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1화 (321/605)

예견된 위기2

2023년 10월 02일 20:05 (쿠르디스탄시각 14:05),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 아제르바이잔 공원 동단 5km 지점.

7기의 드론이 검붉은 불꽃을 터뜨리며 공중폭발하는 가운데 나머지 드론은 연신 311호 장갑차를 향해 로켓탄을 발사했다. 로켓탄 세례에도 아직 무사한 311호 장갑차는 좌우로 불규칙한 방향전환 기동을 펼치며 어떻게든 불기둥이 솟구치는 지옥 길을 벗어나고자 했다.

터질듯한 엔진 굉음을 울리며 급격히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한 311호 장갑차 바로 앞에 로켓탄 하나가 도로 바닥에 꽂히고는 이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순간 공기를 찢을듯한 충격파와 함께 각종 파편과 돌덩어리가 311호 장갑차의 측면 장갑을 두드렸다.

쿠앙! 파파파악!

둔탁한 소음이 장갑차 전체에 울리는 가운데 각자 안전 손잡이를 잡고 앉아있던 하차조 보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에 여기저기에서 온갖 욕설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또 한 차례 기분 나쁜 폭발음과 함께 충격이 전달되었다.

이번엔 장갑차 포탑 상단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울림이 장갑차 내부를 휩쓸었다. 이에 6번째 흑룡 미사일을 발사하려던 김은규 중위는 갑자기 지직거리며 꺼져버린 대공 전술용 디스플레이에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대공 전술용 디스플레이에 화가 난 김은규 중위는 주먹을 내려치며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시발 개망할!”

내부 피폭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311호 장갑차 포탑 상단에 장착된 광학 장비가 모조리 망가진 듯했다. 대공전용 광학 장비가 망가져 8mm 레이저 벌컨 빔도 사용할 수 없게 된 김은규 중위는 조준경에 눈을 대고 열심히 드론을 향해 사격하는 포수인 안강만 하사를 쳐다봤다.

이제 드론을 요격할 수 있는 건 50mm 광자포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동치듯 좌우로 거세게 흔들리는 장갑차 안에서 이리저리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드론을 맞추기엔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대 특등포수답게 지금까지 2대의 드론을 공중에서 산화시켰다.

이제 남은 드론은 4기였고 각각 1기의 로켓탄이 남아 있었다. 이때 드론 1대가 3시 방향으로 크게 돌더니 이내 311호 장갑차의 측면을 향해 마지막 로켓탄 한 발을 발사했다.

상단 방호력이 단단하여 피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드론 조종사가 측면 차륜을 노린 듯했다.

슈우우웅~

하얀 항적을 그으며 311호 장갑차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이에 311호 장갑차가 다시 한번 오른쪽으로 80도에 가까운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로켓탄은 한발 앞서 장갑차의 하단 측면에 꽂히며 폭발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충격이 장갑차 전체에 가해졌다. 급기야 중심을 잃은 장갑차는 기우뚱 하든 한쪽이 들썩이고는 이내 도로를 벗어나 멈추고 말았다.

빠방! 빠방! 빠방! 빠방!

전복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311호 장갑차는 자동으로 다영역 파장 연막탄이 사출했고 장갑차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연막탄으로 가렸다.

“오 상병! 뭐해 다시 기동해!”

김은규 중위의 외침에 절망 섞인 오강호 상병의 대답이 들려왔다.

“소대장님! 방금 피격당하면서 오른쪽 타이어 2개가 파스나고 조인트까지 나간 듯합니다. 오른쪽에 동력 전달이 안 됩니다.”

“정말?”

드론의 공격을 받으면서 가장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궤도형이 아닌 차륜형 장갑차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바로 타이어에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동력 전달을 시켜주는 등속조인트까지 나갔으니, 이제 기동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갈수록 태산이군. 제기랄!”

조종수 오강호 상병과 대화하는 와중에 포수 안강만 하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1대 더 추가 격추! 이제 3대 남았습니다.”

