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3화 (323/605)

모래바람

2023년 10월 09일 16:30 (이란시각 11:00),

이란 알보르즈주 카즈빈 동단 37km 지점(카라즈카빈 고속도로).

경호 차량은 물론 경호원까지 대외정보국 요원들이 완전히 제압하자 밴에서 대기하고 있던 ADD(국방과학연구소) 소속의 기술자들이 수송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이내 신속한 동작으로 포장된 나무상자를 뜯어냈다. 그러자 안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보관함이 나왔다. 바로 전술핵 무기가 들어있는 보관함이었다.

ADD(국방과학연구소) 기술자들은 망설임 없이 레이저 절단기를 통해 보관함을 열었다. 각가지 모양의 전술핵 무기가 들어있었다.

“AP-2111형 둘! HG-231형 넷! PP-865Q형 넷!”

선임 기술자인 오길준 박사는 전술핵 무기의 모델을 하나하나 파악한 후 후임 기술자들에게 알려줬다. 이에 후임 기술자들은 모델에 따라 각자 기폭장치 제거작업에 들어갔다. 혹, 실수라도 한다면 근방 수 킬로미터가 증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핵무기 전문가답게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오 박사님! 죄송한데 지금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수송 트럭에 올라타 주변 일대를 감시하는 박기웅 팀장이 오길준 박사에게 부탁 어조로 말했다.

“네, 알았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기습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카라즈카빈 고속도로의 양쪽 방향 3차선 도로는 대한민국 대외정보국 요원들이 차량 통제를 하는 가운데 수송 트럭에서는 ADD 기술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간적 제한이 걸린 상황에서 혹 실수를 하는 경우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는 전술핵의 기폭장치 제거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아! 과장님! 2시 방향 42km 상공에서 헬기 2기가 탐지됩니다.”

SI-Q 슈퍼아이를 조종하던 강원일 주임이 조종기 디스플레이를 보며 소리쳤다. 전술핵 수송 트럭이 공격받을 당시 아무래도 이란군에 지원 요청을 한 듯했다. 2시 방향이라면 아마도 이란 항공대가 있는 라슈드 기지에서 출격한 듯했다.

“기종은?”

“Mi-28UB 하보크, 러시아 공격헬기입니다.”

2,700마력에 달하는 엔진을 탑재한 Mi-28UB 하보크는 미국의 AH-64 아파치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공격헬기로 2013년에 시제기 비행 후 2017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현재 600여 대가 실전 배치된 러시아의 주력 공격헬기였다.

“Mi-28UB? 이란에 그런 헬기가 있었어?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나?”

“현재 시속 270km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9분이면 공격 구역에 들어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철수할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기폭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도 안 되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통신망을 통해 박기웅 팀장을 불렀다.

“박 팀장! 현재 진행률은?”

- 현재 32개 중 12개가 제거되었습니다.

“지금 러시아제 공격헬기가 오고 있어! 시간이 5분밖에 없으니 연구원분들께 서둘러 달라고 해!”

- 네 알겠습니다.

이자성 과장은 통신을 마치고 아직은 보이지 않은 2시 방향 상공을 바라봤다. 입술은 마르고 속은 타들어 갔다.

만약 기폭장치를 제거하기 전에 러시아제 공격헬기가 도달한다면 여기 있는 자신을 비롯해 모든 요원은 죽은 목숨과 같았다. 초조한 나머지 이자성 과장은 다시 한번 박기웅 팀장을 불렀다.

“박 팀장! 몇 개 남았나?”

- 첫 번째 트럭 17개 중 11개 제거 완료! 두 번째 트럭 15개 중 10개 제거 완료했습니다.

“알았다. 앞으로 철수까지 2분 남았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ADD 기술자 4명은 최대한 빠르게 기폭장치를 제거해 나갔지만 끝내 철수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얼마나 남았나? 지금 철수할 시간이야.”

이자성 과장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있었다.

- 다 돼갑니다. 2개 남았습니다.

“폭탄 설치는 끝났나?”

- 네, 설치된 상태입니다. 과장님!

“좋아! 제거 완료 후 기존 계획에 따라 진행한다. 안 과장!”

“네! 3과 안봉태입니다.”

3과 안봉태 과장이 통신망을 통해 대답했다.

“기존 계획에 따라 철수 준비해!”

“알겠습니다.”

고속도로 양방향 차량 통제를 맡고 있던 3과 요원들은 통신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컨테이너 화물차에 탑재된 CS7 레이저 벌컨을 분리한 후 철수용 차량에 실어 날랐다.

이때 저 멀리 환각이 아닌 실제 묵직한 헬기의 로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 주임! 현재 헬기 거리는?”

“네, 10.2km입니다.”

“알았다.”

이때 이자성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들려왔다

- 과장님! 제거 완료했습니다.

“알았다. 전원 철수!”

이자성 과장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ADD 기술자들과 요원들은 신속한 동작으로 각자 타고 갈 철수 차량에 탑승했고 이어 급히 출발했다.

부우우웅!

