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605)


속임수


2021년 2월 09일 13: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오전 미군 함대 움직임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점심 후 회의실에는 강이식 합참의장을 비롯해 3성 이상의 장성만이 모여 중대한 의회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2성 계급인 특전사령부 부사령관인 북한군 출신인 이현원 소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강이식 합참의장은 왼편에 앉아있는 장성에게 물었다.


“금일 새벽, 작전에 투입될 공수육전사단 병력 모두 현재 성남 비행장과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대기 중인 상태입니다.”


검은 베레모를 착용한 특전사령관인 강정현 대장은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통일 이후 특전사령부는 북한 제8특수군단과 통합되면서 예전보다 5배 이상으로 규모로 커지면서 이제는 국군 전력에서 매우 중요한 전력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특전사령관 강정현 대장은 기존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했고 부사령관인 이현원 소장은 엄밀히 말하자면 중장 진(진급 대기) 상태였다.


“현재 8개 공수육전사단 모두 합참의장 동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네다. 명령만 주시라요. 완벽히 수행 하갔습네다.”


이현원 중장 진은 강정현 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민군 출신답게 충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조금은 과도한 행동이었다.


“하하, 이 중장 그만 앉게.”


강이식 합참의장은 아직 진급되지 않았지만, 중장 이상만 모인 자리인 만큼 사기 증진 때문인지 이현원을 중장 계급으로 불렀다.


“알겠습네다. 언제든 명령만 주시라요.”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한반도 상공으로 추가 투입된 미국의 군사위성으로부터 한국 해군의 상륙부대가 정찰 당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추가적인 위성 파괴를 고려했으나 잠시간 미국과의 충돌을 자제하자는 의견에 더 이상의 위성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역으로 미국 정찰위성의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는 시간대에 제10상륙함대 소속의 강습상륙함과 수송함에 승선했던 해병 병력을 하선시킴으로써 상륙작전이 중단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기만 작전을 펼쳤다.


반대로 공수육전사단과 공수특전여단 병력을 금일 새벽 심야시간대를 이용해 은밀히 성남 제15특수임무비행단과 김포공항에 이동조치 시켰다. 현재 제15특수임무비행단과 김포공항에는 수많은 군용 수송기가 국방색 위장이 아닌 민간항공기처럼 도색된 상태로 출격 대기 상태였다.


“수송기 상태는 문제없겠지?”


강이식 합참의장은 이번에는 오늘 오후 회의를 위해 오산기지에서 올라온 공군작전 사령관 김은호 중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KC-501 수송기 21기, KC-502 수송기 32기, KC-503 수송기 16기 모두 정비가 완료된 상태로 현재 민간항공기처럼 위장 색으로 도색해 출격 대기 상태입니다.”


김은호 중장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수고했네.”


강이식 합참의장 역시 짧게 말하고는 회의석에 참석한 장성들을 두루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작전은 미국을 속이며 실시하는 작전인 만큼 보안에 특별히 주의 바라고 대통령님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시행한다.”


“대통령님께서 어제쯤 명령을 내리실 거 같슴네까?”


최호일 합참차장이 넌지시 물었다.


“글쎄요. 지금 국정원 쪽에서 뭔가를 확인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기다려 봐야겠지요.”


“그렇구만요. 알갔습네다. 이거이 미제 놈은 물론 쪽발이 놈의 뒤통수를 친다는 생각에 매우 기다려집네다. 하하하.”


최호일 합참차장은 나이와 맞지 않게 어린애처럼 잔뜩 기대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 ★


2021년 2월 09일 13:30 (러시아시각 7:30),


러시아 모스크바 트버르스카야.


현 시각으로부터 5시간 전, A106 도로


모스크바의 트버르스카야에 위치한 성피터스버그 호텔에서 출발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A10 도로를 타고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검은 밴이 조용하고 은밀히 따라붙고 있었다.


“언제쯤 덮칠까요?”


검은 밴을 운전하던 동양 사내는 조수석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팀장이라 부르며 말했다.


“3km 앞 E105 외곽고속도로 타기 전에 해치우자! 속도 올려서 옆으로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차질 없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알았지?”


“네.”


세 명의 사내는 동시에 대답했다.


부우우웅.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자 검은 밴의 머플러에서 시꺼먼 배기가스가 뿜어나오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옆으로 붙어서 나란히 달려.”


잠시 후 우회전을 하기 위해 3차선에서 4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한 검은 승용차에 검은 밴이 따라잡으며 오른쪽 3차선에서 나란히 날려 나갔다.


“지금!”


조수석에 앉아있던 팀장이라는 사내의 외침에 운전하던 사내는 그대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급격히 돌리며 추월하자 4차선으로 갑자기 끼어든 검은 밴의 오른쪽 리어와 검은 승용차의 왼쪽 프런트 쪽이 부딪쳤다.


쿠앙 ~키키키킹~


충돌 이후 두 차량은 갓길에 섰다.


검은 밴에서는 팀장이라는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당황한 척하며 검은 승용차 조수석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러시아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체 당신들 뭐야? 이렇게 갑자기 끼어들면 어떻게 해?”


