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0화 (290/605)

기다린 6년

무지막지한 주먹질에 얼굴을 가격당한 남궁원은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남궁원도 182cm에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스폴피온 요원의 체격과 힘에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으윽~

터진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재킷 소매로 훔친 남궁원은 이내 자세를 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스콜피온 요원은 어느새 남궁원이 떨어드린 CS5 레이저 피스톨을 집어 들어 남궁원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경험의 부족으로 예상치 못한 불리한 상황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궁원은 스콜피온 요원인 세르게이 하리토노프가 눈치채지 못할 미묘한 미소를 보였다.

“퍽큐! 너 뭐야? 혹시 내각정보실 놈인가?”

그랬다. 스콜피온 요원은 남궁원을 내각정보실 즉 일본 정보부 요원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이에 남궁원은 대답 대신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퍽큐 맨~ 지금 날 보고 웃는 건가? 죽고 싶어 환장했군!”

“그래! 죽고 싶어 환장했다. 코드 네임 FH225, 나이 42세, 이름은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에서 10년 복무하고 스콜피온이라는 암살조직에 가입했지?”

극비수준의 자신의 정보를 술술 털어놓는 동양인 사내에 스콜피온 요원은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남궁원을 바라보던 스콜피온 요원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이내 당황함을 감추고는 짧은 대사와 함께 그대로 CS5 레이저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 정보는 저세상에서 나불대라고”

꾸욱~

“으악!”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엄청난 고열이 그의 손바닥을 태웠다. 상상도 못 할 초고열에 순간적으로 화상을 입자 CS5 레이저 피스톨을 내던지고는 비명을 지르며 옷가지로 오른손을 감쌌다. 남궁원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팔꿈치로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얼굴을 가격했다.

이에 세르게이 하리토노프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허리춤에서 3단 전자봉을 펼치고는 사정없이 내려쳤다. 한번 칠 때마다 2~3mA의 전류가 흐르자 거구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옴짝달싹 못 하고 전기에 감전되어 부들부들 떨며 쓰러졌다. 이에 잠시 숨을 고른 남궁원은 방금까지 고열을 발하며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오른손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힌 CS5 레이저 피스톨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

지하연구소에서는 레이저용 개인화기를 만든 이후 적군이나 다른 사람이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 손잡이 부분에 생체 인식 침을 장착하여 사전에 등록된 자가 아니면 초고열의 열을 발생시켜 화상을 입히는 안전장치를 적용했다.

“크윽”

바닥에 엎어져 게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뒤통수에 CS5 레이저 피스톨 총구를 들이 내민 남궁원은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2015년 12월 19일 오후 10시 13분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3층 단독주택 기억나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지 엎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남궁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6년이나 지난 일을 내가 어떻게 기억해? 응?”

“하도 많은 사람을 죽여서 생각이 안 나는가 보지? 51구역과 해킹자료라면 생각이 날까?”

순간,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눈빛이 반짝였다.

“눈빛을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나는가 보군. 그때 네놈이 죽였어야 할 대상이 바로 나다. 넌 내 친구를 죽였던 거야. 이 개자식아~”

“웃기지 마라! 난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 그 자만심이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거다. 이제 지옥으로 갈 시간이다.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너의 인생은 끝났다.”

“잠, 잠깐······.”

퓨웅~

내정하게 CS5 레이저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긴 남궁원은 이내 재킷 안쪽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뒤통수에 작은 레이저 빔의 구멍이 뚫린 상태로 검붉은 피가 솟구쳐 흐르며 화장실 바닥이 흥건해졌다.

부모님과 동생을 죽인 또 다른 스콜피온 요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품속을 뒤진 남궁원은 안쪽 주머니에서 스콜피온 전용 스마트폰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허리춤 파지 주머니에 담뱃갑만 한 작은 폭탄을 꺼내 타이머를 작동시킨 후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위에 올려놓았다.

친구의 복수를 마친 남궁원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6년 동안 맘속에 응어리졌던 한을 푼 느낌이랄까? 복잡한 생각들이 뇌 속을 파고들 때 남궁원은 왼쪽 팔에 장착된 X-C01 단말기 화면에서 TCS 버튼을 눌러 투명은폐시스템을 활성화하여 모습을 감추고 이내 화장실을 빠져나와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걸어 대합실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할 때쯤 거대한 폭발이 대합실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 ★ ★

2021년 2월 25일 17:00(미국시각 04:00),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화이트홀(지하 방공호).

종일 미 본토 서부권 피해 현황 보고에 기진맥진이 된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 4시가 돼서야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함께 화이트홀에 내려온 영부인과 가족들은 깊은 잠에 빠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예상보다 강력한 한국 군사력에 이렇다 할 공격 한번 못해보고 미 본토까지 공격을 당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다는 생각에 찹찹한 마음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하지만 허울뿐인 미국 대통령으로 USSC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트럼프 대통령은 타개책을 내세울 만한 그 어떠한 권한도 힘도 없었다. 상상도 못 할 엄청나 재력으로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USSC의 재력과 힘 앞에 자꾸만 작게만 느껴지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배신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손은 자연스럽게 한국 대통령과 연결된 핫라인 전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 ★ ★

2021년 2월 25일 17:00,

서울시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대통령 집무실.

삐이이익~ 삐이이익~

핫라인 전화기 액정화면에는 미국 대통령을 표기하는 1번이 표기되어 보였다. 이에 북주 복원사업 건을 결제 중이던 서현우 대통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벽에 걸린 대형 화면에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어쩐 일입니까? 트럼프 대통령께서 먼저 전화를 주시고.”

