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7화 (317/605)

예견된 위기2

2023년 9월 20일 09:30,

북주 함경도 원산시 갈마별장.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이 갈마별장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파견 온 취재진은 어떻게든 김정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외곽 경계를 담당하고 있는 헌병대와 실랑이를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6.5km 떨어진 지점에 원산공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마별장을 기준으로 3km까지 항공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철저한 경계 및 통제 수위를 높였다.

특히 오늘은 외부인과의 면담이 허용되는 첫날이라 별장 경호원과 외곽 경계 헌병들은 모든 신경이 곤두선 채로 취재진과 구경하러 온 일반 시민을 통제해 나갔다.

수천 명에 이르는 면담 신청자 중 오직 김정은이 승인한 신청자만이 각종 신원조회를 통과하고 갈마별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금일 오전 10시 김정은과의 첫 면담자로는 북한 정권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던 김형원이었다.

지금은 민족노동당 대표이자 상원의원으로 통일 대한민국에서 의정 활동을 하는 올해 70세가 된 노인이었다.

동공, 지문, 안면인식 등 여러 신원조회를 마치고 3단계 출입문을 통과한 후 접견실에 도착한 김형원이 김정은을 보자 허리가 90도까지 숙이며 예전 국방위원장 당시와 같은 깍듯한 예를 표했다.

“어서 오시라요. 오랜만에 보니 신수가 훤해졌습네다?”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감개무량함둥. 건강은 괜찮슴둥?”

한참 동안 바닥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던 김형원은 자세를 바로잡고는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서 있었다. 이에 김정은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이보시라요. 이제 국방위원장도 아니니끼니 그런 격식은 필요 없습네다. 괜히 남조선 아들이 의심합네다.”

김정은은 악수한 손을 흔들며 농담을 건넸다.

“내래 국방위원장님께서 깨어날 줄 알았슴둥”

“기래요? 이거이 김형원 동무 덕분에 깨어났구만기래. 아니디 지금은 남조선의 상원의원이디요?”

“그렇게 됐슴둥!”

함경북도 혜산 출신으로 북주 내에서도 특유의 사투리를 쓰는 김형원은 김정은과 대화를 하면서도 연내 고개를 숙이며 예전 국방위원장을 대하듯 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시콜콜할 대화를 이어가던 중 찻잔을 내려놓은 김형원이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후 뭔가를 조작했다.

“뭐 하는 겁네까?”

김정은은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가리 켜며 물었다.

“걱정 없음둥! 감청방해용 장치임둥”

“감청? 뭔 비밀스러운 얘기를 한다고 그런 것까지?”

“위대한 김정은 동지!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매우 중대한 애기임둥!”

김형원은 혹시나 있을 감시 카메라가 신경이 쓰였는지 최대한 밝은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매우 진지했다.

“함 말해보시라요.”

김정은은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말해보라는 손짓을 보냈다. 이에 김형원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정상적으로 감정방해 전파가 흐르는 그래프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래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 측과······”

김형원 상원의원은 이곳에 오기 이틀 전, 평양 주재 러시아 영사관 직원으로 위장한 러시아 SVR(대외정보국) 정보요원과 극비 보안 속에서 미팅하는 시간을 가졌다. 2시간에 걸친 긴 미팅이었고 오늘 꺼내 들은 감청방해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 역시 SVR(대외정보국)에서 받은 것이었다.

김정은과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2시간의 면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전용차 안에서 김형원 상원의원 표정은 굳어있었다. 김정은과 면담 시간 내내 감청방해 장치까지 꺼내 들고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통일 대한민국으로써는 절대 좋은 얘기는 아닐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후방 100m에는 검은 밴 1대가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 ★ ★

2023년 9월 23일 20:30 (이란시각 15:00),

이란 테헤란 사드아바드궁(귀빈접견실).

2019년 5월 국정 전반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지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80세의 나이로 사망함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 이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권력 쟁탈전이 펼쳐졌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하산 로하니를 주축으로 한 개혁파는 ‘이란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이며 개혁 성향을 띤 하산 호메이니를 후보로 결정하고 지지했다.

반면 보수파들은 개혁파가 차기 최고 지도자 자리를 차지할 경우 이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 또한, 제2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역시 항상 보수파에 힘을 실어줬었다. 이에 보수파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차남이자 강경보수파인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를 차기 최고 지도자로 지지했다.

이처럼 최고 지도자 즉 라흐바르의 자리를 두고 개혁파와 보수파 간 권력 쟁탈전은 끝내 보수파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러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원 다수가 보수파였고 둘째로는 혁명수비대라는 존재였다. 최고 지도자의 친위대로 불리는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은 물론 특수부대 알 쿠드스 부대까지 운영하며 병력만 13만에 달했고 평소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혁명수비대 사령관 자랄 호세이니는 대통령 선거나 혹은 각종 선거에서 친서구파의 집권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개혁파를 협박해왔다.

