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2023년 11월 01일 20:10 (이란시각 14:4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쿠터(제7기계화보병여단 79전차대대).
쿠르디스탄 공화국 반주와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가 맞닿은 국경선 일대의 작은 마을 라치, 이곳에는 제7기계화보병여단 소속의 79전차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C-2A1 흑호 전차로 구성된 79전차대대는 서아제르바이잔주 북단 마쿠에서 이란과의 공식적인 교전이 벌어지자, 기존 작전 안에 따라 주둔지를 떠나 이란을 향한 진공에 들어갔다.
기존 작전 안이란, 이란과의 전쟁 발발 시 79전차대대는 라치로부터 남서단 6.5km에 있는 쿠터를 걸쳐 마힌과 하할을 차례대로 점령하고 이후 우르미아 호수 북단에 있는 주 도시인 코이로 진공하는 작전 안이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수십 대의 C-2A1 흑호 전차와 각종 장갑차가 줄을 이으며 막 인구 천여 명이 사는 소도시 쿠터 초입에 들어서는 가운데 이란 민병대로 보이는 무장병들이 건물 곳곳에 숨어있었다. 이러한 민병대는 대부분 2인 1조로 2세대 휴대용 대전차 유탄발사기인 RPG-7을 들고 있었다.
RPG-2의 후속 모델로 개발된 RPG-7은 휴대용 대전차유도탄이었으나, 중동에서는 대공용으로도 사용했다. 값싼 가격에 고가의 전차나 헬기 등을 피격할 수 있는 가성비로 따지자면 최고였기에 중동에서는 정규군은 물론 테러집단이나 해적들도 널리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 지금부터 1중대부터 마을 진입한다. 이후 2중대와 3중대는 좌우로 갈라져 후방 지원! 본부중대는 대공과 드론 정찰에 집중하도록 이상.
- 백곰 확인 이상!
- 흑곰 확인 이상!
- 불곰 확인 이상!
- 은곰 확인 이상!
대대장의 지시사항이 대대통신망을 통해 각 중대에 하달되었다. 보통 시가지 점령은 보병과의 공조 수색을 통해 진행하였으나, 정찰 및 공격용 드론이 개발되면서 전차대대만으로 마을 점령 전술이 만들어졌다.
현재 쿠터 상공에는 79전차대대 본부중대에서 조종하는 12대의 이글-I 드론이 마을 곳곳을 VR-M급 투시 광학장비가 적용된 카메라로 탐지 중이었다. 이로 인해 각종 무기로 무장을 하고 건물 곳곳에서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란 민병대 위치를 탐지했고 이러한 정보들은 79전차대대 전차와 장갑차에 데이터 링크를 했다.
슈우우우우!
순간, 어디선가 발사음과 함께 후폭풍에 먼지가 흩날리며 RPG-7 유탄이 하늘로 솟구쳤다. 아마도 상공을 날고 있는 이글-I 드론을 격추하고자 발사한 듯했다. 하지만, RPG-7 유탄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며 빗나가고 말았다. 급격한 방향전환이 가능한 이글-I 드론은 오퍼레이터의 수동 조정 시에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회피 기동 시스템이 자동으로 적용되어 있었다.
손쉽게 RPG-7 유탄을 회피한 이글-I 드론은 자신을 공격한 민병대를 향해 8mm 레이저 벌컨을 인정사정없이 발사했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RPG-7 유탄 발사 후 새로운 엄폐물로 도망가는 민병대를 향해 수십 개의 레이저 빛줄기가 쏟아졌다.
크억! 커커컹!
실내에서 도망가는 민병대는 천장을 뚫고 쏟아진 레이저 빛줄기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벌집이 되면서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들의 시신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자당하고 말았다.
이를 신호탄으로 C-2A1 흑호 전차를 향한 민병대의 RPG-7 유탄 공격이 시작되었고 반대로 C-2A1 흑호 전차와 이글-I 드론에서도 탐지로 파악된 민병대를 향해 전차포와 레이저 벌컨이 쏟아졌다.
★ ★ ★
2023년 11월 01일 20:15 (쿠르디스탄시각 13:50),
이란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3기계화보병중대).
교전이 시작된 지 25분이 지난 시점, 2.8km 두고 시야를 방해하는 각가지 건물과 나무들로 인해 소극적인 교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서서히 3기계화보병중대로 기울고 있었다.
