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C의 종말
잠시 본국의 국가정보원에 보고한 후 기다리는 사이 정보분석팀인 B팀 요원들이 찾아왔다. 암호화된 모듈로 굳게 잠긴 원형형태의 은빛 철문을 열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세요, 이 과장님!”
“오는 동안 시신들이 즐비하더군요. 다들 다친 데는 없습니까?”
여러 장비를 한 아름 싸 짊어지고 온 이일우 과장은 이곳에 오는 길에 치열한 총격전 현장을 봤는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요원이긴 했지만, 내부 직원으로 이러한 현장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네, 다행히 팀원들 모두 무사합니다.”
“아! 다행입니다. 이건가요?”
“네, 열 수 있겠습니까?”
“장담은 못 드리겠으나 시도는 해봐야지요. 자! 다들 준비하라고”
이일우 과장은 짊어지고 온 장비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함께 온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에 팀원들은 각자 가져온 장비를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놓으며 원형 은빛 철문을 열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본국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최종 명령이 내려왔다. 나봉일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하달된 명령은 다시는 USSC 의원들이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도록 외부로 통하는 모든 입구를 철저히 파괴하라는 조금은 충격적인 명령이었다.
“박 대리!”
“네, 팀장님!”
“자네는 오 주임과 함께 이 중령님한테 얘기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을 모두 다 달라고 해!”
“CH-02탄을 말입니까?”
“응! 본국에서 외부로 연결된 모든 통로를 파괴하라는 명령이야!”
“네, 알겠습니다. 오 주임 가자!”
“네”
박기웅 대리와 오석진 주임이 1층으로 올라가는 사이 이자성 팀장은 신보라 대리를 불렀다.
“신 대리!”
“네, 팀장님!”
“신 대리는 지금까지 이곳 별장 스캔 한 정보 취합해서 지하 대피소에서 또 다른 입구가 있는지 점검 좀 해봐!”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 ★ ★
2021년 2월 26일 11:25 (미국시각 25일 22:25),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 (USSC 별장 지하 벙커).
회의 도중 기습공격에 급히 지하 벙커로 피신한 USSC 의원들은 지하 벙커 중앙 홀에서 별장 곳곳을 보여주고 있는 CC 카메라 통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 지하 벙커는 백악관의 화이트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핵전쟁을 대비해 구축한 지하 벙커로 지하 150m에 지어진 핵 방어 방공호였다. 이곳은 자체 발전기는 물론 식량과 식수를 자체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이 완비되었고 대략 500여 명이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핵전쟁으로 지구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이 되더라도 이곳에서 3년을 버티고 어느 정도 방사능이 사라지는 시점에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저놈들 정체가 대체 뭡니까?”
대형 스크린의 분할된 화면에는 CC 카메라를 통해 특전사와 국가정보원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한국 특수부대인 듯합니다.”
닉네임 빅토리아의 물음에 이쪽 계통에 빠삭한 국방부 담당인 닉네임 로키가 대답했다.
“어떻게 한국군이 우리 비밀 별장에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정보가 새나간 듯합니다.”
“정보요? 대체 누가?”
“이런! 혹시 스핑크스가 아닐까요? 그 인간 이번 비상소집에 오지 않았잖습니까? 섣부른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다분합니다.”
미국 총기협회 회장이자 닉네임 마르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반쯤 벗겨진 검은 가면이 거추장스러웠는지 마저 가면을 벗어버린 닉네임 빅토리아는 보안책임자를 불렀다.
“로버트 실장!”
“네, 의장님!”
보안책임자 로버트 실장이 내심 속으로 놀라며 다가와 대답했다. 그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USSC 의장인 빅토리아가 가면을 벗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밝은 금발에 7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리고 빅토리아의 진짜 정체는 유대인 출신에 본명은 셀리 아라론이었다. 그의 아버지 벤디 아라론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와 쓸모없는 네바다주의 사막을 값싼 가격으로 모조리 사들였다. 이후 외계 비행선이 추락하면서 아라론 가문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가문이 될 수 있었다. 이에 셀리 아라론은 아버지인 벤디 아라론과 오빠인 루지 아라론의 뒤를 이어 USSC 의장으로 8년간 운영해왔다.
“스핑크스에게 연락은 취했습니까?”
“네, 30분 전부터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 않습니다.”
“혹, 통신 이상으로 안 되는 건 아닙니까?”
“그것이······. 여러 채널을 통해 연락을 시도해봤으나 모두 끊긴 상태입니다. 통신 이상이라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알았습니다. 일단 스핑크스 건은 제쳐놓고 현재 별장 내부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별장은 한국군 손에 넘어간 듯합니다. 그래서 현재 외인부대를 호출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20분 후면 도착합니다. 의장님!”
USSC의 조직은 만에 하나 비상사태를 대비해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을 모집하여 외인부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20분요? 너무 늦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한국군이 우리 USSC의 서버 정보를 빼내기라도 한다면 어쩔 겁니까?”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라고 전했습니다.”
이때 CC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던 닉네임 블랙킹이 스크린 화면의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거 한국군이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철문을 열려고 하는 듯합니다.”
이에 중앙 홀에 있던 USSC 의원을 비롯해 100여 명의 모든 시선이 그 방향으로 향했다.
“저것들이 정말 저 철문을 열 수 있을까요?”
USSC 부의장 닉네임 체스맨이 화면 가까이 가다가 말했다. 이에 보안책임자인 로버트 실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쪽에서 열지 않은 이상 절대 밖에서는 열 수 없습니다. 자신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한국군은 예측할 수 없는 족속들이라······. 걱정이 되는군요.”
