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1화 (331/605)

태풍 16호

2023년 10월 28일 10:30,

북주 평안도 신의주경제특구시 외곽.

통일 후 신의주를 북주와 서만주의 경제 중심지인 경제특구시로 선정하자 하루게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통일 전 인구 35만에 달하던 신의주는 현재 인구 20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 변화했다. 도심 곳곳에는 30층 이상의 고층 빌딩과 각종 공업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러시아와 신중국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통일 대한민국 안에서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압록강을 끼고 마주 보고 있는 통일 전 당시의 중국 단둥과 비교하여 흉측하고 초라해 보일 정도로 낙후되어 보였던 신의주는 이제 적어도 황남(단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발전했다.

신의주 번화가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한적한 외곽 뒷골목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저마다 배낭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 피부가 까칠하고 까무잡잡한 것이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걸음걸이나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사내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오 대장 동지! 여기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신의주가 맞슴메?”

가장 앞에서 걸어가던 덩치 큰 사내가 뒤돌아보며 조금은 왜소하고 깡마른듯한 사내를 오 대장이라 부르며 물었다. 그 사내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득 찼다.

“나 역시 어리둥절 하구만 기래! 몇 년 만에 신의주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말이야.”

“이거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슴메”

“강 조장! 윗선에서 알려준 루트로는 이곳이 확실히 신의주야!”

두 사내는 자신들의 일행 외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누가 들을까 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골목길에 안쪽에 있는 작은 모텔 앞에 걸음을 멈췄다.

“이곳인 듯하군”

조금은 촌스러운 네온간판이 걸려있는 모텔 앞에 선 일행 중에 아까 오 대장으로 불린 사내가 모텔 주소를 비교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강 조장이라 불리는 사내를 선두로 나머지 사내들이 모텔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오 대장으로 불린 사내는 모텔 주변을 쓱 하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고는 들어갔다.

보이는 행상이나 생김새는 중국인으로 보였으나 북한 사투리로 말하는 이 사내들의 정체는 바로 2019년 10월 14일 후난 외곽 모텔에서 김은희의 대한민국 입국을 막기 위해 국가정보원과 총격전을 펼쳤던 오지완이 이끄는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대외1공작대였다.

이들은 2020년 2월 20일 자신들의 상관인 국가안전보위부장인 김원흥과 리병철 일당이 보위대사령부에 국가반역죄로 체포가 되었다는 소식을 언론매체로부터 접한 직후 오지완과 부하들은 중국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통일 후 국가정보원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추적을 하였지만 넒디넓은 중국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아내는 건 매우 어려웠다. 특히 총격전 당시 부상으로 먼저 탈출해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괴로워했던 대외정보국 박기웅 팀장은 김현준 과장과 지동철 팀장, 그리고 동료의 복수를 위해 틈날 때마다 대외1공작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중국 정세가 불안해지고 급기야 관구 간의 내전에 따른 국가가 3개로 쪼개지면서 공식적으로 공안과의 협조가 끊기면서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박기웅 팀장이 꿈속에서도 찾고자 했던 그들이 3년 만에 대한민국 신의주의 외곽 작은 모텔에 재발로 모습을 드러냈다.

★ ★ ★

2023년 10월 28일 16:00 (현지시각 11:00),

인도양 북위 22°50'3.93" 동경 62°46'30.04" 해상(제12항모전단).

이란 최남단 도시인 시스탄오발루체스탄으로부터 남단 270km 해상까지 접근한 대한민국 해군 제12항모전단은 전날 야간 이착함 훈련을 마친 후 10시간에 걸쳐 이곳 오만만 입구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항공모함 1척과 중순양함 3척, 그리고 보이지 않게 해심 깊숙이 잠항 중인 4척의 슈퍼호큘라 잠수함은 수적으로 적게 보이지만, 전력 면에서 보자면 웬만한 국가 하나는 지도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을 강력한 펀치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렇듯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대한민국 해군 제12항모전단이 오만만 입구까지 도달하는 동안 이란 해군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스텔스 기능이 강력한 제12항모전단 함정을 탐지하는 것은 현재 이란 군사력으로는 불가능했다. 혹여, 알고 있더라도 2010년부터 취역을 시작한 호위함급 수준의 Mowj-1급(1,400t) 구축함 6척과 Mowj-2급(2,500t) 3척, 마지막으로 킬로급 재래식 잠수함 3척과 정복자라는 뜻의 파테이급 신형잠수함 2척이 고작이었다. 이정도의 해군전력으로 결코 제12항모전단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반경 300km 이내 깊은 해심은 물론 해상과 상공까지 이렇다 할 위험 전력이 없는 가운데 여러 국가의 유조선과 수송선만이 레이더상에 탐지될 뿐이었다. 파도마저 평온한 이곳 오만만 해상에는 오직 4줄기의 항적이 그어졌고 이내 작은 파도에 묻혀 사리고 있었다.

“제독님! 앞으로 1시간 후면 목표 해상에 도달합니다.”

백범김구함 함장인 나상선 대령이 제12항모전단장인 김기영 제독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이에 김기영 제독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현재 본 함과 호위 잠수함과의 거리는?”

“네, 현재 본 함을 중심으로 4방향에서 80km 떨어져 있습니다.”

함교 전술사관이 즉시 대답했다.

“좋아! 거리 50km까지 좁힌다.”

“네, 명령 하달하겠습니다.”

김기영 제독은 목표 해상에 가까워지자 넓게 대잠 경계를 펼쳤던 슈퍼호큘라 잠수함을 불러 드리는 명령을 내렸다.

마름모꼴 형태로 해심 150m에서 잠항하던 슈퍼호큘라 잠수함 4척은 명령을 받은 즉시 각자 속도와 방위각을 조절하며 제12항모전단의 중추인 항공모함인 백범김구함(CV-001)으로 접근해 나갔다.

