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605)

진흙탕 싸움

2021년 2월 09일 15: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대통령 집무실.

전쟁도 전쟁이지만 통일 이후 북주 복구사업과 각 주의 관련 행정 업무로 인해 서현우 대통령은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그나마 요 며칠 일본과의 휴전으로 잠시 여유가 생겨 커피 한잔으로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있던 시간에 국가정보원 나봉일 원장은 엊그제 보고 했던 내용 건으로 재차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쉬고 계시는데, 제가 방해한 듯합니다.”

“방해라니요.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엊그제 보고했던 일본 총리실의 요인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 건에 대한 중요 정보입니다.”

“뭐 좀 알아냈습니까?”

“네! 대통령님! 조금 전 확실한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나봉일 원장은 정리된 1급 보안 문서를 서류 가방에서 꺼내 대통령에게 정중히 건넸다.

“역시 일본답군요. 항상 남들 뒤통수나 치려고 하고.”

대통령은 건네받은 문서를 천천히 읽고는 혀를 찼다.

“상종 못 할 종속들입니다. 뒤통수에는 뒤통수로 맞대응해줘야 합니다.”

“이 정보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국정원은 모르고 있지요?”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 합참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눈을 속이는 기만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면을 바라봤다. 그 벽엔 태극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언제까지 우리 대한민국이 당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젠 우리가 머리가 되어 그들 위에 서야지 않겠습니까?”

비정한 어조로 태극기를 보며 말하는 대통령을 바라보던 나봉일 원장은 문서철 하나를 가방에서 반쯤 꺼내 들고는 만지작거렸다.

“또 보고할 게 있습니까?”

평소답지 않은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이는 나봉일 원장이 이상했는지 대통령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것이···.”

“하하하, 똑 부러지는 나 원장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 대신 나봉일 원장은 가방에서 또 다른 문서철을 꺼내 탁자 위에 조용히 올려놨다.

“대통령님, 제가 생각해도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라 사실관계를 좀 더 조사하고 보고하려 했으나 사안이 사안이라 일단 보고하겠습니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대통령은 탁자 위에 올려진 문서철을 들어 제목부터 읽어나갔다.

“2015년 8‧15 평양 폭탄 테러 사건의 경위 보고서라, 갑자기 이건 왜? 새로 밝혀진 것이라도 있습니까?”

제목만 읽은 대통령은 성급히 질문을 던졌다.

“내용도 읽어주십시오. 대통령님.”

“알겠소.”

대통령은 첫 장을 넘겨 본론이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 대통령의 표정은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대통령은 문서철과 나봉일 원장을 번갈아 보며 질문을 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입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실을 실토한 사람이 모스크바에서 우리 정보요원에게 붙잡힌 일본 총리실의 보좌관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구마치 겐조라는 아베 총리가 신임하는 보좌관입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평양 폭탄 테러의 주범이 미국이고 또한 미국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USSC라는 비선 단체가 있다니.”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에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나 원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이 정보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을 망설인 이유는 혹시나 일본 내각의 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일본의 계략이라?”

“네, 그렇습니다. 8‧15 평양 폭탄 테러의 주범을 미국으로 지목시켜 우리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를 악화시킨 후 미국 군사력을 앞세워 불리해진 전세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원장 말대로 일본 놈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나봉일 원장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이때 나봉일 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심각하게 말했다.

“대통령님! 만에 하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봉일 원장은 말끝을 흐렸다. 이에 대통령 역시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했을 때 선뜻 그 뒤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과 미국은 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나도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일단 사실이든 일본 내각의 계략이든 사실관계를 정확히 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확실히 조사한 후 다시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대통령님! 야구마치 겐조가 한국에 호송되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조사하겠습니다.”

★ ★ ★

2021년 2월 10일 00:2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내각 전용 건물.

“지금 겐조 보좌관이 항공기에 탑승하지 않았다는 건가? 함께 간 경호원은?”

러시아에 갔던 야구마치 겐조와 오후부터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해진 아베 총리는 내각정보실에 확인하라는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지금 내각정보실장인 히로치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직접 아베 총리를 뵙고 보고를 올렸다.

“경호원 두 명 역시 연락이 모두 두절 된 상태입니다.”

“무슨 사고라도 난 건가?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쪽에는 연락을 취했나?”

“네, 대사관은 물론 모스크바 정보요원에게도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의 신상 파악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아베 총리는 늘어나는 주름을 펴고 싶었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위아래로 비비며 알아듣지 소리를 중얼거렸다.

“혹시···.”

“뭔가?”

얼굴에서 손을 뗀 아베 총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함에 몸이 무거웠는지 의자의 등받이를 의지한 채 몸을 젖혔다.

“러시아에서 뭔가를 꾸민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러시아가 왜? 우리가 제안한 건도 별다른 조건 없이 수락했는데 말이야. 자네는 정보를 다루는 기관장으로서 그 정도밖에 생각을 못 하나? 한심하긴.”

답답한 소리만 하는 히로치 정보실장 때문에 아베 총리의 미간의 주름은 더욱 깊게 새겨졌다.

“다른 추측으로는 한국 소행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

“그렇습니다.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한국은 한중전 이후 우리 일본과 러시아에 많은 수의 정보요원을 투입했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보고한 적이 있었지.”

“현재 일본에서 확인된 한국 정보요원만 30여 명이 넘습니다. 러시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말인즉 슨 야구마치 겐조의 러시아 방문을 한국 정보기관에서 알게 되어 일을 꾸몄다는 건가?”

“충분히 예상해볼 일입니다. 총리님.”

