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2023년 11월 04일 09:30,
남주 서울특별시 중구 연방광역수사국(국장실).
똑똑
“들어와”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그래, 앉아보게”
출근 후 책상 위에 쌓인 문서를 확인하던 강혁 국장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찾으셨습니까?”
강혁 국장과 대학교 동문이자 2년 후배였던 홍기수 차장은 과거 민주화 운동도 함께 한 피를 나눈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무슨 일이 있어야 부르는 사인가 이 사람아”
“하하, 전 또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말입니다.”
“차나 한잔하세나”
“네, 그러시죠.”
잠시 후 비서가 들어와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고 나갔다.
“커피 드시지요.”
홍기수 차장이 권하며 자신의 커피잔을 들려는 그때, 강혁 국장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우병후에 대해서 잘 아나?”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하려던 홍기수 차장은 동작을 멈추고는 되물었다.
“우병후라면 저번 달에 감찰부 특수관으로 온 우병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친구에 대해서 잘 아는가?”
홍기수 차장은 커피잔을 든 자세 그대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친구 최연소로 사시 합격한 거로 쾌 유명했지요. 그리고 검사 된 후에도 잘나갔습니다. 뭐 불륜설 터져서 사퇴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후 변호사 생활 좀 하다가 우리 기관이 신설되면서 스카우트 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번 달에 인사발령에서 감찰부 특수관으로 온 것이고요. 국장님 인사발령 때 서류 안 보셨습니까?”
“보긴 했는데, 내가 궁금한 건 그런 프로필이 아니고, 아! 들고 있는 커피는 마시고 말하게.”
그제야 홍기수 차장은 들고 있는 커피를 마시고는 탁자에 내려놓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친구가 머리는 매우 똑똑한데 돈과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래? 그럼 정치성향은 어떤가? 혹시 좌파 쪽은 아닌가?”
“좌파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는······.”
“아! 별거 아니야. 어제 김 부국장실에서 봐서 말이야.”
홍기수 차장은 검사 출신답게 뭔가가 있다는 직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말했다.
“에이! 형님! 동생한테 뭘 숨기려고 하십니까? 말씀해 보세요.”
홍기수 차장이 사석에서나 쓰던 호칭으로 강혁 국장을 불렀다. 그것은 숨김없이 동생에게 말해달라는 의미였다.
“허허, 이 친구! 뭔 비밀이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제가 형님을 안 지 33년이 다 돼갑니다. 말씀해 주시죠.”
“허 참,”
강혁 국장은 못 들은 척하며 커피만 자꾸 마셨다.
“형님, 섭섭합니다. 형님 때문에 대형 로펌에서 오라는 거 뿌리치고 이곳으로 왔는데 말입니다.”
홍기수 차장은 곁눈질로 강혁 국장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표정에는 고심하는 게 연역했다.
“뭐, 커피도 다 마셨겠다. 그만 가보렵니다.”
홍기수 차장은 들이키듯 마저 남은 커피를 마셔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 성격 급하기는 앉아봐봐!”
이에 홍기수 차장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뭐 또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건, S급 보안이네.”
“S급이나요?”
“그래! 사실 김정은이 깨어난 후 국정원 한 부서에서 김형철 부국장에 대한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네.”
“네, 국정원이 왜 같은 사정 기관을······. 김형철 부국장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강혁 국장은 소파에 몸을 묻고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10여 분간 김정은과 관련된 추은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계획 등 S급에 해당하는 기밀 사항을 들은 홍기수 차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국정원이 같은 사정 기관의 김형철 부국장을 감시한다고요?”
“그렇다네. 국정원 ACS에서 극비로 김 국장을 감시 중이야.”
“아니 그럼, 우리 측에 요청하여 자체적으로 감시를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같은 사정 기관끼리 이럴 수 있습니까? 국장님은 그걸 수락하셨습니까?”
상황이 어쨌든 홍기수 차장은 같은 기관끼리 사정한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어쩔 수 없었네. 문제는 우리 조직 내 김형철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감시하네! 뭐하네 했다가 김형철이 눈치챌 수 있다는 거지. 이해가 가나?”
홍기수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 들은 얘기는 S급 기밀이니 자네만 알고 있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생각에는 우병후가 김형철과 뭔가 연결이 되었다는 건가요?”
“뭐, 증거가 있는 건 아니야. 어제 김 부국장실에 갔다가 거기서 본 거니까 말이야.”
“음,”
“자네는 말이야. 현재 감찰부에서 개인 비리 수사관에 대한 감찰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 좀 해주게.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건 감찰부장을 부르면 돼······.”
“누구도 믿어선 안 되네. 자네니까 믿고 말해준 거야.”
“네, 알겠습니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05일 14: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 3과 회의실)
공식적인 대외정보국의 요청에 따라 대테러수사국에서는 신중국에서 서만주로 잠입한 예전 대외공작대 인물들의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두 부서의 국장은 수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두 부서가 함께 공조 수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테러수사국에서는 수사3과 이혜진 과장을 비롯한 팀원 4명이었고 대외정보국에서는 3년 전 후난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던 정보 1과 박기웅 1팀장, 윤태진 2팀장, 2팀원 오혁수 대리였다. 박기웅은 물론 윤태진과 오혁수 역시 2년 전, 동료를 죽인 그들에 대한 복수심이 남아 있었기에 자진하여 지원했다.
이런 이유를 알고 있는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은 처음 이들 3명에 대해 대테러수사국과의 공조 수사에서 제외하려 했다. 혹, 개인적 복수심에 임무를 그르쳐 괜히 타부서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요원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계속된 박기웅 팀장의 요청은 물론 주변 동료들까지 적임자라며 부탁을 해오자 어절 수없이 승인했다.
