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공세
“저 새끼 잡아! 2시 방향 거리 3050! 1번 표적으로 지정!”
피아식별 DB 정보 디스플레이에도 표기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검은색 전차를 표적 지정을 한 강경헌 중사는 소리쳤다. 하지만 이호준 하사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신음뿐이었다. 이에 고개를 돌려 포수인 이호준 하사를 쳐다봤다.
“많이 다쳤냐?”
이호준 하사의 오른쪽 눈두덩이가 뻘겋게 부어 있었다. 너무 아픈지 손도 못 대고 감싸는 시늉을 하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어있었다. 아마도 충격 당시 조준경을 보고 있다가 부딪친 듯했다.
“안 되겠다.”
짧게 일갈하며 강경헌 중사는 광자포를 직접 사격하기 위해 하단 콘솔에서 조종 레버를 당겨 세운 후 고정하고 이내 레버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발사 버튼의 안전커버를 위로 올리며 발사 버튼에 엄지를 갖다 댔다.
꽈캉!
또 한 번 포탑에서 강한 충격이 심각할 정도로 밀려왔다. 남쪽을 기준으로 65도 각도 비스듬한 상태로 미끄러진 후 정차한 백호 전차의 포탑만 오른쪽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중량이 45t인데도 불구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이에 발사 타이밍을 놓친 강경헌 중사는 헤드셋을 통해 소리쳤다.
“김 병장! 교전 중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 뒤로 후진하란 말이야.”
이에 722호 전차 조종수 김경순 병장은 전차장의 버럭 하는 소리에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왔는지 양손으로 비틀어진 헬멧을 고쳐 쓰고는 고개를 들었다.
“후진하라고!”
“죄송합니다. 후진합니다.”
우렁찬 엔진음과 함께 722호 전차는 튕겨 나가듯 후진을 했고 남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김경순 병장은 오른쪽 궤도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자 722호 전차는 회전하며 바로 도로와 일자로 바뀌었다.
“계속 후진합니까?”
“계속! 이 하사 다쳐서 사격을 못 한다.”
전차 조종수 김경순 병장과 헤드셋으로 대화하면서도 현시경을 통해 가공할 전차포를 쏘면 전진해오는 검은 전차를 조준했다. 조준점에 락온을 걸고 강경헌 중사는 그대로 발사 버튼을 눌렀다.
퓨웅!
발사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징글맞을 검은 전차의 포탑이 폭발하며 화염을 뿜었다.
불타는 전차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쥔 강경헌 중사는 이내 왼쪽으로 현시경을 돌렸다. 방금 폭발한 피격된 전차 좌우로 시꺼먼 포신을 지향한 검은 전차 여러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진! 후진!”
이때 허공을 찢을 듯한 소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쉐에에엑~
722호 전차 뒤쪽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 날아온 적 전차의 포탄은 다행히 강력한 SECM 방해로 적 포탄이 빗나간 듯했다.
놀라 틈도 없이 강경헌 중위는 다음 표적 지정하고 그대로 발사 버튼을 눌렀다.
퓨웅!
사격과 동시에 뻗어 나간 광자포 입자에 표적으로 지정되었던 검은 전차의 포탑이 들썩이며 폭발했다.
“좋았어! 또 한 놈 잡았다.”
포수 이호준 하사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좀 더 빠르고 신속하게 적 전차들을 제압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걸 혼자 해야만 하는 강경헌 중사는 고전분투했다.
콰캉!
다음 표적을 지정하기 위해 현시경의 조준점을 다음 전차에 락온을 걸려는 그때, 현시경에 번개가 친 듯 엄청난 섬광과 함께 꺼져버렸다. 또한, 포탑이 틀어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 밀려왔다. 이에 놀란 강경헌 중사는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꼭 눈앞에서 터진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으악!
722호 백호 전차는 다시 한번 중심을 잃고 도로를 벗어나 인도 뒤쪽에 있는 커다란 사각형 형태의 화단으로 돌진했다.
