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계 정세
2023년 9월 13일 20:30 (터키시각 13:30),
터키 앙카라 화이트 팰리스 대통령궁(외빈 접견실).
화이트 팰리스라 불리는 터키 대통령궁은 현대판 술탄(이슬람제국 통치자)을 꿈꾸는 터키 12대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때 건축한 야심 찬 호화 궁궐이다. 애초 건축 예산(9억 6400만리라)의 1.5배를 초과한 13억 7000만리라(약 6,660억원)의 건축비가 들었다는 소식으로 터키 내에서 논란에 휩싸였었다. 이 호화 대통령궁은 200,000㎡ 부지에 전통 셀주크 양식으로 세워졌다. 터키 언론에 따르면 방만 1,000개이고, 거대한 복도와 아트리움(건물 중앙에 유리 지붕을 한 공간), 공원, 지하벙커를 갖췄다고 보도된 적도 있었다.
이러한 화이트 팰리스 대통령궁의 외빈 접견실에는 금일 오전 비공식으로 터키 앙카라를 방문한 대한민국 강경희 외교부 장관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올해 4월 쿠르디스탄 공화국 독립에 대한 대한민국의 지지 성명과 각종 재정 및 군부대 지원으로 인해 급격히 냉랭해진 양 국가의 외교 관계를 비춰봤을 때 터키 외무부 건물이 아닌 이곳 대통령궁에서 접견한다는 것이 한가지 예가 될 수 있었다.
현재 터키 여당은 물론 야당의 정치인들의 험한 발언이 각종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가운데 내부적 동요는 있었으나 20여 년간 이어진 혈맹관계 때문인지 최상의 예우를 보여줬다.
그리고 외빈 접견실에는 외무부 장관인 뤼슈티 젠킨 외에도 터키 13대 대통령인 아르다 에브렌과 내각 총리 하칸 잔, 국방부 장관인 볼칸 세틴까지 회의에 참석하여 쿠르디스탄 공화국으로 인해 틀어진 양국 간의 외교 문제를 풀고자 하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현재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과의 혈맹관계 유지는 터키의 미래를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내부적 정치 갈등을 뒤로하고 강경희 외교부 장관을 극진히 대접하여 현재 꼬여버린 양국의 외교 문제를 풀고자 하는 터키 정부의 의도이기도 했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에 감사합니다.”
강경희 장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접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무슨 극진한 대접이라니요. 당연히 혈맹국의 외교부 수장의 방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이 양손을 벌려 별거 아니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요새 쿠르디스탄 공화국 건으로 대한민국이 혈맹국인 터키에 심려를 끼친 점 항상 미안하다고 우리 대통령님께서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음, 그 부분은 우리 정부 역시 유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양국 간의 틀어진 외교 문제를 풀고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희 방문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그 제안 한번 들어봅시다.”
강경희 장관의 왼쪽 맞은편에 앉아있던 내각 총리인 하칸 잔이 말했다. 현재 내부적으로 가장 강한 압박을 받는 사람은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보다는 하칸 잔 총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마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네, 우리 대한민국은 쿠르디스탄 공화국의 평화적인 독립을 원합니다. 그러자면 터키의 공식 지지가 필요······.”
“강경희 장관님! 그 부분은 정치적으로도 그리고 국민적 정서에도 용납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성격 급한 하칸 잔 총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이 재제를 시키며 말했다.
“잔 총리! 일단 강 장관님의 제안에 대해서 다 들어보고 얘기를 해봅시다.”
“아! 저도 모르게 흥분한 나머지 죄송합니다.”
하칸 잔 총리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터키와 쿠르드족과의 역사에 대해선 말입니다. 그리고 혈맹국인 터키에 조건 없는 공식 지지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현재 쿠르디스탄 공화국이 원하는 터키의 동부 일대의 영토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이양해준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터키에 24GW급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의 무상 건설은 물론 100년간 무상으로 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뤼슈티 젠킨 외무부 장관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모두 무상입니다. 또한, 100년 후에는 소유권과 사용권 모두 터키에 무상으로 이양할 것입니다.”
첫 번째 미끼를 던진 강경희 장관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4명의 사내를 차례대로 둘러봤다. 이때 표정 변화가 없는 뤼슈티 젠킨 외무부 장관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를 받는 대신에 우리 터키 동부 땅을 쿠르디스탄 공화국에게 내주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강경희 장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금 하칸 잔 총리는 부정적인 말을 전했다.
“그 정도로 쿠르드족에 대한 국민 정서를 반하여 우리 영토를 내줄 순 없습니다. 또한, 터키는 전기 운용에 있어 현재 2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으며 28년에 추가적인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됩니다.”
예전 외무부 장관 출신이기도 한 현 내각 총리 하칸 잔은 그리 호락호락 한 상대가 아니었다.
“잔 총리님!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는 지진이나 만일의 사고에도 원자력발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 안전합니다. 그리고 24GW급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의 발전용량은 4호기로 이뤄진 원자력발전소 4개보다 더 많은 발전용량입니다. 말 그대로 앞으로 터키는 15호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 건설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며 그에 맞는 무상의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국가 재정적으로 매우 절약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는 수억 수천억 달러가 있더라도 건설할 수 없습니다. 현 법에 따라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운용이 가능한 수출제한 발전소입니다. 이러한 법까지 개정하여 혈맹국인 터키에 무상으로 제공하려는 겁니다.”
말을 마친 강경희 장관은 하칸 잔 총리의 표정을 읽었다. 하지만 역시나 표정 변화는 없었다.
“강 장관님! 24GW급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의 건설비용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은 나름 만족하는 듯했다.
“네, 24GW급이면 건설비용만 120억 달러입니다.”
