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9화 (329/605)

태풍 16호

2023년 10월 20일 11: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접견실).

금일 새벽, 이란 국경선 일대 피스부대 전초기지에 이란군으로 보이는 무장세력의 공격에 대해 합참의장으로부터의 간략한 브리핑을 받은 추은희 대통령은 이란 정부에 강력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입원 중인 강경희 장관을 대신해 오진명 1차관은 즉시 주한 이란 대사인 밀라드 아가에이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였다.

“아가에이 대사, 정말 우리 대한민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밀라드 아가에이 이란 대사가 엉덩이가 소파에 닿기도 전에 오진명 1차관은 쏘아붙이듯 본론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앞뒤 다 자르고 대한민국과 전쟁을 원하다니요?”

이에 굳은 표정으로 접견실에 들어왔던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몰라서 묻습니까? 금일 새벽 이란 서부 국경선 일대에서 우리 파병부대인 피스부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이란이 말입니까?”

“허허, 그런 식으로 발뺌하려는 겁니까?”

“발뺌이 아니라,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오해요? 무슨 오해라는 겁니까?”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뻔뻔한 말을 늘어놓았다.

“저 역시 이곳에 오기 전 이란 정부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란 정부는 대한민국 파병부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아마도 IS 무장세력으로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어이없는 답변에 오진명 1차관은 회의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

“IS요? 허허, 기가 찹니다. 우리가 IS인지 이란군인지 구분도 못 하겠습니까?”

“그럼 우리 이란군이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증거요? 그곳은 IS 무장세력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은 모두 최신예 개인화기와 장신구였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계속해서 떳떳하다는 듯 당당하게 되물었다.

“그것뿐이라니요? 그것만으로도 이란군으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정부로부터 통보를 받기로는 그 무장세력 시신에서 IS기가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엷은 미소와 함께 한껏 여유를 부리는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급기야 양팔까지 벌리며 말했다.

사실 그랬다. 교전이 끝난 후 전초기지를 공격하려던 무장세력의 시신에서는 검은 바탕의 하얀 글씨가 써진 IS기 여러 개가 발견되었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잠시나마 IS 무장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나머지 개인화기와 공용화기 그리고 시신들이 착용하고 있던 각가지 장신구를 봤을 때, IS기는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려는 위장술일 뿐, 이란군이 분명하며 더군다나 특수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로 판단했다.

“IS기를 말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오진명 1차관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를 쏘아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IS기가 나온 걸 어떻게 이란 정부가 그 짧은 시간에 알아냈을까요? 그 사실은 우리 피스부대에서만 확인한 사실인데 말입니다.”

“그, 그거야. 우리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그 정도 정보는 우, 우리 정부도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순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무슨 수로요? 러시아에서 지원한 드론으로 말입니까?”

“그, 그렇소.”

“아! 드론으로 정찰을 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당시 하늘을 달던 드론은 우리 정찰 드론 빼고는 탐지가 안 되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레이더에도 탐지되지 않은 러시아제 드론이 있는가 봅니다?”

처음, 무표정에 여유로움을 보였던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어느새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러시아 드론이 무조건 한국군 레이더에 걸리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어쨌든 이란 정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말이지요?”

“두말이면 잔소리지요.”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관이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똑똑!

“차관님! 청와대로부터 긴급 연락입니다. 차관님!”

“알았네”

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이에 오진명 1차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에게 양해의 말을 남기고 접견실에서 나갔다.

‘이거, 뭔가 꼬여가는 듯한데’

오진명 1차관이 나가고 기다리는 동안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의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불길한 생각은 몇 분 후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쿠앙!

“뭐, 뭡니까?”

부서지듯 열린 접견실 출입구에는 오진명 1차관이 두 눈을 부라리며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를 쏘아봤다. 그리고는 이내 접견실이 떠나갈 정도의 큰소리를 냈다.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 이시간부로 우리 대한민국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가할 것이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되물었다.

“러시아와 모종의 계략으로 우리 강경희 장관을 테러로 위장한 암살! 또한, 금일 새벽 우리 피스부대를 공격한 부대는 이란 혁명특전대, 계속해서 IS 짓이라고 거짓말을 할 것이오?”

“무슨 근거로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것이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밀라드 아가에이 대사는 끝까지 우겼다.

“허무맹랑한 말? 허허, SVR 중동본부 총책임자 루슬란 니그마툴린을 아시겠죠?”

“그, 그 사람이 누굽니까? 그 사람이 누군데 어쨌다는 겁니까?”

“이란 정부는 아직도 루슬란 니그마툴린이 우리 정부 손에 있는지 모르는가 봅니다?”

“네?”

