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1화 (301/605)

일본 패망

2021년 2월 27일 19:50,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항 남서단 5km 해심 (쿠로시오함(SS-596)).

도착지를 도마코마이항에서 무로란 항으로 변경한 쿠로시오함(SS-596)과 나머지 오야시오급 잠수함 2척의 잠수함은 2시간에 걸쳐 무로란 항 근해에 도착했다. 이에 해수면 위로 부상한 쿠로시오함(SS-596)함과 나머지 2척의 잠수함은 하쿠초신도 대교 밑을 통과하며 내항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홋카이도는 전쟁 기간 내내 전쟁의 화마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그럭저럭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으나, 현재 무로란 항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 고깃배와 상선들은 항구에 모두 정박해있었고 항구 내에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볼 수도 없었다. 죽음의 항구처럼 주변 일대는 갈매기만이 추운 바닷바람을 받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3항공단 미자와 기지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항구에 정박한 쿠로시오함(SS-596)에서 아소 다로 부총리 일행이 하선했다.

“아니, 마중 나온 사람은커녕, 항구가 왜 이리 썰렁합니까?”

기진맥진한 상태로 항구에 발을 디딘 아소 다로 부총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힘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도마코마이항의 공습 때문인지 대부분 시민이 피신하듯 합니다.”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이 아소 다로 부총리를 부축하며 대답했다.

이때 해상자위군으로 보이는 군인 수십 명이 항구 내로 뛰어왔다. 그리고는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군인이 앞으로 나와 경례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하잇! 무로란 해안경비대 대장인 이등해위 오쵸지 핫세입니다.”

해상자위군의 최고 지휘관 앞에 선 오쵸지 핫세 이등해위는 온몸이 경직된 것처럼 뻣뻣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상세하게 보고해봐!”

해상자위군 수뇌부의 작전참모인 야마토 이노우에 일등해좌가 질책하듯 물었다.

“아! 모르고 계셨습니까?”

“뭘 말인가? 모르니까 상세하게 말하라고 한 게 아닌가?”

“하잇! 죄송합니다. 금일 새벽 홋카이도 전 구역에 걸쳐 한국군의 대공습으로 인해 샷포로 시는 물론 제2항공단 치토세 기지와 제3항공단 미사와 기지, 그리고 제2차량화보병사단의 아하시카와 주둔지가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이외 중소 군사기지 역시 괴멸 수준의 피해를 본 상태입니다.”

오쵸지 핫세 이등해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사와와 치토세 기지가 초토화가 되었다고?”

이번엔 기타노 다케시 항공막료장이 부관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와 소리치듯 되물었다.

“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괴멸 수준이라는······.”

“아니! 대체 대비를 어떻게 했길래, 한 번의 공격에 괴멸이란 말이야?”

기타노 다케시 항공막료장이 추궁하듯 되묻자, 일개 해안경비대 대장인 오쵸지 핫세 이등해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도 못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때 누군가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는 삿포로시 방향이 아닙니까?”

무로란 항구에서 삿포로시 방향으로는 거대한 산들이 첩첩산중으로 솟아 있었지만 산 너머로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리와 방향으로 봐서는 삿포로시에서 피어오르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뭔가?”

“야마토 이노우 일등해좌의 윽박지르는 말투에 당황해 있던 오쵸지 핫세 이등해위는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말했다.

“혹시! 도쿄도 관련 사실도 모르십니까?”

“도쿄도? 어서 말해봐!”

“현재 모든 통신수단이 망가져 확실하게 들을 순 없었지만, 한국과 주변국의 뉴스 보도로는 도쿄는 물론 혼슈 주요 도시 수십 곳이 한국군의 전략급 무기에 모두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는 뉴스로 온종일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네, 한국 방송을 비롯한 외국 방송에서는 이와 같은 뉴스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당장 확인해봐야겠어!”

“네, 일단 경비대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이때 기타노 다케시 항공막료장이 이동하려는 찰라, 말했다.

“저는 지금 즉시 미사와 기지로 가봐야겠습니다.”

기타노 다케시 항공막료장은 일본의 마지막 항공전력인 제2항공단과 제3항공단 기지가 모두 초토화되었다는 말에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소 다로 부총리에게 말했다.

