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0화 (330/605)

태풍 16호

2023년 10월 26일 03: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김여정 상원의원이 호텔로 돌아간 후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임종원 비서실장은 야심한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 소집을 건의했다.

이에 새벽 4시가 다가가는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에는 외교부 장관을 제외한 NSC 상임위원 10명이 회의실에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승인하에 임종원 비서실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금일 3시간 전, 청와대에 김여정 상원의원이 비밀리에 방문하여 중대한 얘기를 하고 가셨습니다.”

비서실장은 서두를 열며 상임위원 중 한 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주인공은 통일정책부 장관인 김영철이었다. 북한 비서국 총비서 출신으로 남과 북의 평화 통일에 이바지한 김영철은 추은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통일정책부 장관에 임명되어 지금까지 장관직을 무리 없이 수행 중이었다.

“음, 실장님 시선을 보니끼니, 북주와 연관된 얘기인 듯합네다?”

눈치 하나는 10단인 김영철은 비서실장의 시선에 곧바로 북주와 관련된 얘기라 직감했다.

“네, 맞습니다. 장관님!”

상임위원회 위원 중 유일하게 북주 출신으로 임종원 비서실장은 본론을 꺼내놓기 전 약간 마음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제가 듣기에 보안상 문제가 있다면 나가도록 하가습네다.”

“아닙니다. 김 장관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조금은 불편한 기색을 보인 김영철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임종원 비서실장이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추은희 대통령 역시 미소를 보이며 김영철 장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김 장관님이 오해하신 겁니다. 함께 문제를 풀어갑시다.”

“네, 대통령님! 알겠습니다.”

“하하, 제가 오해할 행동을 한 듯합니다. 김 장관님 사과드립니다. 단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 사안이 매우 중대하여 저도 모르게 그런 듯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네, 좋게 생각하겠습니다.”

“임 실장, 시작합니다.”

“네, 대통령님,”

작은 소동 아닌 소동이 지난 후 임종원 실장은 자세를 고쳐 잡고는 본론에 들어갔다.

“청와대에 방문한 김여정 상원의원은 민족노동당 당 대표 김형원 의원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북주 출신 정치인과 몇몇 관료들이 대통령님에 대한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제보하였습니다.”

상상도 못 할 비서실장의 말에 상임위원들은 저마다 갖가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영철 장관 역시 가느다란 실눈을 개구리 왕눈이 눈처럼 크게 뜨고는 충격에 빠진 듯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장성 출신답게 냉정함을 잃지 않은 강이식 장관이 가장 먼저 되물었다.

“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다음날 대통령님 외부 행사 때를 노린다고 합니다.”

“아니, 대체 이놈들은 뭐가 불만이고 부족하다고 이따위 짓을 꾸민단 말입니까? 지금 당장 이놈들을 국가전복내란죄로 죄다 체포해야지 않겠습니까?”

성격 급한 연방광역수사국의 강혁 국장이 얼굴이 뻘게진 채로 말했다.

“현재, 김여정 상원의원 말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도 없는 상태라······.”

대략적인 얘기를 알고 있는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지금 증거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일단 증인 확보했으면 무조건 잡아 들여야지요. 대통령님의 목숨이 달린 중대한 문제입니다. 국정원에서 못하겠다면 우리 기관에서 체포하겠습니다. 대통령님!”

강혁 국장은 팔까지 걷어붙이고는 성토했다.

“증거 하나 없이 증인만으로 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그리고 정부 관료들을 체포하겠다고요? 그 뒷감당은 어찌하려는 겁니까?”

“허! 참나, 이 원장님! 지금 뒷감당, 앞감당 생각할 때입니까? 좋습니다. 뒷감당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강 국장님이 책임진다고 해서 책임질 일도 아니고, 증거 하나 없는 상태에서 체포 먼저 했다가 자칫 정치사찰이네, 북주 출신 정치인에 대한 탄압이네 뭐네 문제가 커질 수 있어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어쨌든, 대통령님을 향한 암살계획은 무마시켜야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국정원에서는 24시간 감시체제니 뭐니 하면서 이 사달이 날 때까지 파악도 못 하고 대체 뭐한 겁니까?”

