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초전
2021년 2월 03일 16:00,
일본 규슈 텐네가섬 남단 북위 30°33' 동경 131°24' 해심(코퍼스 크리스티함).
고요하다 못해 음산함이 가득한 심도 100에서 수중배수량 6,920t에 달하는 LA급(플라이트I) 핵잠수함인 코퍼스 크리스티함(SSN-705)과 휴스턴함(SSN-713)이 1km 간격을 유지한 채 은밀히 잠항 중이었다.
LA급 공격 핵잠수함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근 20년 동안 3단계를 걸쳐 62척이 취역했지만, 아직도 30여 척이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항공모함을 노리는 상대국 잠수함 세력과 수상함대의 기함을 격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LA급 공격 핵잠수함은 항공모함 전투단을 이루는 핵심 잠수함으로 12척의 LA급 핵잠수함이 호위로 붙어서 대잠수함 방어망을 형성한다. 130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며 최대 90일까지 심해작전이 가능하다. 무장으로는 533mm 어뢰발사관 4개를 이용한 Mk.48 ADCAP/CBASS 어뢰와 Mk.67 SLMM 기뢰, 그리고 Mk.36 VLS(12셀) 수직발사대를 이용한 UGM-84 하푼과 UGM-109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만큼 꾸준한 개량과 관리를 통해 지속해서 업그레이드가 진행되었고 A-RCI(Acoustic Rapid COTS Insertion) 업그레이드 계획에 따라 척당 4억 6천만 달러나 들여 오버홀 했다. 물론 플라이트I인 초기형 중 일부가 제외된 이 프로그램은 LA급 핵잠수함의 현대화 노력의 핵심으로 A-RCI는 탑재된 소나 시스템(AN/BSY-1, AN/BQQ-5, 또는 AN/BQQ-6)을 시울프급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COTS/OSA(개방형 시스템 구조)에 기반을 두었다. 이 업그레이드는 연안에 중점을 맞춰놨기에 대양에서의 작전능력은 별 진전사항이 없고, 무엇보다도 가장 주된 내용은 러시아의 신형 핵잠수함과 제3국 재래식 잠수함의 정숙성/음향정보를 기초로 한 대응력의 향상 되었다.
한 가지 재미난 건 이렇게 거금을 들여 업그레이드를 완료하고 가공할 펀치력을 보유한 LA급 핵잠수함도 예전 림팩 훈련 당시 장보고급한테 가상의 격침당한 오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2021년 후반에 퇴역 예정인 두 척의 잠수함은 퇴역 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규슈 남동단 해저의 굴곡진 해구 지형을 따라 더 깊숙이 잠항에 들어갔다. 규슈 남동단 인근 수심은 120m밖에 안 됐지만, 남단 쪽으로 멀어질수록 점점 깊어졌고 해구의 영향으로 수심 1,800m가 되는 곳도 있다.
“음탐관, 발견된 거라도 있나?”
선두에서 잠항 중인 크리스티함(SSN-705)의 로버트 할리 함장은 직접 CIC(전투정보실)에 내려와 AN/BQQ-15 소나로부터 들려오는 음탐을 분석하는 음탐관에게 물었다.
“조용합니다. 함장님!”
대답하는 사이 혹시라도 놓칠세라 짧게 대답한 음탐관은 계속해서 주위 잡음에 대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에 로버트 할리 함장은 통신 수화기를 들고는 CR(조종실)에 명령을 내렸다.
“함장이다. 항해장은 방위각 그대로 잠항각 하향 15로 심도 130까지 내려간다. 속도 역시 현상유지.”
- 방위각 유지! 잠항각 하향 15도로 심도 130까지 잠항! 현 속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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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3일 16:30,
일본 규슈 텐네가섬 남단 북위 30° 4' 동경 131° 5' 해심(양세봉함(SSP-85)).
