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2023년 11월 6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
헉헉
“졸라 힘드네. 씨발!”
오디토리움 중앙 무대의 대형 스크린 화면에는 개인 장구류를 주렁주렁 매달고 거친 숨을 내쉬며 달려가는 군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뭔가에 쫓기듯 뛰어가는 군인이 뒤를 돌아보자 돔 형식의 파란 레이저 덮개가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이거 너무 사실 같잖아!”
군인은 온갖 인상을 쓰며 안전지대를 향해 뛰어갔다. 그런 군인을 노리는 총구가 있었다.
탕! 타타타앙앙!
묵직한 총성과 함께 공기를 찢을듯한 파공음이 군인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파편이 튀었다.
“뭐, 뭐야! 어디지?”
하지만 군인은 베테랑답게 순간 동작으로 몇 바퀴를 구른 후 근처 나무 뒤로 숨었다.
“오! W 110이라 이거지?”
몸을 숨긴 후 자신을 향해 사격한 적군의 방향과 위치를 동물적 감각으로 간파한 군인은 저격용 총으로 바꾼 후 길게 심호흡을 했다.
‘저놈만 잡으면 승리다. 쓰리, 투, 원’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군인은 신속한 사격 자세를 취하고는 500m 넘어 작은 창문에 보이는 머리를 스코프 조준점에 정확히 고정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간결하고 시원한 총성이 울리자 창문 넘어 머리만 약간 내밀고 있던 적군은 헤드 샷을 당하고 쓰러졌다.
“Game Over! You Win!.”
와!
순간 오디토리움에 앉아있던 수많은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냈다. 전 세계 최초로 EVGS(EEG Virtual Game System) 즉 뇌파가상게임시스템 엔진을 탑재한 게임의 쇼케이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잠시 후 사회자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여러분, 지금 보신 화면은 게임 안에서 플레이한 게이머의 1인칭 시점으로 비친 영상입니다. 자! 그럼, 오늘 시범을 위해 특별히 플레이해주신 프로게이머 김태식 선수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사회자의 말에 무대 옆 기다란 캡슐에서 누워있던 한 젊은이가 일어나 헤드셋 모양의 장비를 벗고는 사회자 옆으로 걸어왔다.
“자! 김태식 선수! 최초로 EVGS 기반의 게임을 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사회자의 질문에 김태식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어, 정말, 정말로 현실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직접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느낌이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사실 좀 무섭기도 했고 떨기도 했습니다.”
“와! 짝짝짝”
다시 한번 관중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섭고 떨 정도로 게임이 그렇게 현실적이었습니까?”
“네, 게임인 걸 알면서도 밀려오는 긴장감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총 맞으면 아플까 봐 걱정이기도 했습니다. 하하”
“음, 그렇군요. 우리 김태식 선수가 총을 맞았더라면 얼마나 아팠을지 알려줄 텐데 말이죠. 아쉽군요. 아, 죄송합니다. 하하. 농담이에요.”
“게임에서 총 맞았다고 아프면 이 게임 안 할 겁니다.”
“설마 실제로 아프겠어요? 하하하! 자! 김태식 선수 수고하셨고요. 그럼, 총 맞으며 아픈지 안 아픈지 물어볼 겸 오늘의 주인공을 지금 만나 볼까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관중석 쪽으로 돌리자 관중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리고 경쾌한 배경음악이 울리며 무대가 갈라지자 오늘의 주인공인 남궁원이 하얀 티에 청바지를 입고 천천히 올라왔다.
“여러분! EVGS의 개발자이자, 한울 소프트의 대표이사인 남궁원 대표를 소개합니다.”
다시 한번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질렀다.
“와!”