“그러시오. 직접 가서 확인 후 알려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부총리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절도있는 동작으로 경례한 기타노 다케시 항공막료장은 참모들과 함께 해안경비대에서 관리하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한편, 말로는 믿어지지 않을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들은 아소 다로 부총리 일행은 즉시 해안경비대 사무실로 이동해 한국 방송을 틀었다.

한국 방송 중 뉴스만 24시간 방송하는 채널뉴스 24에서는 온종일 폐허로 변해버린 일본 주요 도시 장면과 오전에 있었던 서현우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 영상을 분할화면으로 나누어 내보내고 있었다. 특히 일본 정부에 대한 서현우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권유하는 부분에서 아소 다로 부총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지난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2발을 맞고 패망 직전까지 몰리자 미국 연합군에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했던 일본은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을 기회 삼아 세계 경제 대국 2위로 급부상했다.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은 옛 버릇 남 못 준다고 전범자들의 후손들로 인해 다시금 군국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76년 전과 같은 패망 직전의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극렬한 극우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도 아닌, 애매한 중도적 태도로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하며 정치 생명을 이어온 아소 다로 부총리는 아베 총리의 눈에 들어 내각 부총리에 임명되었다. 이런 성향의 정치인이라 해도 자국의 영토가 폐허가 된 영상을 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도쿄도 반이 처참할 정도로 폐허가 되었어······. 흑흑흑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 꼴이 된 것이오? 당장 신요코다 기지의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에게 연락을 취해보시오”

“네, 알겠습니다.”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은 대답과 동시에 오쵸지 핫세 이등해위를 보고 말했다.

“통신실이 어딘가?”

“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해안경비대장 오쵸지 하세 이등해위를 따라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과 참모진이 나갔다. 이에 아소 다로 부총리와 여러 관료만 남은 상태에서 우치다 후생노동 대신이 말했다.

“부총리님! 한국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시지요.”

우치다 후생노동 대신의 말에 해안경비대 사무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에 아소 다로 옆에 있던 현재 의전서열 2위인 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가 발끈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항복이라니?”

“한국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소?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차 3차 전략급 무기로 공격하겠다는 말을요. 진정 실낱같은 희망도 없는 이 전쟁을 끝까지 가야 하겠소? 일본 전역이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불구덩이로 변해버려야 항복을 하겠소? 지금 한국 전략급 무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보다 더 강력하단 말이오. 또한, 우리가 잠수함을 타고 오는 동안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의 전술핵 공격으로 한국의 전략급 무기 사용에 대한 명분을 주고 말았단 말입니다. 국제사회도 우리에게 손을 들어주지 않는단 말이오”

개전 초기부터 한국과의 전쟁에 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우치다 후생노동 대신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한국에 무조건적인 항복이라니, 그럴 순 없습니다.”

의자에 앉아 울먹이고 있는 아소 다로 부총리를 두고 관방장관과 후생노동 대신과의 설전이 오갔다.

“이게 다 빌어먹을 군국주의에 빠져 우리 일본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이 아니오?”

“우치다 대신! 말을 삼가시오! 빌어먹을 군국주의라니?”

“내가 틀린 말을 했소? 다른 대신들도 말해보시오”

아소 다로 부총리와 마찬가지로 내각 대신들 역시 얼굴에는 참담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설전을 넘어 막말이 오가자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이 중재하듯 중간에 끼어들었다.

“일단, 요코다 기지에 있는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과 통신을 해본 후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치 대신! 당신 마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눈을 부릅뜨고는 외무성 대신을 노려봤다. 이에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두 눈을 감아 외면했다.

잠시 후 통신실에 갔던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이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소? 통신은 되었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아소 다로 부총리가 물었다. 하지만 사무실로 들어온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의 얼굴은 어두웠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옆에 있던 해상막료감부의 야마토 이노우에 일등해좌가 대신 대답했다.

“그것이······. 아무래도 요코다 기지 역시 한국군의 전략급 무기에 공격을 받아 괴멸된 듯합니다.”

“정, 정말이오? 그럼,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이 전사했단 말이오?”

