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싸움
2021년 2월 10일 11:00 (미국시각 9일 15:00),
미국 버지니아주 앨링턴 펜타곤.
미합중국의 군 신경계의 중심인 펜타곤 3층 회의실에 미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하는 정보기관의 수장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ODNI(국가정보국)의 산하 CIA(중앙정보국), 법무부 소속의 FBI(연방수사국), 국토안보부의 I&A(정보분석실), CGI(해안경비대정보실), 국무부 소속의 INR(정보조사국), 나머지 국방부 소속의 MCIA(해병정보대), AFISRA(공군정보감시정찰대), ONI(해군정보실), MI(육군정보대), NSA(국가안보국), NRO(국가정찰국), NGA(국가지구공간정보국), DIA(국방정보국) 등 국내외 모든 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 중 국내 정보만 다루는 3개 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기관이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ODNI의 국가정보장 론 샌더스입니다.”
회의석 정 중앙 앉아있던 ODNI(국가정보국)의 국장이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ODNI(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정보기관을 개편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4년 12월 7일 상원에서 통과된 정보개혁법에 따라 설립된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통솔하는 최고 정보기관이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상황은 A급 상황으로 대통령님의 긴급 명령에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론 샌더스 국가정보장은 회의에 참석한 각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DIA(국방정보국)을 주축으로 몇 개 기관에서 공동으로 정보를 수집 중이나 지금부터는 ODNI(국가정보국)에서 모든 정보를 총괄하여 수집 및 분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뭘 말하는 겁니까?”
CGI(해안경비대정보실)의 로지 마티어 실장이 성급한 성격에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현재 운용 중인 각가지 방산무기 및 기술력 수준 등 한국 군사력에 대한 모든 정보입니다. 마이클 T. 죠시 국장님.”
“네, 정보장님.”
“현재까지 수집된 모든 정보를 ODNI(국가정보국)의 메인 센터 S급 DB에 전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는 센터 S급 DB에 접근 권한을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정보수집 및 분석한 자료는 실시간으로 메인 센터 S급 DB에 전송하여 모든 분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총알 하나까지라도 제원, 성능, 개발한 방산업체, 생산 장소 등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시기 바랍니다.”
“현장 요원들의 허용 수준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합니까?”
미국의 정찰위성을 담당하는 NRO(국가정찰국)의 안토니오 루니 국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정보수집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허용합니다. 단, 현재 우리 미국과 한국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 참고하시고 최대한 조심히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 ★ ★
2021년 2월 10일 16:0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외곽 내각 전용 건물.
금일 오전 김재학 장관과 언쟁을 벌였던 랜디 존슨 대외전략협상관은 아베 총리를 만나라는 백악관의 긴급 지시를 받고 도쿄로 돌아왔다. 또한, 도쿄 하네다 공황에서 미국 백악관에서 급파한 흑인 사내를 만난 후 아베 총리가 있는 내각 전용 건물을 가기 위해 준비된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자네는 어디 소속인가?”
랜디 존슨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하네다 공항에서 만난 낯선 흑인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낯선 흑인 사내는 조금은 차가운 음성으로 짧게 대답했다.
“대외비입니다.”
“다른 수행원처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건 아니군.”
랜디 존슨은 별 뜻 없이 가볍게 내뱉었고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착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수행원이 랜디 존스에게 알렸다.
“어서 오십시오. 아베 총리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저번에 마중 나온 분이 아니군요?”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지금 출장 중입니다. 따라오시지요.”
부재중인 야구마치 겐조 협상관을 대신해 현관까지 마중 나온 도고 시게노리 보좌관이 정중한 태도로 맞이했다. 저번과 같이 8층에 올라온 랜디 존슨 일행은 아베 총리실의 출입문에 섰다. 한국 특수부대의 출몰로 아베 총리의 경호가 한층 강화되었는지 기다란 복도와 출입문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총리님을 뵙기 전에 잠시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호원 중 선임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다가와 정중히 말했다.
“그럽시다. 시국이 시국이니 협조하겠습니다.”
이에 랜디 존슨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들었다. 그리고 함께 온 보좌관과 경호원 그리고 하네다 공항에서 만난 흑인 사내 역시 차례대로 몸수색을 당했다.
“국내에서 총기 소지는 불법입니다만, 이건 잠시 저희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흑인 사내의 품에서 권총 한 자루가 나왔다.
“내 걱정이 되었는지 본토에서 보낸 경호원입니다. 특수요원이라 부득이 권총을 소지하게 되었습니다.”
랜디 존슨은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이건 뭡니까?”
흑인 사내에게서 권총에 이어 스마트폰과 비슷한 소형 태블릿이 나왔다. 이에 흑인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거 아닙니다. 경호에 필요한 물건일 뿐입니다.”
“이것도 잠시 저희가 보관 하···.”
타앗.
흑인 사내는 총리 경호원의 손에 있던 태블릿을 순식간에 낚아채 빼앗았다.
“이건 보안상 잠시라도 맡길 수 없는 물건입니다.”
“안됩니다. 규정상 수상한 물품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순간 흑인 사내와 몸수색을 하던 젊은 경호원 간의 실랑이가 일어났다.
“이보시오, 우린 중대한 건으로 미국에서 온 특사 권한을 가진 사람이오. 그만큼 우리의 안전도 중요합니다.”
