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2023년 11월 03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합참의장실).
대한민국은 이번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에 대해서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전쟁으로 명한 가운데 현재 대한민국 피스부대는 크게 3곳에서 대대적인 교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수도와 가까운 국경지대인 서아제르바이잔주 북단, 두 번째는 서아레르바이잔주 중단, 세 번째는 3개국 쿠르디스탄 공화국, 이라크, 이란 국경선이 맞닿은 하라카주 남단이었다. 이외에도 수십 곳에서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재 교전 양상은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었으나, 대부분 교전 지역에서 피스부대의 승리하며 조금씩 서아제르바이잔주의 점령지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상군 전투부대가 3개 여단뿐인 상황이라 점령지역이 넓어질수록 후방 지역의 치안을 유지할 부대가 부족했다. 그래서 일단은 공화국 수비대를 차출해 메우고 있었다.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으로 추가 파병이 여의치 않았던 국방부는 러시아의 비공식 사과에 따라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판단으로 청와대에 추가 파병 건을 건의했다. 하지만 추은희 대통령에 대한 암살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쿠르디스탄에 전투부대를 파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청와대 수석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의 합참의장실에는 강이식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이란이나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구시대적 전술과 전략으로 상대할 필요가 있갔시오? 솔직히 하루면 충분히 두 국가를 작살 낼 수 있지 않습네까?”
조금은 흥분된 어조로 윤기윤 합참차장이 좌우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 윤기윤 대장의 말은 절대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외계 과학기술을 확보한 후 매년 국방비 예산을 늘려가며 최첨단 무기에 관한 연구와 개발을 지속해 왔다. 이에 2023년 대한민국 국방비는 대외적으로 약 500조 원이었지만, 예전 제17전투비행단 공군기지 내 지하연구소로 불리던 현 파르테논 연구소와 올림포스 기지에 200조 원의 비공식 국방비가 지출되고 있었다.
즉, 대한민국 2023년 국방비는 실제 700조 원이었다. 이는 동북아 종전 후 대한민국으로부터 세계 1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금 천조국이라 불리던 시대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 다음의 국방비 순위였다.
이런 천문학적인 국방비 예산 중 30%는 현존 무기에 대한 개량 사업비에 지출했고 50%는 차세대 무기 생산, 마지막으로 20%로는 사병 및 직업군인의 월급과 복지정책에 사용되었다.
또한, 동북아 종전 후 항공우주군은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성남기지 제1우주전투비행단에 이어 2023년 8월에는 북주 평안도 순천기지에 제2우주전투비행단이 창설되었다. 각 비행단에는 우주 전투기 CFS/A-31SP 삼족오 24기와 무인 우주 정찰기 CSRQ-100P 페가수스 12기를 운용했다.
또한, 가공할 공격력과 요격 능력을 보유한 전략요격위성인 CS-AD 제우스 위성은 2023년부로 총 8기로 늘어났고 CS-SS 아폴로 정찰위성 12기와 해외정찰국 소속의 CS-SS 아폴로 정찰위성 16기 그리고 CS-SH 아레스 초계위성 6기를 운용했다.
이처럼 항공우주군의 운용 장비는 하나하나가 전략급 무기로 웬만한 국가 하나쯤은 하루 정도면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었다. 즉, 대한민국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항공우주군의 전략급 무기만으로도 이란과 이라크를 재기불능의 국가로 만들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전쟁을 조기에 종전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런 이유로 윤기윤 대장이 말했지만, 나머지 지휘관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동조하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윤기윤 대장을 뺀 나머지 지휘관들이 소심하거나 아니면 전술 전략 지식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에 하나, 전략급 무기를 사용해 이란과 이라크를 초토화한다면 처음, 대한민국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지원하게 된 취지와 의미가 퇴색되고 변질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칫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에 치명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종전 후 폐망에 가까운 피해를 본 이란과 이라크의 재건사업과 후속 조치였다.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보다 더 힘들고 골치 아플 수 있었다.
예전 ‘이라크의 자유’라는 작전명으로 시작된 이라크와 미국 및 연합군과의 전쟁은 발발 26일 만에 이라크의 패배로 끝이 났다. 미국과 연합군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부를 몰아낸 후 새로운 임시정부를 구성하여 이라크 전반에 대한 전쟁복구 및 재건사업을 수년간 이어갔다. 그 기간 미국과 연합국의 재정은 심각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이라크에서 손 뗄 기회만 볼 정도로 종전 후가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했었다.
“거이 동무들! 뭐라고 말 좀 해보라우!”
답답했는지 윤기윤 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지휘관들을 동무라 칭하며 말을 내뱉었다.
“하하하, 윤 대장이 답답한가 봅니다. 다들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제시해보세요.”
붉으락푸르락하는 윤기윤 대장을 본 강이식 장관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이에 육군참모총장 이은형 대장이 헛기침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기존에 수립한 작전 안을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 2일 전 보고대로 현재 이란군은 8MJ급 레일건 발사체를 다양한 이동 수단에 장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각 이상으로 피스부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란군과 혁명수비대는 모든 교전 지역에서 8MJ급 레일건 발사체를 각종 이동 수단에 장착해 피스부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네.”
강이식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저는 1차 보복공격에 버금가는 규모로 현재 교전 지역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의견을 낸 이은형 대장이 말을 마쳤다.