검은 승용차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는 갑자기 일본말이 튀어나왔다. 이에 당황한 척 러시아어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팀장이라는 사내는 품에서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꺼내고는 검은 승용차 안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퓽웅~ 퓨웅~ 퓨웅~


승용차 안에 타고 있던 3명의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이를 확인 한 팀장은 검은 밴에 신호를 보냈고 나머지 두 명의 사내가 밴에서 내려 검은 승용차로 달려왔다. 그동안 뒷좌석에 축 늘어진 사내의 품에서 지갑을 꺼내 들어 신분증을 확인했다.


“야구마치 겐조라······. 맞는 거 같군. 이놈들 결박 확실히 하고 외곽 본부로 따라와.”


“네, 팀장님.”


팀장은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권총과 신분증을 품에 넣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검은 밴으로 돌아와 차에 탔다.


“가자.”


겨울이고 아침 8시라는 시간대의 모스크바는 해가 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은 어두운 상태였다. 이에 2명의 사내는 기절해버린 운전석 사내와 조수석 사내를 뒷좌석으로 옮기고는 입막음은 물론 눈까지 가리고는 손과 발을 결박했다.


“다 됐어? 박 주임?”


“오케이 다 됐다.”


“알았어! 고.”


두 사내가 대화하는 말은 러시아가 아닌 한국말이었다. 이들은 바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러시아지부 정보요원들이었다. 한중전 이후 러시아와 일본에 대한 첩보 및 정보전이 강화되면서 여러 팀이 러시아 도시 곳곳에서 은밀히 활동하게 되었고 엊그제 일본 총리실의 요인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2일간 은밀히 추적 중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본국 국가정보원에게 알렸다. 이에 국가정보원장인 나봉일 원장은 납치해서라도 방문 목적을 확실히 알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러시아지부 정보요원들은 요인이 모스크바에서 출국하기 전에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 ★ ★


2021년 2월 09일 15:30 (러시아시각 9:30),


러시아 모스크바 트버르스카야. 어느 건물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의자에 꽁꽁 묶여서 앉아있는 일본 사내를 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어내며 서 있는 한 사내가 말했다.


바로 5시간 전 팀장이라 불리던 국가정보원 러시아지부 김진중 팀장이었다. 이에 5시간 만에 깨어난 일본 사내는 발버둥을 치며 입마개 때문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을 웅얼거렸다.


“박 주임 저 자식 입마개 좀 벗겨줘.”


“네, 팀장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덩치가 큰 박원호 주임이 다가가 발버둥 치는 사내의 뒤통수를 살짝 치며 입마개를 벗겨줬다. 이에 일본 사내는 입이 자유로워지자 악을 쓰며 일본말로 소리쳤다.


“너희들 정체가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빠가야로.”


“야구마치 겐조! 이게 네 이름 맞지?”


악을 쓰며 소리치던 일본 사내는 들려온 한국말에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며 쳐다봤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러냐!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자.”


김진중 팀장은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건네며 야구마치 겐조 앞으로 바짝 다가가 의자를 놓고 앉았다.


“겐조! 러시아 푸틴 대통령 만나서 무슨 얘기 했나?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해! 네가 아무리 거짓말해봤자 다 알게 되어있으니까, 미련하게 고생한 후 불지 말고 우리 신사적으로 해결하자. 알았나?”


“웃기지 마라! 난 푸틴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러시아에는 사업차 왔을 뿐이야.”


“어이 야구마치 겐조! 네가 아베의 딸랑이라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매운맛 좀 보고 말할래?”


“정말이다. 난 사업자 왔···.”


퍽!


야구마치 겐조의 얼굴이 왼쪽으로 확 처져졌고 입에서 하얀 이 몇 개가 검붉은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내가 시간 없다고 했지?”


김진중 팀장은 야구마치 겐조의 뒷머리를 부여잡고는 몇 차례 더 주먹을 날렸다.


퍽퍽퍽!


“그, 그만! 제발! 그만해, 말할 테니까.”


야구마치 겐조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듯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기회다. 알았나? 방문 목적이 뭐야?”


“러시아 무기를 구매하려···.”


빠악!


이번엔 휘두른 김진중 팀장의 주먹에 의자까지 들썩거릴 정도의 강한 충격이 야구마치 겐조의 얼굴을 강타했고 이내 기절해버렸다.


“이 새끼 안 되겠다. 안 주임! 약물 주입해.”


“네”


잠시 후 정체 모를 약물을 주입된 야구마치 겐조가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겐조 정신이 들어?”


몸은 나른나른하고 동공은 풀린 상태로 야구마치 겐조는 자신을 부르는 자를 바라봤다.


“약물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군”


김진중 팀장은 야구마치 겐조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은 후 손을 들어 뭔가를 보여줬다. 어른 손가락만 한 샘플 병이었다.


“이게 말이야. 방금 자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약물이 담겼던 빈 병이고 K-25B2라는 부르는 건데, 이게 참 고약해! 앞으로 길면 10년 안에 서서히 뇌가 피조직이 파괴되면서 식물인간이 되거든.”


김진중 팀장은 비어 있는 샘플 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치료제 샘플 병이야. 이 치료제는 오직 우리만 갖고 있다.”


김진중 팀장은 왼손에 들고 있는 또 다른 샘플 병을 보여줬다. 은은한 빛깔의 용액이 채워져 있었다.


“자! 어떻게 할래? 지금 다 불고 이 치료제 맞을래. 아니면 10년 동안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식물인간 된 후 인생을 마감할래? 더는 강요 안 하겠다. 알아서 결정해”


“다! 다 말할 테니 어서 치료제······.”


0