혁명청년단 비밀 은신처).

5층 건물 지하, 어두운 조명 아래 십여 명의 사내들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청하고 있었다. 이들은 붉은혁명청년단의 단장과 각 주를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이었다.

TV 화면에서는 30분 전에 시작한 추은희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가 이어지고 있었다. 몇 분 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가 끝나자 시청하던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이거이 어쨉니까? 남조선 대통령은 벌써 이번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전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말입네다.”

만길수 단장 옆에서 시청하던 삐쩍 마른 한 사내가 염려되는 어조로 말했다. 이에 만길수 단장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어이! 오광태 동무! 이제는 전진뿐이야! 지금에 와서리 멈춰버리면 이도 저도 아이되지. 안 그네?”

“그래도 남조선 대통령이 하는 말을 보면······.”

“닥치라우! 그런 약한 소리 할거믄 당장 빠지라우!”

만길수는 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오광태를 질타했다.

“아, 아닙네다.”

“다들 회의실로 모이라우!”

만길수는 어쩔 줄 모르는 오광태를 뒤로 하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머지 간부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이동했다.

잠시 후 기다란 탁자를 따라 각 주의 간부들이 앉았다.

“평양의 혁명 불씨는 이제 활활 타올랐어야. 이제 북주는 물론 남주 등 모든 주에 혁명 불씨를 퍼뜨려야디! 각자 준비된 상황에 대해서 보고하라우”

“내래 먼저 보고하겠습네다.”

만길수 단장 왼쪽에 앉아있던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주 총괄 간부 김동윤이었다.

“현재 북주 16개 도시에서는 만 단장 동무의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디요. 현재 한 도시 당 대략 3만 명의 붉은혁명청년단원들이 새로운 혁명을 위해 붉은 깃발을 들고 과업을 위한 전선에 뛰어들 것입네다.”

김동윤 간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이에 만길수 단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담은 어디네?”

만길수 단장의 질문에 간부들은 차례대로 일어나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주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이어갔다.

잠시 후 마지막 북만주의 총괄 간부가 보고를 끝내자 만길수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탁자를 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회의실을 울렸다.

“동무들! 내일이면 남조선의 모든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혁명 불씨로 인해 조만간 우리의 세상이 올 것이야. 그날을 위해 다들 붉은 혁명의 과업에 목숨을 걸고 임하라우!”

만길수 단장이 오른손을 번쩍 들자 나머지 중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며 구호를 외쳤다.

“자주 조선인민주의! 자주 붉은혁명청년단!”

연달아 구호를 외친 사내들은 잠시 후 하나둘 회의실을 떠났고 혼자 남은 만길수는 책상 위에 턱을 괴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붉은혁명청년단의 재정적 지원자인 민족노동당 김형원 전 당 대표가 어이없게도 사망하여 기존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우병후으로부터 기존 계획대로 밀고 나가라는 지시를 받은 만길수 단장은 어떻게든 이번 혁명을 성공시켜 새로운 혁명 국가에서 중요한 요직을 얻어 떵떵거리면 살아가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끼이잉~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만 동무! 뭐 하고 있네?”

만길수 단장에게 반말을 건넨 사내는 왼팔이 없고 조그마한 체형의 소유자였다.

“왔네? 김진 동무래 수고했어야. 동무로 인해 일이 쉽게 풀렸어야. 하하하! 이리와 앉으라우”

만길수는 김진이라는 외팔이 사내를 반갑게 맞아줬다.

“일 없어야! 내는 씻고 잠시 쉬야갔어. 이리저리 추적을 피해 도망을 다녔더니 피곤해 죽겄어야.”

“그러네? 그럼 씻고 푹 쉬라우. 내일도 할 일이 있으니끼니”

“알갔어. 그람 낼 보자우”

김진이라 불리는 외팔이 사내, 그는 바로 평화광장에서 안동태 주지사를 저격한 인물이었다.

통일 이전, 북한 11군단 특수작전대대에서 주특기가 저격수였던 김진은 훈련 중 왼팔을 잃고 전역한 후 장애인으로 궁핍한 삶을 살다가 통일 후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인 만길수를 만나 붉은혁명청년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오늘, 무력진압으로 인한 유혈사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안동태 주지사를 저격했다. 외팔이임에도 불구하고 김진은 예전 군시절의 저격 실력을 맘껏 발휘하여 작은 부상만 입힐 정도로 안동태를 저격했다. 이에 안동태 주지사를 경호하던 경호대는 갑작스러운 저격에 그만 시위대 짓으로 오판하고 시위대를 향해 화기를 사용하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된 화기를 사용한 무력진압은 평양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추은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대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붉은혁명청년단이 사전에 계획된 의도였다. 그리고 내일은 평양을 넘어 대한민국 모든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 내부혼란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 ★ ★

2023년 11월 18일 22: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국 취조실).

얼굴은 피멍이 들어 잔뜩 부은 얼굴로 취조실 의자에 앉아있는 구상식은 최조실 여기저기를 흘겨보며 수갑 찬 양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저놈 정신 좀 차린 듯합니다.”

옆방에서 반사유리로 보고 있던 하상만 대리가 내부 전화기로 누군가에게 보고했다.