이러한 관중의 반응에 남궁원은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EVGS 엔진의 쇼케이스에 이렇게 참석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설명하기에 앞서 게임상에서 총을 맞으면 따끔할 정도입니다. 하하하,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남궁원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위트를 구사하며 EVGS 기반 엔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2년에 걸쳐 개발한 EVGS 엔진의 쇼케이스는 1,056석이 콱 찬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치렀다. 또한, 세계 발굴의 여러 게임사 관계자는 물론 언론매체에서도 차세대 신개념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EVGS 엔진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2시간에 걸친 쇼케이스가 끝난 후 각국의 기자들은 남궁원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이러한 인터뷰 내용과 쇼케이스는 전 세계로 방송되었다. 이에 남궁원이 만든 한울 소프트의 주가는 매일 상한가를 쳤고 국내 게임사를 비롯해 세계 굴지의 블리자드와 유비소프트 등 유명 게임사로부터 자신의 게임에 EVGS 엔진을 탑재하겠다는 계약이 폭주했다. 말 그대로 남궁원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는 물론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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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08일 14: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대통령님! 당분간은 외부 행사는 모두 취소를 했으면 합니다.”
비서실장이 깊은 고뇌에 찬 눈빛을 보이며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옆에 앉아있는 이영진 국정원장도 같은 눈빛이었다.
“음, 현재까지 암살과 관련해서 진전된 사항은 없는 겁니까?”
대통령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영진 국정원장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현재, 주요 인물에 대해서 추적 중입니다. 조만간 결과물을 가져오겠으니 그때까지만 비서실장 말대로 모든 외부 행사를 취소해 주셨으면 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다른 모든 행사는 취소할게요. 하지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은 꼭 참석해야겠습니다.”
“대통령님!”
비서실장이 힘주어 불렀다.
“임 실장! 임 실장 마음은 잘 알겠는데요. 순국선열의 날은 꼭 참석하고픈 게 제 마음입니다. 경호실장과 잘 협의해서 나의 안전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아!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알아요. 알아! 하지만 마음 굳혔으니까 더는 얘기를 꺼내지 마세요.”
비서실장의 말에도 요지부동((搖之不動)하자 강현수 안보실장까지 끼어들었다.
“현, 정세가 불안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이란, 이라크와 전쟁 중이고 암살 배후로 김정은과 김형원이 지목된 상황에서 대통령님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대한민국에 큰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허 참, 강 실장까지······. 이번 순국선열의 날은 저에겐 매우 특별합니다. 그러니 더는 말하지 마세요.”
추은희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에 두 실장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고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이영진 국정원장 역시 암살과 관련해 뚜렷한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는 마음에 청와대를 나서는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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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1일 10:00,
남주 충청도 청주시 대한우주과학센터 파르테논 연구소.
청주 공군기지 제17전투비행단이 서만주 안시 공군기지로 이전하면서 중앙정부는 21세기 우주 시대를 선도하고자 기존 기지와 주변 용지를 추가로 매입해 여의도 2배에 달하는 부지에 대한우주과학센터(KASC : Korea Aerospace Science Center)를 설립했다.
총 4개의 미래형 돔 형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각각의 건물마다 사용 용도가 달랐다.
첫 번째 돔은 우주 과학 인재를 육성하는 우주과학원과 재학생들의 기숙사로 이뤄줬다. 우주과학원은 기존 영재들의 집합소라 불리는 대전의 카이스트(KAIST)와 차이점으로 우주 과학 분야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특화된 교육기관이었다.
2023년부터 첫 신입생을 받게 된 우주과학원은 첫 입시에서 정원 700명에 24,500명이 지원하면서 35: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제치고 당당히 대한민국 경쟁률 1위의 교육기관이 되었다. 이처럼 높은 경쟁률을 보인 이유에는 우주과학원 재학생은 졸업 때까지 학비와 기숙사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모두 국가에서 지원했고 졸업 후 성적에 따라 매년 200명은 대한우주과학센터에서 근무할 수 있는 특권도 주어졌다. 말 그대로 입학만 하게 되면 인생의 꽃길을 걷는다고 볼 수 있었기에 전국 각지에서 내놓으라 하는 수많은 영재가 몰려들었다.
두 번째 돔은 지구 밖 10,000km 고도까지 우주여행이 가능한 우주공항이 들어섰다. 현재 정원 100명을 태울 수 있는 스페이스 X-1 우주왕복선 6대가 시범적으로 운용되고 있었고 2024년 후반부터 일반인에게 정식으로 우주여행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로 본격적인 우주여행 시대를 준비했다.
세 번째 돔은 대한우주과학센터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우주과학연구단지였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유수의 과학자와 우주과학원 교수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는 곳으로 최첨단 연구 장비와 연 10조 원에 달하는 연구비가 지원됐다.
