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 (237/605)

다윗과 골리앗

사실 외교문서를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결례였다. 하지만 지금 적대국이 되어 전쟁까지 선포된 마당에 서현우 대통령은 앞뒤 가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직면했습니다. 중립적 태도를 고수한다는 미국은 지금까지 수출 규제에 묶여있던 1급 방산무기인 줌왈트 구축함과 B-1B 랜서 그리고 F-22 등의 온갖 최첨단 전략급 무기를 일본에 수출하거나 지금까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운용 중인 무기를 대여한다는 편수를 두어 일본에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어찌 중립을 고수하겠다는 미국이 미 의회의 졸속 승인까지 받아가며 이런 식으로 일본에 무기를 제공한다는 겁니까?”

대통령의 언성은 춘추관 전체가 울릴 정도로 커졌다.

“이것이 과연 중립을 고수하는 미국입니까? 아닙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전쟁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방산기업으로 먹고사는 편협한 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현우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조금씩 높아만 갔다.

“미국의 전폭적인 무기 지원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계속해서 우리 국군에게 밀리자, 미국은 중립적 입장을 철회하고 이번 전쟁에 개입하였습니다. 양국 간의 평화 종전을 요구했고 태평양함대를 동북아로 출격시켜 요구에 대해 수용하지 않을 시 무력행사를 하겠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폭로에 가까운 충격적인 사실들이 대통령으로부터 하나하나 밝혀지자 춘추관의 국내외 기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13일 18시 40분에는 미 해군의 제7함대 소속인 LA급 핵잠수함 2척이 우리 해군 잠수함 2척에 선제 어뢰 공격을 가했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미 해군 핵잠수함 2척이 도리어 격침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과연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그들 말대로 부단한 중재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판단은 여러분들에게 맡기시겠습니다.”

대통령은 방송 카메라를 뚫어지라고 응시하며 마지막 발언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미국 정부의 선전 포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과연 어느 국가가 진정 정직한 국가이며 세계 평화라는 핑계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가인지를 확실히 가려봅시다.”

1시간에 걸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끝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지난 2015년 8‧15 평양 테러 건까지 모두 밝히고 미국 트럼프 정부 위에 USSC라는 비선 권력기관이 있다는 것까지 모두 밝히고 싶었지만, 다음을 위한 히든카드로 남겼다.

단상에서 내려가려는 대통령을 향해 외국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중 덩친 큰 백인 기자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LA 타임스의 레이넌 기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은 물론 러시아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미국과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있습니까?”

이에 단상에서 내려가려던 대통령이 다시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원래 질문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 질문에 대답은 드려야겠군요. 우리 국민도 염려하는 부분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대한민국은 G2라 불리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2개월 만에 승리했습니다. 또한, 한반도는 그 어떠한 전쟁 피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전력은 70% 이상 괴멸 수준이며 육상자위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문제는 러시아군요. 하지만 저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결정을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 만에 하나 우리 영토인 만주에 한 발자국이라도 넘어온다면 그에 대한 응당한 보복을 가할 것입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셨지요? 미국이 자랑하는 핵잠수함 2척이 선제공격을 하고도 도리어 격침당한 것을요. 지난 수년간 림팩 훈련을 통해 우리 잠수함에 모의 격침된 미 해군의 수상함과 항공모함이 몇 척인지 아십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이었다고 생각되는군요. 아! 그리고 우리 정보기관에는 아직 밝히지 않은 세계가 놀랄만한 비밀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대통령이 답변이 끝나자 레이넌 기자는 베테랑 기자답게 계속해서 질문으로 물고 늘어졌다.

“비밀이 무엇입니까? 왜 지금 밝히지 않는 겁니까?”

“아직 밝힐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척하는 기만전술이 아닙니까?”

“이름이 뭐라고 했죠?”

“LA타임스의 레이넌 기자입니다.”

“발표할 시점이 되면 레이넌 기자님을 가장 먼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대통령은 단상에서 내려와 춘추관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국내외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질문은 강현수 국방부 장관께서 받도록 하겠으니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선전 포고가 발표된 지 4시간 만에 이어진 서현우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전 세계 국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미국과 가장 가까운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분석을 시작했다.

미국 국무부는 모든 외교라인을 통해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에 미국의 전쟁 지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현우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코자 하였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한민국 외교부에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일본과 미국의 진실 여부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요청했고 미국의 전쟁 지지 요청 역시 잠시 보류하거나 철회했다. 이외의 타 동맹국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숨겨왔던 미국의 이중적인 거짓 행보를 발가벗겨지듯 죄다 밝혀냄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는 데 성공한 대한민국은 미리 준비한 증거자료들을 요청하는 모든 대사관에 보냈다. 한편 생각지도 못한 대한민국의 빈틈없는 대처에 당황한 미국은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했던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변심과 이외 동맹국의 시원찮은 지지에 일단 미국 자체 힘만으로 대한민국과의 전쟁을 수행하기로 진로를 수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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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4일 13:20,

일본 규슈 사가현 사가 시내.

