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2023년 10월 10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전날 대외정보국 요원과 ADD 기술자들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이 대통령 집무실 스크린에 비치고 있었다. 대외정보국 박기웅 대리가 실드 글라스에 달린 소형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 내용은 이랬다. 대외정보국 요원과 ADD 기술자들이 수송 트럭에 올라탔고 이내 검은 상자의 덮개를 오픈하자 안에는 금속용 포장지로 감싼 각가지 전술핵 무기들이 들어있었다. 155mm 자주포용 핵포탄부터 각종 항공기 투하용 핵폭탄 등, 적어도 3가지 이상의 투발 수단 전술핵 무기였다. 그리고 ADD 기술자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기폭제를 차례대로 제거하는 영상이었다.
잠시 후 영상은 끝이 났고 추은희 대통령이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수고라 할 게 있겠습니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대통령님”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닙니다. 어젯밤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오늘 실제 영상을 보니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특히 공격헬기인가요?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긴 합니다. 공격헬기의 출현은 저희도 사실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국방부 강이식 장관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영상과 보고서를 보자면 저 공격헬기는 러시아의 최신형인 Mi-28UB 하보크 공격헬기입니다. 10일 전, 해외정찰국에서 보고한 내용에도 있는 공격헬기입니다. 이란이 도입한 지 10일 만에 실전에 바로 투입했다는 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이란 혁명 수비대의 인수 절차가 빠르다고 보입니다.”
“그렇군요. 러시아가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도가 지나친 행보를 보여 큰일입니다.”
추은희 대통령 역시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은 시간 문제라 봅니다.”
다시 한번 강이식 장관이 대답했고 이어 강경희 장관이 해결과 관련된 의견을 냈다.
“러시아가 전술핵를 비롯해 최신예 무기들을 자국의 무기 안보와 상관없이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이란에 제공한 것에 대해 이제는 러시아와 이란에 정식으로 외교적 접근을 해야지 않아 생각이 듭니다.”
“외교적으로 말입니까? 의심하지 않을까요? 이번 전술핵 공격이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것을요.”
대통령의 질문에 강경희 장관이 말을 이어갔다.
“의심을 넘어, 우리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했다는 증거를 확보한다 해도 공식적인 항의를 할 수 없습니다. 전술핵 자체를 비핵산금지 조약에 가입한 이란에 제공한 것은 중대한 불법입니다.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제재를 받을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님께서 생각하는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 보다, 러시아가 무기를 제공하고 부추겨 이란이 쿠르디스탄을 공격해 우리 파병부대까지 확전에 휘말리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장관 말이 맞습니다. 동북아 전쟁이 끝난 지 2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외교적으로 풀 수 있다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다시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참전시킬 순 없습니다.”
지난 동북아 전쟁 당시 합참의장으로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당사자로서 전쟁 후 한동안 자책감에 힘들어했다. 이에 강이식 장관은 또다시 대한민국 젊은이를 전쟁에 참전시키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외교적으로 풀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강경희 장관을 걱정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러시아와는 홋카이도 건으로 외교단절 수준에 이르는 상황이었고 지난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지지 후 이란과도 외교적 교류가 끊긴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터키 정부가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과 관련하여 이란에 외교적으로 손을 쓰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제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두 국가에 연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전쟁보다는 외교적으로 평화롭게 푸는 것이 우선이지요. 부탁드립니다. 강 장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강경희 장관 말대로 러시아와 이란은 이번 전술핵 기습 공격 배후에 대한민국이라는 증거를 잡더라도 국제사회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도리어 국제사회로부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불법행위였다.
결과적으로 엉키고 설킨 3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첫 번째 모래바람은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건 전초에 불과했고 중동에는 무서운 사막 폭풍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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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5일 19:30 (이란시각 14:00),
이란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
5일 전, 러시아와 이란에 외교적 연락을 취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끝내 대한민국과의 외교적 연락에 대해 정식으로 거부 의사를 표했고 이란 같은 경우 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강경희 장관의 이란 방문이 성사되었다.
일각에서는 치안이 불안한 이란에 강경희 장관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위험하니 제3국에서 양국 간의 회담을 해야지 않느냐라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경희 장관은 이럴 때일수록 직접 방문하여 평화적인 교섭을 성사시키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후에 외교부의 특별전용기 CS-300P를 타고 4시간 만에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 도착한 강경희 장관은 약식의 환영식을 갖고는 이내 싣고 온 장관 전용차에 옮겨 타고는 테헤란 도심으로 이동하기 위해 7번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외교부 경호 차량 2대와 이란 정부에서 파견된 경호 차량 2대가 강경희 장관의 전용차 앞뒤에서 달리며 경호에 들어갔다.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테헤란 도심까지는 30km로 7번 고속도로의 2차선을 따라 5대의 차량은 방문 즉시 이란 외무부 장관인 알리레자 하기기와의 회담일정이 잡혀있었기에 다른 일반 차량보다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한편, 전술핵 기폭장치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 요원 중 3과는 ADD 기술자와 함께 대한민국으로 돌아갔고 1과는 계속해서 테헤란에 남아 정보수집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비밀리에 경호를 위해 7번 고속도로 갓길 곳곳에서 TCS 모드를 활성화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녹지보다는 척박한 사막으로 이뤄진 주변 경치가 창문 사이로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가운데 강경희 장관은 대통령에게 직접 테헤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방금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현재 테헤란 외무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그래요. 고생했습니다. 회담도 잘 하시길 바랍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대통령과 통화하는 가운데 순간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면서 끊김 현상이 일어났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통령님! 통신에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끊김 현상에 통화를 마친 강경희 장관은 지금까지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지라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장관님! 왜 그러십니까?”
