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0화 (350/605)

숨바꼭질

2023년 11월 11일 23:3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대성구 비파동 비파거리(황제 룸살롱).

오 실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박기웅과 윤태진이 룸살롱을 나왔다.

“헉억, 헉억,”

오혁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현관 옆 화단에 걸쳐 앉아있었다. 옷은 찢어지고 왼쪽 이마에는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편 까까머리를 비롯해 거구의 조폭 10명이 차디찬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워! 혁수야! 미안하다. 안에서 일 좀 보느라 널 깜박했다.”

윤태진 팀장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오혁수 대리에게 다가갔다.

“아! 정말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부하를 재물 삼아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혁수 대리는 윤태진 팀장의 부축을 받으며 원망의 한풀이를 했다.

“야! 그러니까. 누가 너보고 막 나가래?

“치우라면서요?”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오혁수의 부라리는 눈빛에 윤태진이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야! 그게 치우라는 게 애들 까라는 얘기냐? 조용히 들어갈 수 있게 잠시 이목 좀 잡으라는 얘기지. 솔직하게 네가 오바하긴 했잖아!”

사실 오혁수도 두 팀장만 믿고 과하게 행동한 면도 있었다.

“저 이번 건 끝나면, 부서이동 신청할 겁니다.”

“야! 왜 그래? 미안해, 미안해, 모텔 가서 찜질 좀 하자!”

이때 앞장서 가던 박기웅이 소리쳤다.

“빨리 와! 배고프다. 밥 먹자!”

“우씨! 박 팀장님도 똑같아!”

★ ★ ★

2023년 11월 12일 13:2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중이동 어느 건물(대외1공작대 은신처).

태풍 16호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매일 회의를 걸치고 작전을 준비한 대외1공작대 대원들은 오늘은 실제 답사를 통한 점검을 하려 했다.

그동안 전 정찰총국 출신의 조원진으로부터 각가지 필요한 장비와 폭탄을 받았다. 각자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 센서와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장비, 그리고 최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소음기가 달린 베레타 권총, 마지막으로 휴대가 좋고 폭발력이 강한 사제폭탄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였다.

대외1공작대는 임무에 따라 3개조로 나뉘었다.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수행조는 강태우, 남상원, 박성식, 권혁균이었고 후방 퇴로 확보를 책임진 퇴각조는 오지완 대장과 오길수였다. 마지막으로 은신처에서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응하는 대기조는 구상식과 남구태였다.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한 대외1공작대는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수행조와 퇴각조가 나름 위장을 하고 현장 답사를 위해 은신처를 떠난 후 둘만 남게 된 구상식은 위치 센서에 의해 이동하는 동료의 움직임을 모니터링을 했고 남구태는 은신처 경계를 섰다.

조그만 화면을 지켜보며 모니터링하는 구상식은 따분했다. 실전이었다면 김장감 때문이라도 괜찮았겠지만, 훈련이다 보니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구태! 뭐하네?”

구상식은 하품을 하며 1층에서 여러 개의 감시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보는 남구태를 불렀다.

“뭐하긴, 경계 중에 있디 않네?”

“여길 누구 온다고 뭔 경계네? 나가서 소주랑 안주 좀 사우라우”

“미쳤네? 오 대장 동지 알면 어찌할라 하네?”

“둘이 한 병씩만 마시자우!

“아나! 저 간나 새끼, 틈만 나면 술타령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구태 역시 술이 당겼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며칠 전, 몰래 은신처를 빠져나가 룸살롱에서 사고를 쳤는데도 뉴스나 신문에도 나오지 않아 살짝 김장감이 풀려있었다.

“금방 갔다 올 테니끼니 기다리고 있으라우”

“알았시야. 갔다오라우”

★ ★ ★

2023년 11월 12일 19:2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중이동 골목길

검은 정장을 말끔히 입은 사내들이 골목길을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이나 가게에 들어가 사진을 보여주며 뭔가를 물어봤다.

이들은 바로 황제 룸살롱 준표파 소속의 조폭들이었다. 서울에 있는 조직원까지 동원하여 평양 일대를 샅샅이 쑤시고 다니던 이들 조폭은 어두컴컴한 골목길까지 가리지 않고 다니고 있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돌아다니던 조폭들은 두 발에 물집이 생기고 근육통에 죽을 맛이었다.

