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8화 (308/605)

예견된 위기

2023년 9월 01일 10: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대동강구 평양종합병원(구 조선고려의학병원) 특급입원실.

한때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집무실 용도로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영구 보존 상태로 안치되어 있던 주석궁 또는 금수산태양궁전이라 불리던 이곳은 통일 후 평양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로 바뀌어 세계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은 2021년 6월에 백두산 아래 혜산 근처의 공원에 이장하여 묘소에 안치했다.

당시 이를 두고 평양 시민의 반발이 있었지만, 김여정 부통령의 설득으로 큰 무리 없이 이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년 사이에 관광명소로 바뀌어버린 주석궁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이었다.

2015년 815 평양 폭탄 테러로 의식불명에 빠져 8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한 달 전에 깨어난 김정은은 지난 8년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 듣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감에 빠졌고 그 충격은 상당했다. 이로 인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발작을 일으켜 난동 아닌 난동도 부렸지만, 약물치료와 정신 상담을 통해 서서히 호전되어갔다.

“평양 시내가 너무나 아름답게 변했고 만기래”

김정은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8년 전 기억 속 평양하고는 다르게 변한 평양 시내의 모습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였다.

“특히 류경호텔 말이야.”

대동강 넘어 피라미드 양식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류경호텔을 본 김정은은 다시 한번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1987년 프랑스와 합작으로 기공을 시작하였지만, 이후 재정문제로 공사대금을 체납하면서 공사가 중지되어 거대한 흉물로 남게 되었고 급기야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흉한 건물’ 10위에 선정되는 비운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이집트 국영 통신사 오라스콤의 투자로 공사가 재개되었지만, 역시나 3억 달러 이상의 외자 유치를 못 해 지지부진하다가 2015년 평양 폭탄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그나마 공사도 완전히 중단되어 평양의 폐호텔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2021년 통일 후 통일정책부의 산하기관인 북주복구사업청은 가장 먼저 입찰을 통해 건설 업체를 선정하고 류경호텔의 재공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2023년 9월에 완공하여 지금은 평양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과 방문객이 묵고 싶어 하는 1순위의 호텔로 선정되었고 평양 최대 명소가 되었다.

류경호텔 외에도 50층 이상의 빌딩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우후죽순 세워졌고 콘크리트로 만들었던 도로들은 평평한 아스팔트로 재조성되어 깔끔해 보였다. 그리고 그 도로에는 살아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의식불명에 빠진 건 8년이었지만 평양은 50년 이상 뛰어넘는 눈부신 발전이 되어 있었다.

“김여정은 언제 오네?”

10여 분간 평양 시내를 구경하던 김정은은 고개를 돌려 항시 24시간 붙어 다니는 의사와 간호사 뒤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검정 슈트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김정은은 예전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휘두르던 버릇이 남았던지 모든 사람에게 반말했다.

“내일 오후 1시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짧게 대답한 검정 슈트 사내는 마음속으론 못된 돼지 새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구만, 그런데 자네는 어디 소속이네? 보안부네?”

“보안부라는 기관은 이제 없습니다. 그리고 기밀이라 밝힐 수 없습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비밀이네?”

“죄송합니다.”

“그건 기렇코 내래 부탁 한 가디만 해야갔어”

“무, 무슨 부탁입니까?”

“김기남이, 라동일이, 김형철이 좀 불러주라우. 어찌 내가 깨어났는데 낯짝 한번 안 비치네”

김정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한때 북한 정권의 최고 관료들이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이분들과의 면회는 불가합니다.”

“뭐래? 이유가 뭐네?”

“상부의 지시입니다.”

“이 간나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네? 당장 불러오라우”

김정은은 볼살을 실룩 꺼리며 입원실이 떠나가라 큰소리를 쳤다.

‘요새 잠잠하나 했더니 또 발작이구나! 저 돼지 멱따지 나는 소리 지겹다 지겨워’

김정은이 깨어난 후 이곳으로 파견 온 국가정보원 ACS실 안강수 대리는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무덤덤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 처지라 저한테 뭐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래? 그럼 니 윗대가리 불러오라우”

“내일 김여정 상원과 함께 오실 겁니다. 그때 말씀하시는 게···.”

“알겠시야. 나가보라우. 꼴도 보기 싫으니끼니”

김정은은 한 번 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침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뻘쭘해진 안강수는 다른 요원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한편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쪽 벽면에서 듣기만 하고 있던 북주 출신의 의사와 간호사는 잔뜩 겁먹은 상태로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었다. 8년이 지나고 세상이 변했는데도 그들 머릿속에는 김정은에 대한 두려움과 위압감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은 이곳에서 계속 있다가 무슨 일 나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저 사람은 그냥 민간인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안강수는 의사와 간호사가 벌벌 떠는 게 안쓰러웠는지 안심시키고자 몇마디 전하고는 입원실에서 나왔다.

“아나 저 돼지 새끼, 확 패버리고 싶습니다. 안 대리님!”

가장 먼저 나간 ACS 소속의 오태규 주임이 주먹을 내밀고는 입원실 문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놔둬라. 저 돼지 새끼도 하루하루가 지옥일 거야. 눈 뜨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잖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김씨 왕조의 왕인 줄 알고 지랄하잖습니까?”

“그냥 뒈지지 살아나서 여러 사람 고생시키네요.”

오태규 주임의 말에 옆에 있던 김명규 주임이 투덜거렸다.