한편 지난 2월 5일 요코스카 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군의 제1호위대군 헬기항모 1척과 구축함 6척을 침몰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제7기동잠수함전단 소속의 양세봉함(SSP-85)과 이운형함(SSP-86)은 이곳 야쿠섬 근처 해심에서 역추적 걱정이 없는 SUSL 액티브 핑을 방사하며 경계 임무 중이었다.
양세봉함(SSP-85)의 음탐관은 SUSL 액티브 핑을 통해 반사해 돌아오는 음문을 분석하던 중 뭔가가 걸렸는지 헤드셋을 벗고는 전술통제관에게 보고했다.
“통제관님! 잠수함으로 보이는 음탐 2개 확인됩니다.”
“어디 쪽인가?”
음탐관은 소나 모니터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 함으로부터 방위각 0-1-8로 대략 거리는 71km로 심도는 130에서 90 사이에서 20노트로 잠항 중입니다. 진행 방향은 7시 방향인 본 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미확인 잠수함의 확실한 피아식별은 언제쯤 가능한가?”
“아무래도 60km 정도까지는 가까워져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좋아 전술 스크린에 띄우고 음문 분석을 하도록.”
전술통제관은 마저 지시를 내리고 조종실에 보고를 올렸다.
- 현재 방위각 0-1-8, 거리 71km, 예상 심도 130에서 90에서 미확인 잠수함 음탐 확인! 현재 음문 분석 중입니다.
조종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양세봉함(SSP-85)의 함장인 김진준 중령은 지루함에 지쳐 풀려있던 두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잘됐군. 지루해 죽을 뻔했는데 말이야. 계속해서 이동 상황 주시하도록.”
- 알겠습니다.
전술통제관의 보고가 끝나자 조종실의 전술 스크린에도 현재 미확인 잠수함 위치가 표기되었다. 그리고 10여 분이 흐른 후 서서히 뚜렷해지는 음문을 분석하던 음탐관은 오른 주먹을 쥐고 흔드는 액션을 보였다.
“찾았다. 통제관님! 미확인 잠수함의 정체가 확인되었습니다.”
“뭔가?”
“LA급 전기형 핵잠수함으로 크리스티함과 휴스턴함으로 확인됩니다.”
“LA급 핵잠? 슬슬 미국 놈들이 움직이는가 보군!”
통제관은 즉시 조종실의 함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김진준 중령은 직접 전투통제실에 내려와 송기영 전술통제관에게 물었다.
“크리스티함과 휴스턴함이라? 어디 소속인가?”
“네, 미 해군 제7함대 잠수함전대 소속입니다.”
“제7함대 7항모전단이 요코스카에서 언제 출항했다고 했지?”
“네, 12일 오전 05시입니다.”
양세봉함(SSP-85)은 침묵 잠항으로 대잠 경계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해군작전사령부와 통신했을 당시 제7함대의 제7항모전단이 요코스카에서 서단으로 기동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렇다면 7항모전단도 가까이 있다는 얘기로군 안 그런가?”
“7항모전단의 전방 대잠 경계를 위해 LA급 핵잠 두 척이 먼저 선두 잠항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음탐관 핵잠 두 척 외에 다른 음탐은 되지 않는가?”
“네, 약하게나마 다수의 잡음이 잡히긴 합니다만 해심 속 유속에 의한 잡음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함의 스노클링에 의한 잡음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합니다.”
“알았네.”
김진준 중령은 손뼉을 치듯 양손을 포갠 후 힘주어 말했다.
“침묵 잠항 유지한 채 전원 전투배치! 이운형함에도 전투배치 명령 하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조용하기만 하던 양세봉함(SSP-85)의 실내는 붉은색 사이렌 조명이 요란하게 돌아가자 승무원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각자 자리로 이동하느라 분주해졌다.
“해작사에 보안통신전문 발신! 내용은 현재 위치 30°33'7.03“N / 131°24'37.64“E에서 해군 제7함대 소속의 LA급 핵잠수함 2척 발견! 잠수함은 크리스티함과 휴스턴함 후방에 제7항모전단이 있는 것으로 추정!, 현재 위치에서 전투태세로 전환하여 대기 중! 향후 명령 요청함.”
