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2023년 11월 16일 19:00 (쿠르디스탄시각 13:0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카라치야덴 북단 5km 지점(제7기계화보병여단 75기계화보병대대).
서아제르바이잔주 내 북부 전선의 최종 목표 점령지역인 카라치야덴의 북단 야지에는 밤새도록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메케한 연기를 피어오르며 반쯤 타다만 각종 장갑차와 전차 잔해들이 북단 평야 곳곳에 널려 있었고 이란군 시신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카라치야덴을 방어하는 이란군 전력은 2개의 기갑여단과 1개의 차량화보병사단, 그리고 3개 대대급 규모의 민병대였다. 적어도 75기계화보병대대보다 10배 이상의 전력 규모였다. 더군다나 2개 기갑여단이 운용하는 전차는 지난 1일 마쿠에서 처음으로 교전을 벌였던 T-14 아르마타 전차였다.
아무리 75기계화보병대대가 운용하는 K-23P-M 현무 기동전투장갑차가 광자포를 장착하고 강력한 방호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C-2A1 흑호 전차와 동급이라 할 수 있는 4.5세대급 T-14 아르마타 전차 200여 대를 상대해야 했으며 더불어 픽업트럭에서는 가공할 레일건까지 탑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제75기계화보병대대 장갑차는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았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고자 제7기계화보병여단 본부에서는 75기계화보병대대에 야간을 이용한 카라치야덴 진공 명령을 내렸다.
멀티 네트워크는 물론 야간 교전 능력이 이란군보다 탁월한 75기계화보병대대였기에 컴컴한 야지의 야간 교전은 소수 전력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러시아의 T-14 아르마타 전차 역시 멀티 네트워크나 야간 교전 능력은 4.5세대급인 만큼 매우 우수했다. 하지만 전차 승조원들의 운용능력이 문제였다. 아무리 엘리트라 불리는 혁명군이라 하더라도 1개월도 안 되는 인계 기간 T-14 아르마타 전차의 모든 운용시스템, 특히 야간 운용능력은 완벽할 수는 없었다.
더불어 제12항모전단 무인전폭기의 폭격을 비롯한 완벽한 공중엄호로 인해 이란 공군 전투기의 출격을 원천봉쇄 했고 제30항공단의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역시 승리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지상과 공중에서 입체작전을 펼친 75기계화보병대대가 이란군 제1혁명기갑사단의 2개 기갑여단과 백업 역할을 했던 11차량화보병사단을 괴멸시키자 패잔병과 민병대는 카라치야덴 시내로 퇴각해 시가전을 준비했다.
이에 75기계화보병중대대도 카라치야덴 북단 5km 지점에서 철통같은 경계를 펼치며 향후 있을 시가전을 위한 휴식에 들어갔다.
포탄에 맞아 반쯤 허물어진 건물이나 각종 잔해물을 이용해 엄폐한 75기계화보병대대 장갑차 주변에는 경계 임무를 맡은 일부 병사를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날밤을 새우며 교전을 벌인 탓에 피곤했는지 강렬한 태양이 쏟아지는 황량한 야지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충성! 김 상병님! 수고하셨습니다. 저희랑 교대하시죠.”
반쯤 허물어진 벽을 두고 전방 경계 임무를 서고 있던 김성호 상병과 윤호진 이병을 향해 다음 경계조인 김길태 상병과 강태만 일병이 낮은 자세로 다가와 거수경례를 했다. 이에 김성호 상병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너희 푹 쉬었냐?”
“그럭저럭 쉬었습니다. 어서 가서 쉬십시오.”
“그래, 고생해라!”
“네, 충성!”
메케한 냄새가 진동하는 카라치야덴 북단의 황량한 벌판에는 강렬하게 쏟아지는 중동의 태양 빛에 주변 일대가 아지랑이 꽃이 피며 이글거렸다.
“태만아 너는 12시부터 2시 방향을 맡아라. 난 10시부터 12시 확인할게”
“옛설!”
앞으로 3시간 후, 75기계화보병대대는 후방에서 대기 중인 쿠르디스탄 공화국 수비대와 함께 카라치야덴 점령을 위한 마지막 시가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 ★ ★
2023년 11월 16일 20:00 (현지시각 14:30),
인도양 북위 22°50'3.93" 동경 62°46'30.04" 해상(제12항모전단 백범김구함(CV-001) 무인전폭기 조종실).
이란과 이라크 영토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피스부대의 공중지원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출격하는 백범김구함(CV-001)의 함재기인 CUF/A-22NP 피닉스 4기가 2,000여 km를 날아 현재 카라치야덴 남단 상공을 비행하며 정찰 중이었다.
백범김구함(CV-001)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조종실에서는 수십 개의 모니터가 설치된 자리가 4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현재 4기의 피닉스가 비행하며 각가지 정보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오퍼레이터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퍼레이터 겸 실제 전투기 조종사이기도 했다.
CUF-22P 피닉스 4기는 자체 인공컴퓨터에 의해 자율비행 모드 상태로 임무를 수행 중이었지만, 언제든 오퍼레이터가 개입하여 수동 조종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카라치야덴 시가전을 앞두고 혹시나 이란군의 추가 지원군이 있는지를 정찰 중인 피닉스 4기는 각자 설정된 항로를 따라 지상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했다.
현재 이란군이 서부 전선 일대에서 소수의 피스부대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연신 패배하며 서아제르바이잔주에서 퇴각하는 이유에는 백범김구함(CV-001)에서 출격한 CUF/A-22NP 피닉스의 지상 폭격도 한몫했다.
이란 지상군은 자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상실이라는 불리함을 안고 전쟁을 수행해왔다. 초반, 대대적인 공군전력이 피해를 보고 이후 살아남은 전투기들이 맥없이 피닉스 무인전투기와의 제공권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이란 공군은 향후 공군전력을 유지하고자 더는 출격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란과 이라크 서부 일대는 대한민국의 하늘과 같았다.
