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8/605)

전초전

2021년 2월 13일 17:2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대통령 집무실.

강이식 합참의장과 최호일 합참차장이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이미 집무실에는 이용호 국무총리 비롯한 강현수 국방부 장관, 김재학 외교부 장관, 이재수 법무부 장관, 나봉일 국가정보원장, 오장수 안보실장, 나성태 대통령비서실장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국가 서열 2위인 김여정 부통령은 북주 복구사업의 진척상황을 확인차 평양을 방문해 오늘 회의에 불참했다.

지금 모인 자리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장성 둘은 제일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이에 깜짝 놀란 합참의장과 최호일 합참차장은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강이식 합참의장이 한마디를 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최대한 빨리 온다는 것이 늦었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손사래를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강 의장. 오해했군요. 여기 계신 분들은 두 분보다 먼저 연락을 했기에 미리 와 있던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막중한 임무를 맡은 두 분의 시간을 함부로 뺏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대통령님, 군인으로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래요. 그럼 참석자 모두 왔으니, 나 원장! 시작합시다.”

대통령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봉일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걸려 있는 스크린 옆에 섰다.

“지금부터 보시는 정보는 군사기밀 SS급에 해당합니다. 참고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스크린 화면에 불이 켜지고 지난 2015년 8월 15일 평양에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폭탄 테러가 일어나 행사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이 보이면서 화면은 멈췄고 화면 중앙에 ‘2015년 평양 폭탄 테러 사건의 경위’라는 문구가 나왔다.

통일 전 밝혀진 8‧15 평양 폭탄 테러 사건의 경위는 권력에 눈이 먼 리병철 전 부위원장과 밝혀지지 않은 배후 세력의 범행으로 잠시 적 결론을 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국가 기밀 S급으로 지정되어 지금 대통령 집무실에 모여 있는 관료를 비롯해 일부 정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극비였다.

하지만 지금 나봉일 원장의 설명과 함께 TV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반쪽짜리 8‧15 평양 폭탄 테러 사건의 숨겨졌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봉일 원장의 설명은 20분 정도 지나서 끝났다. 서현우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누구 하나 나서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상 이상의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에 서현우 대통령이 천천히 둘러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다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압니다. 저도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찌합니까? 이게 사실인 것을요. 이와 관련해 의견을 듣고 싶군요.”

“꼭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본 듯합니다.”

이영호 국무총리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정적을 깼다. 그러자 바로 오장수 안보실장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알려야 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온갖 불법적인 만행을 저지른 악마와 같은 미국의 실체를 알려야 합니다.”

“김재학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통령은 외교부의 수장인 김재학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참으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동맹국이라 생각했던 미국이 저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요. 외교적 측면에서 말씀을 드려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알린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염려되는 것이 저 USSC라는 조직에 대한 확실한 증거자료가 없습니다. 단지 야구마치 겐조라는 일본인 증언과 몇 장의 사진뿐이잖습니까? 자치 잘못하면 우리 대한민국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니, 김재학 장관! 이 정도 증언과 증거자료면 충분하지 않소이까? 리병철이 스위스 계좌로 거금을 받았고 수차례 워싱턴에 있는 자와 통화한 내역이 있지 않습니까? 더불어 그것을 뒷받침할 증언과 USSC의 마크가 찍혀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장수 안보실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했다.

“흥분은 자제해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니까요. 이재수 장관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회의 분위기가 뜨거워지자 대통령은 자제를 시키며 법무부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통령님! 사실 이 정도 증거와 증언이라면 충분히 세계 언론에 밝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제정서라는 것이 힘 있는 국가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까? 미국이야말로 UN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며 세계 1위의 군사적, 경제적 강대국입니다. 또한, 미국을 추종하는 유럽연합과 동맹국들이 많습니다. 김 장관님 말대로 섣불리 이슈화했다간 현재 한일전을 평화적으로 중재하려는 미국을 도리어 테러국가로 지정해 거짓 음해론을 펼쳐 자칫 미국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재수 법무부 장관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현실적 입장에서 소신 있게 대답했다. 이때 듣기만 하던 나봉일 원장이 한 가지 더 충격적인 얘기를 던졌다.

“현재 조사 중이긴 하나 저번 아베 총리 암살 역시 USSC가 배후라는 정보분석실의 중간보고가 올라온 상태입니다.”

이에 김재학 장관이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입증할 증거는 있습니까?”

“현재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여러모로 증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USSC라는 조직, 정말 무섭군요. 이거 정말 이성적으로 판단할 조직이 아닌 듯합니다.”

이형호 국무총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회의가 시작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강현수 국방부 장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총리님 말대로 USSC라는 조직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어느 국가가 이런 무모한 짓을 이렇게 쉽게 벌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USSC에서 우리 정부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우리 정보 관료들 역시 신상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강현수 장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장수 안보실장이 강현수 장관의 말을 거들었다.

“내래 한마디 해도 되갔습네까?”