15여 분간 차량 통제로 인해 전방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이에 검은 밴 5대는 최고속도까지 끌어올리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격으로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자 각종 전술핵 무기를 실었던 수송 트럭에서 엄청난 화염이 20여 미터까지 솟구치며 폭발했다. 연달아 폭발한 수송 트럭 2대는 산산조각이 되어 고속도로 주변 일대를 화염 지대로 만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검은 연기가 흩날리는 고속도로 상공에 2기의 Mi-28UB 하보크 공격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중 1기가 전방 5km 지점에서 최고속도로 달리는 검은 밴 5대를 추격하기 위해 웅장한 움직임을 보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이에 마지막으로 달리는 3과 안봉태 과장의 통신이 날아왔다.

“이 과장님! 3과 안 과장입니다. 아무래도 꼬리가 잡힌 듯합니다.”

“어쩔 수 없지! TCS 모드로 도망가는 수밖에······. 각 차량은 TCS 모드로 전환 후 다음 집결지역에서 조인한다. 이상”

이자성 과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검은 밴 5대는 즉시 TCS 모드로 전환했다. 이에 투명상태가 된 5대의 검은 밴은 속도를 높이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한편 고도 500m 상공에서 수상한 검은 밴 5대를 탐지한 Mi-28UB 하보크 공격헬기는 선두 차량부터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하려 했지만, 갑자기 모니터에서 사라져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자 이란 조종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통신망은 시끄러워졌다.

- 여기는 A 알린! 표적이 사라졌다. A 볼리는 보이는가?

- 여기는 A 볼리, 마찬가지로 표적이 사라졌다.

시야와 레이더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적 차량을 찾기 위해 Mi-28UB 하보크 공격헬기 2기는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비행해 나갔다.

★ ★ ★

2023년 10월 09일 18:30 (러시아시각 12:30),

러시아 모스크바 SVR(대외정보국) 건물.

2시간 전, 비밀리에 이란으로 넘어간 전술핵 무기가 이란 혁명수비대 기지로 이동 중에 정체불명의 무장집단에 습격을 받아 폭파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SVR(대외정보국)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대체 어떤 테러범들에게 당했단 말인가?”

회의실 중앙 스크린에는 중동 총 책임자인 루슬란 니그마툴린이 다 죽을듯한 표정을 지으며 버벅거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현재 확인하고 있습니다.”

“자네 모가지 걸고 어떤 놈들인지 반드시 알아내!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이때 SVR 대외협력부 알렉세이 스메르틴 부장이 의심 장만한 말을 내뱉었다.

“한국 놈들이 아니겠습니까?”

“한국놈들?”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네, 상황상 보자면 한국놈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단지 추측인가?”

“현재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이란에 우리 러시아의 무기가 제공되었다는 것에 가장 민감하게 생각할 국가가 어디겠습니까? 예전이라면 미국을 의심하겠지만, 지금은 한국이라 봅니다. 또한, 한국 정보기관 역시 근래 무수한 발전을 해왔기에 전술핵의 정체도 사전에 파악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요원으로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알렉세이 스메르틴 부장의 추측은 정확했다.

“듣고 보니, 한국이 가장 의심할만해!”

잠시 사색에 잠긴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는 회의실 주위를 걸었다.

“한국 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뭔가 확실히 보여줘야겠어.”

혼잣말로 중얼거린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의 시선은 영상 통화 스크린으로 향했다.

“루슬란 니그마툴린!”

“네, 국장님!”

“현재 이란에 우리 요원들 몇 명이 있나?”

“네, 금일 사망한 6명을 제외하면 총 13명이 있습니다.”

“음, 13명이라 충분하군”

“뭐가 충분하다는 얘기 신지······.”

“금일 건은 계속해서 조사하고 한 가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겠어.”

“네, 어떤 일이든 수행하겠습니다.”

“그건, 일단 대통령님의 재가를 받은 후 다시 얘기하지”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0월 09일 22:00 (러시아시각 16:00),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

쿠앙!

홋카이도 건으로 인해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가 최악인 가운데 금일 이란에 있었던 전술핵 폭파 사건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으로 추측된다는 SVR(대외정보국)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의 보고에 푸틴 대통령은 흥분한 나머지 구둣발로 회의 탁자를 걷어찼다.

“한국놈들 짓이라는 증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하시오.”

“네, 현재 이란 현지 요원들에게 지시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한국놈들이라면, 왜 국제사회에 우리 러시아가 이란에 전술핵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왜 알리지 않았을까?”

“제 생각입니다만, 현재 홋카이도 건도 그렇고 우리 러시아와 더는 외교적인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푸틴 대통령의 질문에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이 대신해 대답했다. 이에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이 더 붙여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카르핀 외교장관의 말에 동감합니다. 만약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했다면 굳이 직접 나서서 전술핵 무기를 폭파했겠습니까?”

“찜찜하군, 만약 한국이 우리 러시아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추후 전술핵을 다시 보내는 건 문제가 있겠지?”

“아무래도 추가적인 전술핵 무기 제공은 아니라고 봅니다.”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과 앙숙인 미하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이 대답했다. 이에 양손을 회의 탁자에 짚고 일어선 푸틴 대통령은 참석한 고위관료들을 보며 말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모래바람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군”

낙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은 푸틴 대통령의 말에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통령님!”

“뭔가? 말해보게”

“이란 계획과 관련하여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들어보시고 괜찮다면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보군? 말해보게”

“네,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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