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2021년 2월 15일 05:30,
일본 나코노섬 북서단 42km 북위 30° 1' 동경 129°26' 해심(양세봉함(SSP-85)).
심도 120에서 제7항모전단을 추적 중이던 양세봉함(SSP-85)은 은밀하고 조용히 침묵 잠항으로 거리 20km까지 접혀갔다. 그리고 탄도탄 미사일 요격에 정신이 팔린 제7항모전단에 더욱 깊숙이 다가갔다.
“미 핵잠수함 위치는?”
전술통제실까지 내려온 김진준 함장의 머릿속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핵잠수함인 뉴햄프셔함(SSN-778)이었다. 이에 김진준 함장은 바로 옆에 있는 전술통제관에게 무음성 통신으로 핵잠수함의 위치를 물었다.
- 방위각 0-3-5, 거리 32000, 심도 80으로 현재 방위각 1-1-5, 방향으로 10노트 속도를 유지하며 잠항 중!
대답 역시 무음성 통신으로 들려오자 김진준 함장은 뭔가 결심을 했는지 턱을 한번 매만지고는 전술통제실의 메인 전술 스크린에 한번 보고는 명령을 내렸다.
“무장관!”
- 네, 함장님!
“발사관에 삽입된 흑상어 어뢰 이상 없겠지?”
- 그렇습니다.
“1번, 2번 어뢰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샤일로함의 음문 삽입! 3번 4번 어뢰는 라센함의 음문 삽입! 나머지 5번부터 10번까지 어뢰는 로널드 레이건함의 음문 삽입한다. 나머지 11번과 12번 어뢰는 블루리지함의 음문 삽입.”
김진준 함장은 간결하게 명령을 이어갔다.
“1번, 2번 어뢰 샤일로함 음문 삽입, 3번, 4번 어뢰 라센함 음문 삽입, 5번부터 10번까지 어뢰 로널드 레이건함 음문 삽입! 11번, 12번 어뢰 블루지함 음문 삽입.”
무장관은 무음성 통신으로 복명복창하며 콘솔을 조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장관의 음문 삽입 완료 보고가 이어다.
- 1번부터 12번까지 모든 어뢰에 음문 삽입 완료!
“어뢰 발사는 1번, 2번, 3번, 4번, 동시 발사하고 이후 11번, 12번 발사, 그다음 5번부터 10번까지 차례대로 발사한다.”
-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김진준 중령은 긴장이 되었는지 침을 삼키고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 05시 34분.’
손가락을 튕기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만 뚫어지라 바라보던 김진준 중령은 손목시계의 분침과 초침이 기다리던 자리에 정확히 가리키자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별도 명령 없이 1번부터 12번까지 기존 계획대로 머즐도어 개방하고 바로 흑상어 어뢰 발사한다.”
- 1번부터 12번 머즐도어 개방 및 흑상어 어뢰 발사합니다.
명령에 따라 무장관 이형오 대위는 그대로 복명복창과 함께 콘솔을 조작했다.
제7함대 제7항모전단과 19km 떨어진 심도 120 해심에서 함수 어뢰발사관 12개가 일제히 개방되었고 1번 어뢰발사관부터 플라즈마 자기장의 강력한 반동의 힘에 순간속도로 어뢰발사관에서 빠져나온 흑상어 초공동 다탄 어뢰는 이내 초공동 버블을 일으키며 아음속 미사일과 맘먹는 속도를 내며 항주했다. 그리고 연이어 2번, 3번, 4번 어뢰발사관에도 흑상어 어뢰가 튀어나와 뒤를 따랐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모든 발사가 완료된 총 12기의 흑상어 초공동 다탄 어뢰는 양세봉함(SSP-85)을 떠난 지 5초도 안 되어 520노트에 이르는 엄청난 속도로 초공동 물보라를 일으키며 각자 표적을 노리고 뻗어 나갔다.
