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초전
2021년 2월 13일 09:00,
일본.
11일 밤 내각 관료 회의에서 비상긴급징집이 결정되자마자 하루 만에 졸속 검토를 거친 후 13일 아침 9시에 전국 TV를 통해 아소 다로 부총리는 국가 비상시국인 만큼 총리권한대행의 권한으로 비상긴급징병 명령을 선포했다. 이에 일본 자위군은 19세부터 35세 이하까지의 모든 남성에 대한 강제 징집이 가능해졌다.
TV를 통해 아소 다로 부총리의 비상긴급징집에 대한 선포 장면을 시청하던 수많은 일본 시민들 입에서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이 전쟁터로 끌려간다는 이유 때문이었는지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열렸고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 사람은 어머니 세대와 남편을 둔 젊은 세대 여성이었다. 한편 선포한 지 1시간도 안 되어 징집대상자인 젊은 남자들은 집에서 숨어있거나 아니면 외딴 시골로 도망가기 위해 변장까지 해가며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선포 전부터 시내 곳곳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던 징집 검거 헌병들은 선포와 동시에 도시 간 연결된 모든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징집대상자로 의심되는 모든 젊은 남자들을 신분 확인 절차를 걸쳐 대상자면 그대로 신병교육대로 끌고 갔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대한민국과의 개전 이전부터 대도시 곳곳에서는 극우성향의 단체가 주도하는 혐한 시위가 매우 빈번했다. 그리고 한일전이 일어난 후에는 혐한 시위가 더욱 활발해졌고 그 선봉에는 욱일승천기를 흔들며 ‘한반도를 불바다로’ 또는 ‘조센징을 모두 죽이자!’ 등 온갖 혐한 발언을 부르짖던 젊은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비상강제징집 명령이 선포된 이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극우단체장들은 ‘자위군에 자진 입대를 했다’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강제 징집을 피하고자 대부분 도망을 쳤다.
반대로 중국과 전쟁이 시작된 후 병무청에 자진 입대를 하고자 길게 줄을 섰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과는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이렇게 선포와 동시에 비상긴급징집이 발동되면서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의 모든 도시와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도 헌병대에 끌려가는 일본 젊은 남성들이 장면이 속출했다. 통계상 최대 900만까지 징집이 가능한 상황에서 첫날 징집된 일본 젊은이들은 10만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 내각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그것은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미사일 공격과 전투기 공습으로 수많은 군수 공장들이 파괴되었고 지금도 일본 전역에서 5만에 달하는 한국 특전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징집이라는 건 개전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초 군사훈련을 통해 군인을 확보하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물며 대한민국 해병까지 상륙하여 도쿄를 향해 진공 하는 상황에서 이제야 징집을 하여 언제 훈련을 시키고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군인들 만들겠는가? 한국처럼 예비군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을 마친 군인들에게 주어질 무기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군수 공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앞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이 군수 공장은 파괴된 상태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이 아소 다로 부총리를 부추겨 비상긴급징병 명령을 내린 것은 미군의 참전을 유도해 한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는 동안, 시간을 번 후 부족한 무기는 수입하여 징집 병력을 무장시키고 대대적인 반격을 도모하고자 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미국이 일본 내각이 원하는 대로 대한민국과의 전쟁에 참전하느냐였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자면 충분한 가능성은 있었으나 미래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일본 내각은 미국에 천문학적인 돈을 제시해 원하는 걸 달성하고자 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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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3일 14:00,
제주도 남단 20km 해상.
어젯밤 오키나와 제도를 통과한 미 해군 제3함대 소속의 제11항모전단의 제럴드 R. 포드함(CVN-78)을 중심으로 10여 척의 수상함과 잠수함이 제주도로부터 남단 510km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이에 대한민국의 해군 역시 가용한 해상전력이 강정 해군기지로 속속들이 귀항해 일부 수상함은 탄 보급과 함께 각가지 전쟁물자를 보급받았다. 그리고 제주도 남단 20km 지점에서 미 해군 제11항모전단과의 해상 대응에 들어갔다.
현재 해상 대응에 투입된 대한민국 해군 수상함은 제7기동전단의 호큘라 구축함 5척과 제2함대 소속의 이지스 구축함 2척, 방공 구축함 4척, 마지막으로 호큘라 잠수함 2척과 214급 잠수함 6척이 반경 50km 해심에서 때를 기다리며 잠항 중이었다.
이렇게 해상전력이 분주히 기동하며 해상 대응에 들어간 사이 제주도 서귀포 국제공항에는 민간항공기 외에 주작 전투기 24기가 보기 좋게 정렬되어 있었다. 또한, 부분 복구 작업이 완료된 제25전투비행단에도 주작 전투기 24기와 흑주작 전투기 24기가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곳곳에는 SSM-700K 해성3A 지대함 미사일을 운용하는 6개 대대가 향후 있을 미 해군과의 교전을 위해 만만의 준비를 했다.
그 시각, 오키나와 북서단 156km 해상
제럴드 R. 포드함(CVN-78)을 중심으로 타이콘데로가급(플라이트Ⅳ) 이지스 순양함인 초신함(CG65)과 알레이버크급(플라이트I) 이지스 구축함인 존 폴 존스함(DDG-53)과 알레이버크급(플라이트IIA) 이지스 구축함인 피크니함(DDG-91), 샘프슨함(DDG-102), 윌리엄 P. 로렌스함(DDG-110), 스프루언스함(DDG-111), 마지막으로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인 커티스함(FFG-38), 밴데그리프트함(FFG-48)의 호위를 받으며 거친 파도를 헤치며 북단으로 항해를 이어갔다.
