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5화 (355/605)

카운터

2023년 11월 17일 04:3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임원동 어느 창고.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낡아빠진 창고, 매서운 시베리아 북서풍에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이틀 동안 추위에 시달리던 대외1공작대는 각자 개인 장비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다들 준비는 됐네?”

창고 한쪽 편에서 각종 개인 장비를 챙기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오지완이 물었다.

“모두 준비 됐음메”

대원들의 장비를 챙겨주던 강태우가 대답했다.

“그럼 날래 가자우! 날 밝기 전에 도착해야지 않갔어?”

“알겠슴메! 뭐함메? 대장 동지 말이 안 들리메?

강태우가 다그치자 대원들은 하나둘 크고 작은 배낭을 배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통신 장비는 문제 없갔디?”

오지완은 마지막으로 창고 밖으로 나가기 전 창고에 남아있는 대기조 구상식과 남구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어나자마자 확인 했습네다. 이상 없습네다.”

구상식이 통신 장비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연락할 테니끼니 딴짓하지 말고 대기 하라우! 또한, 우리가 도착하면 즉시 떠날 수 있게 흔적도 철저히 지우라우. 알았네?”

“알갔습네다. 걱정 마시라요”

“그럼 이따 보자우!”

오지완이 나간 후 창고에는 구상식과 남구태만 남았다.

“동무! 어떻게 할 기야?”

창문 너머 오지완 일행들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남구태가 통신기 앞에서 앉아있는 구상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뭘 어떻게 하긴! 어제 말한 대로 해야디!”

전날, 남구태와 구상식은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구상식은 지난번 황제 룸살롱 사건으로 인해 거사 이후 자신의 목숨이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기조인 남구태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거사 당일 선수금으로 받은 돈 전부를 가지고 도망치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남구태는 망설였다. 수년간 고생하며 함께 지내온 대원들을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상식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강태우보다 성격이 더 더러운 오지완이 우릴 용서해준 건 이번 거사에서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거사 이후 분명히 강태우를 시켜 우리를 죽일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럼 뭘 하고 앉아있네? 서둘러 챙기고 뜨자우!”

“이 돌대가리 간나야. 오지완 대장이 연락한다고 하지 않았네? 연락은 받고 떠야디. 만약 우리가 튄 걸 알고 일을 치르지 않으면 어쩌네?”

“돈만 갖고 튀면 되지! 뭘 뒷일까지 생각하네?”

“이래서 네놈보고 돌대가리라 하는 기야.”

남구태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구상식은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보라우! 오 대장 동지 성격 알지 않네? 아마도 두 눈에 불을 켜고 우릴 쫓아올 기야.”

잠시 생각한 남구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디! 지옥까지라도 쫒아 오갔디”

“그러니 끼니 거사를 치러야 오 대장 동지도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캈어? 더욱이 러시아로 도망갈 정보까지 남조선 정보국에 흘리면 금상첨화디. 후후후”

“와! 간나새끼! 머리 한번 좋구만기래?”

“뭘 기리 좋아하구만 있네? 알았으면 날래 흔적이나 치우라우”

“알갔어. 내래 구 동무만 믿갔어”

구상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남구태는 엄지를 치켜든 후 창고 내 흔적들을 치우기 위해 걸어갔다. 이런 남구태의 뒷모습을 바라본 구상식은 알 수 없는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 ★ ★

2023년 11월 17일 05:3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 로열 크리스털 호텔.

며칠 동안 신중국 관광객들을 뒤쫓던 이자성 과장과 오석진 대리는 평양까지 따라와 관광객이 투숙하는 로열 크리스털 호텔 맞은편 호텔에서 투숙하며 감시를 계속해 왔다.

새벽 당번인 오석진 대리가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 턱에 기대어 잠을 잤다.

“오 대리 뭐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깬 이자성 과장이 졸고 있는 오석진 대리를 깨웠다.

“아! 으그극! 깜빡 졸았네요.”

기지개하며 깨어난 오석진 대리는 눈을 비비고는 이내 VR-M2로 연결된 모니터를 확인했다.

“엇! 뭐지?”

