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5화 (325/605)

모래바람

2023년 10월 16일 13:30 (이란시각 08:00),

이란 테헤란 12지구 라틀리 호텔 주변.

전날, 신속한 조치로 강경희 외교부 장관과 수석비서관 그리고 여러 경호원을 구출해 본국으로 후송시킨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 1과 요원들은 사건 진위를 조사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란 정부에 이번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서한을 보낸 상태였지만 대외정보국 1과는 그것과는 별개로 자체적인 조사에 이미 들어갔다.

이에 박기웅 팀장과 팀원 3명은 이란 관료들에 대한 정보수집에 들어갔고 이자성 과장은 러시아 중동본부 총책임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의 뒤를 밟았다.

이번 테러 사건에 러시아가 깊이 관여했거나 아니면 주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본국에 보고했다가 괜히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보고서에 내용을 뺐었다. 이에 증거 확보를 위해 이자성 과장은 직접 팀원들과 함께 루슬란 니그마툴린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감시에 집중했다.

현재까지의 정황상 저번 전술핵 기습 사건 후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이란 최고 지도자와 면담을 했다는 것과 어제 테러 사건이 터졌을 당시 테헤란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중동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총책임자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 테헤란에 방문하는 데 없었다는 건 매우 수상한 부분이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과연 이란 최고 지도자인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와의 면담 당시 어떠한 얘기가 오갔는지와 어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하여 실마리를 풀고자 했다.

어제 테러 사건의 영향인지 테헤란 도심 경계가 강화되면서 시내 곳곳에는 개인화기를 든 무장경찰들이 눈에 띄게 보였다.

오늘도 아랍 전통의상을 입고 라틀리 호텔 앞 검은 밴에서 잠입 대기 중이던 이자성 과장과 윤호현 주임은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나오기만을 마냥 기다렸다.

잠시 후 8시 30분이 되자 호텔 로비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3명의 보좌관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로비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오석진 대리가 무음성 통신으로 알려왔다.

- 백곰 하나 백곰 새끼 셋 로비 출현!

“좋아! 오 대리는 10분 후 백곰 보금자리 확실히 털도록 해! 몸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자성 과장은 팀원에게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머무는 호텔 방 조사를 지시했다.

잠시 후 로비를 통과한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 일행은 2대의 검은 승용차에 몸을 싣고는 호텔 현관을 빠져나갔다.

“나와 윤 주임과는 백곰을 따라간다.”

- 네, 조심하십쇼.

“가자! 윤 주임”

“네”

이자성 과장의 지시에 윤호현 주임은 시동을 켜고는 조심스럽게 검은 승용차 뒤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자성 과장은 VR-M2 광학기기로 검은 승용차 2대의 내부를 확인하면서 강력한 감청전파를 쏘며 감청 시도에 들어갔다. 혹, 자기들끼리의 대화 내용이나 전화 통화 시 뭔가 단서를 알아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로비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10분이 지나길 기다리던 오석진 대리와 박원호 대리는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일어났다. 그리고는 호텔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TCS 모드를 활성화한 후 복도를 걸어갔다. 몇 개의 방문을 지나치고 두 요원은 503호실 앞에 섰다. 바로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머무는 방이었다.

“하나, 둘 카메라는 두 개뿐이군”

좌우 복도를 확인하자 503호실 쪽을 비추고 있는 CC카메라는 2대였다. 카메라 수까지 확인한 후 503호실 내부를 실드 글라스를 통해 투시하여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에 오석진 대리가 왼쪽 팔목에 장착된 X-C01 단말기를 조작하자 강력한 전파가 복도 전체에 휩쓸었고 이에 CC카메라가 먹통이 되었다. 그 순간, 박원호 대리가 신속하게 만능 스마트 키를 이용해 출입문을 열었다.

신속하게 503호실로 들어온 두 요원은 생각보다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에 놀라고 말았다. 특실에 맞게 거실은 엄청나게 컸고 온통 아라비아 스타일의 실내 장식으로 꾸며진 호텔 방이었다.

“이 자식 엄청 좋은 데서 지내는군.”

TCS 모드를 OFF하고 주위를 둘러본 박원호 대리가 중얼거리자 곧바로 조사에 들어간 오석진 대리가 갈구듯 말했다.

