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6화 (326/605)

모래바람

2023년 10월 16일 17:00 (이란시각 11:30),

이란 테헤란 2지구 국가정보원 이란지부 안전가옥.

어제 오후, 이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을 도착하여 7번 고속도로를 타고 테헤란으로 이동하던 강경희 장관 일행에 대한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이란 TV에서는 IS 조직의 소행일 수 있다는 뉴스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든 방송국에서 방송되고 있었다. 왠지 IS 조직의 소행이길 바라는듯한 뉘앙스가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뉴스를 보며 금일 아침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의 호텔 방에 잠입한 오석진 대리와 박원호 대리는 한참 수색을 하던 중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마치고 들어온 거구의 SVR(대외정보국) 요원을 제압하고는 몇 가지 정보를 캐냈다.

약물로 인해 거구의 사내는 알고 있던 엄청난 사실을 실토했다. 생각 이상의 성과였으나 그 사실을 뒷받침할 크로스 체킹이 필요했다. 어쨌든 러시아 사내를 심장마비로 위장시키고 호텔 방에서 빠져나온 후 이자성 과장과 함께 안전가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구의 러시아 요원으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가지고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이에 이란 외무성 관료들을 감시하던 박기웅 팀장도 안전가옥에 복귀했다.

“일단 본국에 보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긴급 호출로 안전가옥에 복귀한 박기웅 팀장이 서두를 열었다.

“그렇긴 한데 말이야. 이런 중대한 정보일수록 최대한 정확하고 확실하게 확인하고 보고를 해야 해! 혹, 그 러시아 놈이 거짓 정보를 흘렸다면 우리는 그놈들 손에 놀아나는 꼴일 뿐만 아니라 자치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의 전쟁 시발점이 될 수 있어!”

이자성 과장은 중대한 사안일수록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러시아 요원으로부터 알아낸 정보는 이랬다.

중동본부 SVR(대외정보국)은 이란 외무성으로부터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테헤란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대한민국과 이란 간의 외교적 마찰은 물론 중동에서의 전쟁 확산을 위한 테러 계획을 세웠고, 이란에 제공한 러시아 무기 중 유일하게 보안상 문제로 러시아 조종수가 직접 조종하는 Su-57 파크파 전투기를 선택했다.

강경희 장관이 이암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7번 고속도로를 타고 테헤란으로 이동하는 그때 잔잔 공군기지에서는 훈련 비행을 이유로 출격한 Su-57 파크파 전투기 1기가 이란 대공 레이더를 피해 테헤란 쪽으로 비행한 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번 러시아의 테러 계획은 이란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의 묵인하에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러시아가 Su-57 파크파 전투기를 선택한 이유는 스텔스 기능으로 이란 레이더망에도 탐지되지도 않아 이란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기가 순조로웠고 가공할 공대지미사일 공격에 실패할 확률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X-10 약물로 실토한 얘기가 거짓이겠습니까? 과장님 말대로 중대한 정보이니 바로 보고하는 것이······.”

이자성 과장의 말에도 박기웅 팀장은 보고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박 팀장! 러시아 요원의 정보를 뒷받침할 새로운 정보를 찾아보고 보고해도 늦지 않아.”

“음, 알겠습니다. 과장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과감한 작전을 펼쳐야겠어.”

“과감한 작전요?”

“그래, 루슬란 니그마툴린 그놈 입에서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지”

“그럼, 납치입니까?”

“맞아!”

이자성 과장이 짧게 대답하자 박기웅 팀장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하하, 과장님,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잖아요. 그 임무는 우리 팀에서 진행하겠습니다.”

박기웅 팀장은 진작부터 중동본부의 총책임자인 루슬란 니그마툴린을 납치하여 정보를 취득하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고 매번 의견을 내세웠었다.

“좋아! 그럼 니그마툴린 본부장에 대한 납치 임무는 1팀에서 추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러시아 놈들도 자기 요원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것에 뭔가 수상하게 생각할 거야. 내부 조사를 하거나 경계가 강화되었을 거야.”

“걱정마십쇼. 제 머릿속에는 미리부터 모든 작전을 짜 논 상태입니다. 하하하”

박기웅 팀장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털털한 웃음을 보였다.

★ ★ ★

2023년 10월 18일 18: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의료센터.

이란 테헤란에서 CFS/A-31SP 삼족오 우주 전투기에 호송되어 1시간 만에 국립중앙의료센터에 도착한 강경희 장관과 직원 5명은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에 의해 곧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당시 장관 관용차는 가공할 폭발위력에 수 미터나 날아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장관 관용차는 방탄차량으로 기본적인 안전벨트와 에어백 외에도 안전장치가 하나 더 있었다. 충돌이나 폭발사고 시 차량 내부에 액체형 거품이 일어나 순간 속도로 굳어져 스펀지와 같은 형태로 변해 충격완화와 화재를 막아주는 ASD(Absorption safety device)였다.

만약 일반 차였다면 시신은 물론 차량 골격조차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첨단 안전장치 기술 덕분에 관용차에 탔던 강경희 장관과 수석비서관, 그리고 운전했던 경호원은 대체로 가벼운 치료를 받고 입원실로 옮겨졌다.