“카라치야덴 남동단 25km 에볼리 마을 11번 도로에 기갑전력 탐지!”
델타 편대의 3호기 오퍼레이터가 확인된 영상을 확대하며 소리쳤다.
“규모는?”
델타 편대 편대장이자 1호기 오퍼레이터인 남상규 대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현재 영상에 파악한 정보로는 적어도 여단급 같습니다.”
3호기 오퍼레이터 오현우 중위는 신속한 손놀림으로 콘솔을 조작해 연상 파악을 하며 말했다.
“여단급? 이놈들 미친 거 아니야? 그동안 그리 당하고 여단급이 한 번에 움직인단 말이야?”
전쟁 초반 이란 지상군은 서아제르바이잔주 전선 일대로 대규모의 군부대를 이동시키다가 피닉스 무인전투기에 발각되어 융단 폭격을 받고 괴멸한 부대가 10개 사단이 넘었다.
이후 이란 지상군은 대대급 이하 단위로 부대 이동을 하게 되었다. 장점이라면 공중폭격을 당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를 볼 수 있었으나 단점으로는 밀리고 있는 전선 일대에 대한 신속하고 대대적인 투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란 지상군은 대규모 전력으로 피스부대를 상대하지 못하고 각개격파를 당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6혁명기갑사단의 예하부대인 32혁명기갑여단으로 보입니다.”
정찰된 정보를 상세하게 파악한 남상규 대위가 분석을 완료하고 보고했다.
“31여단은 코이 진공부대가 아닌가? 하하, 이놈들 카라치야덴 방어가 더 급했나 보군”
오현우 중위의 말에 뒤에 있던 델타 관제관이 가지고 있던 테블릿 PC를 조작하더니 이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남상규 대위가 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코이 진공은 포기하고 카라치야덴 방어에 집중하려는 듯합니다.”
“그렇겠지. 코이 수복보다는 카라치야덴 방어가 더 중요하겠지. 테헤란으로 연결되는 길목이니까 말이야. 어쨌든 잘 걸렸어. 현재 비행 중인 피닉스기의 무장한 무기로 100% 괴멸시킬 수 있겠나?”
“100%는 힘들 거 같습니다. 관제관님”
무인전폭기 조종실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는 현재 정찰 중인 피닉스 4기의 무장 현황이 보였다.
“음, 어쩔 수 없지! 일단 델타 편대는 즉시 폭격 시작하게 나는 비행대대장님께 다른 편대 출격을 요청할 테니”
공격 명령을 내린 델타 관제관은 즉시 비행대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헤드셋을 조작했다.
“네, 현 시각! 십사시 사십이분, 델타 편대 폭격 시작합니다.”
델파 편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편대 오퍼레이터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상공 30km에서 정찰 중이던 피닉스 4기는 목표 지점 상공 한곳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쉬이이이잉~
가변식 주익 날개를 자유자재로 변환하며 순식간에 포격 가능한 고도까지 내려간 피닉스 4기는 중앙 내부 무장실을 개방했다. 그리고는 이내 톱니바퀴 형식의 컨로드 2개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자 K-SDB-10(플라즈마 응집탄)는 차례대로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각기 8발, 총 32발의 K-SDB-10(플라즈마 응집탄)는 자체 GPS 유도방식에 따라 후미 날개의 미세한 움직이며 각자 설정된 폭격 지점을 향해 서서히 낙하 속도가 상승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르자 32발의 K-SDB-10(플라즈마 응집탄)는 정확히 목표로 한 지상에 착탄 했다.
쿠앙! 콰아아아앙! 콰아쾅!
마른하늘 날벼락 받듯 사전 공습경보도 받지 못한 제32혁명기갑여단의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각가지 차량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강철비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발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소나기 떨어지듯 쏟아지는 자탄에 방호력이 약한 차량은 폭발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기까지 했다.
한발 당 축구장 크기의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K-SDB-10(플라즈마 응집탄)에 제32혁명기갑여단은 순식간에 여단 전력의 50%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나머지 기갑전력도 추가로 출격한 에코 편대의 폭격을 받고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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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6일 22: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형제산구 신미동 어느 건물(전 정찰총국 은신처).
소파에 몸을 묻고 쿠바산 시가렛을 물고 있던 조명록이 한 움큼의 연기를 내뱉자 하얀 연기가 사무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준비는 다 되었갔디?”
연신 연기를 내뿜던 조명록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조원진이 비장한 어투로 대답했다.
“걱정마시라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입네다.”
“확실히 해야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네?”
“대원들 한명 한명이 이동 경로에 대해서 확실히 숙지했으며 몇 번이고 훈련을 해왔습네다.”
“그놈들 쉬운 상대가 아니야. 한때 국가안전보위부에서도 날고 긴 놈들이야. 우리 정찰총국 아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아야!”
“잘 알고 있습네다.”
“기래. 어쨌든 그날이 오긴 오는구만기래. 그리고 낮에 말이야. 자본주의에 빠져서리 허덕되는 김춘원 그 종간나새끼한테서 전화가 왔지 않았네? 고아대던지(궁금하다) 꼬치꼬치 묻는 기야? 지 목숨 하루 남은 거 알지도 모르면서 말이디. 후후후”
비열한 웃음을 보인 조명록은 시가렛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말이야. 거사도 중요하디만, 우리가 러시아로 빠져나가는 것도 중요하디 안그렀네?”
“네, 그 부분 역시 러시아 놈들과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입네다. 러시아로 가는데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네다.”
재개발 지역답게 불빛 하나 없는 바깥 풍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조명록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최후의 승자는 나란말이디.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