“네, 신요코다 기지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도쿄도 내 진입한 모두 부대에 연락을 시도한바, 일부 살아남은 제9항공단 부대와 연결이 되어 확인한 사실입니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아예 체념했는지 아니면 더는 나올 눈물이 없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의자에 앉은 채로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럼, 도쿄도 방어 중인 부대 상황은 어떻소?”

아소 다로 부총리 대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물었다.

“모두, 전멸입니다. 현재 도쿄도와 도쿄 도심에 살아남은 일본 자위군은 모두······.”

야마토 이노우에 일등해좌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나가주시오.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여러 관료와 자위군 지휘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모두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에 혼자 남게 된 아소 다로 부총리는 하고 싶은 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에 무조건적인 항복 권유를 받아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항전하느냐······. 하지만, 지금 일본 자위군은 항전할 전력이 전무 했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한국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적인 항복밖에 없다는 것을······.’

사실 이렇게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단지, 한국이 원하는 무조건적인 항복에 어떤 조항이 있느냐였다.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게 되면 일본은 한국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줘야 한다. 이에 무조건적인 항복이 아니라 일부 조건을 받아들이는 조건부 항복만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답이었다.

1시간 후, 깊은 고뇌에 빠졌던 아소 다로 부총리는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을 호출했다.

“오치 대신! 한국에 조건적 항복은 받아들이겠다고 연락을 하시오”

“조건적 항복을 말입니까?”

“그렇소.”

“그럼 어떤 조건적 항복을······.”

“패전국으로써 한국이 원하는 조건에 대해 사전에 양 국가가 합의하여 항복문서를 작성하자고 하시오.”

“과연, 지금 상황에서 한국이 그런 조건을 받아줄지······.”

“그게, 외무성 대신이 할 일이 아니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부총리님!”

2개월간의 전쟁으로 한국 외교부와 연결 라인이 단절된 상황에서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은 친일 쪽에 속했던 대만을 통해 한국 외교부와 연결을 시도했다.

★ ★ ★

2021년 2월 27일 21:00,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장관실.

대만 외교부에서 일본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이 항복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연락이 날아왔다. 이에 김재학 외교부 장관은 임시로 개통된 일본 외무성의 통신라인을 개설하고 화상통화에 들어갔다.

“이거, 살아계셨군요? 저는 신요코다 기지에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김재학 장관의 첫마디는 상대방에게는 매우 예의 없고 불편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치 후르메 외무성 대신은 끊어 오르는 화를 꾹꾹 참으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실망하셨습니까? 제가 죽지 않아서?”

“하하, 실망이라니요? 살아 계셔서 반가워서 한 말입니다. 그나저나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현재 합참에서는 제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2차 공격이라니요? 지금 이렇게 항복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는데 먼저 합참에 연락해 중단시켜 주십시오”

“음, 호치 후르메 대신!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뭘 중단을 하란 말입니까? 일본이 무조건적인 항복만 받아들인다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당연히 2차 공격도 중단이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재학 장관의 말은 호치 후르메 대신이 듣기에는 매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들렸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소! 한국에 항복하겠소이다. 단, 무조건적인 항복이 아니라 항복 조항에 대해선 양 국가의 합의를 통해서 했으면 합니다. 어떻습니까?”

“허허, 이것 참,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과 그 어떠한 조건에 대해서 합의하거나 의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적인 항복을 권합니다. 응하겠습니까?”

“아! 그러지 말고 겉으로는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하시고 내부적으로 항복 조항에 대해서 비밀리에 양 국가의 합의를 통해서 하시지요. 이렇게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스크린을 통해 호치 후르메 대신은 허리까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김재학 장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시간도 없는데 자꾸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시는군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만 통화를 끝내시지요. 음, 앞으로 30분 후면 일본 전역에 제2차 미사일 공격이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중소도시까지 포함하니, 서둘러 대피 명령을 내리시지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팟!

김재학 장관은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그대로 화상통화를 끊어버렸다.

“쪽발이 새끼들, 끝까지 꿍꿍이짓하려고 하네, 겉으로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하고 내부적으로 항복 조항을 합의하자고?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종속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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