보조석에 탑승한 수석비서관이 물었다.
“모르겠어. 통신에 문제가 있는가 봐. 통화 중에 끊김 현상이 심하네?”
“정말입니까? 이상하네요. 우리 통신망은 자체적······.”
슈우우우웅~ 콰아앙!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고막을 찢을듯한 폭발음과 함께 일렬로 이동하던 5대의 차량은 엄청난 폭발위력에 휘말리며 사방으로 솟구치며 날아갔다.
쾅앙 콰콱!
고속도로 한복판에 거대한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반대편 차선에서 달리던 일반 차량 역시 폭발위력에 중심을 잃고 튕겨 날아갔다. 한순간 7번 고속도로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지옥도와 같았다.
“과, 과장님! 폭, 폭발입니다. 아무래도 장관님 차량에······.”
폭발지점으로부터 2km 떨어진 고속도로 갓길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기웅 팀장의 놀란 음성이 통신망을 울렸다.
- 무슨 말이야? 폭발이라니? 제대로 말해!
몇 분 전, 강경희 장관의 전용차가 지나간 것을 확인한 이자성 과장은 갑작스런 박기웅 팀장의 보고에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되물어왔다.
“장관님 전용차와 경호 차량에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테러를 당한 거 같습니다.”
- 이런 시발! 알았다. 즉시 이동해! 장관님 신변을 확보해! 나도 출발한다.
“네, 알겠습니다.”
박기웅 팀장은 통신이 끝남과 동시에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여 검붉은 화염과 연기가 치솟은 지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일 전, 신정 일치 국가인 이란의 절대권력자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집무실에 러시아의 중동본부 총책임자인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방문하여 비밀스러운 면담을 했다.
최고 지도자의 직할 부대인 혁명수비대에 전술핵을 인계하기 위해 도로로 이동 중 정체불명의 무장집단에 공격받은 사건 이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특명을 받은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직접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와 면담을 하게 된 이유였다.
이날 이 면담에서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최고 지도자에게 몇 가지 요청을 하였다.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적 행동 요청이 주요 요지였지만, 이외에도 국제사회가 알면 발칵 뒤집힐 얘기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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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5일 20:4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강경희 장관과 통화한 지 몇 분도 안 되어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으로부터 청천벼락과 같은 보고를 받은 추은희 대통령은 긴급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현재 강경희 장관과 직원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회의 소집 후 가장 먼저 대통령의 질문은 강경희 장관의 신변과 외교부 직원들의 안부였다.
“현재 요원들이 구출해 응급조치한 상태입니다만, 경호를 맡았던 5명은 사망했으며 강 장관님을 비롯한 수석비서관과 경호원 등 6명이 중경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현재 본국에서 긴급 발진한 CFS/A-31SP 삼족오 우주 전투기에 탑승하여 막 이륙했다는 보고입니다.”
이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영진 원장은 곧바로 여러 정보기관에 협조 요청을 하여 신속하게 이란 테헤란 외곽에 의사를 태운 CFS/A-31SP 삼족오 우주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일 초를 다투는 매우 급한 상황이었기에 이영진 원장은 직접 항공우주군에 연락하여 현시대에서 가장 빠른 CFS/A-31SP 삼족오 우주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다.
“5명이 사망했다니······. 나머지 부상한 6명은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겁니까?”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동승 한 의사에 따르면 6명 모두 일단 고비는 넘겼다고 합니다. 본국에 도착하면 첨단 의료기술 도움으로 모두 무사할 것입니다.”
현지 이란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여러 판단을 하였지만, 공격한 대상의 정체가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이란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는 건 자칫 2차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이영진 원장은 단독적으로 본국 호송 지시를 내렸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현재 의료진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요?”
“네, 현재 중앙의료원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란 정부에서는 뭐라 말합니까?”
국정원장이 말이 끝나자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외교 1차관에게 물었다. 이에 모든 시선이 외교 1차관에게 쏠렸다.
“현재 이란 외무부에서도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는 얘기 외에는 아직 이렇다 할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는 것인지 모르지요. 이번 일에 대해서 이란에 강력한 항의는 물론 우리 정보기관에서 자체 진상조사를 해야 합니다.”
강현수 안보실장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해야지요. 오 차관은 이란 외무부에 공식적인 서한을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비인륜적인 짓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이란 정부든 아니면 극우익 테러 단체든 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일벌백계를 보여줘야 합니다.”
대통령은 회의 탁자까지 두드리며 힘주어 말했다. 그의 어조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현재 피스부대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통령은 이번엔 국방부 장관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현재 전투여단은 모두 비상대기 상태이며 공병여단 역시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멈추고 경계태세로 전환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