차륜 파손으로 기동불능에 빠진 3대의 장갑차를 빼고는 나머지 11대의 C-23P-M 현무 기동전투장갑차는 멀쩡한 반면, 혁명기갑사단 소속의 5전차대대 T-14 아르마타 전차 대부분은 화염에 휩싸인 채로 곳곳에서 멈춰 있었다. 현재 기동을 펼치며 전차포를 쏘아대는 T-14 아르마타 전차는 고작 8대에 불가했다.
만약 시야가 확보된 개활지였다면 T-14 아르마타 전차 8대 역시 진작에 피격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중간중간 지형 엄폐물을 이용하며 거리를 좁혀가는 사이 왼쪽으로 크게 우회한 312호 장갑차는 바로 앞에서 전차포를 날리며 전진하는 T-14 아르마타 전차의 옆구리에 조준점을 잡았다.
쮸웅!
강렬하고 시원한 광자포 발사음과 함께 붉은 입자는 그대로 T-14 아르마타 전차의 포탑 측면을 파고든 후 폭발했다.
백호 전차의 100mm 광자포보다 위력은 약했지만, 전면장갑이 아닌 측면 장갑 정도는 폭발반응장갑이 있더라도 충분히 격파할 위력을 갖고 있었다. 사실 T-14 아르마타 전차에는 하드킬 능동방어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최대 3,000m/s 이내 시 하드킬 능동방어장치가 반응하였기에 50,000m/s 속도로 날아오는 광자포에는 있으나 마나였다.
거대한 폭발에 T-14 아르마타 전차가 들썩였고 포탑은 통째로 뽑혀나가며 날아갔다. 그리고 검붉은 화염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포탑 없는 전차는 슬금슬금 전방 엄폐물에 숨기 위해 기동하고 있었다.
포탑이 날아갈 정도의 폭발이었지만, 승조원들은 살아있었다. T-14 아르마타 전차의 승조원은 내부의 900mm 이상의 RHA 장갑 캡슐에 의해 보호되어 생존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이들 승조원의 생존은 더는 이어가지 못했다.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며 슬금슬금 기동하며 엄폐물로 향하던 T-14 아르마타 전차에 연속으로 4발의 광자포가 꽂혔다.
콰앙! 콰앙! 쾅아앙! 콰카앙~
연발의 광자포에 T-14 아르마타 전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운 좋게 살아남았던 승조원 3명 역시 잇단 폭발과 함께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어예~ 죽이지 않습니까?”
“야! 전차 한 대에 광자포를 5발 쏘고 뭘 잘했다고 지랄이야?”
좁은 공간에서도 한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포수 남강일 병장을 향해 단차장 고기준 중사가 버럭 소리쳤다.
“아! 잘했을 땐 칭찬 좀 해주십시오. 사기 떨어집니다.”
“시끄럽고 3시 방향! 거리 150, 적 확인!”
312호 장갑차로부터 3시 방향 150m 지점에 또 다른 T-14 아르마타 전차가 건물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T-14 아르마타 전차의 2A82-1M 125mm 활강포가 정확히 312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급히 외친 고기준 중사의 외침에 장갑차의 포탑이 돌아갔으나, 단차장 현시경에 비췬 건 불꽃과 함께 검은 물체 하나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뿐이었다.
카앙! 쿠르르르릉~
강력한 SECM의 재밍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탓인지 900mm 이상의 관통력을 자랑하는 Vacuum-1 APFSDS탄이 312호 장갑차의 오른쪽 앞부분을 강타했다.
강력한 충격이 장갑차 전체에 전해졌다. 하지만 1,500mm의 방호력을 갖춘 덕분에 Vacuum-1 APFSDS탄은 그대로 튕긴 후 허공으로 날아갔다.
순간 충격에 현시경과 박치기한 고기준 중사가 악귀와 같은 음성을 토했다.
“야! 남 병장! 저 새끼 날려버리지 않고 뭐해?”
“알, 알았습니다.”
남강일 병장 역시 순간 충격에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이내 고기준 중사의 고함에 정신이 번쩍했는지 조준경에 잡힌 적 전차를 향해 발사 버튼을 연속으로 당겼다.
쮸웅! 쮸웅! 쮸웅!
발사음과 동시에 붉은 입자는 T-14 아르마타 전차 2곳에 검붉은 탄착군을 형성했다. 한발의 광자포 입자는 폭발반응장갑 덕분인지 정면 장갑까지는 뚫지 못하고 소멸했다.
