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6화 (306/605)

에필로그-3

대답과 동시에 박기웅 대리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손을 들었다. 이에 박기웅 대리의 신호를 확인한 이영규 팀장이 천천히 리지 안이 누워 있는 곳으로 향했고 이자성 팀장과 박기웅 대리도 해변으로 걸어갔다.

여자 한 명을 두고 이렇게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는 리지 안 옆에 있는 건장한 백인 사내들 때문이었다. 다들 관광객 복장이었지만 적어도 한두 명은 리지 안의 경호원일 수 있었다. 타국에서 공조 수사 협조가 아닌 리지 안을 체포하는 건 엄연히 불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영규 팀장은 서툰 영어로 리지 안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리지 안은 머리에 쓴 선글라스를 쓰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백인 사내가 앞으로 나서서 카메라를 툭 치며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역시 생각한 대로 저놈들 경호원이었군!’

“아! 그럼 당신이 좀 찍어주시죠?”

“헤이! 꺼져!”

2m에 가까운 체격을 자랑하는 백인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데 뭘 그렇게 반응하시나? 기분 나쁘게”

이영규 팀장은 일부러 백인 사내가 열 받으라고 비꼬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거구 백인 사내 말고도 뒤에 있던 금발의 곱슬머리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손가락 욕을 하며 이탈리아어로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이 새끼 지금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그리고 확 손가락을 분질러 버릴라”

이영규 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구의 백인 사내가 얼굴 크기에 버금가는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영규 팀장은 예상했다는 듯 오른쪽으로 주먹을 가볍게 흘리고는 그대로 어퍼컷으로 거구의 백인 사내의 턱을 날려버렸다.

퍽억!

으억!

거구의 백인 사내가 벌러덩 뒤로 쓰러지며 싸움이 시작되자 곱슬머리 사내를 비롯해 주위에 있던 여러 명의 사내가 이영규 팀장을 향해 달라붙었다.

“어쭈 여러 명이 덤빈다? 그래 덤벼라. 자식들아!”

이영규 팀장은 달려드는 4명의 사내와 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리지 안은 다른 경호원 몇 명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이 팀장님이 시작했네요. 대체 저년은 경호원을 몇 명 둔 건지 모르겠네요?”

경호원 5명을 대동하고 해변 호텔 쪽으로 걸어가는 리지 안을 보고는 박기웅 대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돈 둬서 뭐하겠냐? 펑펑 써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텐데, 나 같아도 경호원 수십 명은 두겠다.”

“하기야! 그럴 수 있겠네요. 남는 게 돈인데······. 아! 근데 저거 다 우리 세금 아닙니까? 생각하니 열 받네”

“구시렁구시렁 그만하고 먼저 달려가서 몇 명 떨궜네!”

“알겠습니다.”

백인 사내 5명의 경호를 받으며 호텔 현관 쪽으로 들어서는 그때, 먼저 달려간 박기웅 대리가 양손을 벌려 리지 안 앞을 가로막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아가씨 미모가 대단하십니다. 우리 시간 되면 차라도 한잔?”

“비켜라! 원숭아!”

앞장서 걸어가던 흑인 사내가 험한 인상을 쓰고는 소리쳤다.

“아! 원숭이? 야! 시발놈아 원숭이는 쪽발이고! 이 연탄 새끼가 죽으려고 어디서 인종 비하를 해!”

순간 튀어나온 한국어에 알아듣지 못한 흑인 사내와 나머지 경호원들은 어리둥절했고 뒤에 있던 리지 안이 순간 놀라 했다.

“저기! 한국분인가요?”

리지 안이 말했다.

“어라? 아름다운 아가씨도 한국분? 워 타지에서 이렇게 한국분을 만나다니!”

“아니요. 전 미국인입니다. 그래도 한국과는 인연이 있어서 말하는데, 험한 꼴 당하지 말고 비켜주세요.”

“아!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이것도 인연인데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하시죠? 저도 혼자 여행 와서 심심했던 참입니다.”

“흥! 전 관심 없으니 비키세요.”

“얼굴은 이쁜데 너무 도도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인 사내의 묵직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박기웅 대리의 얼굴을 향했다.

퍼억!

기습적인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박기웅 대리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맞으면서 몸의 중심을 뒤로하면서 최대한 주먹의 충격을 흘리며 쓰러졌다.

“아! 타국에서 맞아 죽겠네.”

박기웅 대리는 능청거리며 일어나 주먹을 쥐고는 자세를 취했다.

“야! 다 덤벼! 연탄, 백탄 이 새끼들아!”