“아야! 여기부터는 성식이 네가 애들 2명 데리고 갔다와야쓰겄다. 내는 도저히 힘들어서 안됐것다.”

100kg이 넘는 거구의 사내가 슈퍼 앞 파라솔 의자에 앉고는 후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예! 형님!”

이에 후배 조폭 3명이 깍듯한 인사를 하고는 윗길 쪽으로 올라갔다.

“홍태야! 슈퍼에서 마실 것 좀 사온나!”

“네, 형님! 뭐로 사 올까요?”

“콜라로 사온나, 글고 슈퍼 주인장한테도 사진 보여주고 알겠제?”

“네, 형님!”

잠시 후 슈퍼로 들어간 홍태라는 조폭은 냉장고에서 콜라 캔을 꺼낸 후 계산을 하면서 살짝 사진을 내밀었다.

“아줌마. 얼마입니까?”

“천이백 원입네다.”

“촌 동네라 비싸네. 여기요. 아! 혹시 이런 놈들 본적이 있습니까?”

홍태가 돈을 내면서 사진도 꺼내 보였다.

“잘 모르겠습네다. 본적이 없습네다.”

“그래요? 대충 보지 말고 잘 좀 보세요.”

인상도 험상궂은 사내가 소리치며 말하자 슈퍼 아줌마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 모르겠습네다.”

“아! 겁먹을 거 없고 나는 형사인데 이놈들이 범죄자라 찾는 겁니다. 동네 안전을 위해서도 빨리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나름 전문대까지 나온 홍태는 겁먹은 주인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는 슈퍼를 나오려던 그때, 슈퍼 아줌마가 불렀다.

“아! 확실치는 않디만, 사진에서 이 사람이 가게에 몇 번 온 거 같습네다.”

“그래요? 언제 마지막으로 봤습니까?”

“어, 어제 오후입네다. 어제 소주랑 안주를 사갔습네다.

“어제 오후요? 확실한가요?”

“네, 기억합네다.”

“이놈들 어디에 사는지 아십니까?”

“항상 윗길에서 내려온 거 외에는 모릅네다.”

“아줌마! 복 받으실 겁니다.”

대화를 마친 홍태는 슈퍼에서 나와 양발을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깔딱 되는 형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형님! 이 쉐끼들 찾은 거 같습니다.”

“몬데?”

“사진! 사진 그놈들 말입니다.”

“저, 정말이야?”

깜짝 놀란 조폭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형님! 슈퍼 아줌마 말로는 사진 중에 이놈이 어제 오후에도 슈퍼에 들려 소주랑 안주를 사 갔다고 합니다.”

홍태는 사진에 나온 여러 명 중 한 명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이 문딩이 자식들이 이 동네에 산다는 거네?”

“맞습니다. 형님! 항상 윗길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홍태가 말한 윗길은 성식이란 조폭이 부하 2명을 데리고 올라간 골목길이었다.

“이 문딩이 자식들! 홍태야! 내는 행님한테 연락할 테니까 니는 퍼뜩 올라가서 성식이한테 주변 샅샅이 뒤지라 카라”

“네, 형님!”

홍태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윗길 골목길로 달려갔다.

“여보세요.”

- 그래, 상민이야?

“네, 행님! 상민입니더. 그 문딩이 자식들 찾은 거 같습니더”

- 어, 어디야?

“여기가 용성구 중이동입니더,”

- 알았다. 애들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확실하게 잡아.

“알겠십더”

오 실장과 통화를 마친 상민은 시원하게 콜라 캔을 따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이때 고약한 인상을 주는 여러 사내가 슈퍼를 지나치려 했다. 현장 답사를 위해 외출했던 오지완 일행이었다.

슈퍼를 지나 윗길로 올라가는 그때 오지완과 눈이 마주친 상만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인상을 구겼다. 눈이 마주쳤을 때 상대를 제압하고 싶은 양아치 조폭들의 심리였다. 하지만 오지완은 무시하듯 시선을 돌리고는 윗길을 향해 걸어갔다.

‘히야! 저 새끼 뭐꼬? 내보다 인상이 더 드럽노?’

상민은 멀어지는 오지완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콜라 캔을 쥐어 찌그러트렸다.

