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0화 (340/605)

보복

으으윽!

위아래가 바뀐 상태로 고꾸라진 하차조 해병 중 최고선임인 분대장 나상훈 병장이 몸을 움찔거렸다.

추락 당시의 충격이 상당했는지 보호 슈트와 헬멧을 착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띵했고 온몸이 저리는 느낌이었다.

“시발! 대체 이게 뭔 일이고?”

뒤엉켜 쓰러져 있는 후임들 사이를 빠져나간 나상훈 병장은 단차장 쪽으로 이동했다.

“단차장님 괜찮습니까? 단차장님!”

포탑 상단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 있는 양정석 중사를 흔들어 깨웠다.

“으~”

이에 신음과 함께 양정석 중사가 눈을 떴다.

“뭐,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사태파악이 안 된 양정석 중사는 불편한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공간이 좁은 상태라 쉽지는 않았다.

“단차장님! 어떻게 합니까?”

자세를 바꾸는 양정석 중사를 도와준 나상훈 병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일단 너는 부상병 있나 확인하고 모두 깨워! 난 소대에 연락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간부답게 바로 정신을 차린 양중석 중사는 통신망을 이용해 소대를 불렀다.

“여기는 호박꽃 둘! 호박꽃 하나 나와라! 이상! 여기는 호박꽃 둘! 호박꽃 하나 나와라!”

장갑차 PM-1 통신기가 고장이 났는지 수화기 넘어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에 양정석 중사는 반쯤 벗겨진 헬멧을 바로 쓰고는 헬멧과 연결된 터키온-Xm 통신기로 다시 한번 한번 통신을 보내려던 찰라, 강력한 충격이 장갑차를 강타했다.

콰앙!

타타타타타타탕!

두두두두! 두두두두!

팅! 티티팅! 티티티티팅!

이란군이 쏜 RPG-7 유탄에 폭발하자 피격은 되지 않았지만 512호 장갑차는 들썩거리며 심한 충격이 내부에 전해졌고 외부 장갑을 두드리는 탄착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에 의식을 찾은 장갑차 내부 해병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살, 살려줘!

갇혀버린 좁은 공간에서 장갑차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의 충격은 충분히 장갑차 내부에 있던 해병들에게 폐소공포증을 동반하며 심리적인 타격을 주었다. 대한민국 최정예 전투력과 강한 멘탈을 보유한 해병대였지만, 현 상황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조, 조용히 해봐 마! 자식들아! 통신 중이잖아!”

저마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해병들을 향해 양정석 중사가 고함을 쳤다.

“여기는 호박꽃 둘! 호박꽃 둘! 이란군에 피격되었다. 구조! 구조 바람 이상!”

한편 이란군은 RPG-7 유탄에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자 지휘관 중 한 명이 러시아로부터 받은 휴대용 Metis-M 대전차유도탄을 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Metis-M 사수가 어깨에 발사관을 들쳐메고 조준을 했다.

Metis-S1 대공미사일과 동급의 위력을 가진 Metis-M 대전차유도탄에 장갑차 하부의 후미에 재차 직격을 받는다면 내부까지 피격당할 수 있는 매우 아찔한 순간이었다.

- 찌익! 여기는 호박꽃 하나! 호박꽃 둘! 다들 무사합니까? 구조하러 왔습니다. 이상.

호박꽃 하나로부터 통신이 날아온 순간, 512호 장갑차를 포위하고 Metis-M 대전차유도탄을 쏘려던 이란군 상공에 5해병기동중대 소속의 1소대 장갑차 3대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즉시 장갑차 하단에 탑재된 12mm 벌컨에서 불을 뿜었다.

쭈쭈쭈쭈쭈쭈쭈웅~ 쭈쭈쭈쭈쭈쭈쭈웅~

순간 나타난 장갑차 3대는 지상을 향해 사정없이 레이저 빛줄기를 선사했다.

으악! 크아악~

가장 먼저 Metis-M 대전차유도탄 사수의 온몸이 터져나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이어 512호 장갑차를 포위했던 300여 명의 대대급 이란군 병사들은 저마다 엄폐물을 찾아 도망갔지만, 쏟아지는 빛줄기를 피하지 못하고 몇 분도 안 되어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다.