현재 집무실에 모여 있는 사람 중 가장 서열이 낮은 최호일 합참차장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당연합니다. 최호일 차장, 얘기하세요.”

“감사합네다, 대통령님.”

최호일 차장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군인답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리 물은 엎어졌다고 생각합네다. 미제 정부 위에서 군림하는 그 USSC라는 조직이 평양 테러를 일으켜 고 안형준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암살하디 않았습네까? 그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USSC 간나새끼들을 그냥 냅둔다면 향후 우리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네다. 안 그렇습네까? 더욱이 일본 아베 총리까지 암살했다면 말이디요. 향후 역풍을 맞든 말든 지금은 미제와 그 USSC 간나새끼들과 결전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네다.”

다소 거친 표현을 섞어 자기 의견을 내세운 최호일 대장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이에 서현우 대통령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이식 합참의장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눈치를 챈 강이식 합참의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최호일 차장과 같은 의견입니다. 우리 정부가 입 꾹 닫고 모른척한다 해도 USSC 조직은 끝까지 비밀을 감추기 위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일들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건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USSC 조직의 실체와 평양 폭탄 테러의 배후 세력이라는 사실은 당분간 우리 정부의 히든카드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 히든카드를 사용해야 하며, 군사적 입장에서 미국과의 승부는 필연적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의 의견은 단호하고 냉철한 판단이었다.

“좋은 의견입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식 합참의장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합참에서는 만일의 사태인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좋습니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도록 합시다. USSC 조직의 실체와 테러 사건의 배후, 그리고 현재 조사 중인 일본 아베 총리 암살 건은 향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이용하는 히든카드로 사용합시다. 또한, 지금부터 차관급 이상의 모든 관료에 경호 1급 단계로 전환합니다. 마지막으로 합참에서는 이 시간 이후로 미국과의 모든 군사적 충돌에 있어 물러섬 없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 ★ ★

2021년 2월 13일 17:30 (미국시각 4:30),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USSC 별장).

긴급 소집된 13인의 검은 가면은 타원형 형태의 회의 탁자를 둘러싸 앉아 무거운 주제로 회의를 시작했다.

“결론은 하나지 않습니까? 힘으로 누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총기협회 회장이자 USSC 위원인 닉네임 마르스는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강한 어조로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미 정보기관에서 한국 군사력과 신기술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가 안 된 상황에서 섣부른 한국과의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이곳에 모인 검은 가면 13인 중 가장 나이가 적은 닉네임 블랙킹이 조용한 목소리로 마르스 주장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마르스가 발끈하며 대꾸했다.

“블랙킹! 그럼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한국을 그냥 둬야겠습니까?”

“마르스! 확실히 적의 군사적 수준을 알고 전쟁을 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지요. 흥분하지 마시오.”

마땅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은 마르스는 신음을 토하고는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에 USSC의 의장인 빅토리아가 다른 위원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분들도 의견을 제시하세요.”

“한국이 그동안 군사적으로 발전해봤자 얼마나 발전했겠습니까? 또한, 지금 상황에서 한국의 군사력이 염려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손을 봐야지 않을까요?”

USSC 위원 중 마르스와 함께 강경파에 속한 루롤프가 중후한 목소리로 말하자 또 다른 강경파이자 나이가 가장 많은 콜롬버스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이 바로 한국의 버릇을 고쳐줘야 할 때라고 보이는군요.”

“만약 한국이 모든 사실을 세계 언론에 모두 알린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USSC의 또 다른 여성 위원인 닉네임 아마존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이에 USSC의 정보 담당인 닉네임 루팡이 빅토리아 의장 대신 대답했다.

“솔직히 야구마치 겐조의 증언 말고는 우리 USSC에 대한 그 어떠한 증거자료도 없을 것입니다. 행여 아마존의 말대로 한국이 전 세계 언론에 우리 조직과 8‧15 평양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한 경위를 알린다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과 동맹 관계의 국가들을 동원한다면 도리어 우방인 우리 미국을 음해하려는 매도 국으로 몰아세워 국제 사회에서 매장해버리면 됩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루팡?”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력과 정보력, 그리고 모든 힘을 총동원해야겠지요.”

한편 저번 리병철을 통해 김영철 부위원장의 암살 사건 실패로 발언권을 상실한 스핑크스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다분히 묻어 있었다.

“다른 분들 더 이상의 의견은 없습니까?”

빅토리아 의장은 12인의 검은 가면을 쓱 하니 둘러보며 말했다.

“없으면 지금부터 표결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과의 전쟁 승인에 대해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원형 탁자를 중심으로 앉아있던 13인의 검은 가면 중 여러 명이 손을 들었다.

“찬성 6표, 반대 6표, 저 또한 이번 안건에 찬성합니다.”

6대 6인 상황에서 빅토리아가 손을 들었다.

“이로써 찬성 7표로 한국과의 전쟁을 승인합니다. 베토벤과 쥴리앙은 의회에 손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체스맨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와 같은 결정사항을 전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다른 분들도 각자 담당한 부분에 대해서 일사천리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