- 흑상어 어뢰 12기 모두 정상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침묵 잠항 해제! 모든 발사관에 2차 흑상어 어뢰 재장전 시행.”
- 침묵 잠항 해제! 모든 발사관에 흑상어 어뢰 재장전!
붉은 조명 몇 개만 켜져 정육점 분위기와 흡사했던 양세봉함(SSP-85)의 실내는 이내 밝은 조명으로 바뀌었고 침묵 잠항으로 행동 제한을 받았던 승조원들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흑상어 어뢰 재장전까지 앞으로 2분입니다.”
어뢰 장전 책임자인 어뢰 담당관의 보고를 올라오는 가운데 음탐관들 역시 발사된 12기의 흑상어 어뢰에 관한 보고가 실시간으로 이어졌다.
“1번과 2번 어뢰, 첫 번째 표적인 샤일로함 도탄까지 71초, 3번과 4번 어뢰, 두 번째 표적인 라센함 도탄까지 73초, 11번과 12번 어뢰 세 번째 표적인 블루지함 도탄까지 75초, 5번부터 10번 어뢰, 마지막 표적인 레이건함 도탄까지 78초입니다.”
아음속 미사일과 맞먹는 엄청난 속도로 항주하는 흑상어 초공동 다탄어뢰 12기는 각자 표적을 향해 좌우로 갈라졌다.
★ ★ ★
2021년 2월 15일 05:40,
일본 규슈 남서단 192km 해상(제7항모전단).
가용한 모든 전력을 이용해 일본 전역에 떨어지는 러시아 탄두와 한국 전술 탄도탄 미사일을 요격하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7항모전단의 모든 수상함에서 흑상어 초공동 다탄 어뢰를 탐지했는지 일제히 비명에 가까운 보고 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제7항모전단의 기함인 블루리지함(LCC-19)의 함교에 울려 퍼졌다.
폭주하듯 쏟아지는 보고에 제7함대 함대장인 마이클 샘 중장의 얼굴도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지며 주위 참모진들을 쳐다봤다.
현재 가장 위급한 건 항공모함인 도널드 레이건함(CVN-76)이었다. 총 6기의 흑상어 어뢰에 표적이 된 도널드 레이건함(CVN-76)을 방어하기 위해 1차 공격 대상에서 제외된 카우펜스(CG-63)과 맥캠벨함(DDG-85)이 적극적인 대잠 방어에 들어갔다.
“카우펜스함과 맥캠벨함이 레이건함의 대잠수함 방어에 들어갔습니다.”
할리 작전관이 보고하는 가운데 마이클 샘 중장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 정도 거리까지 들키지 않고 접근해 항공모함과 수상함에 동시에 어뢰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잠수함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몇 안 되었다.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인 서방국가와 러시아, 그리고 림팩 해상 훈련 때마다 기적과 같은 능력을 보여준 한국이었다.
“적 잠수함에 관해서 확인된 게 있나?”
“아직 정확한 위치는 음탐 및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함대장님, 이렇게 은밀하게 접근해 어뢰 공격을 가하는 건 한국 잠수함일 확률이 높습니다.”
블루리지함(LCC-19)의 함장인 케빈 딜런 대령이 말하자 마이클 샘 중장은 한쪽 눈썹을 실룩거리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군. 일단 본 함도 어뢰 공격을 받는 상황이니 일단 방어에 치중하자고.”
“본 함을 향한 적 어뢰! 도탄까지 앞으로 55초! 레이건함! 도탄까지 51초, 샤일로함! 도탄까지 48초, 라센함! 도탄까지 50초입니다.”
몇 마디 안 되는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정체 미상의 초공동 어뢰는 빠르게 다가왔다. 이에 공격 대상이 된 4척의 수상함은 디코이와 닉시를 사출해 소프트 킬 회피기동에 들어갔고 나머지 수상함에서는 2018년부터 모든 수상함에 실전 배치한 하드 킬 전용으로 개발된 Mark 55 요격 어뢰가 차례대로 발사관을 빠져나와 수중으로 잠항했다.