갑자기 놀란 오석진 대리는 투시 망원경인 VR-M2를 옆으로 돌려 크리스털 호텔 다른 곳을 비췄다.

“뭔데?”

오석진 대리가 허둥지둥 놀라며 VR-M2를 조작하자 화장실에 다녀온 이자성 과장이 급히 다가와 모니터를 확인했다.

인버터 모드로 크리스털 호텔 22층 한 층리면을 투시해 보여주고 있는 모니터 화면에는 빈 침대 여러 개가 보였다.

“오 대리! 너 몇 시쯤부터 존 거야?”

이에 오석진 대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이내 대답했다.

“얼마 안 된 거 같습니다. 길어야 30분 정도입니다.”

“정말이야?”

“네,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데 졸기 전 시간을 봤는데 4시 50분 정도였습니다.”

“몇 자리 비는지 확인해봐!”

“네”

오석진 대리가 VR-M2로 감시 대상자의 방을 확인하는 동안 이자성 과장은 본사로 연락을 취했다.

“몇 명 빠졌어?”

본사로 비상 연락을 취한 오자성 과장이 재차 물었다.

“현재까지 17명 빠졌습니다.”

“제길! 방심했어!”

“죄송합니다. 과장님!”

오석진 대리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할 게 아니라 어디로 튀었는지 찾아보자!”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방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오자성은 출입문을 열면서 지시를 내렸다.

“오 대리! 관광객 가이드 전번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전화해서 사라진 놈들의 행방을 아는지 확인해봐! 난 로얄 호텔로 넘어가서 남아있는 관광객들한테 물어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17일 05:5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 로열 크리스털 호텔.

프론트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이자성 과장은 호텔 종업원과 함께 신중국 관광객이 투숙하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고 올라가 기다란 복도를 지나 2211호실 문 앞에 도착하자 이자성은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몇 번의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시끄러운 신중국인 음성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가운만 걸친 신중국인 속사포처럼 중국어로 말했다. 이에 호텔 종업원이 통역을 해줬다.

대체 무슨 일로 새벽부터 초인종을 누르냐였다. 그러면서 지배인을 부르라 했다. 이후 호텔 종업원을 통해 이자성과 과장과 신중국 관광객 간의 대화가 오갔고 결론은 그들도 잘 모른다는 거였다. 단지 회사에서 포상으로 한국 여행을 줬다는 것만 안다는 것이었다. 다른 방의 관광객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이자성은 새벽에 사라진 자들의 방을 수색해보기로 했다. 2218호실 문 앞으로 이동한 이자성이 사람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나 몇 번을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호텔 종업원에게 마스터키로 문을 열러 달라 요청했다.

“마스터키 있죠? 문을 열어주세요.”

호텔 종업원이 난처한 얼굴을 비췄다. 이번 일로 신중국에서 온 관광객 발길이 떨어질까 봐 걱정되는 듯했다.

“지금 비상 상황입니다. 별일 없을 테니 어서 열어주세요.”

이자성 과장의 재촉에 호텔 종업원이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철컥!

문이 열리자 이자성 과장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5성급 호텔답게 넓은 거실과 함께 3명이 잘 수 있는 큰방이 있었다. 불을 켜고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이렇게 총 6개 방을 확인한 이자성은 마지막 방에서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을 확인했다.

휴지통에 들어있는 여러 개로 찢어진 지도였다.

“PLA(인민해방군 특수부대) 자식들 대체 한국에서 뭔 짓을 하려고······.”

이자성은 휴지통에서 지도 조각을 빠짐없이 주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퍼즐 맞추기에 들어갔다.

너무 작게 찢어진 조각은 어쩔 수 없었지만 큰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었다.

대충 맞춰진 지도에는 빨간색으로 그어진 여러 개의 선과 특정한 곳을 가리키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자성 과장이 생각하기에 동그라미는 목표지점이었고 빨간 선은 목표지점을 가기 위한 이동 경로로 보였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완성된 퍼즐 지도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후 본사에 메시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석진 대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응, 오 대리 가이드와 연락해봤어?”

- 네, 과장님, 가이드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정에 개인 관광도 없었고 그들로부터 개인 관광을 하겠다는 말도 없었다고 합니다.

