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5화 (315/605)

복잡한 세계 정세

2023년 9월 14일 20:40 (러시아시각 14:40),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집무실에 주요 부서의 장관 6명이 참석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관장했다.

회의 분위기는 매우 어두웠다. 홋카이도 건과 관련하여 러시아 정부의 요구사항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비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는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의 보고 때문이었다. 이에 며칠간 행복한 고민에 기분이 좋았던 푸틴 대통령의 인상은 굳어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제안에 따라 홋카이도를 대신해 요구사항을 제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러시아 정부는 21일 재정지원금 1,000억 달러와 레이저 라이플 원천기술 이전을 요구했다. 하지만 금일 오후,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재정지원금 500억 달러 이외는 들어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부푼 기대를 하고 있던 러시아 측에서 보자면 수긍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아니 비공식적이라 하더라도 외교적 결례로 볼 수 있는 황당한 답변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500억 달러라니요? 고작 500억 달러로 홋카이도와 맞바꾸잖은 겁니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서두를 연 사람은 수년간 국방장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이었다.

“결과적으론 그렇습니다.”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우리 러시아를 뭐로 보고 이딴 식의 답변을 하다니.”

황당한 답변에 화가 난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회의 탁자까지 치며 치미는 분노를 그대로 들어냈다.

“진정하세요. 이바노프 장관! 대통령님도 계시는데, 그나저나 레이저 라이플 원천기술은 제외하고도 재정지원금을 500억 달러로 낮춘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 주관 회의인데도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국방장관의 행동을 제지한 비상대책부의 이고르 셈쇼프 장관은 고개를 돌려 외교장관를 보며 추가 질문을 던졌다.

“비밀문서 체결 당시 3번째 조건이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입니다.”

한일전 당시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 체결한 비밀문서에는 레일건 원천기술과 종전 후 홋카이도 영토 이양이라는 엄청난 떡고물에는 선제조건 3가지가 있었다.

첫째 UN 안보리에서 한국을 적극 지지한다. 두 번째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러시아는 사전 계획에 따라 총 3번, 일본 전역을 대상으로 ICBM 공격을 감행한다. 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조건은 이행이 되었지만, 3번째 조건은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 당시 생각 이상의 빠른 종전으로 러시아는 일본 전역에 대한 ICBM 공격을 1번밖에 하지 못했다.

“계획보다 빠른 종전으로 공격을 감행 못 한 이유를 우리 쪽 문제라 생각하는 겁니까? 가당치 않고 안하무인의 핑계군요. 완전히 억측입니다. 억측”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은 재차 화를 내며 괜히 외교장관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에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은 침묵했고 대신 비상대책장관인 이고르 셈쇼프 장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잘라 말했다.

“이바노프 장관!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좀 자제하세요.”

“뭐요?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습니까?”

이에 사사건건 끼어드는 이고르 셈쇼프 장관의 말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이 두 눈을 치켜들며 받아쳤다.

이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의 시선을 은근 무시한 이고르 셈쇼프 장관은 차분한 어조로 할 말만 했다.

“흥분보다는 해결책을 마련해야지요. 한국 정부의 최종 답변을 받은 이상 수락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지 않겠습니까?”

러시아 내에서도 비상대책장관의 영향력은 국방장관과 견주어 봤을 때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두 장관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이상하리만큼 신중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푸틴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카르핀 장관!”

“네, 대통령님!”

“홋카이도를 푼돈 500억 달러로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에 유감이라고 전하시오.”

“그렇다면 수락하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그깟 500억 달러를 받고 홋카이도를 포기할 사람으로 보이오?”

“아, 아닙니다.”

“사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예상 못 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합시다.”

푸틴 대통령의 음성은 신중하면서도 매우 차가웠다. 이에 최측근인 그들은 푸틴 대통령이 현재 얼마나 많이 화가 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추가적인 회의는 이번 주 내로 다시 소집하겠소. 그때까지 장관들은 각자 주어진 사항에 대해서 준비들 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이후 1시간 동안 각 장관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지시를 내린 푸틴 대통령은 회의를 끝내고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만 남은 상태에서 비서관을 호출했다.

“네, 대통령님!”

“지금 당장 SVR(대외정보국) 국장 호출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 ★ ★

2023년 9월 14일 20:45 (쿠르디스탄시각 14:45),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 아제르바이잔 공원.

모래바람을 날리며 달려오던 정체불명의 차량 6대는 정찰소대의 임시 초소로부터 1.3km 떨어진 지점에서 정차했다.

“김 상병님! 저것들 대체 뭡니까? 확! 쏴버릴까요?”

갑작스러운 출현에 1분도 쉬지 못하고 다시 초소에 들어선 곽영환 일병은 분대장조에서 날린 SI-Q(슈퍼아이 정찰 드론)로부터 전송된 영상을 X-K01 단말기의 디스플레이로 확인하며 김성호 상병에게 말했다.

“너 영창 가고 싶냐?”

“생각 같아선 확 당겨버리고 영창 가고 싶습니다. 영창이 여기보단 나을 듯합니다. 그런데 정말 저놈들 뭐 하는 겁니까?”