한편 ASD 기능이 없던 일반 경호차에서 살아남은 경호원 3명은 하늘이 살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너무나 넓은 범위에 화상을 입어 장장 14시간 동안 피부재생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현재 액체 캡슐로 옮겨졌다.

3일 만에 강경희 장관의 면회가 허용되자 추은희 대통령은 직접 국립중앙의료센터를 방문하여 먼저 상태가 심각했던 경호원 3명에 대해 김국진 교수의 브리핑을 들었다.

전신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었지만, 첨단 의료기술 발달로 6개월 정도 액체 캡슐에서 생활하면 대부분은 피부가 재생할 것이고 약간의 흉터만 남을 것이라는 이국진 교수의 설명이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부디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써 주세요.”

유리벽 넘어 액체 캡슐에 들어가 있는 3명의 외교부 소속의 경호원들을 보며 추은희 대통령이 말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그럼, 강 장관 있는 곳으로 갑시다.”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후송 후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강경희 장관의 특실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대통령이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강경희 장관이 상체를 일으켜 일어나려 했다. 이에 대통령이 다가가 만류했다.

“강 장관님! 일어나지 마세요. 그대로 누워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대통령님!”

“명령입니다. 그냥 누워 계세요.”

“그럼 침대 시트라도 올려주세요.”

강경희 장관의 말에 외교부에서 파견 나온 비서관이 즉시 침대를 조작하여 상체 쪽 시트를 올렸다.

“얼마나 놀라셨나요?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듣기론 경호원 3명의 상태가 안 좋다는데 그 사람들이 걱정입니다.”

강경희 장관은 자신보다 경호원 걱정이 더 앞섰다. 이에 대통령은 강경희 장관의 손을 잡고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피부재생 수술이 잘됐다고 합니다. 그러니 강 장관님은 자신의 회복만 걱정하세요.”

“정말입니까? 다행입니다.”

★ ★ ★

2023년 10월 17일 17:00 (이란시각 11:30),

이란 테헤란 12지구 라틀리 호텔(503호실).

전날 503호를 지키고 있던 요원 한 명이 차디찬 시체로 발견되면서 테헤란에 파견 온 SVR(대외정보국)은 발칵 뒤집혔다. 호텔을 나서기 전까지 멀쩡하던 2m에 달하는 거구의 요원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의사의 1차 사망진단 설명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머릿속에 감돌았다.

이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사망한 요원을 러시아 본국으로 호송시켜 사망 진위를 정확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내부 침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를 잡기 위해 정밀은 물론 호텔에서 운영하는 CC카메라도 모두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호텔 직원은 물론 이란 경찰까지 503호실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고 SVR(대외정보국) 요원들이 각종 장비를 가지고 침투 흔적을 찾기 위해 곳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거 하나 놓치지 말고 정밀하게 조사하도록”

소파에 앉아 시가렛의 연기를 뿜으며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지시를 내렸다.

미국의 CIA와 더불어 정보기관으로써 유명한 SVR(대외정보국) 요원들은 각자 첨단장비를 가지고 지문부터 머리카락 하나까지 찾아내고자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호텔 방에서는 외부인의 침투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CC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확인하던 중 5층에 설치된 CC 카메라 전체가 30초 정도 먹통이 되어 녹화된 영상이 끊겼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를 유추하기엔 부족했다.

이러한 결과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너무 민감하게 반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간 정보기관에서 뼈를 묻었던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남다른 예감으로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예감이 빗나가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예감은 적중했으나 그의 예감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이동한다.”

잠시 후 요원들이 각자 짐을 가방에 싸매고는 호텔을 나설 준비를 했다. 중요한 임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또한, 불길하게 요원 한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기에 다른 호텔로 옮기기로 한 것이었다.

★ ★ ★

2023년 10월 19일 10:00,

북주 함경도 원산시 갈마별장.

아침 식사를 마친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은 다른 날과 다르게 오늘은 평소 즐겨 입었던 카키색 재킷과 코트를 입고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민족노동당 창당 기념일 행사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은 이곳에서 한 달 이상 생활하면서 외출은 처음이었고 공식 행사 참석 역시 처음이었다. 이에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매체들은 갈마별장를 포위하듯 몰려 들은 상태였다.

잠시 후 김정은을 태운 관용차가 갈마별장의 현관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자 방송국 카메라는 물론 수많은 기자의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전 약속에 따라 포토존에서 잠시 인사말을 건네기로 했으나 김정은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비서관에게 귀찮은 듯 지시를 내렸다.

“그냥 가자우!”

“네? 포토존에서 잠시 기자들과······.”

“내가 원숭이네? 일 없어야! 그냥 가자우”

“알겠습니다.”

비서관은 대답과 동시에 운전사에게 신호를 보냈고 관용차는 현관을 통과한 후 그대로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에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기자와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멀어져가는 관용차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마다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돼지 새끼! 아직도 자기가 예전 왕인 줄 아는군”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 관심 두는 걸 고맙게 생각은 못 할망정······.”

“아침부터 헛걸음했군. 가자고”

한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김정은을 카메라에 담고자 새벽부터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수많은 기자와 방송국 관계자들의 한마디씩 던지고는 민족노동당 창설 기념일 행상 장소로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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