덤비라는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나머지 사내 3명도 흑인 사내와 동참하며 박기웅 대리에게 달라붙었다. 이렇게 박기웅 대리가 시선을 끄는 동안 리지 안 뒤에는 어느새 이자성 팀장이 다가와 리지 안의 입을 막고는 그대로 가볍게 목을 쳐 기절을 시켰다.

“넌! 뭐야?”

순간 VIP인 리지 안이 동양 사내에게 잡히지 가장 근접 경호를 하던 백인 사내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리지 안을 바닥에 내려놓은 이자성 팀장은 그대로 돌려차기로 권총을 꺼내 들던 사내의 턱을 날려 쓰러뜨렸다.

퍼억! 우억!

그리고 그사이 나머지 4명도 박기웅 대리의 신들린 싸움 실력에 그대로 바닥에 모두 나뒹굴었다. 갑자기 일어난 싸움에 길거리에 있던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이에 이자성 팀장은 가짜 배치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인터폴입니다.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세요”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물러서라는 손짓을 하며 박기웅 대리에게 속삭였다.

“박 대리! 가자! 경찰 오면 골치 아파!”

“네, 가지죠”

박기웅 대리는 리지 안을 들쳐메고는 호텔 앞 도로로 뛰기 시작했고 해변에서 백인 사내 5명과 싸웠던 이영규 팀장은 어느새 자동차를 몰고 호텔 앞 도로에 섰다.

“어서 타세요!”

이영규 팀장이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에 신속한 동작으로 리지 안을 뒷자리에 태우고 이자성 팀장과 박기웅 대리도 탔다.

“갑시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리지 안을 체포하려 했다면 몇 명일지 모르는 경호원들이 권총으로 대응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주변 관광객들의 피해가 속출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IS의 유럽 국가에 대한 테러가 빈번한 가운데 이러한 총격전이 발생한다면 이탈리아 정부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그것도 미국 영주권자를 타국에서 체포하려던 이번 임무는 알려지게 될 것이고 리지 안은 분명히 인권침해를 들먹이며 이탈리아 사법부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적 외교 문제는 물론 리지 안에 대한 국내 소환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리지 안 체포에 있어서 한 명씩 달라붙어 사소한 싸움형식으로 접근해 리지 안을 체포하기로 사전에 계획했고 깔끔하게 먹혀들어 큰 문제 없이 체포할 수 있었다.

2일 후, 리지 안을 본국으로 무사히 호송한 이자성 팀장과 박기웅 대리, 그리고 이영규 팀장에게 이영진 국가정보원장은 그동안의 공로를 치하하며 1계급 특진과 함께 표창장을 수여했다.

★ ★ ★

2023년 7월 20일 10:00 (멕시코시각 19일 19:00),

멕시코 게레로주 아카풀코시.

한때 아름다운 휴양도시로 유명했던 아카풀코는 지금은 현지인도 무서워하는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카르텔 마약밀매조직의 산하 암살조직이 아카풀코를 완전히 장악하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과 행정기관 역시 보복이 무서워 이렇다 할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에 마약이 무섭게 퍼지면서 어느새 무법 도시로 변모해버렸다.

한국 외교부에서도 아카풀코를 여행 제한 도시로 지정한 이곳에 남궁원이 홀연 모습을 드러냈다.

1년 전, 국가정보원을 관두고 새로운 게임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남궁원은 드디어 꿈에서도 찾고자 했던 부모님과 남동생을 살해한 스콜피온 조직원을 찾아냈다.

한일전 종전 후 스콜피온 조직이 와해하면서 사라져버린 코드 네임 SD887이자 타카다 마코토는 암살 주특기를 살려 이곳 카르텔 마약밀매조직의 산하인 암살조직에 몸담으며 철저히 신원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원은 친구 강경호의 살인자인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를 처치하고 획득한 스콜피온 전용 스마트폰을 이용해 타카다 마코토의 음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년간 호큘라 슈퍼컴퓨터를 도움을 받아 세계 모든 통신망을 해킹해 실시간으로 타카다 마코토의 음성과 똑같은 통화 음성을 체크 했고 일주일 전, 드디어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같은 음성으로 전화하는 신호가 잡힌 것이었다.

얼굴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얼굴 성형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사람의 일반 음성은 성대가 다치지 않는 이상 바꿀 수는 없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점을 노렸던 남궁원의 판단은 정확했다.

한때 휴양도시로 유명했던 아카풀코에는 멋진 호텔들이 많았다. 이 중 해안가에 있는 라스 브리사스 아카풀코 호텔에 남궁원은 투숙했다. 이곳 호텔을 정한 이유는 마지막으로 타카다 마코토가 통화한 장소가 이곳 호텔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아카풀코에 오자마자 현지 코디를 통해 구매한 데저트이글 50 매그넘을 뒤쪽 허리춤에 꽂고는 태블릿 PC 화면을 주시했다. 무법 도시답게 총기를 구매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존 시세보다 웃돈만 얹어 주면 탱크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 아카풀코는 치안 자체가 없었다.