“목소리 크다. 저 돼지 들으면 골치 아프다. 조심들 해”

“네,”

★ ★ ★

2023년 9월 01일 21: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극비문서 보관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2021년 새로운 통일 정부가 들어선 후 최장 임기를 지낸 나봉일 원장이 퇴임하고 새로운 국가정보원의 수장을 맡은 이영진 원장은 국가정보원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단 한 명의 직원과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의식은 100% 돌아왔고 몸도 어느 정도 움직여서 이제는 휠체어 없이도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닌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 김정은의 건강 상태를 체크 한 자료입니다.”

비상 코드 발령 후 본격적으로 움직였던 ACS의 윤수길 실장은 정보수집1과 과장을 걸쳐 2013년 1월 정규 인사 때 ACS 실장으로 승진했다.

“김여정은?”

현재 김여정 부통령은 2년 임기를 마치고 2023년 2월 10일 상원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하여 당당히 당선되어 현재 여의도 상원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하고 있었다.

* 통일 후 7개 주와 1개 자치주로 구성된 대한민국은 기존 국회 제도를 폐지하고 미국과 같은 양원제 방식을 채택했다. 먼저 하원의원은 2021년 4월 11일 1대 선거를 시행해 각 주의 인구비례에 따라 하원의원을 선출했고 정원은 350명에 임기는 4년으로 확정했다. 두 번째로 상원의원 역시 2021년 4월 11일에 1대 선거를 시행했고 인구와 상관없이 7개 주는 14명, 자치주는 2명을 선출해 정원은 100명에 임기는 4년으로 확정했다.

“네, 금일 오전 국정 활동, 오후 지방 행사 2건 외에는 특별한 거 없습니다. 그리고 내일 1시에 김정은 병문안 예약되어 있습니다.”

“김여정 감시에 있어서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네. 감시 특별대상 1호니까 말이야. 그리고 병문안 시 감청은 잘 하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김정은에 대한 다른 동향은 없나?”

"다른 외부인사와의 접촉은 아직 없었습니다만, 예전 최측근이었던 고위관료 3명을 불러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를?”

“최고인민회의 의장이었던 김기남과 보위사령부 사령관 라동일, 그리고 총정치국의 1부국장 출신인 김형철입니다. 김형철 빼고는 모두 정계에서 은퇴한 자들입니다.”

“김형철이라면?”

“22년에 신설된 중앙광역수사국의 부국장에 있는 김형철입니다.”

“음, 김형철이 걸리는군”

이영진 원장은 확인하던 서류를 가방에 넣고는 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몸을 밀착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윤 실장! 김형철도 24시간 감시체제로 전환해”

“네, 알겠습니다.”

“김형철 같은 경우는 절대 꼬리 잡히지 말도록 해! 같은 정보기관끼리 사찰이니 뭐니 말 나오면 골치 아파!”

“걱정하지 마십시오”

“청와대에서 걱정이 많아! 혹, 이번 건으로 인해 평화 통일을 이룬 대한민국에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인력이 부족하거나 활동비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네,”

국장급 이상만 출입이 가능한 극비문서 보관실에서의 두 남자의 대화, 행여 정치인 사찰이라는 오해를 불러드릴 수 있는 위험 수위의 대화가 오갔지만, 이영진 원장과 윤수길 실장은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의 의식 회복에 따른 만일에 일어날 사태를 사전에 막고자 은밀하고 조용히 움직였다.

★ ★ ★

2023년 9월 02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통일 정부의 추은희 정권에 있어 김정은은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법적으로 그 어떠한 직급이나 직책은 없지만, 한때 북한 최고 지도자로 인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김정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칠지 가늠할 수 없었다.

통일을 논하던 2020년 당시 김여정 제1부위원장과의 합의를 통해 남북통일이 되었으나 실상 북한의 모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는 김정은이었다. 의식불명으로 이인자인 김여정이 모든 의사를 결정했지만, 현재 김정은이 깨어난 상태에서 혹, 통일 합의를 철회하거나 북한의 독립을 요구한다면, 법적 근거로는 부족할 수 있으나 대외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올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통일 전 한국 정부는 김정은의 의식이 깨어났을 때를 대비해 몇 가지 로드맵을 세워놓고 있었다.

바로 ACS(Around-the-Clock Surveillance)였다. ACS는 24시간 감시부서로 평소에는 정보수집국과 같은 임무를 맡고 있다가 비상 상황 발생 시 즉시 가동되는 국가정보원서도 차관급 이상만 아는 비밀부서였다.

김정은이 깨어났을 때 ACS는 비상 상황 전파와 함께 즉시 가동되었다.

이로 인해 김정은이 입원해 있는 평양종합병원(구 조선고려의학병원) 특수동 10층 중환자실은 ACS 요원 12명이 4교대로 24시간 감시 및 경호 임무에 들어갔고 이외 지원 요원 20명이 건물 주변에 상주했다. 그리고 특수동 건물에는 평양지방경찰청에서 파견된 경찰 100여 명이 외부인의 출입을 철통같이 통제했다. 의식이 돌아오기 전보다 2배에 이르는 병력이었다.

이처럼 ACS 가동된 후 추은희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이영진 원장으로부터 매일 아침 김정은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 보고들 받았다.

“그게 정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김기남이나 라동일은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했으나 김형철은 현재 중앙광역수사국의 부국장으로 김여정 상원과 마찬가지로 24시간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 원장님! 김형철 말고도 나머지 2명에 대해서도 모두 24시간 감시에 들어가세요.”

“은퇴한 분들도 말입니까?”

“이 원장님!”

이영진 원장의 반문에 대통령은 언성을 높여 이름을 불렀다.

“네, 대통령님!”

“나는 1%의 위험요소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정부에서 어떻게 이룬 한민족 평화 통일인데, 그런 안일한 말을 하시나요?”

“죄송합니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뭐든지 지원을 할 테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원장님!”

“네, 제가 잠시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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