하지만 나머지 2개의 붉은 입자는 전차 내부를 휘저었고 이내 대폭발을 하며 산산이 조각났다.
“허 상병아! 기동하는 데 문제없지?”
“네, 다행히 차륜에 문제는 없는 듯합니다.”
“좋아! 일단 후방으로 기동해라! 남 병장 이놈이 마구잡이로 쏴대서 그런지 광자포 전지량이 없다.”
“네,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2대의 T-14 아르마타 전차를 격파한 312호 장갑차는 주포 플라스마 전지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후방으로 빠졌다.
★ ★ ★
2023년 11월 01일 20:15 (쿠르디스탄시각 14:15),
쿠르디스탄 공화국 하라카주 유크세코바(제11해병기동여단)
험준한 산악을 등산하듯 기어오르는 이란군을 바로 위쪽 지형에서 부상한 채로 정찰한 512호 장갑차의 승조원 3명은 사방에서 행군하며 오르고 있는 이란군 병력에 다들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512호 장갑차가 정찰한 바로는 현재 이란군 2개 사단급의 병력이 국경선 남동단 여러 곳에서 오르고 있었고 반대편 남서단 쪽에서도 이라크 보안군으로 보이는 무장병력 수만 명을 확인했다. 이라크 보안군만 해도 2개에서 3개 사단급 규모였다.
“이거, 이라크 애들까지 개입했네요. 이거 어쩝니까? 빡시겠는데요?”
무장병 김기동 병장이 디스플레이에 비친 영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뭘 빡세마? 땅개들 수만 명이 와봤자지! 쓱 하니 12mm 벌컨만 날려줘도 수천 명은 작살을 내겠구먼. 엄살은 자식이~”
“그래도 저놈들 다 합치면 6만은 넘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또 우리가 모르는 후속 부대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정찰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돌아가자!”
이때, TCS 모드 경고음이 울렸다.
삐잉! 삐잉! 삐잉!
“뭐야?”
깜짝 놀란 고기준 중사가 디스플레이를 살폈다. TCS 모드의 플라스마 에너지 수치가 모두 소모되어 있었다.
“고, 고장인가? 갑자기 에너지 수치가 이 모양이야? 아까까지만 해도 50%가 넘었는데······. 안 되겠다. 박 상병! 주둔지로 복귀한다. 눈치 못 채게 속도 서서히 높이도록”
팟앗!
순간 512호 기린 장갑차의 TCS 모드가 OFF 되었다. 이에 이란군이 득실거리는 가까운 거리에서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깜짝 놀란 이란군 시선이 일순간 512호 기란 장갑차로 쏠렸다.
“엿 됐다! 박 상병! 최대 속···”
슈우우웅! 슈우우웅!
512호 장갑차가 순간속도로 속도를 올리며 자리를 이탈하려는 그때, 이란군 곳곳에서 작은 불꽃과 함께 뭔가가 솟구쳤다. 이에 512호 장갑차 무장병 전술 디스플레이에는 날아오는 정체에 대해 ‘러시아제 휴대용 Metis-S1 대공미사일’로 표기되고 있었다. 이에 김기동 병장이 소리쳤다.
“앗! 유, 대공 유도탄입니다.”
하얀 연기를 뿌리며 3개의 대공미사일이 512호 장갑차를 향해 날아왔다. 이에 조종수 박영우 상병은 조종 레버를 좌우로 당기며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휘리이링! 콰앙! 콰앙!
강력한 SECM의 재밍 덕분에 2개의 유도탄은 목표물을 잃고 지상에 처박히며 폭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최신형 Metis-S1 대공미사일 1기는 끝내 512호 장갑차의 후방을 강타했다.
콰앙! 쿠르르릉!
강한 충격을 동반한 폭발이 512호 장갑차 후방에서 일어나자 후방 하단 오른쪽 플라스마 호버 엔진이 꺼졌고 이로 인해 중심을 잃은 512호 장갑차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기울어진 상태로 추락한 512호 장갑차는 몇 바퀴를 굴렀고 비스듬한 산비탈 때문인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잠시 후 흙먼지를 날리며 100여 미터를 뒤집힌 채로 미끄러진 512호 장갑차는 툭 튀어나온 작은 바위에 걸리면서 멈췄다. 이에 수많은 이란군 병사들이 512호 장갑차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다. 한편 여러 번의 충격을 그대로 온몸으로 받은 512호 장갑차 승조원과 하차조 해병 8명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