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9화 (349/605)

숨바꼭질

2023년 11월 11일 22: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 3과 사무실)

긴급 간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김혜진 과장은 하상만 대리로부터 얘기를 전해 들었다.

“정말이야?”

“지금쯤 평양에 도착해 룸살롱으로 향했을 겁니다.”

“잘됐군”

“그런데 갑자기 간부 회의는 왜 한 겁니까?”

“설명해줄게. 다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3과 회의실에 3과 본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 간부회의 소집 이유는 연수국 강혁 국장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받았기 때문이야.”

“연수국으로부터요?”

“자료 나눠줄게.”

“사실, 국정원에는 ACS실이라고 차관급 이상만 아는 감시부서가 있어!

“ACS? 그런 부서가 있었나요?”

“그래, 평시에는 없는 부서야. 비상사태 시에만 가동되는 부서로 저번 김정은이 깨어났을 때 가동되었어!”

“워! 과장님도 알고 계셨나요?”

“아니! 나도 오늘 간부 회의에서 처음 들었어.”

“와 같은 식구도 모르는 부서가 있었네······.”

허상만 대리는 믿을 사람 없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대통령님 암살 계획도 ACS실에서 알아낸 거야.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자료들 봐봐!”

이혜진 과장이 나눠 준 자료에는 연방광역수사국의 우병후 특별수사관의 프로필은 물론 근래 왕래한 모든 정보가 담겨있었다.

“우병후? 이 사람, 검사직에 있다가 불륜설에 휘말렸던······.”

“그래, 맞아, 그 우병후야.”

“그런데, 이 사람은 왜요?”

“ACS실에서 24시간 감시하는 대상자 중 연수국 김형철 부국장도 포함되어 있는데, 김형철과 우병후가 연관된 듯해, 그리고 24시간 감시하는 대상자 중, 아직 위치파악이 안 된 인물이 있는데, 예전 정찰총국장에 있었던 조명록이야. 그런데 우병후가 평양에서 조명록과 만났었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다면 우병후도 이번 대통령 암살과 관련될 수도 있단 말인가요?”

“그럴 확률이 커! ACS실의 존재와 지금 말하는 모든 내용이 S급 기밀인데,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원장님께서 모든 요원에게 공유하라고 하셨어.”

이혜진 과장의 설명은 20분에 걸쳐 이어졌다. 현재 ACS실에서 24시간 감시하는 대상자 명단과 현재 진행 상황, 그리고 지금까지 엉키고 설킨 관련자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었다.

“결론은 조명록이가 이번 대통령 암살 계획의 키맨일 수도 있겠군요.”

설명을 들은 하상만 대리가 핵심을 말했다.

“그런 거지.”

이때 팀 막내인 김윤규 주임이 번뜩 생각이 들었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헉!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쫓은 대외공작대도 조명록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 그게 핵심 중의 핵심이야. 다행히 박기웅 팀장이 평양으로 갔다고 하니, 잘하면 우리 공조팀에서 먼저 대외공작대를 잡아 이번 대통령 암살의 모든 계획과 배후 세력에 대한 증거를 알아낼 수도 있을지도 몰라!”

이혜진 과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번 사건은 무조건 공조팀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과장님! 3과 다른 팀도 투입해야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1팀과 2팀도 투입할 거야. 일단 박 팀장과 통화 좀 해봐야겠다. 하 대리는 1팀과 2팀 팀장에게 말해놔!”

“네, 알겠습니다.”

“자! 회의는 일단 마치고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하던 일 계속하자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혜진 과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박기웅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2023년 11월 11일 22:3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대성구 비파동 비파거리(황제 룸살롱).

며칠 전, 손님으로 가장한 동네 양아치보다 못한 놈들에게 중간 보스 한 명이 두개골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고 반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사건이 터지자 황제 룸살롱을 운영하는 준표파의 보스 홍준표는 모든 조직원을 총동원해 평양 시내 전체를 이 잡듯 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양아치들을 잡을 순 없었다. 대신 혹 다시 올 경우를 대비해 황제 룸살롱을 비롯해 운영하는 모든 업소에 조직원들을 대거 투입한 상태였다.