하지만 김은규 중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차조 보병들을 하차시킬지 말아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연막탄 연기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 자칫 망설이다가는 장갑차 안에서 모두 통구이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차조! 전원 하차한다. 하차하면 주변 일대로 흩······.”

하차조 보병에게 하차 명령을 내리려던 김은규 중위는 명령을 내리 다 말고 멈췄다. 어디선가 날아온 미사일에 3대의 드론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이 미사일의 정체는 바로 전방 1km 지점에서 기동해오는 312호 장갑차에서 발사한 흑룡 미사일이었다.

“휴! 살았다. 올 거면 빨리 좀 오지!”

소대 통신망으로 정체불명의 드론 출현과 로켓탄 공격을 받는다는 통신을 접한 312호 단차장인 고기준 중사는 온두라스 마을에 보병들을 하차시키고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312호 장갑차가 제시간에 오지 못했다면 연막탄이 거치고 드론의 로켓탄에 피격을 받았다면 311호 장갑차의 운명은 그리 좋진 않았을 것이다.

- 여기는 불량감자(312호)! 찐옥수수(311호) 괜찮습니까?

“여기는 찐옥수수! 불량감자 덕분에 모두 무사합니다. 이상”

- 여기는 불량감자 찐옥수수 기동 가능합니까?

“여기는 찐옥수수! 기동은 어려울 듯합니다. 이상”

312호 장갑차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311호 장갑차는 1시간 후 대대 본부에서 지원 온 구난 장갑차에 의해 무사히 마쿠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론과 관련된 보고서는 즉시 피스부대의 지휘본부까지 올라갔고 급기야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까지 올라갔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중동과 관련하여 대책회의를 갖고자 각 군의 지휘관을 소집했다.

★ ★ ★

2023년 10월 03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작전회의실).

50여 명의 군 장성들이 모인 회의실, 이틀 전 항공우주군 소속의 해외정찰국에서 이란군 관련 움직임에 대한 보고와 관련한 회의 이후 이틀 만에 다시 소집된 회의실 분위기는 보이지 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란이 본격적인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는 듯합니다. 현재 스크린의 장소는 쿠르디스탄과 이란의 국경선이라 볼 수 있는 마쿠와 보자크 사이 평야지대입니다.”

회의실 중앙 단상 왼쪽에 서 있던 양민춘 중장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회의를 주관했다.

2021년 동북아 전쟁 당시 제7기동군단의 군단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양민춘 중장은 종전 후 2022년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본부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상태였다.

“다음은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양민춘 중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크린은 영상으로 바뀌었다.

10여 대의 드론이 하늘을 날며 로켓탄을 발사하는 장면이었다. 바로 어젯밤 311호 장갑차가 교전하며 촬영한 영상이었다. 중형 크기의 드론 하단에 장착된 2연장 발사관에서 어른 팔뚝만 한 로켓탄이 연신 촬영하는 당사자 쪽으로 발사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3분 정도의 영상이 끝나고 스크린은 다시 지도로 전환했다.

“음, 이란이 드론을 이용한 신개념 교전 방식을 운용할 능력은 없을 테고 말이야. 대체 저 드론의 정체가 뭔가?”

합참의장으로 승진한 신성용 차수가 깍지낀 손으로 회의 탁자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의장님! 이란은 아직 드론을 이용한 교전 방식을 운용할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영상을 분석한 결과 현재 러시아군의 일선 부대에 실전 배치한 X-11 멀티콥터 드론과 비슷하다는 결론입니다. 준비된 영상이 있습니다.”

양민춘 중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크린에는 X-11 멀티콥터 드론에 대한 상세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방산업체인 ‘시스템프롬’에서 장갑차와 전차 등 기갑 차량을 상대로 개발한 X-11 멀티콥터 드론은 2연장 60mm 로켓탄과 150발 연사가 가능한 8mm 전동건이 장착된 공격형 드론으로 전투 수행은 물론 수색, 정찰, 모니터링, 지도제작, 운송 등에 활용할 수 있었다.

