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6화 (316/605)

예견된 위기2

2023년 9월 15일 10: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이틀간 터키를 방문하여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고위관료와의 회담을 통해 쿠르디스탄 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난제를 성공적으로 합의한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강경희 장관은 금일 아침 추은희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어서 오세요. 강 장관님!”

대통령은 접대용 의자를 가리키며 반갑게 맞아줬다.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이라고 할 게 있나요.”

원형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추은희 대통령과 강경희 장관은 잠시 후 비서실에서 내온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강경희 장관은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 보고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터키 정부에서 우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보고서에는 터키 정부와 합의한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는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다. 두 번째는 쿠르디스탄 공화국이 주장하는 터키 동부 대부분 영토를 이양한다. 세 번째 더는 쿠르드족에 대한 피박은 물론 정치적, 군사적 행동을 가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터키 국민을 설득하고 위 3가지에 대해서 대국민 성명발표를 하겠다였다.

이로써 터키와의 외교적 마찰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터키 정부는 같은 수니파인 이란과 이라크에 대해 외교적으로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독립에 대해서 설득 외교를 해보겠다고 하였다.

기대 이상의 외교 성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추은희 대통령은 하얀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강 장관님!”

“아닙니다. 대통령님! 우리가 제시한 조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입니다. 외교 수완이 좋으셔서 그런 겁니다.”

동맹국 중 혈맹국이라 불리며 가장 많은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던 터키와의 외교 마찰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추은희 대통령은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터키 정부는 언제쯤 대국민 성명발표를 한다는 건가요?”

“국민 정서를 생각해 이번 달 말쯤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음, 이번 달 말이라. 좋습니다. 터키도 도와준다고 하니 이란과 이라크 정부에도 외교적으로 손을 써봅시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꼈다고 생각한 대통령은 이번 참에 중동 2개국을 대상으로 더 적극적인 외교술을 발휘해 김정은으로 인해 국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쿠르디스탄 공화국 건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먼저 이란과 이라크의 한국대사에게 연락해놓겠습니다.”

“그래요. 좀 더 수고해주세요.”

“네, 대통령님!”

“아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우리가 제시한 최종 건에 대해서 답변이 오면 즉시 보고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젯밤 서울에 도착한 강경희 장관은 정부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상황에 대해서 러시아에 전달한 상황이었다.

★ ★ ★

2023년 9월 16일 09:30,

북주 함경도 원산시 갈마별장.

4일 전, 평양종합병원에서 퇴원한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승인하에 이곳 원산 갈마별장으로 이동한 후 지속해서 회복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때 김씨 일가의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던 갈마별장은 통일 후 정부 관할 아래 공식 행사나 외국 귀빈이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이 개인 용도로 사용하게 된 갈마별장에는 기존 별장 경호원 말고도 국가정보원에서 파견한 현장 요원들이 추가로 경호에 들어갔다. 또한, 외곽에는 중대급 규모의 헌병대가 정문을 비롯해 6개 초소에서 24시간 경계 임무 중이었다. 만에 하나 김정은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 혹시나 모를 사태에 완벽히 대비하고자 하였지만, 이건 대외적인 이유였고 사실 김정은을 감시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완벽한 경호 및 감시 체계가 꾸려지자 기존 외부 방문자에 대한 통제를 풀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생활을 통제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 감독하는 것이 인권 문제로 커질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김정은은 푸른 동해가 가장 잘 보이는 귀빈각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옆에는 수행비서관 1명과 남녀로 구성된 수행원 2명이 서 있었다.

“오늘부터 방문자 통제가 풀렸다고 그랬디?”

가운만 입은 채로 테라스 비치 의자에 누워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매만지던 김정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가 바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네다.”

그는 수행비서관인 김학선이었다.

통일 전 국방위원회의 서기실장으로 24시간 김정은을 보좌했던 김학선은 평양 폭탄 테러 당시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일가족 전체가 노동 교화형 15년을 선고받고 지방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 고된 노동을 하면서 궁핍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통일이 되고 대한민국 법원의 재심을 받아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김학선과 그의 일가족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용 다세대 주택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또한, 김학선에게는 통일 복구사업의 건설현장에서 근로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줬다.

이렇게 적지 않은 나이에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막노동으로 6식구를 먹여 살리며 어렵게 살아가던 김학선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8년 만에 의식을 찾은 김정은이 예전 서기실장으로 자신의 손과 발이 되었던 그를 수행비서관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쳐 모시던 주군이 자신을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다는 소식에 김학선은 단번에 평양조합병원에 찾아가 충성의 눈물을 흘렸다.

“남조선 말대로 낙동강 오리알인 나를 보러 오려는 애미나이래가 있나 모르갓어.”

“당치 않는 소리입네다. 위대하신 김정은 국방위원장님을 보고자 하는 인민들이 쉴 수 없이 신청하고 있습네다.”

“고거이 참말이네?”

“그렇습네다. 서재로 가시면 방문 신청자에 대해 보고 하갔습네다.”

“일 없시야. 그냥 지금 갖고 오라우”

“네, 알겠습네다.”