“난 슬슬 기함으로 돌아가야겠군”

“이곳에서 지휘하셔도 됩니다. 제독님!”

“이곳이 넓고 좋긴 하지만, 난 이순신함이 더 좋다네, 하하하”

“네? 하하하, 알겠습니다.”

★ ★ ★

2023년 10월 28일 20:30,

북주 평안도 신의주경제특구시 외곽 어느 모텔.

몇 시간 전 이곳 모텔에 도착한 사내들은 각자의 욕실에서 목욕과 면도를 하자 제법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고 배낭에 준비해온 양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모텔에 들어오기 전에는 중국인으로 오해받을 만한 구질구질한 모습이었다면, 지금 모습은 깔끔한 회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내 한명 한명 눈에서 발산하는 눈빛은 섬뜩할 만큼 강렬해 보였다.

“오 대장 동지! 정말 가능하겠슴메?”

커튼 틈 사이로 신의주 전경을 바라보는 오지완에 다가간 강태우가 물었다. 사람 하나 죽일 때도 눈 하나 까딱 안 하던 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하였다.

“가능하든 안 하든 무조건 하야디 안캈서? 언제까지 중국 땅이나 조선 땅에서 도망자 신세로 살기야? 제대로 된 일자리도 못 구해서 막노동하다가 떨어져 죽은 3조장 김동균이 생각 안 나네?”

오지완은 커튼을 닫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강태우를 바라보며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 과거사를 열거했다. 김은희의 한국 입국을 무조건 막고자 앞뒤 가리지 않고 충징 외곽 모텔에서 총격전을 일으킨 오지완과 대외1공작대는 중국 공안의 수사망을 피해가며 추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리병철과 직속 상관인 국가안전보위부 김원흥 부장이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언론매체를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보위사령부 소속의 비밀경찰 200여 명이 자신들을 사살하기 위해 중국으로 급파되었다는 소식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 공안, 보위사령부 비밀경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요원의 추적을 뿌리치며 도망 다니던 오지완과 대원들은 가지고 있던 돈까지 떨어지자 막노동 생활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러던 중 한중전까지 발발하자 그마저 막노동 일자리도 없어지자 이들은 농촌으로 숨어 들어가 도둑질과 강도질을 하며 꾸역꾸역 목숨을 부지해나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후난 총격전 당시 사망한 8명을 제외한 12명의 대외1공작대는 현재 8명만 남아 있었다. 오지완 말대로 막노동 중 8층 높이에서 떨어져 죽은 3조장 김동균, 그리고 가벼운 질병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2조장 오성태와 3조원 박동진, 그리고 강도질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맞아 죽은 3조원 나동균이었다.

“죄송함메. 시간이 다가올수록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메”

강태우는 약해진 자신을 질책하듯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이에 강태우의 어깨를 가볍게 친 오지완은 굳은 결의가 담긴 어투로 나지막이 말했다.

“강 동무! 마음 굳건히 먹으라우! 지금까지 우리를 따르는 조원들을 생각해야지 안캈서? 태풍 16호! 이것만 성공하면 말이야. 우리는 외국 어디서든 떵떵거리면 살수 있서야. 지금부터 그것만 생각하라우”

“네, 오 대장 동지!”

“그럼 조원들 준비되었는지 확인해보라우”

“알겠슴메”

대답과 동시에 강태우는 각 방을 돌아다니며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자 앉아있던 사내들은 굵고 짧은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지완 대장 동지 모두 준비되었슴메”

“그래? 그럼 나가자우”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모텔을 나선 8명의 사내는 어디인지 모를 2번째 장소를 향해 은밀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걸어나갔다.

★ ★ ★

2023년 10월 28일 21:4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형제산구 신미동 어느 건물.

북으로는 순안 공군기지와 남으로는 평양 중심지가 펼쳐져 있는 신미동의 어느 낡은 4층 건물! 평양 역시 거대한 자본력에 하루가 다르게 재개발이 되면서 이곳 신미동의 낡은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곳곳에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이 건축되고 있었다. 이곳 4층 건물 역시 12월이면 철거와 동시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설 예정 장소이기도 했다.

철거까지 1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곳 낡은 건물치고는 내부 보안이 상당했다. 현관문은 지문인식은 물론 자체 스마트카드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었고 복도는 물론 건물 곳곳에 수십 개의 열화상 기능의 소형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상층으로 이동 시 동공 인식 절차와 각 층에서 대기 중인 보안 요원의 승인을 받아야만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밖에서 보자면 철거만 기다리는 낡은 건물이었지만, 실제 내부는 국가 정보기관의 비밀기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애들은 출발했네?”

4층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넓은 방에서 중저음의 북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네, 국장님! 조금 전 9시 30분발 KHT를 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40대 중반의 사내가 자연스러운 서울말로 대답했다.

“그렇쿠만! 지금부터는 조원진 동무에게 맡기고 자네는 더는 이곳에 오지 말라우. 꼬리가 길면 잡히지 안캈서?”

“네, 몇 가지 인수절차를 걸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했어야. 우리의 숙명이 성공한 후에 다시 보자우”

“네, 국장님!”

40대 중반의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가 3층으로 내려갔다.

‘내래, 그동안의 치욕을 확실하게 갚아주갔어······.’

국장이라 불리는 남성은 들리듯 말 듯 속삭이며 이를 갈았다. 통일 당시 정찰총국의 국장이란 이유만으로 다른 북의 관료들과는 다르게 비참하게 남과 북에 버려졌던 조명록이었다.

민족노동당 당 대표이자 상원의원인 김형원의 지원에 힘입어 다시금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조명록은 통일 대한민국 전체가 얼어붙을 칼바람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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