세계 1위 해상전력을 보유한 미 해군은 림팩 해상 훈련 때마다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가상 침몰을 당하자 대공 방어보다 어뢰 공격에 취약하다는 결론을 내고 본격적으로 어뢰 공격에 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에 록히드마틴사에서 5년간 연구해 개발한 어뢰가 바로 Mark 55 요격 어뢰다.
Mark 55 요격 어뢰는 중대형 어뢰로 공중에서 투하하는 집속탄과 같은 개념의 어뢰로 무선유도 방식으로 적 어뢰를 향해 항주하며 어뢰 몸체에 탑재된 80개의 수중자탄은 각 40개씩 2차례에 걸쳐 360도 방향으로 뿌려진다. 그리고 이렇게 2겹의 그물망처럼 뿌려진 80개의 수중자탄은 음향센서가 장착되어 접근하는 적 어뢰 음탐 시 80개의 수중자탄은 연쇄 자폭을 일으켜 이 일대를 거대한 버플 폭풍 지대로 만들어 적 어뢰에 대한 요격이나 어뢰에 장착된 센서를 손상하는 방식의 어뢰다. 한 겹의 수중자탄 그물망은 반경 30m의 넓이로 골고루 퍼지게 된다.
사실 Mark 55 요격 어뢰는 초공동 어뢰에 최상의 방어능력을 보여준다. 초공동 어뢰는 속도가 빠른 만큼 선회 능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초공동 어뢰의 길목에 그물망 자탄 어뢰를 뿌리게 되면 빠른 속도로 급격한 선회를 하지 못하는 초공동 어뢰는 그야말로 자탄 어뢰로 만들어진 그물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8m에 달하는 중대형 Mark 55 요격 어뢰가 24기는 각자 2기씩 제7항모전단을 향해 항주하는 흑상어 초공동 어뢰의 길목 앞에서 1차 수중자탄을 사출에 들어갔다.
샤일로함(CG-67)를 향해 항주하는 2기의 흑상어 어뢰 전방에 1차 수중자탄 그물망이 펼쳐졌고 2차 수중자탄을 사출하려는 그때 엄청난 속도로 항주하던 흑상어 어뢰 2기의 몸체 커버가 분리되며 각각 8개의 소형자탄어뢰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튀어나갔다.
그리고 소형자탄어뢰를 사출한 껍데기뿐인 흑상어 어뢰 본체 2기는 그대로 2차 수중자탄 그물망에 항주했다. 그러자 수중자탄의 센서가 작동하고는 그대로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80개의 수중자탄이 일제히 폭발하자 거대한 버블 폭풍이 휘몰아치며 주변 일대를 크게 흔들었다.
한편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사방으로 사출된 소형자탄어뢰 16개 중 9개는 버블 폭풍에서 벗어나 그대로 샤일로함(CG-67)를 향해 항주했다. 이에 샤일로함(CG-67)은 2차 닉시와 디코이까지 사출해 마지막 방어에 노력했지만 1기의 소형자탄어뢰만 닉시에 속았을 뿐 나머지 8기의 소형자탄어뢰는 그대로 샤일로함(CG-67)의 우현을 향했다.
나머지 수상함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흑상어 어뢰가 다탄 형식의 어뢰가 아니었다면 Mark 55 요격어뢰에 모두 요격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소형자탄어뢰 8개를 수십 미터까지 사출시켜 Mark 55 요격어뢰의 수중자탄 그물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콰앙! 콰앙! 쾅! 콰앙! 콰앙!
