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1화 (351/605)

숨바꼭질

2023년 11월 12일 21:0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중이동 어느 건물(대외1공작대 은신처) 앞.

윤태진과 오혁수가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가관이었다. 대외공작대 은신처로 보이는 건물 주변에는 준표파 조폭들이 곳곳에 너부러져 있었고 건물 현관이며 유리창은 성한 대가 하나도 없었다. 일부 벽에는 탄 흔적까지 보였다.

또한, 동네 주민의 신고로 경찰은 물론 여러 대의 엠블런스까지 도착하여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조폭들을 실어 날랐다. 상민이라는 조폭 역시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신음을 내며 현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대외1공작대를 습격한 준표파 조직원은 총 54명이었다. 가벼운 부상자는 손에 꼽았고 나머지 40여 명은 총상을 입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히야~ 완전 개판인데요?”

오혁수가 혀를 내두르며 탄성을 질렀다. 이때 경찰 한 명이 윤태진과 오혁수를 막아섰다.

“저기요. 여기 접근 금지입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윤태진이 국가정보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 국정원에서는 무슨 일로······.”

“그건 기밀이고, 여기 책임자분 좀 불러주세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경찰관이 사복경찰관 한 명을 데려왔다.

“네, 용성경찰서 강만준 경정입니다. 국정원에서 나오셨다고요?”

“네, 국정원 윤태진 팀장입니다. 지금부터 외부인 출입 통제해 주세요. 잠시 후 평양지부에서 나올 겁니다. 그러니 현장 조사는 우리 쪽에서 하겠습니다.”

“저기, 이곳은 우리 관할구역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 건은 국가 기밀 사항입니다. 협조 공문서는 낼 정도에 용성경찰서로 보내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강만준 경정이 한발 물러섰다.

“그럼 들어가서 몇 가지 조사 좀 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오 대리는 3층부터 내려오면서 조사해! 샅샅이 뒤져봐!”

“네, 팀장님!”

경찰들의 통제 속에서 윤태진과 오혁수가 현장 조사를 하는 가운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검은 밴 여러 대가 도착했다. 평양지부의 국정원 요원들과 박기웅 팀장이었다.

“어 왔어?”

차 소리를 듣고 윤태진이 현관 밖으로 나와 박기웅을 맞이했다.

“상황은?”

“우리가 왔을 땐 상황 종료! 여기 조폭 놈들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윤태진이 양손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일이 꼬이는구나. 뭐 찾은 거라도 있어?”

“혁수가 지금 안에서 조사 중이야.”

“알았다. 아 여기는 평양지부 남대준 팀장이야.”

“반갑습니다. 평양지부 남대준입니다.”

박기웅 팀장의 소개에 뒤에서 기다리던 남대준 팀장이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윤태진입니다. 현장은 그대로 보존 중입니다.”

“네, 조사는 저희 요원들이 하겠습니다.”

남대준 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따르던 요원들이 각종 장비를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난리를 쳤구먼?”

건물 주변 일대를 살피는 박기웅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때 어느새 냄새를 맡고 왔는지 카메라를 기자들이 몰려왔다.

“아! 골치 아프게 되었네.”

★ ★ ★

2023년 11월 12일 23:3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형제산구 오산동 용골산.

갑작스러운 조폭들의 출현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급하게 장비를 챙기고 이곳 오산동 뒤쪽 용골산으로 도망친 대외1공작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저 간나 새끼들 뭐네?”

오지완은 이마에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강태우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슴메. 하는 짓이 경찰이나 정보요원들은 아닌 거 같슴메”

강태우 역시 조폭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외1공작대 중 3명은 조폭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구상식과 남구태 그리고 오길수 였다.

“니들은 아는거 없네?”

순간 오길수가 움찔했다. 이를 놓칠세라 오지완이 눈을 치켜뜨고는 오길수를 불렀다.

“오길수이~ 이리 오라우!”

“네, 네, 대장 동지!”

오길수가 주춤거리며 오지완 앞으로 다가왔다.

“오길수이 뭔가 알고 있구만 기래. 안 그렀네? 바른대로 말해보라우.”

“그거이······.”

“빨리 말하지 않슴메?”

성격 급한 강태우가 오길수를 다그쳤다.

“죄, 죄송합네다.”

