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605)

진흙탕 싸움

2021년 2월 10일 16:3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외곽 내각 전용 건물.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연신 구토를 하는 랜디 존슨 주위로 수행원이 다가가 보호하기 위해 몸을 감쌌다. 흑인 사내 역시 자세를 낮추고 다가와 정신 못 차리는 랜디 존슨의 목덜미를 잡고는 넌지시 말했다.

“랜디 존슨 협상관! 정신 차리시오. 협상관 역시 표적이 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흑인 사내의 말에 랜디 존슨은 헛구역질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럽시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충격이 워낙 컸던지 랜디 존슨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있었다.

“이동하겠습니다.”

흑인 사내가 앞장을 서고 수행원들이 랜디 존슨을 부축하여 아수라장이 된 총리실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총리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각 층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관료들이 놀란 눈을 하고 뛰어 왔다.

“총리님.”

가장 먼저 방위성 대신인 시바사키가 11층에서 계단을 타고 뛰어 내려왔다. 그 뒤로 여러 관료가 줄을 이어 총리실로 밀고 들어왔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은 그대로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아베 총리님! 대체 이런 일이?”

시바사키 대신은 아베 총리로 보이는 몸뚱이만이 의자에 앉은 채 옆으로 기울어져 날아가 버린 목 부위에서 분수 쏟듯이 피를 분출하는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호실장은 어디 간 거야?”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이 소리를 지르자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여깄습니다.”

내각 총리 경호실장인 가쓰라 긴모치는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어떻게 총리님이!”

“죄송합니다. 1층에서 건물 출입구 경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가쓰라 긴모치 경호실장 역시 눈에 들어온 참혹한 장면에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당장 총리실 인원 총 투입하여 건물 내 모두 통제하시오. 그리고 경시청과 협조하여 법인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시오.”

“알겠습니다.”

“랜디 존스 협상관 일행은?”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1층으로···.”

“그 사람들도 조사 대상이니 당장 구금 하시오. 지금부터 누구 하나 이 건물을 빠져나가선 안 됩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 ★

2021년 2월 10일 17:3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외곽 내각 전용 건물 지하 벙커.

일본 아베 총리의 저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져버린 도쿄, 범인 수색을 위해 도쿄 관할 경시청과 육상자위군까지 긴급 투입되어 도쿄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각 전용 건물 지하 벙커에서는 내각 서열 2위인 부총리 겸 재무상인 아소 다로가 회의를 주최했다.

일본 전역에 한국 특수부대가 침투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저격당해 즉사해버린 엄청난 사건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매우 무겁고 어두웠다.

“지금 미국 협상관은 어디 있소?”

부총리 아소 다로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침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현재 지하 벙커 휴게실에 구금 중입니다. 랜디 존슨 협상관의 상태가 좋지 않아 내각 의료원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내각 경호실장이 죽을죄를 지은 듯한 표정을 하고 대답했다.

“자칫 일방적인 구금은 미국과의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으니 저격범 색출을 위해 잠시 협조를 요청한다고 말하고, 구금 기간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시오.”

40분 전 랜디 존슨 일행과 흑인 사내는 1층 현관 로비에서 내각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지하 벙커 휴게실에 구금 중인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현재 우리 일본은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저격범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소이까?”

“현재 도쿄 전체에 경시청 경찰과 육상자위군까지 모두 투입한 상태로 도쿄 외곽으로 이어진 모든 도로에 검문 절차를 통해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 중이며 도쿄 내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에 대한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잡아야 합니다.”

“동부방면대의 제1사단은 물론 제12여단 공중기동 부대까지 모두 투입했습니다. 현재 직할대까지 동원하여 병력을 투입하려 합니다.”

“시바사키 대신.”

“네, 부총리님.”

“총리 저격 사건의 배후를 한국으로 봐야 할까요?”

“한국이 아니라면 어느 국가이겠습니까? 지금 일본 전역에 한국 특수부대의 대명사인 특전사 2만여 명이 투입된 상태입니다. 당연히 이번 총리 저격 사건 역시 일본 도쿄에 침투한 한국군의 소행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바사키 대신은 확신에 차 힘 있게 대답했다. 3자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한국이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긴 했다. 어찌 보면 이번 총리 저격 사건을 국제 사회에 한국을 압박할 수 카드로 활용해 불리해진 전쟁 양상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이에 시바사키 대신은 무조건 한국군의 소행이라고 밀어붙였다.

“UN 안보리와 국제 사회에 한국군 소행이라는 걸 입증할 최소한의 증거라도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를 잡아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부총리님.”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한 시바사키 대신은 자리에 앉았다.

★ ★ ★

2021년 2월 10일 18:5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일본에 투입된 특전사 상황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잠시 집무실에서 휴식 중이던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나봉일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2시간 전 아베 총리가 정체불명의 범인에게 저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보고였다.

이에 대통령은 직접 합동참모본부 용산 B2 벙커에 방문하여 합동참모진과 긴급회의를 하였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합참의장.”

“네, 대통령님.”

“혹시 나도 모르는 작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일본에 투입된 특전사를 통해 아베 총리를 암살하라는 임무가 주었는지 묻는 겁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이번 일본 공수작전에 도쿄는 제외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저 역시 그러한 임무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은 대답과 동시에 특전사령관을 쳐다봤다. 이에 강정현 대장의 대답이 이어졌다.

“합참의장 말대로 현재 도쿄 일대는 공수작전 침투 제외 구역입니다. 그 어떤 특전사도 도쿄 일대에 없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노파심에 물어봤습니다. 자칫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불리해질지 모르겠군요.”