그리고 제11항모전단의 전방 해심에는 제15잠수함전대 소속의 LA급(플라이트II) 공격 핵잠수함인 프로비던스함(SSN-719), 피츠버그함(SSN-720), 시카고함(SSN-721)이 대잠 경계를 펼치며 잠항에 나갔고 후방 해심 80m에서는 오하이오급 공격 핵잠수함인 알래스카함(SSBN-732), 로드 아일랜드함(SSBN-740)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배수량 110,000t의 제럴드 R. 포드함(CVN-78)의 비행갑판(flight deck)에는 조기경보기인 E-2F(호크아이 2000)를 비롯해 F-35C 통합기와 전자전 공격기 EA-18G 그라울러(Growler)등 여러 기종의 함재기가 착함 중이었다.
한편 요코스카 근해에서 대기하던 제7함대 소속의 제7항모전단은 제11항모전단과 합류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CVN-76)을 비롯해 제7함대 기함인 상륙지원함인 블루리지함(LCC-19)과 타이콘데로가급(플라이트Ⅳ) 이지스 순양함인 카우펜스함(CG-63)과 샤일로함(CG-67), 알레이버크급(플라이트IIA) 이지스 구축함인 라센함(DDG-82), 맥캠벨함(DDG-85), 머스틴함(DDG-89)은 마지막으로 버지니아급(블록II) 핵잠수함 뉴햄프셔함(SSN-778)은 시코쿠을 크게 선회하여 서단으로 항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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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3일 15: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오랜만에 서울은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끔 내린 눈으로 녹다가 만 눈 때문에 지저분해진 거리는 내리는 비로 인해 깔끔히 사라졌다.
강이식 합참의장은 오랜만에 지하 벙커에서 나와 의장실의 창문 밖으로 비 내리는 장면을 보니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보고 있던 강이식 합참의장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뭔가?”
“의장님! 주일 미군 사령관인 브루스 라이트 대장의 전화입니다.”
“브루스 라이트?”
브루스 라이트 대장은 주한 미 사령부의 작전 국장이라는 직책으로 강이식 합참의장과는 안면은 물론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2019년 주한 미군이 일본으로 철수할 때 브루스 라이트 작전 국장은 미 국방부 육군성 참모차장으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2020년 6월에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주일 미군 사령관으로 발령받았다.
“네, 2번 전화입니다.”
“알았네.”
책상으로 걸어간 강이식 합참의장은 2번 버튼을 누르고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합참의장 강이식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주일 미군 사령관 브루스 라이트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 네, 강 의장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렇군요. 라이트 사령관님!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까지 주셨습니까?”
- 사실 공식 업무상으로 전화를 드린 건 아닙니다.
“비공식적으로?”
- 네, 현재 미 해군의 7함대와 3함대가 전비 상태로 전환해 한반도로 기동 중인 것은 아시지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 강 의장님! 사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이 이번 한일전에 참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강 의장님과 친분이 있기에 염려되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사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의 말에 수화기 넘어 브루스 라이트 대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방금 말에 놀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 정말입니까? 정말 한국은 우리 미국과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쉽게 말씀드리긴 좀 곤란하군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수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강 의장님! 대체 한국은 무엇을 얻고자 우리 미국과 전쟁을 하려는 겁니까?
강이식 합참의장은 브루스 라이트 대장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라이트 대장!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군요. 왜 미국은 한일전에 있어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행보를 보이는 겁니까? 일본만 미국 동맹이고 한국은 동맹이 아니었습니까?”
- 그건 아닙니다. 단지, 우리 정부는 이번 한일전으로 인해 미한일 삼각 동맹이 깨져 동북아의 평화 유지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브루스 라이트 대장의 원론적인 대답에 강이식 합참의장은 단호하게 받아쳤다.
“동북아 평화 유지라고 하셨습니까? 핵 위협이었던 북한과 통일하고 중국마저 전쟁으로 굴복시켜 평화의 위협이 사라진 동북아에 무슨 평화 유지가 어렵다는 말을 하시는 겁니까? 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강이식 합참의장에 말에 딱히 대꾸할 변명거리가 없었던지 브루스 라이트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에 강이식 합참의장은 길게 숨 한번 내쉬면 말을 이어갔다.
“어렵군요. 생각해 주셔서 전화를 주셨는데 제가 혼란스럽게 한 거 같습니다. 라이트 대장!”
- 아닙니다. 강 의장님! 저 역시 군인 신분이니 만에 하나 최악의 사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요. 라이트 대장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의장님,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되도록 이번 한일전이 좋게 끝났으면 합니다.
“그래요. 그리고 저번 공습 공격으로 미군에 적잖은 피해를 준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최대한 신경을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 아닙니다, 의장님. 사실 미 주둔기지에 자위군을 주둔시킨 것이 잘못이니 미군에서도 고려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전화합시다.”
전화를 끊은 강이식 합참의장은 다시 창가로 다가가 아까보다 더욱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방금 통화한 내용을 되새겼다.
‘과연 라스트 대장이 단지 개인적으로 전화했을까? 아니면 상부의 지시에 따라 떠보려고 전화를 했을까?’
사실 강이식 합참의장은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이거 참,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리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