몇 분 전, 청와대로부터 온 연락은 이랬다. 금일 새벽 테헤란 주이란 러시아 대사관에 침투한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 소속 이자성 과장 일행은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을 납치해 무사히 대사관을 빠져나와 외곽 안전가옥으로 이동했다. 이후 약물을 사용해 루슬란 니그마툴린으로부터 몇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강경희 장관의 이란 방문 당시 이란 정부의 묵인하에 러시아가 주도하여 암살 테러를 일으켰다는 사실과 금일 새벽, IS 테러집단으로 위장한 혁명특전대가 피스부대의 북서쪽 전초기지를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경희 장관의 암살 테러 사건의 목적과 배후가 밝혀졌고 이와 직접 관여된 러시아와 이란의 한국 주재 각국 대사에 대한 추방조치는 물론 양국 정부로부터 정식 사과와 함께 관련자 처벌과 합당한 답변을 요구했다. 만약 정식 사과와 관련자 처벌, 그리고 합당한 답변이 없을 시 전쟁 도발로 간주하여 국가적 군사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강력한 항의 서안을 전달했다.

★ ★ ★

2023년 10월 26일 00: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항의 서한이 보내지고 5일째인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은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 하원국회에 전쟁 동의안을 제출만 하지 않았을 뿐, 국방부는 대통령의 재가하에 전군에 데프콘 2를 비밀리에 발령한 상태였다.

자국을 방문한 타국의 외교부 장관을 암살하는 짓은 과거 역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있어선 안 될 국가 간 금기이자 중대사안이었다. 이러한 국가 간의 금기를 건드린 러시아와 이란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어떠한 행동을 보여야만 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합동참모본부의 수뇌부가 참석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를 매일 소집하여 두 국가에 대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해 나갔다.

금일 역시 밤늦게까지 NSC 회의를 마치고 관저로 돌아와 잠을 청했던 추은희 대통령은 임종원 비서실장 긴급 전화를 받고 청와대 집무실로 향했다.

ACS로부터 24시간 감시대상인 김여정 상원의원이 금주 상원국회 본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머물다 자정이 넘은 시간 자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감청을 이용해 대통령과의 면담 요청을 알렸다. 이에 ACS 요원들은 김여정 의사에 대해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지금 ACS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비밀리에 청와대로 오고 있다는 임종원 비서실장의 전화 내용이었다.

이에 무거운 마음으로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추은희 대통령은 비서관으로부터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잠시 후 임종원 비서실장과 함께 김여정 상원의원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대통령님!”

“네, 잘 지냈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추은희 대통령은 맞은편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김여정 상원의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들어와 주위를 살피는 김여정 상원의원의 모습은 심적으로 매우 불안하다는 것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이를 눈치챈 추은희 대통령은 차분히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런 시간에 면담을 요청했습니까?”

“큰일 났습니다. 대통령님!”

대뜸 큰일이 났다는 김여정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임종원 비서실장이 물었다.

“의원님! 큰일이라니요?”

“일부 북한 출신 정치인들이 대통령님에 대한 암살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투른 서울말씨로 김여정은 천지가 진동할 얘기를 내뱉었다.

“대통령님을 말입니까?”

암살 대상인 추은희 대통령보다 비서실장이 까무러치듯 놀라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대체 누가 말입니까?”

“민족노동당 출신의 의원과 몇몇 정부 관료들입니다.”

“김형원과 그 일당들입니까?”

임종원 비서실장의 말에 김여정 상원의원이 되물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대통령님 암살 건은 모르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이 깨어난 후 김형원을 중심으로 북한 출신 의원과 관료 여럿이 잦은 회동을 하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사람들도 정보기관에서 24시간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감시 대상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마도 정보기관 내에도 첩자들이 있을 듯합니다.”

“그거, 곤란하게 되었군요. 그것보다 대통령님에 대한 암살계획은 어떤 건가요? 상세한 내용을 알고 있나요?”

암살계획의 당사자인 추은희 대통령은 둘의 대화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대통령님에 대한 암살계획은 ‘태풍 16호’라는 작전명으로 불리며 예전 정찰총국장 출신이었던 조명록이 암살계획을 설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암살계획의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알 수 없으나 다음 달 대통령님의 외부 행사 중 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다음 달 외부 행사 중 하나라······.”

임종원 비서실장은 말끝을 흐리며 다음 달 있을 외부 행사에 대해 생각했다.

“대통령님! 11월에 외부 행사는 총 3개입니다. 모두 취소를 해야겠습니다.”

“그건, 생각해 봅시다. 그보다, 김 의원님!”

“네, 대통령님!”

“김 의원님은 이러한 사실을 왜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가요?”

대통령의 질문에 김여정 상원의원은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남북통일이 되고 3년이 흐르는 동안 저는 참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 추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비록 한때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었고 그 권력의 한 축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예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로 다시는 돌아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통일 후 3년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며 나름대로 생각하고 깨달은 정치 이념에 대해 김여정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거짓 없는 그녀의 진정성 있는 말에 잠시 의심을 가졌던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김 의원님의 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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