또한, 완전 자율 모드시 목적지만 지정하면 다른 드론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비행이 가능했고 고도 5km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비행거리는 50km에 달했다. 더불어 열화상 이미지 장비를 활용해 영상과 사진 등 데이터를 관제센터에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이들 드론은 GLONASS/GPS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활용해 경로 이동, 위치 파악이 가능했다.

이렇게 자세한 정보가 보이는 가운데, 육군참모총장인 이은형 대장이 질문을 던졌다.

“이틀 전 해외정찰국 보고서에서는 드론과 관련된 자료가 없지 않았나?”

“아마도 적재물자에 감춰져 파악이 안 된 듯합니다.”

양민춘 중장을 대신해 항공우주군 참모총장인 최진국 대장이 대답했다.

“어쨌든 드론을 운용하는 신개념 교전 전술을 확보한 이란군에 관한 대응방안이 시급하게 되었군요.”

공군참모총장인 김은호 대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 군 지휘관분들을 모두 소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공방어와 관련된 부대를 추가 파병해야지 않겠습니까?”

대장 승진과 더불어 작전본부장에서 합참차장과 남주 연방군 사령관을 역임하는 김용현 대장이 당장 해결할 문제에 대해서 논했다. 이에 회의에 참석한 각 군 지휘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며 회의는 진행되었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쯤 회의는 끝이 났다.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드론과 같은 무인기 상대로는 같은 무인 경계 로봇인 해태가 적격이라는 다수의 의견에 대공 기능이 강화된 C-1001 모델로 결정했다. 이로써 쿠르디스탄에 파병된 피스부대에 추가로 자동경계연대급 규모의 부대가 추가로 파병하게 되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청와대에 추가 파병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이외에도 1기의 전략요격위성인 CS-AD 제우스 4호와 정찰위성인 CS-SQ 1호기를 피스부대에서 단독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 ★ ★

2023년 10월 07일 16:00 (이란시각 11:00),

이란 테헤란 12지구 리틀리 호텔 주변.

4일 전, 테헤란 샤리아티 거리에서 러시아 SVR(대외정보국)의 중동본부 총책임자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을 찾아낸 이자성 과장 일행은 줄곧 은밀히 따라다니며 정보수집을 위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이자성 과장 일행 역시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라틀리 호텔에서 빠져나온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SVR 소속으로 보이는 검은 밴에 타고는 바로 이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이에 이자성 과장 일행은 러시아 대사관 주변에서 각자 은밀히 대기하였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는 이자성 과장과 윤호현 주임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뭔가 건질 거 같습니다. 과장님!”

이에 VR-M2 광학 장비를 통해 대사관을 투시하여 감시하던 윤호연 주임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야지! 언제까지 저놈 뒷구멍만 쫓아다닌 순 없지”

어느덧 감시에 들어간 지 1시간이 흐른 시점, 저 멀리서 이란 경찰차의 경호를 받으며 검은색 수송 트럭 2대가 러시아 대사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윤 주임! 저 트럭 확인해봐!”

“네, 알겠습니다.”

윤호현 주임은 즉시 VR-M2를 러시아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수송 트럭을 비췄다. 투시된 수송 트럭에는 여러 개의 상자가 쌓아있었다. 그리고 이내 VR-M2 액정화면에는 상자 속 물건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었다.

“헐! 이, 이 과장님!”

“뭐냐?”

“저, 저거 전술핵 폭탄인데요?”

“뭐? 지금 VR-M2 화면에 방사선 수치가 장난 아닙니다.”

윤호현 주임은 고개를 흔들며 이자성 과장에게 VR-M2를 내밀었다. 이에 이자성 과장은 건네받은 VR-M2로 막 러시아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수송 트럭을 스캔했다.

윤호현 주임 말대로 수송 트럭 안에는 여러 개의 상자가 쌓여있었고 상자 속에는 금속 물질에 감싸 있는 각종 형태의 전술핵 폭탄과 포탄이 들어있었다.

“러시아 이놈들 완전히 미쳤구먼, 전술핵까지 이란에 가져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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