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위기2
2023년 10월 2일 19:3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회의실).
근무시간을 훌쩍 넘긴 저녁, 국가정보원 ACS의 보고서를 받은 추은희 대통령은 중대 사안이라 판단하고 국내 정보를 다루는 모든 정보기관의 수장을 호출했고 오후부터 시작한 회의는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대통령님! 감청 기록을 증거로 지금 당장 모두 체포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강현수 안보실장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건 국가 반란죄입니다. 당 대표고 상원의원이고 죄다 감옥에 처넣어야 합니다.”
보수 성향인 중앙광역수사국의 강혁 국장이 다소 거칠 표현을 써가며 안보실장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통일 후 연방제로 바뀌면서 경찰조직 역시 각 연방 주정부의 관할 하에 자치 경찰제로 바뀌었다. 이와 맞물려 연방법 위반행위의 수사, 공안정보의 수집, 연방법 또는 대통령 명령에 따라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중앙정부의 조사기관인 중앙광역수사국을 창설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의 FBI(연방수사국)와 같은 수사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세상이 5공 때도 아니고 국회의원들을 무조건 잡아들 순 없습니다.”
임종원 비서실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그걸 제가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안이 사안이지 않습니까? 자치 잘못하다가는 통일된 지 3년 만에 대한민국에 국가 전복사건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의원들을 무턱대고 체포할 순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제시할 감청 증거 역시 사찰에 따른 불법적인 증거입니다. 자치 우리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임종원 비서실장의 현실적인 의견에 회의실은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정적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저도 임종원 비서실장의 말에 동감합니다. 좀 더 신중히 지켜본 후 특단의 조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조현 민정수석이 비서실장의 말에 힘을 실었다.
“나 참, 이거 원!”
민정수석까지 자신의 의견에 부정적으로 말하자 강혁 국장은 천장을 한번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 국장! 모두 잘해보자고 의견을 내놓은 거 아닙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동안 듣기만 하던 추은희 대통령은 강혁 국장을 진정시키고는 이내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을 바라봤다.
“이 원장은 어떻게 생각합니다.”
“네, 대통령님! 저 역시 당장이라도 체포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좀 더 감시체제를 강화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후 움직여야 할 듯합니다.”
이영진 원장은 신중히 대답했다.
“그래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불법사찰로 획득한 증거로 지금 상황에서 움직이는 건 무리라 생각합니다. 대신, 이 원장 말대로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국가전복을 노릴지에 대해 사전에 간파 및 저지할 수도 있도록 노력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금일부터는 ACS 말고도 가용한 모든 인력을 총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말하세요.”
“이 자리에 강혁 국장도 참석했으니 알고 계셔야 할 듯해서 말씀드립니다. 현재 ACS에서는 중앙광역수사국의 김형철 부국장도 24시간 감시대상입니다.”
이에 강혁 국장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김형철 부국장도 관여되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모든 인물에 대해서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면 수사국 내에서 오늘 회의와 관련되어 일체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초창기 중앙광역수사국이라는 정보기관이 창설되면서 북한 정찰총국의 내정담당 부국장 출신인 김형철을 부국장 자리에 올리는 것에 많은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남북 인사의 균형을 잡는다는 취지와 나름 이쪽 방면에서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여러 추천으로 청와대에서는 김형철을 부국장 자리에 임명했다.
“그래요. 중앙광역수사국에는 김형철 부국장 말고도 북한 출신 정보요원들이 많으니 각별히 보안에 신경 쓰세요.”
추은희 대통령의 추가적인 당부에 강혁 국장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10월 02일 19:50 (쿠르디스탄시각 13:5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 아제르바이잔 공원 동단 5km 지점.
311호 장갑차가 뿌연 연기를 흩날리며 황량한 야지를 기동하는 가운데 저 멀리 상공 3km 높이에서는 하차조 분대원이 날린 SI-Q(슈퍼아이 정찰 드론) 1대가 전방 5km 일대에 대해 감시 중이었다.
311호 단차장이자 소대장인 김은규 중위 역시 데이터 링크를 통해 디스플레이에 보이는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갑차 포수 안강만 하사의 염려와는 다르게 현재까지 위험이 될 만한 이란군이나 민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1시간가량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를 기동하며 수색하는 가운데 312호 단차장으로부터 두 번째 정찰할 마을인 온두라스로 이동한다는 통신이 날아왔다.
보자크까지 직선거리로 5km 근접거리까지 정찰에 들어온 311호 김은규 중위는 마이크를 들어 장갑차 내부 부하들에게 알렸다.
“앞으로 10분만 더 정찰한 후 우리도 온두라스로 돌아가 312호와 합류한다.”
이때 보자크 상공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아! 제길! 소대장님! 슈퍼아이 1호기가 격추된 듯합니다.”
분대 탐색기 운용병인 김원헌 일병이 SI-Q 조종기를 이리저리 건드려보며 조작을 해보았지만, 조종기 디스플레이는 지지직거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3km 높이에서 손바닥만 한 슈퍼아이를 이란놈들이 무슨 수로 격추해?”
“그게, 저도 이해는 안 가는데, 아무튼 신호가 먹통입니다. 소대장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김원헌 일병이 대답했다.
“너 시내에서 너무 낮게 비행한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신호가 끊기기 전 고도는 이천팔백이었습니다.”
“제길, 아까운 드론만 잃었군.”
당장이라도 눈에서 레이저가 날 올 것처럼 쏘아보던 소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에 씨무룩해진 김원헌 일병 옆자리에 있던 부분대장인 김태운 병장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툭 치며 약을 올렸다.