★ ★ ★

2023년 11월 12일 20:3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대성구 비파동 비파거리(황제 룸살롱).

대외공작대를 추적하기 위해 전날 평양으로 먼저 왔던 박기웅 일행은 근처 모텔에서 숙박했다. 그리고 아침, 전날 이혜진 과장으로부터 기밀 정보를 전달받은 박기웅 일행은 대외공작대를 찾는 건 일단 조폭들을 활용하기로 하고 우병후의 평양 행적을 조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성과는 꽝이었다. 주도면밀한 우병후의 행적을 뒤쫓아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항상 마지막 행적이 묘연했다.

이렇게 하루를 허탕 친, 박기웅 일행은 비파동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황제 룸살롱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어제 한바탕하면서 안면을 익히 조폭들이 박기웅 일행을 보자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오혁수 대리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로 말했다.

“야! 우리가 조폭이냐? 인사하지 마라!”

“네, 형님!”

“그런데 오늘은 몇 명 없다?”

어제만 해도 현관에 10명이 있던 조폭들이 지금은 3명뿐이었다.

“그, 그게 다들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됐다. 됐어. 관심 없다.”

룸살롱 안으로 들어온 박기웅 일행을 본 웨이터가 다가와 깍듯이 인사를 하자 윤태진이 물었다.

“야! 니네 실장 어딨어?”

“네, 지금 사무실에 계십니다.”

“안내해라.”

“네, 손님!”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오 실장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서는 온갖 인상을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화 중이라 박기웅 일행이 들어온 것도 몰랐다.

“오 실장! 오늘 성과는 없어?”

윤태진 팀장이 슬쩍 오 실장 옆으로 다가가 말하자 깜짝 놀란 오 실장이 수화기를 놓쳤다.

“어억! 깜짝이야.”

“뭘 이리 놀래?”

“그, 그게······.”

얼버무리는 오 실장의 표정에서 뭔가를 느낀 박기웅 팀장이 오 실장의 멱살을 잡아 돌리고는 말했다.

“뭐야? 뭔가 찾았지?”

“찾은 거야? 이 새끼 그럼 왜 우리한테 연락을 안 했어?”

윤태진이 욕설을 뱉으며 오 실장의 뒤통수를 날렸다.

빠악!

“으윽!”

“말해 마! 뭐야? 찾은 거야?”

오 실장은 슬금슬금 뒤로 빠지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게, 1시간 전에, 애들로부터 동네 위치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애들을 깡그리 풀었는데······.”

“풀었는데 뭐 마?”

“방금, 그놈들 은신처를 찾았다고 합니다.”

“정말이야? 어디야?”

“그런데, 지금 그곳이 난리가 났다는 연락이······.”

오 실장은 떨어뜨린 수화기를 가리켰다. 이에 박기웅이 수화기를 들고는 소리쳤다.

“거기 어떻게 됐어?”

- 이 문딩이 자식들이 총, 총을 가지고 있습니더, 지금 애들 죄다 죽어 나가고 있습니더. 행님! 신고 해야겠슴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 주인공은 상민이라는 조폭이었다.

“이런 시팔! 신고는 무슨 신고야 새꺄”

박기웅이 수화기를 집어 던지며 오 실장에게 소리쳤다.

“야이~ 새끼야. 어제 분명히 말했지? 찾아내면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즉시 연락하라고”

박기웅은 생각 같아서는 밟아 짓이기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하지만 성격 급한 윤태진은 달랐다. 그대로 몸을 날려 소파를 넘은 후 오 실장의 복부를 걷어찼다.

“으억! 죄, 죄송합니다. 그놈들한테 전임 실장을 반식물인간으로 만들어놔서 간단하게 손만 본 다음에 연락하려 했습니다.”

오 실장은 배를 움켜쥔 채 무릎을 꿇고는 빌다시피 했다.

“아씨! 거기가 어디야?”

“용성구 중이동 335번지라 합니다.”

“태진아 너는 혁수랑 먼저 그곳으로 가라! 난, 평양지부에 지원 요청한 후 함께 갈게”

“알았다. 먼저 가마, 혁수야 가자!”

“네, 팀장님!”

윤태진과 오혁수가 신속한 동작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박기웅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제길! 조폭 새끼를 믿는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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