“대통령님! 설령 일본 정부가 이번 총리 저격 사건에 우리 한국을 배후의 국가로 지목하여 국제 사회에 호소하더라도 일본과 엄연히 전쟁 중입니다. 전쟁 중에 적국의 수뇌부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휴전 중이라 하더라도 그 기간 일본이 러시아와 모종의 모략을 꾸민 증거도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야비한 짓만 골라서 하는 일본에 대해서 이제는 정면승부, 즉 강공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제가 잠시 나약한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이번 한일전을 열흘 안에 끝내라고 명령한 내린 것도 나인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국가의 최고통수권자로서 여러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강현수 국방부 장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좋습니다. 계획된 작전은 계속해서 진행하세요.”

“네, 그럼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차질 없이 작전을 이어가겠습니다.”

★ ★ ★

2021년 2월 10일 21:30 (미국시각 08:30),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USSC 별장).

음침한 외곽 건물에는 아침 일찍부터 두 명의 검은 가면이 널찍한 회의실에 앉아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일은 확실히 처리되었습니다.”

닉네임 세븐스타라는 검은 가면이 짧게 대답했다.

“음,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베 총리 말고 다른 사람도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확인해본 결과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총 2명이었습니다. 1명은 아베 총리,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의장님도 몇 번 봤던 야구마치 겐조라는 총리보좌관입니다. 아무래도 그 야구마치 겐조로 인해 우리의 비밀이 새나간 듯합니다.”

“야구마치 겐조? 4년 전 방문했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본인도 처리해야지 않습니까?”

“지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러시아에서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 스콜피온 요원들을 러시아 모스크바에 투입한 상태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행방불명이···. 이런!”

러시아라는 말에 빅토리아 USSC 의장은 몇 시간 전 백악관 로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온 내용이 생각이 났고 뭔가의 연관성이 연상되자 이내 신음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새벽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와의 약속을 깨고 일본 전역에 한국 특수부대를 투입한 이유가 휴전 기간에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 비밀협약을 맺었고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생각해보세요. 한국 정부가 일본과 러시아와의 비밀협약을 알게 되었고 그 협약을 추진하던 야구마치 겐조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한국 정부 요원에 의해 납치가 되었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야구마치 겐조에 의해 우리의 비밀이 한국 정부에 넘어갈 수도 있겠군요.”

“바로 그것입니다. 이거 문제가 매우 커져 버렸습니다.”

검은 가면 속의 빅토리아의 표정은 보이진 않았지만, 매우 심각하게 일그러져있는 상태였다.

“세븐스타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한국 정부가 알게 되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럽과 러시아에 있는 모든 스콜피온 요원들을 모스크바로 투입하겠습니다.”

★ ★ ★

2021년 2월 10일 23:50,

전남 목포시 해군기지 군항.

일본 상륙작전이 중단되어 임시로 목포 군항에 입항했던 제10상륙함대 소속의 강습상륙함과 해병대원들은 2일간 임시 막사에서 휴식을 취한 후 2시간 전, 승선 명령에 따라 해병대원들은 완전군장 상태로 신속하게 정해진 상륙함에 승선하고 있었다.

그리고 2시간이 흐른 후 제2해병사단과 제3해병기동사단, 제6해병여단, 그리고 4개의 공수육전사단 병력은 각종 상륙함과 수송함에 승선을 완료했다.

목표 군항 해역에는 제10상륙함대를 호위하는 제7기동전단 소속의 호큘라 구축함 5척이 넓게 산개 대형으로 선두를 섰고 그 뒤로 제10상륙함대 강습상륙함 20척과 군수지원함과 수송함 그리고 민간 수송함 수십 척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2함대 소속에 구축함이 후방 호위를 맡으며 항해해 갔다.

그리고 1시간 후 수십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섬들 사이를 빠져나와 드넓은 남해까지 진출한 백여 척에 달하는 대형 수상함은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에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항해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멋진 광경이었다.

5일 전, 상륙작전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면서 목포항에 입항해 아쉬움을 내뱉었던 제10상륙함대의 함대장 오승환 제독은 이번에도 독도함(LPH-6111)의 함교 의자에 앉아 살짝 손목시계를 봤다.

“앞으로 3시간 후면 역사적인 작전이 시작되는군.”

“그렇게 말입니다. 제독님! 혹시나 작전이 전면 취소될까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어! 안 그런가? 유 대령.”

“그렇습니다. 제독님.”

이번 상륙작전은 총 2곳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제56상륙전단을 주축으로 한 제2해병사단과 제6해병여단은 규슈 히라도섬의 서남단 해안에 상륙하여 규슈 전체에 대한 점령 작전을 시행하고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제53상륙전단과 각종 수송함은 혼슈 도서의 하마다 해안에 상륙하여 4개의 공수육전사단으로 각 지역에 대한 점령과 제3해병기동사단의 신속한 진공으로 도쿄까지 종심 타격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30여 분 후 제주도 동단 해역을 통과하자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제독님! 해작사의 멀티 영상통신입니다.”

“연결하게.”

- 충성! 상륙함대장 오승환입니다.

- 충성! 제7기동전단장 안형우입니다.

- 충성! 제2함대 구축함전대장 김이원입니다.

- 충성! 수고가 많다. 작전사령관이다.

함장 전용 모니터에 분할 된 화면으로 각 함단의 지휘관의 모습이 보였다.

- 지금부터 제53상륙전단과 제56상륙전단은 각자 지정된 상륙 지점으로 항로 변경하여 고속 항진에 들어간다. 상륙시간은 정확히 오전 0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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