“야! 시간 없어 마! 단서 못 찾으면 나중에 이 과장님한테 깨진다. 샅샅이 뒤져라”

“아! 오 대리님! 너무 빡빡하셔.”

1기 후배인 박원호 대리는 투덜거리며 침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한참 침대부터 샅샅이 뒤지는 가운데, 호텔 방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쉿! TCS 모드로”

순간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각자 방에서 뒤지고 있던 오석진 대리와 박원호 대리는 신속하게 TCS 모드를 활성화하고 벽에 붙었다.

- 대체 어떤 놈이 이 시간에 들어올까요?

무음성 통신으로 침실 벽에 바짝 붙은 박원호 주임이 물었다.

“낸들 아냐?”

오석진 대리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내밀어 방금 503호실에 들어온 사람의 정체를 살폈다.

2m에 달하는 거구의 러시아 사내였다. 이 사내는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뭐야? 저거!”

- 제가 해결할게요. 오 대리님!”

박원호 대리도 들어온 사내를 확인했는지 무음성 통신으로 알려왔다.

“잠깐, 괜히 건드릴 필요 있나? 우린 조용히 조사하고 빠져나가야지 않겠어?”

- 지금까지 다 뒤졌는데도 뭐 나온 거 없잖습니까? 그냥 저거 족쳐서 알아내시죠?

“음,”

박원호 대리의 말에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오석진 대리가 말했다.

“좋아! 네 말대로 하자!”

- 오케이!”

★ ★ ★

2023년 10월 16일 16:00,

남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2023년 2월 대한민국 최초 항공모함인 백범김구함((CV-001)이 취역하면서 해군작전사령부의 직할 부대로 제12항모전단이 창설되었다. 기지는 제7기동전단과 함께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총 50만 톤에 가까운 해군 수상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중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15만 톤의 항공모함인 백범김구함(CV-001)에 각종 물자가 운반용 소형 트레이너 차량에 실려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2021년 동북아 전쟁 당시 30%에 달하는 해군전력이 손실된 상황에서 2여 년간 전력 복구 작업을 통해 침몰 및 완파된 구축함과 호위함은 새롭게 건조를 시작하여 차례대로 재취역에 들어갔다. 이외 반파된 구축함과 호위함은 한층 더 진보된 기술로 수리하여 재취역 하였다.

현 최강의 중순양함 충무공이순신함급에는 2번함 박열함(CG-1102)과 3번함 손병희함(CG-1103)이 취역했다. 또한, 4번함 차리석함(CG-1105)과 5번함 강우규함((CG-1106)은 12월에 진수할 예정이었다.

한편, 남해해전에서 침몰한 잠수함 윤봉길함(SS-077)과 일본 핵잠수함에 침몰한 홍범도함(SS-079)의 함명은 260급 슈퍼호큘라 잠수함의 3번함과 4번함으로 승계받아 취역하게 되었다.

이로써 제12항모전단 구성은 항공모함인 백범김구함(CV-001)을 중심으로 호큘라 중순양함인 충무공이순신함(CG-1101), 박열함(CG-1102), 손병희함(CG-1103) 3척과 260급 슈퍼호큘라 잠수함인 이회영함(SSP-091), 최준함(SSP-092), 윤봉길함(SSP-093), 홍범도함(SSP-094)으로 편제되었다.

한때 10개의 항모전단을 운영했던 미국 항모전단의 편제와는 사뭇 달랐다. 항공모함 1척에 대공 방어 구축함 6~8척 그리고 핵잠수함 3~4척이었던 편제와는 다르게 항공모함 1척에 중순양함 3척, 그리고 슈퍼호큘라 잠수함 4척이었다. 일각에서는 항공모함전단의 편제구성이 약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독도해전 당시 충무공이순신함(CG-1101) 1척만으로도 일본 해상자위군 1개 호위대군과 1개 항모전단을 격파했다.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춘 호큘라 중순양함 3척이면 충분히 백범김구함(CV-001)의 대공, 대함, 대잠 방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현시대 최고의 과학기술로 건조한 슈퍼호큘라 잠수함인 260급 잠수함 4척이 추가 편제되면서 그러한 염려와 불신은 사라졌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첫 항모전단인 제12항모전단은 웬만한 국가의 해군력과 맞먹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전쟁 발발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대양해군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제12항모전단이 창설된 후 6개월간 기본 운용능력 테스트 및 훈련을 해온 승조원과 가족들은 오전 조촐한 송별식을 마치고 지금은 각종 물자 선적 작업에 열중했다.