대답을 마친 김학선 수행비서관은 뒤편에 서 있던 두 명의 수행원 중 여성 수행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에 여성 수행원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수행원 2명 역시 예전 김학선이 서기실장으로 있을 때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들이었다.

잠시 후 사라졌던 여성 수행원이 태블릿 PC 1대를 가져와 김학선에게 건넸다.

“국방위원장님! 여기를 보시면 지금까지 방문 신청자 명단을 볼 수 있습네다.”

김학선은 가깝게 다가가 상세하게 태블릿 PC의 사용법에 관해 설명했다.

“이것이 편해졌고 만기래”

건네받은 태블릿 PC 곳곳을 살펴본 김정은은 김학선이 설명해주는 대로 조작하며 신기해했다.

8년 전에도 북한에 태블릿 PC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태블릿 PC는 매우 얇았고 가벼웠다. 또한, 기존 디스플레이 외에도 3차원 입체영상인 홀로그래피로도 볼 수도 있었다.

태블릿 PC의 상단 중앙에서 쏟아지는 빛에 커다란 입체영상 디스플레이가 홀로그래피로 펼쳐지자 김정은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남조선이래, 대단하단 말이디”

볼살을 실룩거리며 말하던 김정은은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방문 신청자 목록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록에는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던 김형원도 있었다.

★ ★ ★

2023년 9월 17일 14: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광화문.

남북통일 후 한국의 국군의 날인 10월 1일과 조선인민군(북한군) 창건일인 4월 25일을 감안하여 대한민국은 통일 합의안에 따라 작년까지는 각자의 날짜에 소규모 형식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일제강점기 당시 임시정부 출범과 함께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한국광복군의 창설일인 9월 17일을 통일 대한민국의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고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의 행사를 준비했다.

1940년을 시작으로 올해 83주년이 된 통일 대한민국 국군의 날의 하이라이트인 시가행진은 숭례문을 시작으로 시청을 지나 광화문으로 가는 기존 행진 코스였으나 한국광복군 창설일을 계승하는 올해 시가행진 코스는 도보 부대는 숭례문을 시작으로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세종로 따라 종로2가 사거리까지였고 기계화부대는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장장 4.5km에 달하는 시가행진 코스가 정해졌다.

이로 인해 시가행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서울 시민은 물론 타 주에서 온 수많은 시민이 도로 양편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또한, 군사 대국으로 변한 대한민국의 최신 무기를 확인하고자 각국의 군사전문가 수백 명이 방문하여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83주년 광복군 창설 기념일이자 국군의 날에는 육군, 해군, 공군과 해병대, 그리고 2021년에 창설된 전략미사일군과 항공우주군이 모두 참여하고 도보부대 병력 15,000명을 포함해 전차와 각종 장갑차, 자주포, 미사일 발사차량과 같은 최신 기계화부대와 이번 시가행진을 위해 접이식 날개로 개조한 CF-21P 주작 전투기와 CF/A-25P 흑주작 전폭기, 마지막으로 실전 배치를 앞둔 무인전투기 CUF/A-29NP 등 105종 750대가 시가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을 통틀어 최대 시가행진이었고 세계 그 어느 국가와 견주어봐도 적지 않은 대규모였고 성대했다.

또한, 이번 시가행진에는 특별히 1940년 당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광복군을 그대로 재연해 시가행진에 참여하는 이벤트도 준비했다.

오전에 성남 제1항공우주비행단에서 취타대, 국군 의장대 시범, 전통무예, 축하공연, 군가 합창, 국민의례, 열병, 훈장 표창 수여, 기념사, 집단강하, 고공 강하, 태권도, 에어쇼 등의 식전 행사가 진행되었고 정확히 오후 3시가 되자 숭례문에서 대기하던 시가행진 병력이 행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5군 헌병대의 모터 사이드카 수십 대와 선도차인 C-161P 소형전술차 24대가 도로 지면으로부터 50cm 정도 떠서 저속으로 행진해 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는 국방부 소속의 군악대와 태극기를 중심으로 7개 연방 주정부기의 기수단이 뒤따랐고 연이어 각 군의 군기단과 의장대 이백여 명이 각을 맞추고 행진해 나갔다.

이어 도보 부대 중 가장 먼저 1940년 당시 한국광복군을 재연한 300여 명의 군인이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불렀던 독립군가를 부르며 행진해 나갔다. 이번 시가행진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였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 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 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기리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 되고

나 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 아니냐 빛내리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압록강과 두만강을 뛰어 건너라.

악독한 원수 무리 쓸어 몰아라.

잃었던 조국 강산 회복하는 날 만세를 불러보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역사의 고증을 통해 재연한 광복군이었지만 이를 구경하는 국민은 마치 1940년 당시로 돌아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모습으로 보였다. 이에 구경나온 백만여 명의 국민으로부터 환호와 갈채를 받았다. 어떤 노인분들은 복받치는 감정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한, 이번 시가행진에서 사열을 받는 단상에는 군 장성과 정부 관계자 인원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좌석을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모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한 자리로 만들었다. 이에 광복군은 물론 각 군의 모든 부대로부터 사열을 함께 받는 뜻깊은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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