급소를 찌르는 강혁 국장의 지적에 이영진 원장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김여정이 말한 대로 대통령 암살계획이 사실이라면 24시간 감시체제로 전환하고도 사전에 파악을 못 했다는 것은 이영진 원장부터 옷을 벗어야 할 중대한 직무유기였다.

“지금 말 다 했습니까?”

“아니요. 이제 시작입니다. 강 실장님도 뭐라 말 좀 하세요.”

강혁 국장은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줄 지원자가 필요했는지 강현수 안보실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이윤연 국무총리의 말에 언쟁은 끝이 났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이윤연 국무총리는 양쪽을 번갈아 보며 야단치듯 말했다. 평소 조용한 성품으로 호통치듯 말하자 두 정보기관의 수장은 헛기침 몇 번을 하고는 조용했다.

“이거이, 아까 임 비서실장님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갑네다. 북주 출신으로서 정말 송구할 따름입네다.”

김영철 장관은 북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서는 왠지 죄인이 된 듯했다. 그리고 아까 임종원 비서실장이 왜 자신을 그렇게 쳐다봤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닙니다. 남과 북이 통일된 지 3년이 다 돼가는 마당에 출신 때문에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습니다.”

★ ★ ★

2023년 10월 26일 09:3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 민족노동당 당사.

“그랬단 말임둥?”

- 네, 청와대에서 1시간 정도 있다가 호텔로 돌아간 것을 확인했습네다.

“알았음둥! 계속 관찰하고 즉각 즉각 보고함둥”

- 네, 알겠습니다. 김형원 대표님.

대표실 소파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김형원 대표는 요새는 볼 수 없는 구식 핸드폰 덮개를 접고는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중년 사내가 말을 붙였다.

“대표 동지, 김여정이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남조선 일당에게 찾아갔습네까?”

“그렇다 함둥, 금일 새벽 1시에 비밀리에 청와대를 방문했다 함둥. 이후 청와대에서 긴급 NSC 회의가 소집되었다 함둥”

“그렇다면 그 김여정 이래 죄다 까발렸다는 얘기가 아닙네까?”

“그렇슴둥”

김형원이 작은 상자에서 시가렛 하나를 꺼내 들어 입에 물자 중년 사내는 신속하게 두 손으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표 동지 정말 대단하십네다. 어떻게 김여정이 배반할 것을 알았습네까?”

“딱 보면 모름둥? 김여정이 남조선 자유민주주의에 너무 물들어있음둥,”

“그렇습네까? 그 애미라이 그럴 줄 알았습네다. 어쨌든 원하는 대로 흘러가니끼니 이거이 슬슬 긴장이 됩네다.”

“뭐, 이런 것으로 긴장이 됨 둥? 앞으로 할 일이 많슴 둥. 그나저나 조명록이는 준비를 잘하고 있음둥?”

“걱정마시라요.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습네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국정원이나 연수국에서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입네다. 특히 연수국에는 우리 김형철이가 있지 않습네까? 중간에서 잘 막을 것입네다.”

“기렇다고 너무 안주하지 말람 둥, 계속해서리 신경 써야 함둥”

“네, 알갔습네다. 현재 제 구역인 서만주에서 잘 숨어 있습네다. 하하하”

김형원 옆에서 비열한 웃음과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중년 사내는 바로 서만주 주지사인 김춘원이었다. 김형원의 외조카이기도 한 김춘원은 통일 후 김형원의 후광 덕에 서만주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 ★ ★

2023년 10월 27일 20:30 (현지시각 15:30),

인도양 북위 18°33'49.08" 동경 66° 6'21.80" 해상(백범김구함(CV-001) 아일랜드 항공운용 함교).