★ ★ ★

2023년 11월 01일 20:30 (이란시각 15:0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쿠터(제7기계화보병여단 79전차대대).

12대의 이글-I 드론이 쿠터 마을 상공을 휘젓듯 비행하며 민병대의 위치를 탐지하여 정보를 제공하며 자체적으로 공격도 감행하고 있었다.

기껏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가 RPG-7이 고작인 민병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줄어나갔다. 반면 79전차대대의 피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일방적인 학살수준의 교전이 쿠터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전술로 보자면 보병 없는 적 전차부대를 마을에서 게릴라전으로 대응하는 쿠터 민병대가 훨씬 유리하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공을 비행하며 민병대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공격까지 가능한 이글-I 드론으로 인해 게릴라 전술의 유리함은 사라졌고 두 번째로 민병대가 무장한 RPG-7으로는 4.5세대급 K-2A1 흑호 전차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79전차대대는 건물 곳곳에서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는 쿠터 민병대를 상대로 여유롭게 교전을 이어갔다.

간혹, 날아다니는 이글-I 드론을 향해 개인화기와 중화기가 불을 뿜었지만, 자동회피 시스템으로 인해 격추를 당하는 드론은 없었다.

쭈쭈쭈쭈쭈쭈쭈웅~

이글-I 드론 1기가 2층 건물을 향해 8mm 레이저 벌컨을 사정없이 뿌렸다. 이에 흙으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은 쏟아지는 빛줄기에 흙먼지를 날리며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무너져버린 건물 잔해 속에는 79전차대대와 교전하던 쿠터 민병대 시신들이 즐비했다.

“작전 종료! 쿠터에 더는 무장한 민병대는 없는 것으로 판단!”

79전차대대 대대장이 대대통신망을 통해 알려왔다. 방금 무너진 잔해에 깔려 죽은 민병대를 마지막으로 더는 쿠터에서 활동하는 민병대는 없었다.

20여 분 만에 이란 쿠터 민병대를 모두 사살한 79전차대대는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79전차대대는 곳곳에 검붉은 화염과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쿠터 마을을 뒤로하고 두 번째 목적지를 향해 기동에 들어갔다.

★ ★ ★

2023년 11월 01일 20:30 (쿠르디스탄시각 14:3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3기계화보병중대).

쮸웅! 쮸웅! 쮸웅!

3방향에서 날아간 광자포 입자에 T-14 아르마타 전차가 연쇄적인 폭발을 하며 시꺼먼 화염을 토했다.

T-14 아르마타 전차로 구성된 이란 전차대대를 고작 중대급 장갑차 14대가 상대하여 승리한 순간이었다.

- 여기는 찜통! 중대장이다. 소대장은 소대별 피해 현황 보고해라 이상!

- 여기는 찐옥수수(1정찰소대)! 피해 이상 무 이상!

- 여기는 오이무침!(2소대) 차륜 피격 하나, 나머지 이상 무!

- 여기는 부침개!(3소대) 차륜 피격 둘! 나머지 이상 무!

- 여기는 찜통! 각 소대는 대대 구난차가 올 동안 호위 임무에 들어가라, 피해 없는 찐옥수수 소대는 전방 경계 임무로 전환! TCS 모드로 최대한 이란군을 끌어드려 최대 화력으로 공격한다.

한편, 양 측간 교전이 벌어지는 사이 후방 2km에서 따라오던 제5혁명수비보병사단 1연대는 수송 트럭에서 하차한 후 마쿠 방향으로 접근 중이었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차륜 피격으로 기동이 불가한 장갑차를 보호하기 위해 각 소대 장갑차는 기동했다. 반면 별다른 피해가 없던 1정찰소대 장갑차 4대는 화염을 내뿜으며 불타고 있는 적 전차 사이를 뚫고 전방으로 기동했다.

장갑차와 알보병간 전투는 장갑차가 매우 유리했다. 특히 웬만한 대전차유도탄에도 피격을 당하지 않을 방호력을 갖춘 K-23P-M 현무 기동전투장갑차라면 더욱 유리한 상황이었다.