쿠앙! 쿠르르릉!
육중한 백호 전차는 기다란 화단을 처박고는 멈췄다.
끼이이이잉.
백호 전차 엔진 부위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주위에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흙과 나무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날렸다.
콰쾅! 콰와와왕!
화단에 들이박고 멈춘 722호 전차를 향해 검은 전차들이 집중 사격을 가해왔다.
텅! 텅엉! 콰지지직!
또 한 차례 포탑 측면에 강한 충격이 밀려왔고 그 충격의 파장음이 722호 전차 실내를 압박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이리 생각한 강경헌 중사는 소대장에게 통신을 보냈다.
“여기는 흑맥주 둘! 포수 부상과 현시경 손상으로 사격 불가 현재 기동 역시 불가로 적 전차에 집중 사격을 받고 있음, 지원 바람!”
아직 피아식별 DB 업데이트를 받지 못한 수색전차대대의 백호 전차는 지금 상대하는 미국 전차들이 16MJ급 레일건을 탑재한 M4 워독 전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 병장! 정신 차려!”
김 병장은 좁은 공간에서 계속된 충격에 주위 기계장치와 부딪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백호 전차가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을 일이 없었기에 다가오는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대답 대신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건 김경순 병장의 신음뿐이었다.
“김 병장! 이렇게 있다가는 통구이 된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해!”
강경헌 중사는 포수 자리로 이동해 김영준 하사를 옆으로 옮기고는 포수 조준경으로 사격을 위해 조준경을 확인했다. 하지만 조준경 역시 적 포탄에 피격을 입었는지 까맣게만 보였다.
“되는 게 없군.”
첩첩산중!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상황에서도 적 전차로부터 날아온 16MJ급 레일건 X-16 금속탄은 사정없이 722호 전차를 향해 쏟아져 날아왔다. 그리고 30%의 확률로 722호 전차 곳곳을 강타했다. 강력한 하이드리늄 장갑 덕분에 현재까지 내부 피격은 없었지만, 마냥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커엉! 콰쾅쾅!
또 한 차례 묵직한 충격과 함께 백호 전차가 흔들렸다. 사람을 드럼통에 집어넣고 밖에서 몽둥이로 두드리는 상황이랄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이때 아군 전차의 광자포 발사음이 들렸다.
쮸웅! 쮸웅! 쮸웅!
오사카 시청 외곽을 경계하던 아군 전차 723호와 724호 백호 전차가 급히 이곳으로 기동해 적 전차에 대한 제압 사격을 가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722호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레일건 금속탄은 더는 없었다. 또한,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포성과 광자포 발사음도 현저히 줄어들며 조용해졌다. 그리고 723호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 여기는 흑맥주 셋! 흑맥주 둘! 괜찮습니까?
“여기는 흑맥주 둘! 밖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적 전차 모두 제압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알았어.”
- 이 하사랑 김 병장은 어떻습니까?
“큰 부상은 아니고 타박상 정도.”
- 다행입니다.
통신을 마친 강경헌 중사는 전차장용 해치를 열고 고개를 내민 후 밖의 상황을 살펴봤다. 722호 전차 주위는 완전 난장판이었다. 군데군데 구덩이와 수많은 콘크리트 파편과 흙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포탑에서 빠져나온 강경헌 중사는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애마를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완전 개판이군!”
그렇게 멋져 보였던 722호 백호 전차의 외형은 그야말로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포탑 외부에 장착된 광학장비는 죄다 박살이 나서 날아가 버렸고 웬만한 120mm 활강포 날탄도 거뜬히 막아내는 외형 장갑들은 날카로운 뭔가에 찍힌 듯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외형만 봤을 때 722호 전차는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은 흉측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눈물이 나네. 나의 애마가 어쩌다가 이리되었나.”