“뭘 죄송함메? 아는 대로 당장 말함메, 단, 허튼소리 하면 저세상 갈 줄 알라메”

허리춤의 권총에 손을 갖다 대는 강태우의 모습에 오길수가 버벅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오길수가 실토하려는 그때, 구상식과 남구태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오지완 대장 동지! 죄송합네다. 다 우리 잘못입네다.”

“뭐네? 구상식이 말하라우”

구상식은 며칠 전 2명과 함께 은신처를 몰래 빠져나가 룸살롱에서 술을 먹고 사고 친 사실을 소상히 말했다.

퍼억!

순간 남상원이 달려들어 구상식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 종간나 새끼들, 그날이네?”

“죄, 죄송합네다. 그날입네다. 부조장 동지”

“내가 개소리 하지 말고 그냥 자라고 했네? 안 했네?”

이때 강태우가 권총을 꺼내 들어 남상원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남상원이 니는 알고 있었음메?”

“아닙네다. 그날 밤, 구상식이 내를 끼워서 술 한잔하러 가자고 해서 따끔히 야단치고 자라했습네다. 그거뿐입네다.”

“확실히 알아듣겠음 말했어야디 간나 새끼야. 애들 똑바로 교육 못 함메?”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듯한 강태우의 모습에 남상만은 식은땀을 흘렸다.

“죄송합네다. 그 정도면 알아들을 줄 알았슴네다.”

“닥치메! 다 죽버리갔슴메”

강태우는 노리쇠 슬라이드를 뒤로 젖히고는 검지에 힘을 줬다.

“고만 하라우! 강 동무!”

“대장 동지! 이것들은 제가 처리하갔슴메”

“그까짓 깡패 간나새끼들이 뭘 어찌 하겠네? 남조선 정보국이나 경찰만 아니면 됐어야”

“그래도 거사를 며칠 남기고 이런 사태를 만들었잖슴메? 이제는 경찰이 수사를······.”

“됐다 하지 않았네? 강 동무 말대로 거사는 성공해야지 않갔어? 여서 애들 다 죽이면 어떡할라 하네?”

“알, 알갔슴메”

“내는 지금 조원진이를 만나서 향후 거처에 대해서 알아볼 테니끼니 강 동무는 여서 애들과 기다리다가 연락하면 움직이라우”

“알갔슴메, 오 대장 동지”

오지완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수풀을 제치며 내려갔다. 그러자 참고 있던 강태우는 구상식과 남구태 그리고 오길수의 머리를 권총 손잡이로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팍악! 파악! 파악!

“운 좋은 줄 알으메”

몇 분간의 구타에 개구리 뻗듯 땅바닥에 뻗어버린 3명은 저마다 신음을 토하며 움찔거렸다. 그리고 머리에서는 연신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뭐하네? 이 간나새끼들 머리 좀 쌈매라메”

★ ★ ★

2023년 11월 13일 14:30,

남주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판문점.

남과 북, 군사경계선이었던 DMZ는 통일 후 전 구역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한때 남북 관계의 지표에 따라 한반도에서 가장 긴장감이 흐르며 가장 위험했던 판문점 또한 지난 역사의 한 산물로 주목받았고 DMZ의 생태공원 출입구로 개발되면서 하루에도 수만 명이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갔다.

판문점과 연계된 생태공원의 출입구에는 여의도 크기의 주차장만 해도 4개에 달했고 4곳 주차장 모두 자동차와 관광버스로 꽉 차 있었다. 4곳의 주차장 터미널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호버시스템 엔진이 탑재된 기다란 버스를 타고 판문점 입구까지 이동했다.

이렇게 수만에 이르는 관광객들로 인해 부쩍 거리는 가운데 2일 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신중국 관광객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관광객이었으나, 가끔 눈에 띄는 사내들이 있었다. 최대한 다른 관광객들과 어울리며 관광객 행세를 했지만,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한 사내에게는 그들 몇 명은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15명은 되는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한 사내는 주변 경치를 찍는 것처럼 하면서 주시하고 있는 신중국 관광객들을 찍어갔다. 그 사내는 대외정보국 1과장 이자성이었다.

“과장님! 그냥 관광하러 온 게 아닐까요? 뭐 특별히 수상한 것도 없고······.”

함께 온 오석진 대리 역시 주변 일대를 카메라에 담으며 말했다.