“너 마! 최소 군기교육대다. 하하하”
“아나! 김 병장님 너무하십니다. 후임 놀리면 재미납니까?”
이때 다급한 소대장의 목소리가 장갑차 안을 울렸다.
“뭐! 뭐야? 저거 드론이야?”
대공전용 디스플레이에 십여 개의 드론이 탐지되었다. 드론으로 추정되는 작은 물체 12개가 보자크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빠른 속도로 311호 장갑차로 날아왔다. 이에 김은규 중위는 콘솔을 조작하여 확대된 드론을 확인했다. 가로세로 1m 크기의 중형 드론 하단에는 작은 구경의 2연장 로켓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엿 됐다. 오 상병! 온두라스 마을로 복귀한다. 최대속도로 달려! 다들 콱 잡아!”
다급한 목소리로 장갑차 조종수에게 명령을 내린 김은규 중위는 콘솔 아래 안쪽으로 접혀 있던 대공용 조종간을 당겨서 올린 후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대공 전술용 디스플레이의 40mm GTGAS-40 흑룡 미사일 조준점을 가장 앞서서 날아오는 드론 1대에 맞췄다.
쿠르르르릉~
311호 장갑차가 급격히 방향을 꺾자 희뿌연 먼지가 흩날렸다. 그리고 2분도 안 되어 코어마쿠 도로에 접어들자 어느새 500m까지 다가온 드론 하단에서 작은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그리고는 이내 로켓탄 2발이 하얀 항적을 그으며 311호 장갑차를 향해 뻗어 날아왔다.
“로, 로켓탄이다!”
슈우우우웅~ 슈우우우웅~
쿠앙! 쿠앙!
김은규 중위의 외침과 함께 최대속도로 내달리는 311호 장갑차 양쪽에서 검붉은 불기둥이 솟구쳐올랐다.
311호 장갑차 조종수인 오강호 상병의 신들린 조종실력인지 아니면 드론의 로켓탄 성능이 떨어지는 것인지 어쨌든 운이 좋게도 2발의 로켓탄 공격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나머지 드론에서 연달아 불꽃을 일으키며 로켓탄이 311호 장갑차를 잡아먹으려는 듯 날아왔다.
“오 상병아! S자로 기동하고! 안 하사는 광자포로 드론 사격한다.”
생각지도 못한 로켓탄을 무장한 드론의 출현에 당황할 만도 하였지만, 김은규 중위는 침착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지시를 내렸고 대공 전술용 디스플레이를 보며 조종간을 쥐고 있던 검지를 당겼다.
포탑 좌우 4연장 발사관에서 흑룡 미사일 여러 발이 작은 발사음을 울리며 후방 상공으로 휘어지며 날아갔다.
흑룡 미사일과 로켓탄은 사선으로 교차하며 지나쳤고 이내 하늘과 땅에서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 ★ ★
2023년 10월 02일 20:00 (이란시각 15:00),
이란 테헤란 3지구 샤리아티 거리.
러시아와 이란 간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은 현장에서 직접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일주일 전, 정보요원 8명을 파견했다.
이란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으로 위장해 파견 온 국가정보원 소속의 대외정보국 정보요원 8명은 테헤란에 도착 즉시 러시아 대사관을 비롯해 러시아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시내 곳곳에 침투하여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동양인 탓에 이란 시민들에게 쉽게 눈에 띌 수 있다는 생각에 정보요원들은 아랍 전통 옷은 물론 하얀 터번까지 눈만 나올 정도로 둘러쓰고는 2인 1조로 움직였다.
한낮 40도에 이르는 엄청난 더위였지만 아랍 전통의상 안에 보호 슈트를 착용해서 그런지 끔찍한 중동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처음 착용한 옷과 터번 때문에 매우 답답했다.
테헤란에서 번화가로 불리는 샤리아티 거리에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사내 2명이 노상 카페에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대외정보국 1과 이자성 과장과 윤호현 주임이었다. 동북아 전쟁 당시 워싱턴에서 큰 공을 세운고 이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성과를 낸 이자성은 3개월 전 대외정보국 1과장으로 승진했다. 이자성 과장은 승진 이후 첫 임무가 이곳 이란 테헤란이 되었다.
“2시 방향 백인 남성”
대화하면서 주위를 슬쩍 흘려본 이자성 과장은 뒤쪽 4시 방향에 앉아있는 백인 사내 하나를 지목했다. 더부룩한 턱수염에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백인 남성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사업가로 보였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정면으로 시야를 확보한 윤호현 주임은 실드 글라스를 통해 백인 사내의 얼굴을 확대하여 사진을 찍은 후 서류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들고는 뭔가를 조작한 후 이내 이자성 과장을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 듯합니다. 과장님!”
윤호현 주임은 자연스럽게 태블릿 PC를 돌려 보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태블릿 PC에는 한 남자의 신상정보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방금 이자성 팀장이 지목한 백인 남자와 100% 동일 인물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5일 만에 찾았군!”
태블릿 PC의 화면을 끈 이자성 과장은 무음성 통신을 통해 주변 일대에서 활동하는 모든 정보요원을 불렀다.
“여기는 다이아몬드! 루피, 사파이어, 에메랄드는 즉시 샤리아티 2블록 거리로 오도록”
팀원에게 지시를 내린 이자성 과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커피잔을 들어 향을 맡은 후 한 모금 들이켰다. 이에 아무런 눈치도 못 채고 아침 티타임을 즐기는 그 백인 사내는 러시아 SVR(대외정보국) 소속의 중동본부 총책임자인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