이렇게 조직원 하나하나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오혁수가 느닷없이 깽판을 치자 현관에서 옹기옹기 모여있던 조폭들이 온갖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이중 막내로 보이는 까까머리가 한눈을 치켜뜨며 오혁수에게 다가갔다.

잘해야 고등학생 티를 벗었을 만한 까까머리 조폭은 어느새 허리춤에서 짧은 회칼을 꺼내 들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너 이 쉐끼! 뒈지고 싶노? 앙?

이런 행동에 어이 상실한 오혁수는 고개를 들고는 한숨을 쉬었다.

“유우~”

“어라? 한숨을 쉬어? 이 쉐끼가 정말 뒈지고 싶나!”

까까머리 조폭은 당장이라도 회칼을 휘두를 것처럼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야! 까까머리! 어린놈어 새끼가 싸가지 없게 말하는 본새 봐? 그 칼 안 내려놔?”

까까머리와 대치하는 가운데 나머지 9명의 조폭이 오혁수를 포위했다. 혼자서 각가지 연장을 든 조폭 10명을 상대하는 건 힘들지만 뒤에 팀장 2명이 있기에 오혁수는 일부러 여유 있는 척하며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훗! 자식들, 연장 들고 떼거리로 덤비면 뭐 이길 거 같냐?”

이때 뒤에서 다가오던 박기웅과 윤태진은 오혁수를 지나치고 급기야 조폭들까지 지나친 후 현관에서 기웃거리는 웨이터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말했다.

“야! 오늘 물 좋냐? 확실하게 서비스해라”

“네, 형님! 천국으로 보시겠습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황제 룸살롱으로 들어가는 박기웅과 윤태진, 그런 장면을 바라본 오혁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이 쉐리야! 니 뭐꼬? 뒈지고 싶지 않으면 무릎 꾸러랑잉!”

‘아! 시발! 정말 저 두 팀장 죽이고 싶다.’

오혁수는 말 그대로 조폭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재물이었다.

“에잇! 이번 건 처리하면 사표 내고 만다.”

“뭐라고 씨부리노? 이 쉐끼는?”

“네놈들한테 한 말이 아니다. 새끼들아!”

외침과 동시에 오혁수는 회칼을 쥔 까까머리 오른손을 돌려차기로 차고는 연속 동작으로 뒤차기로 복부를 찼다.

퍼억~ 윽!

숨이 멈추는 통증에 까까머리는 그대로 벌러덩 쓰러졌고 나머지 조폭들이 오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다 덤벼라! 네들이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이렇게 오혁수가 조폭들을 상대하는 동안 룸살롱으로 들어온 박기웅과 윤태진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나름 고급스러운 룸에 들어왔다.

“형님들 오늘 처음이시죠? 제 명함입니다.”

웨이터는 공손히 인사를 건네며 자기 명함을 건넸다.

“박찬호? 애는 시대가 언제인지 아직도 이런 닉네임을 쓰냐?”

“하하, 제가 좀 야구를 좋아해서 말입니다. 형님들 뭣이든 필요한 거 말씀만 해주시면 남자 빼고 다 구해드립니다.”

“지랄! 야! 박찬호!”

“네, 형님, 일단 여자들 불러올까요?”

“여자는 됐고, 여기 사장이나 아니면 뭐 실장 같은 애 데리고 와봐!”

“네? 왜, 그런 분들을?”

“찬호야! 뭐가 그리 말이 많니? 필요하니까 찾는 거 아니야? 빨리 안 불러?”

윤태진이 인상을 쓰며 말하자 웨이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내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았습니까?”

조폭치고는 깔끔한 용모의 사내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인사를 했다.

“네가 여기 관리하는 실장이야?”

“오 실장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오 실장은 앉아있는 사내들이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최대한 성질을 죽이고 대했다. 만약 일반인이 이렇게 나왔다면 벌써 반 시체가 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며칠 전에 이런 애들 왔었지?