지난 16일 강정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대한민국 해군 제12항모전단은 11일 동안 쉬지 않고 항해해 내일 오후면 목적지인 오만만 해역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6개월간 외부 지원 없이 자체 항해 및 임무 수행이 가능한 제12항모전단은 현재 백범김구함(CV-001)을 중심으로 호큘라 중순양함 3척이 삼각대형을 유지한 채 10노트 속도로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수심 100m에는 260급 슈퍼호큘라 잠수함 4척이 마름모꼴 대형으로 대잠 경계를 펼치며 항주해 나갔다.

백범김구함(CV-001)의 함미 부분 정중앙에 있는 아일랜드 2층 함교는 항공운용 함교로 함재기 이착함의 전반적인 감시 및 감독하는 곳으로 기함인 충무공이순신함(CG-1101)에서 헬기를 타고 온, 전단장 김기영 준장이 직접 내려와 본격적인 임무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함재기의 이착함을 비롯해 몇 가지 훈련을 시작하려 했다.

“제독님!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시작하게”

김기영 준장과 함께 항공운용 함교로 내려온 함장 나상선 대령이 훈련 시작을 보고한 후 Air Boss라 불리는 비행지휘관에게 사인을 보냈다.

3척의 중순양함이 조금씩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 방어형태로 전환하는 가운데 400m에 달하는 기다란 백범김구함(CV-001)의 함수 쪽 상부에 있는 2줄로 된 4개의 차폐문이 동시에 좌우로 갈라지며 열렸다.

그러자 컨로드에 연결된 인류 역사상 최초 무인전폭기 CUF/A-29NP 피닉스 8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수차례 무인전폭기 CUF/A-29NP 피닉스의 이착함 훈련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양으로 나와 훈련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후 비행지휘관의 최종 이함 명령이 떨어지자, 피닉스 하단에 연결되었던 컨로드가 분리되는 순간 피닉스의 강력한 하단 엔진 추진체에 힘입어 순간속도로 좌우 45도 각도로 수직 상승을 했고 고도 500m까지 도달하자 각자 가변익 주날개를 펴고는 앞으로 솟구치며 날아갔다.

피닉스 전폭기가 무인기이긴 하였지만, 백범김구함(CV-001)의 아일랜드 내부 항공운용실에서는 조종사이자 오퍼레이터들이 모니터링을 하였다. 즉, 무인전폭기가 인공지능에 의해 작전을 수행하지만, 언제든 오퍼레이터에 의해 수동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였고, 작전 위험도에 따라 실제 조종사가 피닉스에 탑승하여 조종도 할 수 있었다.

무인전폭기인 만큼, 조종사의 중력 제한의 영향을 받지 않은 피닉스의 비행 기동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서커스 이상의 멋진 기동능력을 보였다.

순식간에 백범김구함(CV-001)으로부터 100km까지 비행한 8기의 CUF/A-N29P 피닉스는 영화에서나 볼듯한 순간속도에서도 급격한 방향전환을 하는 고기동이라든지, 스포츠카처럼 최고속도에서 급브레이크로 몇 초 만에 멈추듯 마하 이상의 속도에서 시속 300km까지 순간적인 급 저속 비행기동이라든지, 반대로 제로백 하듯 순간속도로 마하 10까지 초고속 기동을 한다든지, 가변익 주익 날개를 시시각각 변형하며 아름다운 비행기동을 인도양 상공에서 마음껏 펼쳐 보였다.

이러한 장면들은 상공 25km에서 촬영하고 있는 CE-N91SP 공작 조기경보기가 영상을 백범김구함(CV-001)에 전송되고 있었다.

“제독님! 기동 훈련 종료합니다. 다음으로 2차 목표 타격 훈련에 들어가겠습니다.”

“알았네”

대형 스크린을 보며 훈련 전체를 통제하는 나상선 대령은 재차 김기영 단장에게 보고한 후 2차 훈련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한반도보다 적도에 가까운 상공에서 각가지 현란한 고기동을 펼쳐 보인 CUF/A-N29P 피닉스 8기는 가상의 해상 목표물을 설정하고 각자 무장한 여러 가지 미사일과 30mm 레이저 벌컨 사격 훈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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