쓰러져 있는 나무 위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강경헌 중사 옆으로 언제 나왔는지 눈을 다친 이호준 하사와 머리를 어루만지는 조종수 김경순 병장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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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23:00,
쿠릴열도 리슈아섬 동단 181km 북위 49° 4' 동경 154°27 해심.
2월 20일 13:00에 오키섬에서 출발한 슈퍼호큘라 잠수함 2척은 기다란 쿠릴열도의 우시시르섬과 리슈아섬 사이를 통과한 후 동단 181km 해심 3,000m에서 웬만한 어뢰 속도보다 더 빠른 60노트에 이르는 속도로 잠항해 갔다.
이회영함(SSP-091)과 최준함(SSP-092)으로 함명이 정해진 수중배수량 23,550t의 슈퍼호큘라 잠수함 2척은 앞으로 45시간 후 미 본토 공격이라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고 잠항 중이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단 한 차례도 외세의 공격을 받은 적은 없다. 지난 2차 세계 대전 당시 하와이가 일본의 가미 가재 특공대에게 공격을 받은 적은 있었으나 그것은 본토가 아닌 아주 작은 섬이었을 뿐 직접적인 미 본토는 공격을 받지 않았다. 또한, 세계 모든 국가가 전쟁의 포화에 빠져 국가 존폐가 위협받았던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도 미국은 지리적 이점으로 전쟁의 직접적 포화를 피했고 반대로 경제적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이점이 크게 한몫했다는 반론이다. 직접적 군사 충돌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북아메리카에서 비약적인 발전은 세계에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었다.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며 상상 이상의 물량전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다 위와 같은 지리적 이점이었다.
이렇게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외세의 침략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미국 시민들의 자긍심은 하늘 높을 줄 몰랐다. 하지만 며칠 후, 동방의 작은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인해 미 본토가 공격을 받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미국 시민들과 정부, 그리고 그 정부를 뒤에서 움직이는 USSC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잠수함 길이만 해도 180m가 넘는 슈퍼호큘라 잠수함 2척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깊은 심해에서 서로 간 3km 간격을 유지하며 고속 잠항 중이었다. 기존 잠수함 개념을 뛰어넘는 설계로 건조된 슈퍼호큘라 잠수함의 함수 쪽 12셀 K-VSL 수식발사대에는 X-1 플라즈마증폭탄이 장착된 SD-SLBN 궁니르-II(잠대지) 미사일 12기가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타격 지점에 대한 제원이 설정된 상태로 장전되어 있었다.
사거리 15,000km에 마하 45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는 SD-SLBN 궁니르-II(잠대지) 미사일은 탄도탄형식과 순항형식 즉 2가지 형태로 적 타격 지점을 공격할 수 있었다. 즉 타격 지점의 거리에 따라 먼 거리에서는 탄도탄형식으로 발사하고 가까운 거리는 순항형식으로 발사하여 빠르게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전투통제실에 직접 내려온 이회영함(SSP-091)의 함장인 이연재 대령은 중앙에 있는 대형 전술 스크린을 보며 전술통제관에게 물었다.
“전방 상황은 어떤가?”
전술 스크린에는 본 함으로부터 전방위 250km까지 해심과 해상의 모든 물체를 음탐 및 탐지하여 3차원 형태로 보여주고 있었다. 슈퍼호큘라 잠수함에서 운용하는 통합용 소나는 해심 방어위성 CS-SD 포세이돈에서 운용하는 소나형 극초음광 IUSW-B.L 01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IUSW-B.L 02였다. 반경 250km 내의 해심과 해상으로부터 고도 20km까지 모든 물체를 손바닥 보듯 확인할 수 있는 소나와 레이더의 기능을 합친 최첨단 장비였다.
“현재 잠항 예상 경로상에 이렇다 할 수상한 적 잠수함이나 수상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상 위 미국 항공기 움직임도 계속해서 확인해주게.”
“실시간으로 빈틈없이 경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