“자네 말대로 한국 정보기관에서 움직였다면 문제는 심각해지네. 히로치 정보실장?”

“네, 총리님.”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정보요원을 러시아 모스크바에 투입해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의 행방을 찾도록 하게. 만에 하나 자네 말대로 한국 정부기관이 소행이라면 우리만이 간직할 엄청난 비밀이 새어나갈 수 있단 말이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엄청난 비밀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내각정보실의 수장인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당장 조치를 하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 ★ ★

2021년 2월 10일 01:30,

경기도 성남 제15특수임무비행단 공군기지.

수십 대의 대형 군용 수송기는 민간항공기처럼 도색 된 상태로 이번에 새롭게 예편된 4개의 공수육전사단 병력이 줄줄이 개찰구를 통해 탑승하고 있었다.

4개 공수육전사단 병력만 총 2만 명에 달했다. 5시간 전 합동참모본부는 대통령으로부터 일본 전역에 대한 공수작전 명령을 최종적으로 하달받고는 미국 정찰위성의 눈을 피해 은밀히 작전을 추진했다.

1시간 후 2만 명에 달하는 공수육전사단 병력이 모두 탑승하자 CC-502 군용 수송기 32기와 CC-503 군용 수송기 16기는 차례대로 유도병의 안내에 따라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륙준비에 나섰다. 또한, 이륙 전부터 강력한 전자파(SECM(Super Electronic Counter Measures))를 방출했다. 수차례의 대공습으로 일본 자위군의 지상 레이더기지를 공격하여 파괴했지만, 현재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은 일본 대공 레이더기지와 조기경보관제기 그리고 일본 전 지역에 주둔 중인 미군의 대공 레이더에 피탐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15특수임무비행단의 시계가 정확히 3시를 가리키자 활주로에서 가장 앞에 있던 CC-502 군용 수송기의 날개에 장착된 C-PTZ-1000 엔진 4개는 충분한 예열을 마치고 크지 않은 소음과 함께 엄청난 푸른 불꽃을 토해내며 활주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붉은 조명을 따라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륙하기에 충분한 양력을 얻은 CC-502 군용 수송기는 부드럽게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러한 행진은 30여 분간 계속해서 이어졌다.

또한, 성남 공군기지 상공 반경 50km 이내에는 줄줄이 이륙하는 군용 수송기의 호위 임무를 맡고 출격한 청주 제17전투비행단 소속의 주작 전투기 24기와 군산 제38전투비행단 소속의 주작 전투기 48기, 그리고 수원 제10전투비행단 흑주작 전폭기 24기가 계속해서 선회하며 각자 호위할 군용 수송기와 함께 천천히 일본 방향으로 비행해 갔다.

한편 김포공항에서 출격한 CC-501 군용 수송기 21기 역시 주작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각자 정해진 경로를 따라 규슈 일대로 흩어져 비행해 나갔다.

★ ★ ★

2021년 2월 10일 02:4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방금 공작사로부터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군용 수송기 모두 이륙해 정상적으로 일본 전역으로 비행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작전본부장인 김용현 중장이 상황실 메인 스크린을 보고 있는 강이식 합참의장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사실 현재 합동참모본부 상황실의 디지털 군용 시스템으로 보자면 일일이 이렇게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대한민국 모든 부대의 상세한 정보가 대형 메인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보였고 합참의장이 가지고 있는 태블릿 PC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메인 스크린에는 현재 성남 제15특수임무비행단 기지와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수송기는 물론 호위 임무를 맡은 전투기의 이동 상황이 여러 표기 점으로 안내 문구와 함께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갖춰진 이전의 습관이 남아있던 보수적인 편에 속한 군 특성상 참모진들은 하나같이 일일이 보고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 일본 전역에 대한 공수작전의 첫 번째 임무는 일본으로 넘어간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일괄 회수 임무였고 두 번째 임무는 전범 기업의 빌딩과 각가지 생산설비가 마련된 공장의 파괴 임무였다. 이에 공수육전사단의 중대장들은 국가정보원에서 오랫동안 공들여 취합한 일본 내 한국 문화재에 대한 리스트와 일제강점기 기간 일본 제국과 함께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전범 기업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 ★ ★

2021년 2월 10일 03:30,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상공.

규슈 지역을 통과한 후 규슈 구마모토 상공에 이른 CC-501 군용 수송기 3기에서 후방 해치가 열리자 제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특전사는 망설임 없이 허공을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도에 다다르자 검은 낙하산을 펼치며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구마모토에 투입된 제1공수특전여단의 특전사는 총 540명으로 280점의 문화재 회수와 함께 전범 기업 4곳의 산업시설을 폭파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계속된 공습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구마모토 시내는 잠시나마 한일전 휴전으로 예전보다는 못했지만 늦은 시간에도 시내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낙하산으로 시내 곳곳에 침투한 검은 베레모를 착용한 특전사의 갑작스러운 출몰에 놀란 시민들은 공습보다 더한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졌다. 공습이야 어쩌다 떨어진 폭탄에 일부 건물이나 시민들이 다쳤기에 지진을 항상 겪고 있는 일본 시민들에게 다가오는 공습의 충격은 지진의 여운과 비슷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자국 군인이 아닌 적국의 군인을 직접 본다는 건 충격 중의 충격이었다.

시내 곳곳에 출현한 대한민국 특전사 때문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 경찰은 팀별로 움직이는 제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특전사와 마주쳤으나 최첨단 장비를 착용하고 각가지 레이저 라이플 개인화기를 보유한 특전사와의 화력전에서 절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에 일본 경찰들은 먼 거리에서 권총 몇 발만 쏘고는 도망가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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