로버트 실장의 말에도 닉네임 체스맨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혹, 운 좋게 열 수 있다고 해도 단시간에 열 수 없습니다. 그전에 우리 외인부대가 도착할 것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장님”
띠잉!
이때 CC 카메라를 통해 별장 내부를 보여주던 화면이 일제히 꺼져 벼렸다. 아무래도 한국군이 CC 카메라의 기능을 중지시킨 듯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한국군이 CC 카메라 시스템을 건드린 듯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부로 통하는 모든 통신라인이 단절되었다.
“실장님! 외부와 연결된 모든 통신라인이 끊겼습니다.”
보안팀 요원이 통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신호가 잡히지 않자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 그대로 지하 벙커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황이었다.
“어서 빨리 복구해봐!”
“아! 위성 채널, 유선 채널, 인터넷 등 모두 먹통입니다.”
“알았으니까 복구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로버트 실장은 부하들의 보고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지하 150m 지하 벙커는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2021년 2월 26일 11:35 (미국시각 25일 22:35),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 (USSC 별장 지하 1층).
정보분석 B팀 요원들은 원형 철문을 열기 위해 각가지 장비를 연결한 상태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또한, 지하 벙커와 연결된 통신라인과 각종 CC 카메라의 연결선을 죄다 끊어버렸고 위성 채널을 이용한 무선 통신 역시 강력한 ECM 장치를 별장 곳곳에 설치해 외부와의 모든 통신을 교란했다.
더컹! 지이이이이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장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원형 철문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보분석 B팀이 시도한 지 20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지하에서 큰소리치며 장담했던 보안책임자 로버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입에 거품을 물 일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특전사로부터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박기웅 대리와 오진석 주임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돌아왔다.
“어? 열었네요?”
“B팀 실력이 어디 가겠나?”
정보분석 B팀 리더인 이일우 과장은 조금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박기웅 대리는 엄지 척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아! 당연하죠. 국정원 최고의 두뇌집단 아닙니까? 하하”
“하하, 뭐 그 정도는 아니고.”
이때 이자성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CH-02탄은?”
“네, 총 20개 가져왔습니다. 팀장님!”
박기웅 대리와 오진석 주임은 각각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 10개가 들어있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열었다.
“수고했어! 박 대리! 밖 상황은 어때?”
“네, 교전은 끝난 상태고 현재 별장 내부를 정밀 수색 중입니다.”
“생각보다 작전이 쉽게 끝났군, 우리 쪽 사상자도 없고 말이야.”
“그러게요, 인원이 10배 이상이었는데, 특전사 중의 특전사라고 707 특임여단 실력이 보통이 아닌 듯합니다.”
박기웅의 대답을 들으며 이자성 팀장은 고개를 돌려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과 씨름을 하는 신보라 대리를 불렀다.
“신 대리! 아직이야?”
“팀장님 다 돼갑니다. 1분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보라 대리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찾았습니다. 호호호, 별장에서 남서단 방향 1.5km에 지하 벙커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통로를 찾아냈습니다.”
신보라 대리는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3D 형태로 별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통로가 그려진 설계도면이 보였다.
“또 다른 통로는 없겠지?”
“네, 몇 번이나 스캔 정보를 재차 확인했는데 없습니다.”
“좋아! 박 대리와 오 주임은 이곳으로 이동해 CH-02탄으로 입구를 완전히 폭파해! 10개를 동시에 터뜨리면 충분히 입구를 붕괴시킬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오 주임 가자!”
“네 박 대리님!”
“그럼 나는 엘리베이터를 완전히 박살 내볼까? 신 대리는 여기서 대기해”
“네, 팀장님!”
이자성 팀장은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 10개가 들어있는 배낭을 들고는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 철문 안의 긴 통로의 외벽은 온통 강철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도 핵폭탄 폭발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만들어져 있는 듯했다.
“역시 미국놈들 스케일은 대단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한 이자성 팀장은 10개의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 중 1개를 골라 타이머를 활성화한 후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고는 배낭 자체를 그대로 지하 150m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이자성 팀장은 원형 철문으로 있는 힘껏 뛰었다.
쿠아앙!
이자성 팀장이 철문 안에서 뛰어나온 후 정확히 20초 후 지하 150m까지 떨어진 배낭이 폭발하자 엄청난 열기와 함께 별장 전체가 흔들렸다. 일제히 폭발한 CH-02탄(플라즈마 소폭탄) 10개는 웬만한 벙커버스터 포탄보다 위력적인 면에서 더욱 강렬했다.
천장에서 분진이 떨어지고 벌어진 원형 철문 사이로 시꺼먼 먼지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5분 후 1.5km 떨어진 곳에서도 엄청난 폭발 소리가 별장 전체에 울렸다.
“이건 완전히 생매장시킨 꼴이군!”
이자성 팀장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자성 팀장 말대로 지하 벙커로 숨어 들어간 USSC 의원 12명과 일부 가족들, 그리고 수행원과 경호원 100여 명은 지하 150m에서 생매장을 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외부와 연결된 2곳의 통로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작심하고 구조작업을 하지 않은 이상 이들은 영원히 바깥세상의 햇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이들이 지하 벙커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3년, 그 이후는 자체적인 식량과 식수를 공급이 어렵게 된다. 사실 3년이라는 기간은 500명 기준이었으니 현재 지하 벙커에 갇힌 인원은 150여 명으로 계산한다면 그 기간은 조금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더 늘어났다고 해서 그들에게 절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지하 150m에서 갇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그들은 과연 식량과 물이 떨어지기 전까지 정신적 공황장애에 빠지지 않고 과연 버틸 수 있느냐였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강대국 미국을 좌지우지하고 세계 모든 전쟁의 실질적 배후세력인 USSC의 마지막 운명은 그야말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형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