일제히 8번의 폭발음이 제7항모전단이 있는 해상을 울렸다. 소형자탄어뢰의 탄두 중량은 80kg으로 매우 작았다. 하지만 폭발 확장성은 약하나 응집된 파괴력은 매우 강한 플라즈마 응압탄이 적용되어 아무리 두꺼운 장갑도 쉽게 뚫어버릴 수 있었다. 이에 샤일로함(CG-67)의 측면장갑 정도는 쉽게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폭발음과 함께 기이한 소리가 샤일로함(CG-67)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우현 8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급속도로 기울어지는 소리였다.
내부 폭발은 없었지만 동시에 구멍이 8개가 뚫린 샤일로함(CG-67) 벌써 40도에 가까운 각도로 기울어졌고 선체와 갑판에는 승조원들이 빠져나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장면은 제7함대 기함인 블루리지함(LCC-19) 함교에서 뚜렷하게 보였다. 이에 마이클 샘 중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감았고 제7항모전단의 모든 함정에서는 어뢰 요격 상황에 관한 결과보고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아무리 빠른 초공동 어뢰라 하여도 Mark 55 요격어뢰로 모두 방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마이클 샘 중장은 생각지도 못한 다탄 어뢰라는 충격적인 보고에 그만 모든 걸 포기하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함대장님! 제7항모전단장의 보고입니다.”
현재 제7항모전단의 전단장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에 승전 중이었다.
“레이건함의 모든 함재기에 대한 이함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보고가 올라오는 가운데 또 한 차례 거대한 폭발음이 함교 전체를 울렸다. 알레이버크급(플라이트 IIA) 이지스 구축함인 라센함(DDG-82) 역시 우현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충격에 대비하라! 충격에 대비하라!”
어디선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적 어뢰 2기! 본 함 도탄까지 앞으로 5초! 4초! 3초! 2초! 1초!”
쿠와앙! 콰앙! 콰앙!
우현 함수 부분에서 상당한 충격이 밀려오며 1만8000t급의 블루리지함(LCC-19)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운 좋게도 블루리지함(LCC-19)을 강타한 소형자탄어뢰는 3기뿐이었다. 이에 함수 우현 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긴 했지만, 침몰까지 가는 위기는 모면했다. 문제는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이었다. 이에 중심을 잃고 함교 바닥에 넘어진 마이클 샘 중장은 콘솔 손잡이를 짚고는 상체를 일으켜 함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을 바라봤다.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의 비행갑판에는 긴급 이함 하는 함재기가 줄을 잇는 가운데 바닷속에서 10여 개의 하얀 물보라가 보였다.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을 표적으로 날아가던 흑상어 어뢰 6기에서 사출된 소형자탄어뢰 48기 중 Mark 55 요격어뢰의 수중자탄 그물망에서 살아남은 소형자탄어뢰 18기였다. 18기의 소형자탄어뢰는 그대로 로널드 레이건함(CVN-76) 우현에 차례대로 강타했다.
콰앙! 콰아앙! 쾅! 콰앙! 쾅! 콰쾅!
10만 톤에 달하는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의 우현에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엄청난 폭발음을 동반한 충격이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을 흔들자 이함 중이던 F/A-18E/F 슈퍼호넷 전투기 1기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비행갑판에 처박히고는 폭발했다. 그리고 이함 대기 중이던 여러 함재기도 서로 부딪치며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고 항공유가 사방으로 쏟아지자 비행갑판 전체에 화염이 번져 나갔다.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은 비행갑판에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우현 선체의 갈라진 장갑 틈 사이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에 긴급 격벽 차단을 했지만 뚫려버린 구멍이 너무나 많았는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서서히 우현으로 기울어지며 침몰했다.
이런 와중에 10여 기의 MH-60R(Block II) 대잠헬기는 초공동 어뢰가 날아온 해상으로 날아와 디핑소나와 소나 부이를 투하하며 양세봉함(SSP-85)을 찾고자 눈에 불을 켜고 탐색에 들어갔고 핵잠수함인 뉴햄프셔함(SSN-778)도 동료 복수를 위해 자신의 위치까지 노출될 수 있는 액티브 소나의 핑까지 쏘며 음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