전날 육상자위군의 제8기갑사단 소속 제43전차연대를 격파하고 사가 점령에 들어간 까치독사연대는 미리부터 침투했던 특전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새벽 4시가 돼서야 순조롭게 시 전체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몇 시간 동안 치러진 사가 시내 곳곳은 폭탄과 레이저 및 총탄의 흔적이 난무했다.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화염에 휩싸여 흉물스럽게 뼈대만 엉성하게 남았고 간판들 역시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간신히 걸려있었다.

휘웅! 휘웅! 휘웅!

아침이 밝고 소방차와 구급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시내 도로를 질주했다. 아직도 타고 있는 건물의 화재를 진압하고자 소방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부상한 일본 경찰과 무장 해제되어 쓰러져 있는 육상자위군들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사가 점령군인 까치독사연대 해병대원들은 사주경계를 펼치며 일본 소방대원들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았다. 단지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지만 서린 눈빛으로 철저히 감시할 뿐이었다.

“분대장님! 잠도 오는데 저기 편의점에서 커피라도 가져올까요?”

시내 중심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제7기동헬기대대 강연호 상병이 총부리로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됐다. 나도 잠 와서 죽는 줄 알았는데, 내건 아메리카노로 가져와라! 야! 그냥 가져오지 말고 계산해야 한다? 괜히 헌병대한테 걸리면 영창이다. 영창! 알았냐?”

“아! 오 병장님도, 상병 짬밥인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 일본 돈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 갔다 와라!”

분대장의 허락을 받은 강연호 상병은 후임인 오길성 일병과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격렬한 시가전이 일어났는데도 아침에 문을 연 편의점에 해병대원이 들어오자 편의점 주인은 깜짝 놀랐다.

“놀라기는. 김 병장님은 아메리카노다. 난 캔 커피로 고르고 나머지 애들 거는 네가 알아서 골라라.”

“알겠습니다.”

오길성 일병이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고르는 중 강연호 상병은 편의점 주인 앞으로 다가갔다.

“너도 간땡이가 장난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먹고살고자 편의점을 열고?”

한국말로 말하니 알아듣지 못할 거로 생각한 강연호 상병은 살짝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이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편의점 주인은 처음엔 무서워하던 표정을 뒤로하고 갑자기 화를 내듯 소리쳤다.

“이 새끼 뭐라는 거야? 오 일병! 너 일본말 좀 할 줄 알지?”

“조금 합니다.”

커피를 모두 고른 오길성 일병이 계산대로 다가와 편의점 주인을 째려보며 말했다.

“이 새끼 방금 말한 게 대충 ‘왜 일본을 불법 침입했냐? 물건 안 팔 테니까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새끼 극우 단체 회원인 거 같은데요?”

“뒈지려고 말 함부로 하네?”

강연호 상병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편의점 주인에게 눈을 부라리며 욕을 뱉었다. 그리고 오길성 일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편의점 상단에 A4용지 크기의 욱일승천기 여러 개가 붙어 있었다.

“감히 욱일승천기를 걸어놔? 박살을 낼까 보다.”

욱일승천기를 보자마자 분노가 치민 강연호 상병은 CS2 레이저 라이플을 편의점 주인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레이저 빔으로 한번 쓱 하니 갈겨주고 싶었으나 괜히 군법 위반으로 영창이라도 갈까 봐 겁만 줬다. 이에 편의점 주인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벌벌 떨며 몸을 웅크렸다.

“별것도 아닌 게 무게 잡고는! 얼마냐?”

이때 밖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밖을 확인한 오길성 일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강 상병님! 커피 마시기는 틀린 거 같습니다. 시위대가 몰려옵니다.”

“시위대? 이런 개새끼들······.”

건너편 8차선 도로에는 머리에 일장기 띠를 두른 일본 시민들이 저마다 시위 카드를 들고 무더기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편 몇 명은 야구 방망이와 각목을 든 시위자도 있었다.

“강 상병님! 오 일병님! 분대장님이 바로 나오시랍니다.”

분대 막내인 홍정표 이병이 편의점 문을 열고 소리쳤다.

“나가자!”

500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는 9명으로 이뤄진 해병대 분대원을 향해 더욱 거친 함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 ★ ★

2021년 2월 14일 13:30

일본 규슈 사가현 사가시 남동단 3km 평야 지대

오전에 잠시 오침을 취한 제5기동타격대대와 제6기동타격대대는 다음 진공을 위해 사가 남동단 평야 지대로 기동했다. 일부 교전으로 파괴되거나 고장 난 장갑차를 제외한 68대의 K-23P-M 기동전투장갑차는 엔진음을 울리며 구루메까지 이어진 지쿠고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한편 지쿠고강 건너편에는 육상자위군의 제42전차연대 8개 중대가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박격포 대대는 물론 30km 떨어진 곳에는 자주포 포대까지 대기 중인 상태였다.

이들 전력은 한국 해병대가 지쿠고강을 도하 하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대장님! 도하 하기엔 건너편 전력이 만만치 않겠습니다.”

작전참모관이 스파이더 드론으로 정찰한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후 도하가 쉽지 않음을 김인혁 연대장에게 피력했다.

“그렇다고 진공을 늦출 순 없지 않은가? 일단 해군항공단에 지원 요청하고 신속하게 도하 한 후 고속기동으로 진격한다. 지원 연락하고 각 대대장에게도 전달하도록.”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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