“기다려봐라! 내 촉은 정확하다.”

이자성과 오석진 역시 다른 관광객처럼 행사하며 계속해서 신중국 관광객의 뒤를 따라다녔다.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이 보유한 시스템에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일부 러시아와 미국 등의 첩보요원이나 주요인물에 대해 DB에 저장되어 있었다. 지속적인 해킹과 정보 수집을 통해 축적한 DB였다. 그리고 2일 전, 입국심사 당시 지문과 홍채 인식을 통해 주요인물 15명이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신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PLA) 출신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자성 과장은 오석진 대리와 함께 은밀히 관광객 무리에서 관광객 행세를 하는 특수부대원들을 감시하게 된 이유였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색한 연기를 이어갔다.

★ ★ ★

2023년 11월 14일 20:30,

남주 충청도 청주시 우주과학센터 파르테논 연구소.

호큘라로부터 아직 확보하지 못한 외계 과학기술 자료가 현재 가이아 시스템에 모두 정리되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남궁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이수진 박사는 호큘라 건과 관련하여 청와대에 정식으로 보고했다.

그리고 이틀 후 청와대로부터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이에 X-1 연구실의 연구원들은 외계비행선이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부품 하나하나 일일이 점검하며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연구원들은 꼼꼼히 확인했고 가상의 테스트도 진행했다. 외계비행선의 최종 이동 거리는 2억 광년이었다. 아직 인간이 사상하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그렇기에 연구원들은 꼭 호큘라가스플리스 성인들의 시신을 고향별인 소니아 행성에 무사히 도착하길 바랐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7년간 내동실에 보관되었던 스플리스 성인들의 시신을 점검한 후 자체적으로 제작한 부패방지 캡슐에 넣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외계비행선에 옮겨졌다.

남궁원 역시 바쁜 와중에도 파르테논 연구소에 남아 연구원들을 도왔다.

“우리 남궁 사장님! 서운하겠어요?”

X-1 연구실 한쪽 벽에 기대어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남궁원에게 언제 왔는지 이수진 박사가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네, 많이 서운해요. 꼭 오래된 친구가 멀리 떠나는 느낌입니다.”

“그렇겠죠. 횟수로 7년인데, 저도 서운한데 남궁 사장님은 어떻겠어요?”

“아! 이 박사님, 사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냥 원이라 불러주세요. 이제 연구원도 정보원도 아니잖아요.”

남궁원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 2023년 성공한 사업가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온 기사도 봤는데요. 그런 사업가를 원이라 부르면 되나요?”

“아! 그냥 원이라고······.”

- 이 박사님! 호큘라 및 외계비행선의 모두 점검이 완료했습니다. 현재 호큘라의 동력 및 컨디션 100%라고 합니다.

X-1연구실 스피커를 통해 담당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되었네요.”

“네, 준비하시죠.”

지상까지 연결된 돔 형식의 도어가 좌우로 열렸다. 그리고는 외계 비행선을 실은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대청호에 추락한 후 이곳 지하 연구실에 옮겨져 갇혀있다가 7년 만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외계 비행선이었다.

7년 전과 겉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내부 몇 군데만 수리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은은한 소리와 함께 외계 비행선의 출력이 상승하며 천천히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빛을 발산하더니 순식간에 상승하며 반짝이는 별빛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순간이었다.

일부 연구원만 지켜본 호큘라와의 이별은 이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연구원들이 하나둘 연구소로 다시 들어가는 가운데 남궁원은 어두운 하늘만 바라봤다. 그의 눈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려는 그때 스마트 시계에서 호큘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 남궁원, 지금 목성을 지나려고 한다. 아마도 목성을 지나면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 그래 호큘라! 정말 무사히 꼭 소니아 행성에 가길 바랄게.”

- 고맙다. 남궁원! 잘 있어라!

“흑윽! 나도 고마워!”

‘지직!’

- 그리고 네가 개발한 EVGS 엔진 시스 ‘지직!’ 템을 몇 가지 보완 했 ‘지직!’ 다. 시스템 DB서버 112 ‘지직’ 폴더에 저장해놨으니 한번 보 ‘지직!’ 길 바란 '지직’

“호큘라! 호큘라!”

호큘라의 통신은 이렇게 영원히 끊기고 말았다.

남궁원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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