4.2인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는 도로를 따라 양 갈래로 중기관총을 거치한 픽업트럭 6대가 정차해 있었고 여러 복장을 한 무장병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흔히 중동국가에서는 볼 수 있는 픽업트럭은 민병대, 무장단체, 테러리스트의 창의력과 합쳐져 그들만의 정석적인 무기체계로 사용되었고 병력 수송이나 각종 중무장을 하면서 테크니컬(technical)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장 선두에 선 픽업트럭에는 웬만한 승용차는 박살 낼 수 있는 12.5mm 데쉬카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상태였고 그 뒤편 5대에는 북한 73식(Type-73) 짝퉁 기관총이 거치해 있었다.

1970년대 미국과의 무기거래가 완전히 중단된 이란은 1980년 9월에 이라크가 침공하자 무기 수요를 위해 북한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탱크와 대전차유도탄 그리고 일반 소총뿐 아니라 73식 기관총도 대량으로 구매했다.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란은 10여 년간 자국 무기공장에서 북한의 73식 기관총 짝퉁 버전을 잔뜩 찍어냈다. 그리고 현재 40년 된 짝퉁 73식 기관총을 국경선 일대 민병대에 재고 정리하듯 나눠준 듯 보였다.

“난들 아냐! 뭐 이란 민병대나 아니면 국경을 수비하는 이란군이겠지”

초소 모래주머니에 C-200P 플라즈마 스마트탄이 장착된 KS2를 만지작거리며 김성호 상병이 대답했다.

“군복이 아닌 것으로 봐서는 민병대 같습니다만, 아 생각하니 열 받네. 이란군도 아니고 자식들이 하필 좀 쉬려고 할 때 오냐고”

곽영환 일병이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가운데 소대통신망에서 소대장의 명령이 하달됐다.

-상부에서 되도록 군사적 충돌을 자제하라는 지시다. 절대로 명령 없이 선제공격하지 말고 경계만 철저히 하도록 해.

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m 무선 통신기로부터 소대장의 지시 사항이 들려오자 곽영환 일병이 유심히 디스플레이를 지켜보고는 말했다.

“저것들 IED 설치하는 거 아닙니까?”

X-K01 단말기의 디스플레이에는 20여 명의 무장 병력이 도로 위에서 뭔가를 설치하는 영상이 보였다.

“더는 못 오게 하려고 하는 거겠지!”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 역시 X-K01 단말기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중에 진공 시 조심해야겠습니다.”

“뭘 걱정이냐? 저런 게 우리한테 통할 거 같냐?”

현재 이란 정부는 쿠르디스탄의 독립은 반대하면서도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대한민국과의 군사적 충돌은 원치 않았다. 이에 이란 정부는 민병대를 통해 쿠르디스탄과의 국경선 일대에 이란 정규군을 대신해 경계 임무에 투입 시켰다.

★ ★ ★

2023년 9월 14일 21:30 (러시아시각 15:30),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

푸틴 대통령의 긴급 호출을 받은 SVR(대외정보국)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찾으셨습니까?”

“앉으시오.”

푸틴 대통령과 11년을 함께해온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은 측근 중에 최측근 중의 한 명이었다.

“현재 김정은 건은 어떻게 되었소?”

푸틴 대통령은 먼저 발레리 카르핀 외교장관에게 물었다.

“현재 우리 쪽에서 김정은을 직접 만나는 건 어렵다는 판단에 북주 일대를 정치적 기반으로 활동 중인 민족노동당 대표인 김형원 상원의원과의 약속을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한반도 통일 전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기도 했던 김형원은 통일 후 북부를 기반으로 한 민족노동당을 창설하였고 지금은 54명의 하원의원과 4명의 상원의원이 당원으로 있는 민족노동당의 당 대표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재 국가정보원 ACS실의 주요 감시 대상 1호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 김정은을 움직여야 합니다.”

“네, 대통령님!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득할 것입니다.”

홋카이도 이양 건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푸틴 대통령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8년 만에 깨어난 김정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좋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긴급 호출로 오게 된 예브게니 레베데프 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베데프 국장!”

“네, 대통령님!”

“SVR에서 이란 정부에 긴밀한 공작을 펼쳐야겠어.”

“이란 말입니까?”

“그래, 이란 정부에 우리의 무기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니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저지하라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한국과 외교적 문제가”

“비공식적인 공작이 아닌가? 극비로 처리하란 말이야.”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는 세계지도가 걸려있는 벽면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동시적인 양동작전!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을 확실히 흔들어야겠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을 이용해 대한민국 내부를 혼란 시키는 동시에 이란 국가를 통해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막고자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위해 재정지원은 물론 군부대까지 투입한 대한민국은 분명히 이란과의 전쟁에 깊숙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결론은 대한민국을 내외적으로 크나큰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어 위기상태로 몰아붙이고 그 기회를 틈타 홋카이도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들어가고자 하는 게 푸틴의 생각이었다.

“즉시 이란에 요원들을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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