“현재까지 대외공작대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바로는 10월 17일 새벽 시간에 위장된 신분증으로 국경선을 넘어 서만주 금주(진저우)에서 11일을 보낸 후 10월 28일 안시(안산)를 걸쳐 신의주로 이동한 것을 파악했습니다.”
대테러수사 3과 하상만 대리가 그동안의 추적 상황을 설명하는 가운데 회의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대외공작대의 이동 경로가 시간과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의주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마도 신의주를 빠져나간 듯합니다. 현재까지 파악한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들이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하상만 대리의 설명이 끝나자 이혜진 과장이 모여있는 요원들을 보며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박기웅 팀장이 대답했다.
“먼저 그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온 목적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네, 맞아요. 그게 핵심입니다. 국가반역죄로 1급 수배령이 떨어진 그들이 왜 목숨을 걸고 제 발로 대한민국에 들어왔을까요?”
통일 전,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국가안전보위부 김원흥 부장의 지시를 받고 중국 내에서 활동한 모든 대외공작대에 통일 후 대한민국은 자진 자수할 수 있도록 언론매체를 통해 권고했다. 하지만, 후난에서 대외정보국과 총격전을 벌였던 대외1공작대는 끝내 잠적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국가정보원에서는 체포 시 현장 사살도 가능한 1급 수배령을 내린 상태였다.
“결코, 좋은 일로 입국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날밤을 새우며 고생하지는 않겠지요.”
이혜진 과장은 피곤했는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집에도 못 가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한 지 3일째였다.
“혹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윤태진 팀장이 입을 열자 모든 시선이 그를 향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 대통령님 암살과 관계되지 않았을까요?”
순간, 회의실은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이내 여기저기 흥분한 요원들의 의견이 튀어나왔다.
“설마, 그들이······.”
“충분히 의심해볼 만합니다.”
“들어보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이에 이혜진 과장 역시 미간이 좁혀질 만큼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만에 하나 그 목적으로 입국을 했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목적지는 서울일까요?”
하상만 대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하자 이혜진 과장은 뭔가를 결심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속단은 이릅니다만, 만에 하나 이들의 입국 목적이 대통령 암살이라면 양 부서의 공조 수사로는 안 되겠군요. 그들의 추적을 위해 국정원 전 부서에 대한 협조 지원을 받아야겠습니다. 타부서 협조 요청은 국장님 통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신의주에 있는 모든 CCTV와 자동차 블랙박스, 또한 개인용 IC 카메라 등 개인정보 침범도 감수하더라도 모두 확인해서 추적해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박 팀장과 윤 팀장도 대외정보국에서 운용하는 정찰위성 사용권도 요청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2023년 11월 05일 16:00 (이란시각 10:3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라할(제7기계화보병여단 79전차대대).
최종 목표지점인 코이 길목에 있는 소도시 라할로 기동 중인 79전차대대는 4일간 11번의 교전을 치르는 동안 전차 1대가 기동불능에 빠져 전력에서 제외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전력 손실은 없었다.
기존 기갑전력에 공격용 이글-I 드론 전력을 결합하여 미래형 기갑 전술을 보여준 79전차대대는 8개 중소도시를 차례대로 점령한 후 이제 막, 라할 초입에 들어섰다. 그리고 10분 전부터 라할 상공에는 12대의 이글-I 드론이 날아다니며 도심 곳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79전차대대에 정보를 데이터 링크했다.
“예상외로 조용합니다. 소대장님!”
본부중대 소속의 이글-I 드론의 오퍼레이터는 라할 도심이 비췬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다른 오퍼레이터들 역시 수상한 정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경선 일대 중소도시들이 피스부대의 공격을 받고 차례대로 점령을 당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라할 시민들은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음, 그렇게 말이야.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고 구석구석 더 세밀하게 확인해!”
드론운용소대의 소대장 박태민 중위는 12개의 드론에서 전송된 영상을 하나의 대형 모니터로 확인하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종 영상모드로 라할 시민의 옷 속까지 스캔하여 무기 소지 여부를 파악했지만, 그런 시민들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았다.
한편, 79전차대대 대대장 문기철 중령 역시 지휘장갑차에서 이글-I 드론에서 전송된 영상을 데이터 링크로 받아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후속 부대에 맡기고 곧바로 코이로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던 강호준 작전과장이 말했다.
79전차대대가 코이를 최대한 빠르게 점령하고 후속 부대가 도착하면 서아제르바이잔주의 중부전선 굳히기는 그만큼 빨라질 수 있었다.
“음,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라할을 포기하고 모든 병력이 퇴각해 코이 방어에 합류한 듯합니다.”
상대방 측에서 보자면 작전과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점령한 모든 도시를 보더라도 대대급 이상의 병력으로 도시방어에 나섰다가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전멸당한 병력을 계산해보자면 적어도 2개 연대급 규모를 웃돌았다.
“음, 자네 말이 맞을 수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문기철 중령은 결심했는지 직접 대대통신망으로 명령을 내렸다.
“대대장이다. 모든 중대는 라할 10시 방향으로 우회하여 곧바로 코이로 직격 한다. 오늘 중으로 코이 시청에 태극기를 꽂도록 하자! 이상!”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라할 5km 남겨두고 잠시 기동을 멈췄던 79전차대대 K-2A1 흑호 전차들은 다시금 우렁찬 엔진음을 울리며 방향을 틀며 기동에 들어갔다. 또한, 라할 도심 상공에서 날아다니던 이글-I 드론들도 방향을 틀어 코이 방향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