“음, 그래?”

- 네, 가이드도 한국 사람이고 음성을 통한 거짓말 탐색기에도 이상 없었습니다. 과장님 그쪽은 뭐 찾은 거라도 있습니까?

“찾기 했는데 세밀한 분석이 필요해서 본사에 보냈다. 지금 그쪽으로 넘어갈 테니 오 대리는 언제든 나갈 준비 마치고 기다리고 있어!”

-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17일 08: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임원동 어느 창고.

삐빅삐빅!

도청이 불가한 보안등급이 높은 통신 장비에서 호출음이 들렸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구상식이 수화기를 들어 대답했다.

“구상식입네다.”

- 지금부터 현재 지도를 활성화 하라우! 암호 코드 불러주갔어. 코드는 X25M77A이야!

수화기에서 오지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알갔습네다.

대답을 마친 구상식은 옆에 놓인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 오지완이 불러준 코드를 입력했다. 그러자 노트북 화면은 위성지도가 보였고 파란 점과 빨간 점 수십 개가 움직였다.

파란 점은 현재 오지완을 비롯한 대외1공작대를 가리키는 표기였고 빨간 점은 그 지역 일대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경호원들이었다.

- 나오네?

“네, 확실하게 나옵네다.”

- 경호원들에게 우리 대원들이 발칵 되지 않도록 눈 부릅뜨고 보면서 즉시즉시 알려 주라우. 알았네?

“걱정 마시라요. 확실하게 보갔습네다.”

각종 첨단장비를 전 정찰총국장인 조명록을 통해 받았지만, 경호원의 위치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S급 기밀인 암호 코드까지 받았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 지금부터 각 대원 통신 개방하겠어! 수행조 1부터 목소리 들리면 대답하라우!

- 여기는 수행조 1, 강태우입메! 잘 들림메!

- 여기는 수행조 2, 남상원입네다. 잘 들립네다.

- 여기는 수행조 3, 박정식입네다. 문제 없습네다.

- 여기는 수행조 4 권혁균이라요. 문제 없습다.

- 좋았어! 지금부터 침투 시작하라우! 구상식이 확인 제대로 해주라우!

“알갔습네다. 침투 하시라요.”

통신이 끝난 후 파란 점 4개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에서도 문제없이 표기되는 파란 점들은 각자 4방향에서 중간중간 경호원을 나타내는 빨간 점을 피해가며 은밀하고 신속하게 정해진 지점을 향해 움직였다.

혹, 빨간 점으로 표기되는 경호원과 마주칠 경우를 대비해 오상구는 대원들에게 통신을 보내어 주변 상황을 알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4곳에서 출발한 수행조 4명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목표지점인 한곳으로 보였다.

수행조 4명은 목표지점까지 오는 동안 명도 경호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고 모일 수 있었다.

- 강태우임메! 4명 모두 무사히 목표지점에 도착했슴메”

- 고생 했섰야. 바로 설치 하라우!

- 알갔슴메

허리를 숙여야만 이동이 가능한 좁고 기다란 지하통로에서 수행조 4명은 각자 매고 온 배낭에서 물건을 꺼냈다. 대부분 IED 즉 급조폭발물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NFO 폭약보다 더 강력하다는 SP-ANFO 폭약을 가져온 수행조 4명은 능숙 능란하게 폭발물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반경 50m 이상을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성능의 IED를 지하통로 천장에 부착했다.

- IED 설치까지 완료 했슴메 원격 격발 센서 확인 바람메.

- 원격 격발 센서도 문제 없구만 기래! 그럼 2차 목표지점으로 이동하라우!

- 알겟음메!

통신망을 통해 오지완과 강태우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구상식은 품에 있는 권총을 매만지며 고개를 돌려 남구태를 살폈다. 한편 남구태는 그런 구상식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창고 내 흔적을 지우고 도망갈 준비에 열중했다.

한편, 창고로부터 1km 떨어진 곳에서는 용골산 주변 일대를 샅샅이 조사하고 다니던 박기웅 팀장과 평양지부 요원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며 조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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