결과적으로 3대 최고 지도자에 강경보수파인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가 선출된 후 2021년 6월 13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수파 성향의 아볼하산 라자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개혁파를 지원하던 미국이 2021년 초 한국과의 전쟁에서 생각 이상의 큰 피해를 보자 대외 지원정책이 축소되었고 이런 이유로 이란 내 정치 입지가 좁아지면서 이란 개혁파도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근래 이런 변천사를 겪은 이란은 그 어느 때보다 극우익 성향의 보수파 정치인들로 들끓은 상황에서 2023년 2월 1일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선포와 함께 이란 영토 일부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함에 따라 이란의 국민 정서는 극심한 분노에 사로잡혀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떠오른 초강대국 대한민국이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재정지원금은 물론 전투 부대까지 파병하자 이란 정부에서는 이란 국민을 진정시키며 일단 이란 정규군이 아닌 바시지로 하여금 쿠르디스탄을 국경 일대를 공격하게 했다.

* 바시지 :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병력 부족으로 고민하던 이란이 혁명수비대 산하에 대량의 의용병을 전선에 투입했던 것에서 유래했으며 전쟁 중 그들의 활약에 주목하여, 민병대를 제도화하여 창설한 동원 부대다. 병력 규모는 150만 명에 달한다.

세계 군사력 1위인 미국과 3위인 중국 그리고 8위인 일본과 동시다발적인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의 군사력에 이란 정부는 보이지 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젯밤 터키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발표에 이란은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 등 주변 중동국가의 지도부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어느 국가보다 쿠르드족 탄압에 앞장섰던 터기가 갑자기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더군다나 터키 동부의 영토 일부를 인정한다는 성명발표에 주변 중동국가는 물론 세계 모든 국가는 저마다 큰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저마다 대한민국의 외교 입김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성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이란 정부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치 잘못하다가는 1979년 있었던 제2의 이란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이란 국민의 분노 수치는 위험 수위까지 올랐다.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바로 러시아였다.

2일 전 이란에 입국한 SVR(대외정보국)의 고위급 관료는 이란 정부에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이란에 최첨단 무기를 무상 제공할 테니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막아달라는 제안이었다. 더불어 쿠르디스탄에 한국의 추가 파병부대가 갈 수 없도록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러시아가 견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의 제안은 이란에서 보자면 한마디로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러시아의 최첨단 무기가 도입된다면 쿠르디스탄에 파병 온 대한민국의 피스부대와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었다. 현재 피스부대 중 전투 부대는 2개의 기계화보병여단과 1개의 해병기동여단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3개 여단만 상대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이것이 러시아에서 우리 이란에 제공하겠다는 무기 목록입니다.”

러시아 SVR(대외정보국)의 고위관료와 직접 미팅한 MOIS(국가정보안보부)의 바히드 자한바크슈 부장이 문서파일 하나를 아볼하산 라자이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음,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무상으로 무기를 제공해준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군.”

생각 이상의 물량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 아볼하산 라자이 대통령은 이내 국방부 장관에게 문서파일을 건네며 말했다.

“안사리 장관, 함 보시고 이 정도의 무기 지원이라면 한국 파병부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소? 대략 판단하고 말해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하메드 안사리 국방부 장관은 건네받은 문서파일을 넘기며 하나하나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문서파일을 덮은 하메드 안사리 국방부 장관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이 목록대로만 러시아에서 우리 이란에 제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정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한국군의 추가 파병부대가 없을 경우입니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약속하지 않았소? 더는 쿠르디스탄으로 추가 파병부대가 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이오.”

“그것은 장담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그런 거까지 생각하며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없어요. 국방부 장관은 당장 최고 사령관에게 러시아의 무기를 받았다는 가정하에 서쪽 국경지대의 탈환 작전 안을 수립하라고 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2023년 9월 24일 18:50,

북주 함경도 원산시 갈마별장.

낭림산맥의 한 축인 상성산에 걸쳐 붉게 물든 석양의 아름다움과 가을 날씨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감상에 젖어있는 김정은, 매일 아침과 저녁을 이곳 귀빈각 테라스에서 일출과 석양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해왔다. 오늘도 수많은 방문자 신청자 중 3명의 인사와 면담을 가진 김정은은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테라스 울타리에 기대어 와인에 목을 축이며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봤다.

“석양이 참말로 예쁘구만기래! 그런데 왠지 씁쓸한 게 내 신세와 닮았어야!”

상성산 하늘 일대를 붉게 물들이고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이 마치 현재 김정은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태양이 성성산 뒤로 사라지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삼분에 일쯤 남은 와인을 마저 마신 김정은은 귀빈각 거실로 들어와 TV 리모컨을 들었다.

62인칭 벽걸이 TV 화면이 환해지며 마침 뉴스 채널이었는지 자신과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에 소파에 걸터앉아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며 김정은이 중얼거렸다

“남조선 아새끼들이래 뭔 관심이 이리도 많네, 지겹지도 않아야?”

수백 개에 달하는 채널을 차례대로 돌리던 김정은은 볼만한 채널이 없는지 리모컨을 탁자 위에 내팽개치듯 던지고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근래 면담했던 자들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지금까지 20여 명을 만나 봤다. 이중 김정은은 민족노동당의 당 대표이자 상원의원인 김형원, 그리고 현재 남만주 주지사인 김춘원, 마지막으로 김정은의 총애에 힘입어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던 조명록 전 정찰총국장과의 면담 때 주고받았던 대화를 되새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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