랜디 존슨 대외전략협상관이 갑자기 화를 내자 총리 경호원은 당황했는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랜디 존슨은 이번엔 중년의 선임 경호원에게 말했다.
“그럼 권총만 맡기시고 들어가시지요.”
이에 흑인 사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며 권총을 건넸다.
총리실 출입문이 열리고 랜디 존슨을 비롯한 수행원과 흑인 사내가 총리실로 들어갔다. 이에 의자에 앉아있던 아베 총리는 일어나며 말했다.
“좋은 소식이라도 들고 왔습니까?”
아베 총리는 인사를 뒤로하고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그만큼 아베 총리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 있는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는 들어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아베 총리는 접견실 의자를 가리켰다.
“네, 감사합니다.”
그 시각, 1.2km 떨어진 도네리코엔 공원에는 어제 낮, 수상한 행동을 보였던 아시아계의 사내 중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빠른 발걸음으로 어제 살폈던 울창한 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사내의 등에는 첼로 가방과 비슷한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매고 있었다.
한편 공원 옆 길가에는 오토바이를 탄 건장한 사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사내는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쓴 사내와 마찬가지로 어제 낮,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던 비니를 쓴 사내였다.
잠시 후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쓴 사내는 계획했던 자리에 도착하자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인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가방을 열어 뭔가를 열심히 조립했다. 그리고 조립이 완료되자 어디론가 통신을 날렸다.
- 코드네임 MKH125, 위치 확보! 내부 스캔 자료 전송 요망.
- 코드네임 GFD587, 퇴로 확보! 언제든 출발 가능.
통신을 마친 가죽 재킷 사내는 선글라스를 벗고는 방금 조립한 거대한 중화기의 스크린을 화면을 주시했다. 꼭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생김새의 거대한 총 모양에 왼쪽 부위에는 접이식 모니터 화면이 있었다.
한편 랜디 존슨을 따라 총리실에 들어온 흑인 사내의 머릿속에서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의 음성과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사내의 음성이 옆에서 얘기하는 듯 또렷하게 들렸다. 하지만 총리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다.
흑인 사내의 머릿속에 인식한 마이크로 통신 칩에 의해 고막이 아닌 뇌로 직접 음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흑인 사내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랜디 존슨 대외전략협상관과 아베 총리는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신경 쓰이는 건 출입문에 서 있는 두 명의 총리 측 경호원이었다. 이에 살짝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함께 온 랜디 존슨의 수행원과 몸을 겹치면서 품에서 아까 실랑이를 벌였던 문제의 소형 태블릿을 꺼내 손바닥 전체로 감싸 후 액정화면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작은 버튼을 눌렀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빛이 소형 태블릿에서 쏟아지면 총리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액정화면에 스캔 완료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중화기에 달린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가죽 재킷의 사내는 화면이 켜지고 실내 내부의 모습은 물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바로 흑인 사내가 스캔하여 전송해준 총리실 내부 화면이었다.
- 코드네임 MKH125, 스캔 자료 정상적으로 확인함.
짧게 통신을 마친 가죽 재킷의 사내는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중화기를 걸쳐 맸다. 20kg 정도의 무게인 중화기를 견착하고, 왼손으로 앞부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쥐고 있던 오른손의 검지를 방아쇠에 살짝 걸쳤다.
그리고 화면을 주시하며 목표로 한 건물 8층 한 지점을 향해 지향했다. 건물의 모든 창문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으나 중화기가 지향하는 점선은 중화기 모니터 화면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점은 천천히 이동한 후 한 사람의 어느 한 부위에서 멈췄다. 그 부위는 바로 접견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베 총리의 머리였다.
- 코드네임 MKH125, 앞으로 10초 후 임무 수행.
가죽 재킷 사내는 다시 한번 짧게 통신을 하고는 호흡을 길게 한번 들이마시고는 조준점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바로 오른손의 검지에 힘이 들어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쮸우우웅~
육중한 소음을 내며 중화기에서 날아간 붉은빛의 레이저 빔은 순간속도로 내각 건물 8층의 한 벽면을 손쉽게 뚫고 들어갔다. 뚫린 구명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였다.
쿠아아앙~ 콰콱! 콱앙!
랜디 존슨과 한참 논쟁을 벌이던 아베 총리의 머리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박 터지듯 머릿속 내용물을 쏟아내며 박살이 났다. 검붉은 살점과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악~ 우에에엑~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비현실적이고 엽기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랜디 존슨은 자신의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살점들을 본능적으로 떼어내며 비명을 질렀고 이내 바닥에 엎드려 위 속의 내용물을 쏟아냈다.
“총리님! 무슨 일입니까?”
선임 경호원이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온몸은 시베리아 칼바람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선임 경호원의 눈에 비췬 장면은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머리 없는 몸뚱이만이 의자에 앉아서 검붉은 피를 뿌려대고 있는 장면이었다.
“대, 대체 어찌 이런 일이···.”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총리실을 뒤로하고 가죽 재킷 사내는 서둘러 중화기를 분해한 후 가방에 넣고는 이내 오토바이를 타고 대기하던 사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몇 분도 안 되어 수상한 두 사내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쿄 외곽 방향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