네 번째 돔은 과학자들과 교수들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주거 생활 공간이 들어섰다. 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생활할 수 있으며 온갖 생활 편의 시설을 갖췄다. 또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 가능한 여러 개의 교육시설도 갖췄다.
마지막으로 외계 과학기술을 연구하던 지하연구소는 4개의 돔을 건설하던 당시에 지하 10층까지 확장 공사를 하였고 이름 또한, 파르테논 연구소로 변경했다.
사실, 대한우주과학센터 건립은 향후 우주 시대를 주도할 전문 연구기관의 필요성이 주목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파르테논 연구소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처음 대한우주과학센터 도입 사업을 발표할 당시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최고의 보안을 요구하는 지하연구소가 민간시설은 물론 관광객들과 너무나 밀접해진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반대편 입장은 달랐다.
먼저 지상에 위와 같은 대한우주과학센터가 만들어짐으로써 지하의 파르테논 연구소의 정체를 숨길 수 있으며, 현재의 보안시스템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미국의 51구역을 예로 들며, 비밀 위주로 나갈수록 세계 이목은 더욱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로 관심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2년 전 이러한 설전이 오간 후 결과적으로 청주 공군기지에 설립된 대한우주과학센터는 국내는 물론 세계 모든 언론에서 특집으로 다루며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고 처음 염려와는 반대로 지하의 파르테논 연구소에 대해서는 일절 의문이나 의욕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외형적으로 대한우주과학센터가 운영되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원천인 파르테논 연구소는 세간의 관심을 숨기고 비밀스럽게 계속해서 운영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정말 오랜만이군요.”
파르테논 연구소의 소장인 이수진 박사가 양팔을 벌려 한 사내를 진심으로 반겼다. 그 사내는 며칠 전, EVGS 쇼케이스로 일약 유명인이 된 남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박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남궁원 역시 이수진 박사와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는 접견용 소파에 앉았다.
“몸이 두 개라도 바쁠 텐데 이렇게 급히 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이수진 박사는 비서가 가져온 커피를 권하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하하, 박사님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야지요.”
쇼케이스 이후, 세계 여러 게임사와 투자사로부터 걸려오는 미팅 요청과 계약 문의 등이 폭주하자 남궁원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그러던 중 금일 새벽 이수진 박사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고 이곳 파르테논 연구소에 오게 됐다.
“그래요. 며칠 전에 TV를 통해 남 수석 쇼케이스를 봤어요. 정말 멋지더라고요. 예전에 저한테 개념도만 보여줬을 때는 설마 개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걸 실현하다니 대단해요.”
“하하, 다 박사님이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하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무슨 도움이 되었다고 그나저나 새벽에 전화상으로 간략하게 말했지만, 지금 호큘라의 시스템이 100%까지 안정화가 되어 외계인을 싣고 고향으로 가겠다는 신호를 보냈어요. 우리는 3년 정도는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호큘라는 단호하더군요. 그래서 가장 친한 남궁 수석을 부른 거예요.”
이수진 박사는 상황이 급했는지 인사말을 건네고는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하하, 그랬군요. 사실 저한테도 호큘라가 이와 같은 말을 전해왔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네, 박사님”
남궁원의 손목에 찬 스마트 시계를 보여줬다. 남궁원은 스마트 시계를 통해 호큘라와 연락을 해왔었다.
“음, 일단, 남 수석이 호큘라와 얘기 좀 해서 적어도 2년 정도만 더 있어 달라는 부탁 좀 해주세요.”
“아! 어려운 부탁이군요. 제가 처음 호큘라와 극초음파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을 당시 호큘라가 우리에게 과학기술을 이전해주는 조건은 현재 고장 난 시스템이 100% 복구되어 로즈페리호 승조원 시신을 그들의 고향인 스플리스 행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였어요. 현재 시스템이 100% 복구가 되었다면······.”
“네, 잘 알지요. 하지만 지금도 호큘라의 도움이 절실할 때에요. 호큘라로부터 외계 과학기술을 100%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거든요. 그러니······.”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말은 해볼게요.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남궁원은 난처함 때문인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