“음, 3번째 원자력발전소의 건설비용인 80억 달러가 절약되고 무상으로 120억 달러짜리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가 건설되면 15호기에 해당하는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을 얻는 다라······. 향후 100년간 발전소로 인한 국가 재정은 물론 전기 걱정은 없겠군요.”
이때까지 듣고만 있던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이 한마디 던졌다.
“대통령님! 발전소나 국가 재정은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절약할 수도 있고 여러 정책을 통해 수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토라는 것은 한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힘듭니다.”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 역시 하칸 잔 총리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틴 국방부 장관님! 터키 동부의 땅은 지하자원도 없고 척박한 산악지대입니다. 그러한 땅을 쿠르디스탄 공화국에 이양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한 인도적 차원의 모범이며 전 세계 국가로부터 극찬을 받을 것입니다.”
“강 장관님! 그렇다고 해도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자칫 반정부 폭동까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은 단호했다.
‘역시 히든카드를 꺼내야 하나?’
영토 이양에 있어서 생각 이상의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강경희 장관은 들고 온 서류가방에 눈길을 주며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굳힌 강경희 장관은 서류가방에서 A4용지 크기의 서류철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뭔가요?”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이 물어보자 강경희 장관은 대답 대신 직접 보라는 손짓을 했다. 말로 알려주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게끔 해주는 게 받아들이는 쪽에서 심리적 더욱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외교 전술 중의 하나였다.
잠시 후 강경희 장관이 건넨 서류를 확인한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의 표정은 금세 놀라움으로 변하며 되물었다.
“이, 이것은 레일건 원천기술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레일건 개발과 관련된 문서입니다.”
강경희 장관의 말에 그동안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하칸 잔 총리마저 표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곁눈으로 확인한 강경희 장관은 이제야 먹혀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장관님, 그렇다면 레일건 원천기술도 우리 터키에 제공한다는 건가요?”
흥분한 볼칸 세틴 국방부 장관이 확인차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플라스마 초광자발전소는 물론 레일건 원천기술도 제공하겠습니다.”
현재 레일건 기술을 군 전력에 실전 배치를 완료한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뿐이다. 미국은 20여 년간 개발 기간을 통해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였지만, 세계 군사력 3위인 러시아인 경우는 대한민국에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가능했다. 이외 국가에서도 자체적으로 레일건 개발에 착수했지만, 언제 성공할지 그 시기는 미지수인 첨단기술이었다.
터키 역시 레일건에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들였지만, 아직 초기 단계였다.
그런 기술을 대한민국에서 제공하겠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일건 기술만 확보하면 불안한 중동과 콧대 높은 유럽국가와의 군사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원천기술 모두를 약속할 수 있습니까?”
회의 내내 부정적인 의견만 내세우던 하칸 잔 총리가 드디어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당연합니다. 어떤 국가처럼 로우기술버전을 제공하는 그런 장난은 치지 않습니다.”
양팔을 벌려 어깨를 으쓱한 강경희 장관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하칸 잔 총리가 아르다 에브렌 대통령을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 ★ ★
2023년 9월 14일 20:30 (쿠르디스탄시각 14:3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 아제르바이잔 공원.
마쿠 시내 피해 복구 작업의 안전 확보를 위해 이란과 쿠르디스탄의 실제 국경선이라 볼 수 있는 마쿠 동단 2km의 아제르바이잔 공원에 1정찰소대 기동전투장갑차 2대가 도로에서 정차해 있었다.
그리고 장갑차에서 하차한 전투보병대원들은 도로 양쪽 편에 타이어와 모래주머니로 만든 임시 경비초소에서 경계 중이었다.
“아! 머리가 타들어 갈 거 같습니다.”
312호 장갑차 하차조 보병대원인 곽영환 일병이 헬멧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는 불평을 늘어놨다. 햇빛 가래 막도 없이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게 곤욕이긴 했다. 다행히도 보호 슈트 때문에 강렬한 무더위는 참을 수 있었지만, 헬멧을 통해 느껴지는 열기는 상당했다.
“윤 이병 장갑차로 데리고 가서 잠시 쉬고 와라!”
FM을 고수하는 부분대장 이진태 병장이 웬일인지 선심을 보였다.
“헉! 이 병장님 정말입니까?”
“야! 맘 바뀌기 전에 가서 쉬고 와! 시간은 20분이다.”
“네, 알겠습니다.”
간이 초소에서 나온 곽영환 일병과 윤호진 이병은 휘파람까지 불며 장갑차로 들어갔다.
“야! 너희 근무시간에 어딜 들어와?”
312호 장갑차 단차장이 하차조 보병 의자에 누운 상태로 물었다.
“부분대장이 잠깐 쉬다 오라고 했습니다.”
“이 병장이?”
“넵”
“웬일이냐? 그놈이,”
“그렇게 말입니다. 우리 이 병장 FM 중의 FM인데 말입니다.”
장갑차 포수인 황학성 병장이 고개를 돌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선임이 쉬라고 해서 쉬는 거니까 괜찮지 말입니다?”
“그래 앉아서 쉬어”
“네! 알겠습니다.”
단차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곽영환 일병과 윤호진 이병은 헬멧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아! 이제야 좀 살 거 같다.”
곽영환 일병이 떡 된 머리를 양손으로 긁으며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는 장갑차 내부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도 잠시 소대 통신망으로 711호 단차장이자 소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방 3.5km 지점 정체불명의 차량 다수 확인! 각 경계병 전투 준비!
“악! 앉은 지 1분도 안 됐는데······. 가자! 막내야”
입이 오리입처럼 튀어나온 곽영환 일병과 윤호진 이병은 뛰어가 간이 초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멀리 2.5km 지점 도로에는 모래바람을 날리며 정체불명의 차량 6대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