“바로 발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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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3일 17:0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합참의장실).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한 강이식 합참의장은 지하 벙커에 내려오자마자 작전본부장이 방금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올라온 내용을 보고했다.
“의장님! 해작사로부터 보고입니다.”
“뭔가?”
“규슈 텐네가섬 남단 해심에서 대잠 경계 중인 양세봉함으로부터 제7함대 소속의 LA급 핵잠수함 2척 발견! 또한, 후방에 제7항모전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의 보고입니다. 현재 전투태세로 전환하여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투태세라니? 너무 성급하군! 아직 미국과 전쟁이 시작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최호일 합참차장이 한마디 던졌다.
“합참의장 동지! 대통령님께 보고를 드려 각개격파식으로 선공을 펼치는 건 어떻습네까? 나중에 괌에서 출항한 11항모전단과 제7항모전단이 합류한 후 싸우는 것보다는 낫지 말이디요.”
“그건 좀 위험한 발언입니다. 최호일 합참차장님! 미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중국이나 일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긴 때문에 이왕 전쟁을 시작할 거면 유리한 상황에서 하자는 말이디요.”
이때 보좌관 한 명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의장님! 차장님과 함께 지금 바로 청와대로 오시라는 연락입니다.”
“청와대에서?”
“네, 국방부 장관님도 조금 전 청와대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알았소. 김 중장!”
“네, 의장님!”
“해작사엔 일단 대잠 경계만 하고 공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말도록 지시를 내리게.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미국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단호하게 지시를 내린 강이식 합참의장은 외투를 입고는 청와대로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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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3일 17:00 (미국시각 4:00),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USSC 별장).
늦은 시간에도 널찍한 회의실에는 조명이 밝게 켜져 있었고 검은 가면을 쓴 두 명은 회의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 실패했다는 겁니까?”
“네, 스콜피온 용병 18명이 사망했고 6명은 부상이 심각합니다.”
“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한 겁니까? 우리 조직의 운명이 걸린 일에···.”
실패라는 믿을 수 없는 얘기에 화를 내다 말끝을 흐린 여성 목소리의 검은 가면 빅토리아는 힘없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의지했다.
“죄송합니다. 좀 더 많은 용병을 보냈어야 했는데···.”
사실 하나의 임무에 스콜피온 용병이 투입하는 인원수는 많아야 5명이었다. 저번 아베 총리 암살 사건에도 4명만 투입해 깔끔히 성공시켰다. 한데 이번 러시아에는 30명에 달하는 스콜피온 용병을 투입하고도 실패를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임무를 100% 완수했던 이쪽 분야에서 최고의 베테랑들이 처음으로 임무를 실패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야구마치 겐조라는 놈이 현재 한국에 있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한국 정보원에게 붙잡힌 듯 합······.”
콰아앙.
빅토리아는 회의실 전체가 울릴 정도로 회의 탁자를 세차게 주먹으로 내리쳤다.
“한국 정부가 평양 폭탄 테러와 우리 조직에 대해 알게 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가 아닙니까?”
이번 일의 책임자인 닉네임 세븐스타는 뭐라 할 말이 없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있던 빅토리아의 얼굴은 가면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 60여 년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손아귀 위에 놓고 마음대로 주무르던 USSC 위원회의 안위가 하필 의장으로 있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에 스콜피온 용병을 투입할까요?”
세븐스타는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었다. 이에 빅토리아는 어이없다는 몸짓을 하며 야단치듯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에 용병을 투입해 뭐할 겁니까? 닥치는 대로 한국 고위관료들 모두 암살할 겁니까?”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않겠습니까?”
계속된 세븐스타의 어이없는 말에 빅토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약 한국 정부가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한국의 고위관료들만으로는 소용없을 것이오.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지도상에서 지워야겠어요.”
“그렇다면 전쟁입니까?”
빅토리아는 대답 대신 지시로 대답했다.
“지금 당장 USSC 위원회를 소집하세요.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