박기웅이 출력한 사진을 보여줬다.

“모르겠는데요.”

“몰라? 그럼 이건!”

박기웅은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그건 황제 룸살롱 CCTV에 찍힌 대외공작대 사진이었다.

“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 봐라! 야! 이거 너네 가게 CCTV에 찍힌 사진이야!”

다혈질인 윤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아! 우리 가게에는 CCTV 같은 거 없습니다.”

“하! 그래, 쉽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런데 우리 손님들 초면에 너무 까칠하시네요?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오 실장도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궁금해하지 말고. 애들에 대해서 숨기지 말고 아는 대로 다 말해봐!”

“아! 우리 손님들 사람 인성 테스트하시나······. 애들아!”

오 실장이 부르자 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폭들이 각가지 연장을 들고 룸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에 윤태진이 박기웅에게 속삭였다.

“야! 신분증 보여주고 조용히 해결할까? 아니면 깡그리 까버리고 해결할까?”

“조용히 해결하면 좋긴 한데, 우리 신분을 알려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한판 뜨자!”

★ ★ ★

2023년 11월 11일 23:0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대성구 비파동 비파거리(황제 룸살롱).

한바탕 난리를 친 박기웅과 윤태진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조폭 중에 오 실장이라는 놈의 멱살을 잡고는 소파에 억지로 앉혔다.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든 오 실장은 반쯤 풀린 눈으로 박기웅과 윤태진을 바라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체! 어디서 왔습니까? 경찰입니까? 아님, 인천 흑성파 입니까?”

“우리가 누구인지는 궁금해하지 말라니까? 확!”

윤태진이 손을 들어 재차 때리려는 자세를 취하자 오 실장이 움찔했다.

“자! 아까 질문 다시 할게. 이놈들에 대해서 아는 대로 다 말해!”

박기웅은 아까 내밀던 사진을 다시 보여줬다.

“사, 사실, 이 양아치 새끼들 며칠 전, 전임 실장을 작살 내고 도망쳐서 우리도 매일 찾고 있습니다.”

그제야 바른말을 하는 오 실장이었다.

“그래? 모든 구역 다 찾아봤어?”

“아, 아닙니다. 아직 3개 구가 남았습니다.”

“그래? 어디 어디야?”

윤태진이 스마트폰으로 평양 지도를 보였다.

“여기하고 여기, 그리고 여기입니다.”

“너희 조직원 몇 명 정도가 찾고 있냐?”

“서울 애들까지 불러서 200여 명정도 됩니다.”

“200여 명? 헐!”

윤태진이 놀란 표정으로 박기웅을 쳐다봤다. 이에 박기웅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오 실장 얼굴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좋아! 나머지 구역도 애들 모두 동원해서 찾아! 대신 찾으면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우리한테 연락해! 알았지?”

“아, 아니, 찾기만 하고 아무 짓도 하지 말라니요? 우리 큰형님이 그놈들 찾으면 개밥으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 자식 아직도 말귀 못 알아먹네?”

이때 박기웅의 스마트폰이 울리고 화면에서 이혜진 과장의 이름이 표기되었다.

“태진아! 이 과장님이다. 나 전화 받는 동안 네가 저놈 알아먹게 말 좀 해놔”

“오케이!”

“여보세요. 박 팀장입니다.”

- 네, 이 과장이에요.

“하 대리한테 얘기는 들으셨죠?”

- 네. 들었어요. 아! 그보다 거기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아! 네, 룸살롱에 왔는데 그놈들인 게 확실한 듯합니다.

- 정말요? 잘되었군요. 인원 지원해야겠군요.”

“당장 인원 지원은 없어도 될 거 같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숙소에 가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래요. 이따 다시 전화해요. 저도 중요한 얘기를 해줄 게 있으니까요.

전화를 마친 박기웅이 오 실장 쪽을 바라보자 오 실장이 윤태진을 보며 손이 닳도록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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