이렇게 호텔 방에서 무턱대고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왼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에 작은 경보음이 울렸고 화면에 표기된 3D 지도에는 어느 지점에 붉은 점이 깜박이고 있었다.

동일한 음성이 지금 통화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바로 남궁원이 투숙하고 있는 호텔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521호실이었다.

결전의 시간이 왔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들었는지 남궁원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게 호흡을 하며 최대한 긴장감을 완화했고 마지막으로 각가지 장비를 점검했다.

허리춤에 꽂은 데저트이글 50 매그넘를 비롯해 옛 국가정보원 친구인 이자성에게 빌려온 X-C01 단말기, 선글라스 형태의 실드 글라스, 옷 속에 착용한 보호 슈트 등 하나하나 기능 상태를 확인했다.

몇 분 후, TCS를 ON으로 활성화하여 모습을 숨긴 남궁원은 521호 문 앞에 선후 실드 글라스를 통해 내부를 확인했다. 521호 거실과 방에는 생명체 발광체가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누군가 샤워를 하는 듯했다.

이에 단말기를 이용해 출입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갔다. 그리고 소파 뒤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를 마친 타카다 마코토가 가운을 입은 상태로 거실에 나와 소파에 앉았다.

꿈에도 찾고 싶었던 부모님과 동생의 살인자가 바로 코앞에 앉아 있었다. 순간 분노가 치민 남궁원은 허리춤에서 데저트이글 50 매그넘을 꺼내 들어 조용히 타카다 마코토의 뒤통수에 갖다 대고는 TCS 모드를 OFF 했다.

암살 요원답게 뭔가 수상함을 느낀 타카다 마코토는 순간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남궁원은 잽싸게 왼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는 총구로 뒤통수가 깨지도록 찍어 눌렀다.

“윽, 누, 누구냐?”

“쉬~ 조용히 해! 타카다 마코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내가 10여 년 전, 자신의 뇌 속에서도 지워버렸던 본명을 부르자 타카다 마코토는 등골이 오싹하는 한기를 느꼈다.

“누, 누군데 그 이름을 아는 거지?”

“궁금한가? 내가 누군지?”

“혹시, 일본 내각정보실인가?”

“내각정보실과도 악연이 있는가 보지? 하지만 틀렸어, 난 김인직이라고 한다.”

왼팔에 목이 감겨 눈만 좌우로 굴리는 타카다 마코토는 김인직이 누구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나는가 보군!”

“처음 듣는 이름이다. 대체 누구냐?”

“8년 전, 스콜피온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 일가족 3명을 폭발사고로 위장하여 암살하지 않았나?”

“8, 8년 전?”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너의 운명은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야.”

“기, 기억난다. 그런 적이 있었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스콜피온에 대해서 아는 거지?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하게?”

“제, 제발, 나에겐 천만 달러의 돈이 있다. 살려주면 모두 주겠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팍!

말이 끝나기도 전, 매그넘 손잡이로 타카다 마코토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짧은 비명과 함께 앞으로 꼬꾸라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으으으윽~

“정, 정말이다. 모든 돈을 다 주겠다. 목숨만은 살······.”

퍼억!

남궁원은 소파를 뛰어넘어 그대로 공중에서 타카다 마코토의 옆구리를 밟아버렸다.

으아아아악~

밀려오는 고통에 옆구리를 움켜쥐고는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너 같은 놈이 가지고 있는 더러운 돈은 필요 없어!”

가증스럽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민 남궁원은 총구를 이마에 갖다 대고 그대로 방아쇠에 걸린 검지에 힘을 주었다.

몇 분 후 TCS 모드를 ON 상태로 521호실 문을 열고 나온 남궁원은 조용히 복도를 지나 그대로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다다른 남궁원은 TCS 모드를 OFF 한 후 미리 준비해뒀던 차를 타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는 남궁원의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8년 만에 가족의 복수를 했다는 허탈함과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부모님과 동생 생각에 아카풀코를 벗어날 때까지 피맺힌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카르텔 조직원에 의해 발견된 때까지 타카다 마코토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총상이나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으나,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눈동자는 풀려있었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원은 타카다 마코토가 살아가다 서서히 고통을 받으며 죽기를 원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간 약물을 주사기로 주입했다. 그 약물의 효능은 서서히 뇌세포를 파괴하여 신체기능을 마비시키는 약물로 한마디로 서서히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약물이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동안 자기 자신이 식물인간으로 변하는 괴로움과 신체적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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