1정찰소대 장갑차 4대는 협곡 폭이 400m에 이르는 지점에 횡대 대형으로 멈춘 후 TCS 모드(투명은폐시스템)를 활성화한 후 보병들을 하차시켰다. 하차한 보병들은 각자 엄폐물을 찾아 앞으로 다가올 이란군 보병과의 교전 준비에 들어갔다.

투명한 상태로 대기하던 312호 장갑차의 전술 디스플레이에는 붉은 점으로 표기된 수많은 발광체가 밀려오고 있었다. 보병들 사이사이로 픽업트럭도 확인되었다.

“저거 좀 이상합니다.”

포수용 전술 디스플레이를 보던 남강일 병장은 픽업트럭에 장착된 무기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피아식별 데이터에도 없는지 무기에 대한 상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뭐 말이야?”

단차장 고기준 중사가 물었다.

“제들 픽업트럭에 장착된 무기 말입니다. 피아식별 데이터도 나오지 않고 확대해서 당겨보니 처음 보는 생김새입니다.”

남강일 병장의 말에 고기준 중사도 현시경을 통해 확대해 가장 앞에서 기동하는 픽업트럭 한 대를 확인했다.

“어라? 저거 신기하게 생겼네?”

픽업트럭은 기존 중동에서 흔히 보는 도요타사의 픽업트럭이었지만 짐칸에 장착된 무기는 뭔가 세련돼 보였다. 기껏 다총열기관총인 무하람 중기관총 정도라 생각했던 고기준 중사는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일반 총신과는 다르게 납작한 형태로 양 갈래 갈라진 총신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듯한 생김새였다. 이에 고기준 중사의 머릿속에는 문 듯 한가지 단어가 생각났다.

“설, 설마 저거, 레일건?”

혼잣말로 중얼거린 말에도 알아들은 남강일 병장이 몰라며 되물었다.

“레일건요? 설마, 러시아놈들이 레일건까지 이란군에 제공했을까요? 앞서 교전한 전차도 레일건 전차가 아니었잖아요.”

“그건 나도 모르지 마! 문제는 저게 레일건이면 골치 아파진다는 거다.”

강력한 방호력을 자랑하던 K-3 백호 전차도 일본에서 레일건을 장착한 미국 전차에 호되게 당했던 사실을 알고 있던 고기준 중사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럼 픽업트럭부터 선제공격을 가해야지 않겠습니까?”

레일건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강일 병장이 광자포 조준점을 픽업트럭에 고정하며 말했다.

“문제는 이란군 픽업트럭의 숫자였다. 제길 잘못하면 황천길 가겠는데?”

“아! 단차장님! 제발 좀 살벌한 말은 하지······.”

이때 소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때렸다.

“현 시간부로 이란군 픽업트럭부터 우선순위로 공격한다. 각자 TCS 모드 오프하고 공격!”

소대장 역시 픽업트럭에 장착된 무기가 레일건이라 생각했는지 근접거리가 아닌 상태에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횡대 대형으로 대기하던 1정찰소대 장갑차 4대는 TCS 모드를 오프하고 광자포와 각종 화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 ★ ★

2023년 11월 01일 20:40,

북부 평양특별자치시 용성구 중이동 어느 건물(대외1공작대 은신처).

이곳에 온 지 3일, 오지완과 그 부하들은 허름한 건물 안에서 외출도 하지 않고 먹고 자며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가장 큰 방에는 노트북과 연결된 대형 벽걸이 TV가 있었고 TV 화면에는 위성으로 찍은 대형 지도가 보였다.

“오 대장 동지! 제공된 정보로는 이거이 뚫기가 만만치 않슴메”

강태웅은 TV에 비친 화면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뭔들 쉽갔어? 쉬우면 우리를 부르지 않았갔디. 분명 틈은 있을기야. 무조건 찾아야디”

자욱한 담배 연기가 방 전체를 뒤엎은 가운데 오지완은 소파에서 앉아 잔뜩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정보가 더 필요할거 같슴메 오 대장 동지!”

“음, 알갔서. 2시간 후에 만날 것이니 그때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갔어. 그러니 동무들도 나름 자체적으로 침투 루트를 찾아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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