“1차 보복공격에 버금가는?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전략미사일군 참모총장인 나태윤 대장이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질질 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은형 대장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음, 이란도 이란이지만 참, 이라크도 문제입니다. 이란 공군과 해군이 박살 난 것을 알면서도 참전을 하니 말입니다.”
현재 이라크는 하카리주 국경선 일대에 이라크 보안군 6개 보병사단이 피스부대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과 교전 중이었다.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라 보병사단만 투입했지만, 언제 공중전력을 투입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또한, 후방 일대에는 11개 보병사단이 하카리주 국경선 일대로 이동하는 것을 정찰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슬람 국가는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듭니다.”
강이식 장관은 회의 탁자에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에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합참의장 신성용 차수가 입을 열었다.
“장관님!”
“네, 신 의장 말하세요.”
“장관님! 기존 작전 안은 참모들과 함께 전면 수정을 통해 최소 피해를 주고 승리할 수 있도록 작전 안을 새롭게 수립하겠습니다. 대신, 장관님께서 대통령님께 이 부분만 승인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 ★ ★
2023년 11월 03일 18:00,
남주 서울특별시 중구 연방광역수사국(부국장실).
현재 국가정보원 ACS로부터 1급 감시를 받는 전 총정치국 1부국장 출신 김형철 부국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년의 남자와 독대 중이었다.
“요새 귀찮아 죽겠구만 그래”
김형철은 국가정보원의 어떤 부서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에 김형철은 자신을 대신해 일을 처리할 수족이 필요했다. 그리고 김형철과 탁자를 두고 앉아있는 자가 그 수족에 해당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연방광역수사국의 실세부서인 중앙감찰부의 특별수사관인 이병후였다. 바로 며칠 전, 평양 신미동 어느 건물에서 조명록과 얘기를 나누던 그 중년의 사내였다.
19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최연소로 연수원을 걸쳐 검사가 된 이병후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일찍부터 출세 맛을 본 이병후는 검사의 덕목이라야 할 청렴함과 정의감보다는 돈과 권력욕에 빠졌고 성남지청 지청장으로 있을 때 여비서와의 불륜설이 터지자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후 연방광역수사국이 신설된 후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병후는 불륜이라는 구설에 올랐음에도 연방광역수사국의 서만주청 수사국에 들어갔고 1개월 전, 이곳 중앙감찰부 특별수사관으로 보직 발령을 받았다.
“요새 감시 요원들이 더 붙은 듯합니다. 부국장님!”
“그러니까 말이야. 어디 가서 말 한마디도 편하게 못 한단 말이디. 그래도 여기는 감청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야. 혹, 자네한테 붙은 똥파리는 없네?”
“네, 아직은 저에 대한 감시는 없습니다.”
“그래, 조심하라우, 대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네까지 감시 붙으면 골치 아파야.”
“네, 조심하겠습니다.”
소파에 묻혀 다리를 꼬고 앉은 김형철 부국장은 시가렛 연기를 연신 내뿜으며 말했다.
“이거이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구만 기래?”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우병후의 대답에 김형철은 시가렛 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내래 실패할까 봐 걱정하는 거로 보이네?”
“그, 그럼?”
“대업이 성공한 후의 판이디.”
“아, 그렇군요.”
“확실하게 우리 판으로 만들어야지 않캈서?”
“네, 그렇습니다.”
“그쪽 아들은 어떻게 하고 있네?”
“그쪽이라면? 조명록 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거이, 이거이, 정신 못 차리네?”
“아, 죄송합니다. 3일 후에 국내로 잠입할 것입니다.”
“3일 후라······. 인원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20여 명 안팎으로 보입니다.”
“그 정도로 되갔어?”
“그쪽에서도 최정예 중의 최정예라고 합니다.”
이때 인터폴에서 비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삐익!
- 부국장님! 강혁 국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이 끝나고 부국장실 출입문이 열렸다. 이에 우병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어! 미팅하고 있었군요.”
“국장님! 어서 오시라요. 이리 앉으시디요.”
김형철 부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소파를 가리켰다. 이에 강혁 국장은 부동자세로 서 있는 우병후를 보며 김형철 부국장이 비켜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혹시 방해한 건가요?”
“아, 아닙네다. 아! 이 친구는 감찰부 특별수사관······.”
김형철 부국장이 소개하려 하자 강혁 국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압니다. 알아요. 저번에 한번 봤지요? 감찰부 우병후 특수관?”
“네, 그렇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장님”
“기억이라니, 우리 기관에서도 실세부서인 감찰부 직원들을 모르면 안 되지요. 하하”
강혁 국장은 연신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그만 나가보라우”
“네, 알겠습니다.”
김형철은 급하게 우병후를 내보냈다.
잠시 후 우병후가 나간 후 강혁 국장이 물었다.
“이 특수관은 왜?”
“아! 요새, 수사요원 중에 몇 명이 비리를 저지른다는 보고를 받아서 말입네다.”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어느 정도 확인되면 보고를 드리려고 했슴네다.”
“그래요. 그건 차차 보고해주세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하하하, 꼭 일이 있어야 옵니까? 퇴근 시간도 되었고 부국장 얼굴 좀 보고 차나 한잔하려고 했지요.”
“아! 하하하, 그렇구만요. 잘 오셨습네다.”
억지로 웃는듯한 표정을 지은 김형철은 인터폰을 눌러 커피를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