- 서 대통령, 한 가지만 묻겠소이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 USSC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 것입니까?

“USSC 말입니까? 100%라면 거짓말일 것이고 뭐 알만큼은 안다고 말하고 싶군요.”

- 서 대통령, USSC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지도자와 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 그러잖아도 현재 국정원에서도 USSC의 모든 돈줄에 대한 정보를 파악 중입니다.”

- 혹, 알게 된다면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말대로 상상 이상이라 칩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전화 주신 요건만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서현우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뭔가 심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판단하고 몰아붙였다.

“현재 USSC는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아무리 세계 각국의 지도자에게 영향을 행세한다 한들, 지금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트럼프 대통령님, 어제 제가 말씀드린 말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 음, 정말 USSC를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백악관은 물론 의회와 군부 내에는 USSC의 추종자들로 가득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머리가 잘린 지네의 다리가 많으면 뭐하겠습니까?”

- 좋소이다. 그럼 내가 뭘 하면 되겠소?

“결심하신 겁니까?”

-그렇소, 전쟁 이후 나의 신변은 확실히 보장해 주시오.

“당연합니다. 현재 USSC의 의원들의 위치를 파악 중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 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시면 됩니다.”

- 알겠소. USSC의 총본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에 제가 모든 의원을 소집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곳의 장소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장소는”

- 헉! 정말입니까?

“네, 진작부터 우리 정부 요원과 특수부대원들이 감시 중입니다.”

- 그거 잘되었군요. 그럼 미국시각으로 오늘 밤 22시에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님의 협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USSC의 모든 의원을 일망타진할 때까지 미군과의 교전이 없도록 조치를 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은 양 국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 알았소이다. 다시 연락하겠소.-

뚜욱~

30분간 걸친 트럼프 대통령과의 화상통화를 마친 서현우 대통령은 비서실을 통해 즉시 NSC 회의를 소집시켰다.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을 걸쳐 미국과의 전쟁의 끝이 보이는 시점이었다.

★ ★ ★

2021년 2월 25일 23:30,

일본 도쿄도 상공.

도쿄 점령의 마지막을 장식할 중갑강습여단의 공수작전이 도쿄 중심부 일대 상공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유달리 구름 한 점 없고 대보름처럼 밝은 빛을 비추는 달빛 속에서 CC-502 수송기 16기에서 총 4개 중갑강습여단 대원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낙하했다. 은은한 달빛에 반사되는 중갑강습부대원의 은빛 장갑이 수많은 별빛과 함께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어느 정도 자유낙하를 하던 중갑강습여단 대원들은 일정 고도까지 낙하하자 등에 달린 자체 추진체를 작동하며 자율비행에 들어갔고 각 분대급 단위로 각자 정해진 장소로 날아갔다.

도쿄도 대공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고사포 부대와 각종 대공 방어부대에서 어두운 하늘을 수놓은 중갑강습여단과 C-502 수송기를 향해 각종 대공화기를 퍼부었다.

수백 개에 이르는 빛줄기가 도쿄 하늘을 그으며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지상 최대 불꽃 쇼를 도쿄 상공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항공기보다 크기도 작고 자유자재로 기동하는 중갑강습여단의 대원들은 일본 자위군의 고사포나 대공포에 요격당할 일은 없었다. 폭죽 터지듯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지만 신속하고 빠른 기동으로 여유롭게 빠져나가 지상에 무사히 도착했다.

제1야전군사령부의 제1중갑강습여단, 제2작전사령부의 제2중갑강습여단, 수도방위사령부의 수도중갑강습여단, 마지막으로 제7기동군단의 직할 부대 제7중갑강습여단 등 총 4,800여 명은 시가전에 특화된 중장갑을 온몸에 두르고 도쿄 시내에 낙하한 후 가장 먼저 자신들을 노렸던 대공 방어부대를 급습했다. 엄청난 방호력을 갖춘 중장갑에 6열 미니 벌컨 빔을 무장한 중갑강습여단의 대원들은 닥치는 대로 자위군을 섬멸해 나갔다.

한편 도쿄도 서쪽에서 진공 하던 제20기갑사단(결전)과 북쪽에서 진공 하던 제9기계화보병사단(백마), 그리고 나고야에서 고속기동으로 도쿄도 남서단에서 진공을 시작한 수도기갑사단(맹호) 역시 공수작전에 맞춰 총공세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주·야간 2개 조로 나눠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금일 밤은 가용한 모든 전력을 총동원했다.

한편,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의 죽음, 정확한 부검을 통해 사망 사유를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 내각과 통합막료감부에서는 보직해임을 당한 후 그 충격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은 상황에서 한국군의 공수작전과 지상군의 대공세에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은 모든 지휘관을 소집하고는 ‘결사 항전’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 최후의 보류인 수도 도쿄마저 한국군에 점령을 당한다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한번 타국에 의해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모든 자위군들은 욱일승천기가 새겨진 머리띠를 착용하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국주의 일본제국으로 희귀했다.

26일로 넘어가는 도쿄 밤은 이렇게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의 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아파트는 물론 가정집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일본 시민들은 간혹, 날아오는 각종 포탄과 중화기에 붕괴하여 깔려 죽거나 아니면 파편에 맞아 비명횡사했다. 이렇게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는 도쿄의 시간은 매우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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