-알았어! 바로 갈게!

잠시 후 이혜진 과장과 박기웅 팀장이 함께 취조실 옆방에 들어왔다.

“언제 깨어났어?”

반사유리 너머로 구상식을 본 이혜진 과장이 질문하자 허상만 대리가 대답했다.

“네, 방금 깨어나서 전화 드린 겁니다.”

“그래? 그런데 저놈 얼굴이 너무 망가졌네?”

이혜진 과장이 박기웅 팀장을 보며 말했다. 이에 박기웅 팀장이 머리를 걸쩍거리며 말했다.

“예전 후난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제가 좀 과했나 봅니다.”

“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네, 하하”

“그럼 취조는 누가 할까요? 우리가 할까요? 아니면 박 팀장 쪽에서 할래요?”

“제가 하면 또 예전 일이 생각나서 저놈 그냥 안 둘 거 같습니다.”

“그럼 우리 부서에서 할게요.”

“네, 그렇게 하시죠.”

잠시 후 취조실로 이혜진 과장과 허상만 대리가 들어오자 구상식은 퉁퉁 부은 두 눈을 위아래로 흘기며 이혜진 과장을 보며 말했다.

“오! 한 미모 하는 아가씨가 여긴 어찌한 일로?”

팍!

허상만 대리는 들고 온 서류뭉치로 구상식의 머리를 세차게 때리며 욕을 퍼부었다.

“구상식이 이 개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날려? 확! 이빨을 모두 뽑아버릴라!”

이에 구상식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특수훈련을 받은 요원답게 깡다구가 센 것인지 전혀 꿀리지 않고 박박 대들었다.

“이 종간나새끼! 니 죽고싶네?”

표독스러운 대꾸에 열받은 구상식이 더 때리려 하자 이혜진 과장이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구상식! 옆방에 오지완이 있는데 같은 방에 하루 정도 놔둘까?”

순간, 구상식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고 이내 순한 양처럼 온순해졌다.

“구상식 씨? 우리 시간 낭비하지 말고 쉽게 쉽게 가는 게 어때요?”

뭔가 먹였다 생각한 이혜진 과장은 윗옷을 벗은 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옷소매를 걷고는 본격적인 취조를 시작하려 했다. 사실 이혜진 과장은 취조실에 오기 전, 평양지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오전 임원동 창고에서 구상식으로부터 가슴과 머리에 총상을 입은 남구태는 평양 중앙의료센터로 긴급 후송된 후 최첨단 의료기술에 힘입어 다행히도 한 차례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시간 전, 깊은 잠에 빠졌던 남구태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무의식중에 알아듣기 힘든 여러 말들을 쏟아냈다. 이에 경호 중이던 평양지부 요원들은 남구태가 쏟아내는 말들을 일일이 녹음하여 본사 대테러수사국으로 보냈다.

이에 대테러수사국에서 전달받은 녹음 파일을 정밀 분석한 결과는 이랬다. 구상식이 배신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고 선수금으로 받은 모든 돈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러면서 오지완 대장을 애타게 찾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귀중한 정보를 뜻하지 않게 획득한 이혜진 과장은 배신자인 구상식에게 오지완이 잡혔다는 거짓말을 양념 삼아 집어넣으며 압박을 했고 다행히도 제대로 먹혔다.

이혜진 과장의 거짓말에 넘어간 구상식은 오지완과 절대로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실토하고 말았다.

조명록의 지시에 따르는 하수인에 불과한 대외1공작대의 한 대원에게 중대한 정보는 알아낼 수는 없었으나, 폭탄 테러 계획과 오지완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3시간에 걸친 구상식의 취조가 마무리된 후 자신의 과장실로 돌아온 이혜진 과장은 밀려오는 피곤함을 커피 한잔으로 달리며 금일 아침에 보고할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는 그때, 허상만 대리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과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과장님! 오지완 위치가 파악된 듯합니다.”

대외1공작대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망 중인 오지완의 위치가 파악되었다는 소리에 이혜진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책상에 있던 커피잔이 넘어지며 이혜진 과장에게 쏟아졌다.

“아! 이런!”

이혜진 과장은 물티슈를 꺼내 커피를 닦아냈다. 뜨거운 커피였지만 안에 입은 보호 슈트 덕에 화상을 입거나 하진 않았다.

“괜찮습니까?”

허상만 대리는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그것보다 오지완이 어디야?”

“개성입니다. 개성 용암동입니다.”

“개성? 평양에서 개성까지 내려왔단 말이야?”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알았어. 나 보호 슈트 좀 갈아입고 바로 나갈 테니까 3과 팀원들 모두 출동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나가서 준비하겠습니다.”

허상만 대리가 나가자 이혜진 과장은 커피로 인해 찜찜한 보호 슈트를 갈아입기 위해 캐비닛을 열었다.

“아! 맞다. 새로운 버전으로 교환해 준다고 여벌을 가져갔지······. 어쩐다?”

잠시 고민한 이혜진 과장은 보호 슈트 하의만 벗고는 새로운 바지로 갈아입었다.

‘별일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며 KS5 레이저 피스톨과 각종 개인장비를 챙긴 이혜진 과장은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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