2일 전,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는 피스부대 추가 파병 필요성에 대한 안건과 관련하여 국방부는 추가 육상 파병부대보다 현재 운용 테스트 훈련 중인 제12항모전단을 오만만에 파견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란의 남쪽 지역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육상 전력보다 항공 전력과 해상 전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제12항모전단이 그 조건에 딱 맞았다.

항공모함 백범김구함(CV-001)의 함재기에는 제공과 지상 폭격 임무가 가능한 가변익이자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무인전폭기 CUF/A-29NP 피닉스 48기와 함재기용 CB-N31P 청룡 전략폭격기 2기를 운용 중이며 이외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20기와 CP-N92SP 수룡 해상초계기 2기, CE-N91SP 공작 조기경보기 2기를 운용했다. 또한, 해병대의 차세대 기갑대대 1개 병력을 완전무장한 상태로 수송도 가능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일반 항공모함처럼 갑판 위에 함재기가 줄을 지어 이함해 있는 것이 아닌 내부 격납고에 착함한 상태로 양쪽 각기 4개의 차폐문의 개방에 따라 이함과 1개의 중앙 상단 차폐문으로 착함을 하는 보호형 항공모함으로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함재기 안전이 가능했다. 이런 설계로 인해 백범김구함(CV-001)의 외형은 기존 알고 있던 항공모함의 외형과 매우 다른 고정관념을 탈피한 미래형 우주선과 같은 형태를 보였다. 이외에도 대공, 대함, 대잠 공격에 대응할 무수히 많은 자체 무장이 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공군 전력을 쿠르디스탄에 파병할 수도 있었지만, 한반도 환경과 다른 척박한 중동 환경에 민감한 첨단 장비는 지속적인 정비가 필요했다. 단기간 정비시설과 정비부대를 통째로 쿠르디스탄으로 파병하는 것은 육군 외 파병경험이 없던 공군으로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항공모함은 달랐다. 함 내부에 자체 정비가 가능한 정비시설과 정비 승조원이 항상 상주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정비가 가능했다. 또한, 이란 서부 국경선 일대에 집중하는 이란 군사력을 오만만 남쪽으로 분산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6개월간의 운용 훈련을 마치고 실전에 투입함으로써 승조원들의 능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합동참모본부의 의견을 수렴한 국방부 장관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제12항모전단 파병을 제안했다.

똑똑!

해군기지 본관 3층 해군기지장의 출입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단결! 방금 항모전단 선적 작업이 모두 끝났다는 보고입니다.”

중령 계급을 단 비서관이 거수경례와 함께 전달 사항을 보고했다.

“하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가 봅니다. 기지장님”

제7기동전단장에서 소장 승진 후 이곳 강정 해군기지장으로 발령받은 안형우 소장과 얘기를 나누던 김기영 준장이 손목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김기영 준장 역시 제72기동전대장에 있다가 준장 승진 후 대한민국 첫 항모전단의 전단장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게 말이야. 예전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군”

두 제독은 지난 동북아 전쟁 당시 남해 대해전을 주제로 한창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부디 몸조심하고 우리 아이들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주게”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지장님,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단결!”

말끔한 제복 차림으로 기지장실을 빠져나온 김기영 준장은 본관 2층 자신의 단장실로 이동하여 출항과 관련하여 여러 함장과 보좌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제12항모전단의 기함인 충무공이순신함(CG-1101)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나갔다. 이에 안형우 기지장을 비롯해 해군기지 장교부터 장병까지 모두 나와 떠나는 이들에 힘을 실어줬다.

함성과 박수 소리에 거수경례로 답한 김기형 준장은 참모진과 함께 충무공이순신함(CG-1101)에 승선했다. 그리고 출항을 알리는 웅장한 뱃고동 소리가 강정 해군기지 전체에 울렸다.

훈련이 아닌 실제 작전을 위해 출항하는 제12항모전단의 각종 수상함은 예인선의 도움을 받으며 서서히 강정 해군기지의 방파제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13,000km에 달하는 긴 항해를 시작하는 제12항모전단은 서서히 삼각 대형을 갖추며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수심 100m에는 260급 슈퍼호큘라 잠수함 4척이 앞뒤에서 잠항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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